일상 여행기/오늘의 잡담

오늘의 잡담 - 5일간의 일을 끝마치며

좀좀이 2017. 8. 11.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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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기적의 연속이 있었던 5일간이었달까.


나는 문학 이론, 미학 같은 건 공부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때까지가 전부. 언어학도 특별히 배워본 적이 없다. 내 전공 수업에서 그런 건 안 알려주었다. 언어학 자체를 안 좋아하기도 했다. 나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그 꽃이 어떤 구조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없고 오히려 그걸 알려고 분석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고등학교때 2인칭 시점은 없다고 배웠다. 1인칭 시점, 3인칭 시점에 대해 배우기는 했지만 시험칠 때 '나'가 나오면 1인칭, '나'가 없으면 3인칭이라고 간단히 알고 풀곤 했다. 그런 데에 큰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글쓸 때 별 생각없이 1인칭만 주구장창 썼다.


2인칭 소설이라는 소설의 구절 몇 개. 그리고 그 소설들 소개문들. 일요일 오후 시작할 때 내가 갖고 있던 정보의 전부였다. 거기서부터, 그것만 가지고 시작했다.


8월 7일 첫 글을 올렸을 때, 중국 여행 같이 다녀온 친구가 흥분해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걸로 서로 엄청나게 떠들었다. 솔직히 친구가 왜 이렇게 흥분하나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나야 개인적으로 너무나 재미있기는 한데 그게 친구를 흥분시킬만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도 소설을 쓰려고 구상중이고 문학에 관심이 많은데 이것이 그렇게까지 흥분시킬만한 건가 했다.


끝없이 내 스스로 던진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 8월 8일 화요일 아침 주안역으로 가는 길에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간석역 가려다가 길 잘못 들어서 주안역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덥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데 이상하게 피곤하다고 느껴지고 있었다. 글로 쓸만한 것이 주변에 하나도 없어서 그 문제나 생각하자고 생각하는데 뭔가 딱 떠올랐다. 그 생각을 카톡 내게 보내는 메시지로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와 잤다. 바로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것이 맞았겠지만 귀찮아서 한숨 자고 생각 정리해 글로 쓰자고 생각하고 골아떨어졌다. 의정부역 도착했을 때 숭실대에서 같이 살았던 친구 (이하 숭실대 친구)에게 실험 결과물을 보여주었더니 정신없다고 했다.


8월9일 수요일 오후. 소설을 쓰러 카페로 갔는데 계속 한 문장이 머리 속에서 맴돌아서 전날 주안역 가던 길에 떠오른 아이디어나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한 문장이 여전히 머리 속에 맴돌고 있었다.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지 끝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그 문장. 순간 전날 아이디어를 뼈대만 남기고 다 뜯어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최소한 내가 어디인지는 알겠지.


그래도 여전히 그 문장은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이제 친구까지 데려왔다. 기의에 대한 집중. 그리고 끝없는 질문과 실험. 일단 실험 결과물을 숭실대에서 같이 살았던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친구가 여전히 정신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날 밤 다시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것이 바로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왜 폐쇄적이고 왜 제한적인지,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술이었다.


8월10일 목요일 오후. 전날 카페에서 소설을 1화도 못 썼기 때문에 오늘은 반드시 1화를 다 쓰자고 결심하고 카페로 갔다. 전날 밤 떠오른 아이디어에 대해 집중하자 두 가지 답이 나왔다. 이거라면 되었다. 이거라면 완성이다. 가장 난해하고 비중이 가장 큰 핵심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러면 드디어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아직 머리 속에 떠오른 스토리가 없기 글을 쓸 수는 없었다. 실험 결과물만 존재할 뿐. 하지만 그 실험결과물은 분명히 내가 월요일에 떠올렸던 그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 단지 내 필력이 형편없어서 결과물이 개떡같았을 뿐. 수없이 많은 장면을 상상하고 적용해보았다. 심지어는 내 여행기, 아이스크림 먹고 쓴 후기에까지. 하지만 그것들은 '글'이 아니라 몇몇 문장의 조합들이라 차마 다 쓰지 못하고 그나마 이야기 토막이 있는 장면 묘사를 한 것만 글에 쓸 수 있었다.


숭실대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친구가 역시 별로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내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었다. 내가 아무 말 안했는데 말이다. 친구가 문제라고 지적한 부분은 내 아이디어와는 관련이 없는 부분이었다. 내 필력이 형편없어서 발생한 부분들이었다. 즉 일단 성공이었다.


중국 여행 같이 다녀온 친구에게 보여주자 내게 그 아이디어 글은 내리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흥분해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음달 초에 서울 올라오는데 함 끝장논의를 해보고 같이 해보자는 것이었다. 나야 개인적으로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친구가 왜 이렇게 흥분을 할까 궁금했다. 친구가 흥분한다는 것은 분명히 뭔가 느낌이 확 왔다는 건데. 친구가 구상중인 소설에 적용시켜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내 소설에도 적용해보면 상당히 재미있을 거구. 친구가 만약 그것을 영상으로 찍는다면 어떻게 나오겠냐고 물어보았다. 당연히 영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까지도 다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기법으로 표현되어야 할지까지 다 떠올렸으니까.


나와 이 문제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눈 사람들 모두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그리고 그 걱정들 모두 내가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문제이고, 그 부분에 대해 정확히 알고 걱정해주어서 정말로 고마웠다.


문학이란 참 재미있다. 그 어떤 이론도, 아이디어도 결국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작품이 있어야만 가치를 가진다. 왜냐하면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2인칭 시점? 왜 4인칭 시점은 안 되고, 5인칭 시점은 안 되고, 13인칭, 1693인칭 시점은 안 되지? 당연히 다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기법도 정립이 안 되어 있고, 그 기법으로 써서 인정받은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디어와 이론을 토대로 한 작품이 인정받아야만 아이디어와 이론이 가치를 가진다. 문학에서 불가능은 없다. 단지 인정받은 작품이 없어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아이디어와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영역이 무수히, 너무나 넓을 뿐.


즉 내 아이디어가 가치를 가지려면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려면 내가 기본적으로 글을 매우 잘 써야 한다. 그런데 나도 안다. 나 글 정말 못 쓴다. 특히 표정 묘사에 유독 취약한 편이고, 형용사, 의성어 및 의태어 사용에 매우 약한 편이다. 원래 글 쓰는 스타일이 최대한 외형 묘사는 단순하고 간단하게 하는 쪽을 추구하기도 했고, 일상생활에서 이쪽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내 아이디어로 글을 쓰려고 하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이 글을 보며 오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지나치게 자만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장면을 표현할 수 있고, 정말로 '너의 눈으로 보는 나의 모습'에 부합하며 언어를 파괴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내 머리 속에 아름다운 영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아무 것도 없다시피한 곳에서부터 시작했는데 5일째에 거의 완성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강렬한 영상이 머리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 영상을 떠올리면 되었다. 또한 이 작법을 영상으로 어떻게 찍을 것인가? 이 문제도 답은 나왔고. 이제 이걸로 제대로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필력만 따라준다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의외로 쓰는 방법이 간단했기 때문이다.


참과 거짓이 모호하다. 이것은 전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잡히지만 잡히지 않는다. 머리 속에 있는 수많은 결과물로 나온 그 아이디어의 특징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아이디어로 제대로 글을 쓰는 것. 자잘한 문제 몇 개가 남아 있기는 한데 이것은 아이디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내 필력의 문제였다. 내가 글을 잘 쓰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 아이디어로 해결해야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설계도가 있다고 모두가 제대로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설계도가 문제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오히려 설계도는 문제 없는데 그 설계도 갖고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 형편없어서 제대로 된 걸 못 만드는 문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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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을 보며 표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참 쉽지 않다. 국어사전이라도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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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는 소설 제목은 '기적과 저주'.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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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다 등장인물에 대한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여자친구가 왜 하필 그렇게 지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웬만한 주요 인물은 이름에 다 뜻이 있다고 알려주자 놀랐다. 나 그래도 글 쓸 때 필요한 기본적인 설정은 하면서 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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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장에서 가장 중요한 화를 써야 한다. 그래서 더욱 긴장된다. 이것을 잘 써야만 앞으로의 글 속에서 주요 인물의 행동에 개연성이 생긴다. 읽고 공감이 가면서도 답답해서 빡치게 써야 하는데 내 필력으로 그게 될까 참 걱정이다. 원래 아까 쓰려고 했는데 자신이 없어서 일단 뒤로 미루어두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는 일. 심호흡하고 쓰기 시작해야 한다. 핵심 포인트는 '못 먹을 감 쳐다도 보지 말라'와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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