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오늘의 잡담

오늘의 잡담 - 1인칭과 3인칭

좀좀이 2017. 8. 6.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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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오늘의 잡담' 글 시리즈에 인칭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쓰고 있다. 누가 보면 내가 3인칭 정말 싫어하는 줄 알 것 같다. 나 3인칭도 매우 좋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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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인칭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1인칭이 3인칭보다 쓰기 훨씬 어렵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자 '어? 더 어려운 걸로 써봐야지'하고 1인칭으로 글을 썼다. 친구에게 글을 보여주자 친구가 한 마디 했다.


"너 글 3인칭 같아."


그 말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1인칭을 쓰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어떤 글을 쓰든 '진정한 1인칭 글은 무엇일까, 1인칭의 극대화는 무엇일까'를 항상 진지하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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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을 어떻게 쓰냐는 질문에 대해 흔히 돌아오는 대답은 '일기처럼 쓰세요'다. 개인적으로 이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기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일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인칭으로 보면 1인칭이 맞다. 애초에 1인칭과 3인칭의 기준은 화자가 '나'인지 '남'인지의 차이니까.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이 둘 사이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해진다.


일기를 쓸 때는 지나간 일을 회상하며 쓰기 때문에 '나'의 일이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나'에 대해 이인화가 일어난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자기 자신과 과거 사건 속 자기 자신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본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기는 1인칭 글이 맞기는 하나 일기 내용 상당 부분이 3인칭으로 아주 쉽게 바꿀 수 있다.


사례1

(1) 오늘은 너무 더웠다.

(2)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었다.

(3) 에어컨을 틀어도 방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4) 에어컨이 고장난 것 같았다.

(5) 이번 여름은 정말 지독하다. 어서 가을이 왔으면.


사례2

(1a) 오늘은 너무 더웠다.

(2a) A는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었다.

(3a) 에어컨을 틀어도 방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4a) 에어컨이 고장난 것 같았다.

(5a) A는 생각했다. '이번 여름 정말 지독해. 어서 가을이 왔으면.'


사례1은 흔히 볼 수 있는 일기 형식의 글이고 사례2는 사례1을 3인칭으로 바꾼 글이다. 5번과 5a번은 확실히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4번과 4a번은 글쓰기 스타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저렇게 똑같이 갈 수도 있는 부분. 하지만 만약 4번이 '같았다'가 아니라 '같다'로 끝난다면 4번과 4a번은 다른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2번과 2a번 문장은 단순히 주어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고, 1번과 1a번, 3번과 3a번은 완벽히 같은 문장이다. 즉, 이인화의 정도로 본다면 1,2,3번은 상당히 강한 편, 5번은 매우 약한 편이다. 글 쓰는 사람과 글 속의 주인공인 '나'의 이인화 (심리적 거리) 정도가 강해질 수록 1인칭 글은 3인칭 글과 비슷해진다.


1인칭 글을 처음 쓰는 사람들은 3인칭 글과 다른 점이 화자가 '나'인지 '남'인지 밖에 없는 글을 쓰곤 한다. 왜냐하면 내면에서 '이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이인화가 강하게 일어난 것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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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으로 글을 쓸 때,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단지 1인칭으로 쓰는 것이 3인칭으로 쓰는 것보다 낫겠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1인칭을 선택할 뿐이다.


05


내가 10년 넘게 소설을 안 썼다는 것은 장편을 안 썼다는 이야기. 단편 및 습작은 간간이 썼다. 당연히 1인칭으로 썼다.


1인칭 글을 쓴다고 글을 쓸 때 실존하는 나와 내 소설 속 주인공 '나'가 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다르다. 1인칭 글이라 해서 주인공에만 몰입해서 글을 쓸 수 없다. 주인공이 말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1인칭에서 화자 '나'는 글 전체의 기준이 될 뿐이다.


1인칭에서 화자 '나'가 글 전체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 내가 1인칭으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다. 3인칭 글은 글 쓰기 위한 세팅을 상당히 많이 필요로 한다. 반면 1인칭 글은 '1인칭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기본 세팅은 끝난 상태가 된다. 뭔가 떠올랐을 때 글 쓰는 행위에 빠르게 돌입할 수 있기 때문에 1인칭 글을 계속 써 왔고, 앞으로도 이 점 때문에 계속 1인칭 글만 쓰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서 '청년이 거지에게 적선을 한다'는 장면이 떠오른다면 1인칭에서는 화자를 누구로 할 지 정하고, 화자를 정하는 순간 글 쓰기 위한 세팅은 기본적으로 끝난다. 화자를 청년으로 설정한다면 모든 것을 청년에게 맞추면 된다. 소설 속 세계는 청년이 인지하는 세계이며, 거지가 인지하는 세계는 철저히 배제된다. 거지가 인지하는 세계를 전적으로 무시해도 된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거지가 인지하는 세계는 주인공인 '청년'이 인식한 거지의 모습으로만 나와야한다는 것이다. 거지가 실제 40살이고 한때 부자이든 전쟁영웅이든 청년이 거지를 60살 노인으로 보았다면 주인공이 거지에 대해 상세하게 알게 되기 전까지 거지는 60살 노인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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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글을 쓰며 항상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3인칭 글과 다르냐는 문제다. 1인칭 글은 얼마나 작가와 글 속 주인공 '나'의 이인화가 드러나지 않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작가와 글 속 주인공 '나' 사이의 이인화가 글에서 강하게 나타날수록 1인칭 글과 3인칭 글의 차이는 점점 모호해진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가면 주인공이 '나'로 설정되어있는지 '남'으로 설정되어 있는지만 남을 뿐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철수가 민호보다 나쁘다고 생각했다' 같은 것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며 글을 쓰고 읽고 생각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1인칭 글과 3인칭 글의 차이점이 떠오른다. 1인칭 글에서 주인공 '나'는 단순한 주인공이 아니라 그 소설 전체이자 그 소설의 세계 그 자체다. 1인칭 글은 무조건 '주인공'과 '소설의 스토리'와 '소설 속 세계'의 삼위일체가 반드시 완벽한 형태로 일관되게 유지되어야만 하며, 소설 속 주인공과 작가가 다른 사람이라는 점은 최대한 숨겨야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1인칭 글과 3인칭 글은 사용하는 기법, 문체 등 모든 것에서 큰 차이가 나타난다.


요즘 글을 쓰며 고민하는 것은 1인칭 글에서 주인공이 관찰자 입장일 때와 3인칭 글의 차이를 어떻게 해야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할 것인지다. 특히 두 인물의 대화를 가만히 있는 상황 묘사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이 많은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심해진다. 주인공이 별 생각없이 듣고만 있다고 대사만 쭉 적으면 대사만 한 바닥 되기 십상. 주인공이 느낀 것을 중간중간에 넣는 것이 방법이기는 한데 어떻게 써서 중간에 집어넣어 대화를 끊는 것이 좋을지도 문제다. 언쟁 부분은 그나마 나은데 잡담 부분은 정말로 어렵다.


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잡담을 가만히 듣는 부분은 쓸 때마다 고생하고, 써놓은 것을 보면 항상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쓰기 어렵고, 써놓은 것을 보고 불만이 커진다. 왜 이렇게 밖에 못쓸까 하구.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 딱 마음에 드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이 부분이 제일 신경쓰인다. 장면 묘사를 잘 못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특히 유독 어렵게 다가오는 것도 클 거다.


누구나 보자마자 '이것은 좀좀이의 글'이라는 것이 확 드러나는 글, 그리고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이것은 1인칭'이라는 것이 확 드러나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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