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오늘의 잡담

오늘의 잡담 - 내가 글 쓰는 스타일

좀좀이 2017. 8. 4.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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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글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머리 속으로 생각했던 나의 글 쓰는 스타일 정리. 언젠가 시간이 지난 후 보면 나 스스로 보고 웃지 않을까.


01


글을 쓸 때 설정집 보아가면서 봐야할 글은 최대한 지양한다. 이것은 내가 일단 싫어서. 내가 내 글을 읽는데 내가 만든 설정집 보며 읽어야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차라리 글에서 주절주절 쓰는 게 많게 써서 지저분해보이게 쓰는 한이 있더라도 설정집 보아가면서 봐야할 글만은 최대한 안 쓰려고 한다.


02


독자가 글 속에 들어와서 볼 수 있는 글을 추구한다. 글 속에서 '저 자리쯤 내가 있어도 될 것 같은' 글을 쓰려고 한다.


03


글을 구상하고 개요를 짜는 과정에서 너무 디테일에 신경쓰지 않는다. 글을 전개해나가면서 설정의 디테일을 완성해나간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초반에 모든 것을 완벽히 해놓으면 뒤로 갈 수록 글쓰기 상당히 어려워지고, 설정이 꼬여버리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자기가 만든 설정으로 인해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갈 수록 크게 제한되어 가는 문제는 당연히 발생하고, 이와 더불어 글 뒷부분에 떡밥 회수용 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초반에 너무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짜놓으면 이어져온 설정과 전혀 맞지 않는 무리수를 쓰게 된다. 특히 장편에서는 글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기존에 구상했던 스토리에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지는 경우도 많다보니 초반에 너무 설정의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큰 라인만 잡아놓는 편이다. 스토리가 중심이고, 스토리에 따라 배경을 맞추어나간다.


여행기를 쓸 때에도 디테일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그리고 이야기의 부드러운 전개에만 집중한다. 여행기에서는 1화에 최소 에피소드 하나 이상 들어가는 것을 기준으로 하되, 한 화에 들어가는 사진 장수가 이 기준보다 우선할 수 있다.


04


판타지를 쓸 때는 소설에 집어넣어도 될 물건인지 아닌지 생각해본다. 기준은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기술로 만든 것인가. 중세풍으로 쓴다 해서 근대, 현대의 발명품을 등장 못 시키는 것은 아니다. 과거 기술로 충분히 발견 가능한데 발견, 발명을 못하다 근대, 현대에 와서 발견, 발명된 것이라면 집어넣어도 별 문제가 없다.


단, 정치, 경제 구조는 상당히 고민한다. 예를 들어 강력한 중앙집권과 독재 같은 경우 정보통신 및 교통수단의 발달이 필연적이기 때문. 인플레이션 또한 마찬가지.


05


올해 초 여행기 문체를 대대적으로 손보았다. 기본이 되는 문체는 '했어요'이지만, '했다', '했어', '했습니다'에 각각의 성격과 특색을 주어서 필요에 따라 사용하고 있다. 아직도 피곤하고 생각없이 쓸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했어요'체로 쓰지만. '했어요'만 사용하면 평소 쓰던 문체라 그냥 쭉 쓰면 되지만, 네 가지 어미를 사용하려면 각 부분에 대해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한다. 내가 '했어요'체를 일관되게 애용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이렇게 어미 변화를 이용한 기교를 부리기 쉽고 편해서다.


반면 소설은 '했다'가 기본. 그래서 여행기와 달리 어떤 어미를 써야할지 고민하는 일이 별로 없다. 물론 '했다'를 기준으로 '했어요', '했어', '했습니다'를 적절히 사용할 수 있기는 한데 어떻게 사용할지는 연구해보아야 할 문제. 습작 몇 개 써보면 감이 잡힐 텐데 습작 소재가 없다.


06


개인적으로는 여행기보다 소설 쓰는 것이 훨씬 편하다. 여행기는 무조건 사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대화 지문은 약간 다를 수도 있지만, 그 외 모든 부분은 사실이어야 한다. 기억이 잘 나지 않거나 느낌으로만 기억하는 것을 글로 옮기려고 하면 정말 괴롭다. 더욱이 독자가 어떤 부분에서 이해를 잘 못할지 항상 고려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여러분 상상에 맡길게요'라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서, 태국 여행기를 보면 100밧은 싼데 300밧은 비싸다는 내용을 흔히 볼 수 있다. 200밧 차이인데 100밧은 싸고 300밧은 비싸다고 한다. 그렇다면 비싸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이고 비싼 것과 안 비싼 것의 경계는 무엇인가? 태국 1바트가 한화 33원 정도 한다. 100밧은 3300원, 300밧은 9900원인 셈. 이렇게 별 것 아닌 것이 여행기에서는 간과해서는 안 될 만큼 너무나 중요하다. 이런 부분 하나하나가 여행기에 대해 '잘쓴 것'과 '못쓴 것'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거짓'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여행기는 글 쓸 때 몰입이 상당히 안 되는 편이다.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이것은 실존하는 사실이냐고 물어보고 타인에게 실존하는 사실임을 증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감정조차도 그 당시의 감정과 글 쓸 때 회상하면서 느낀 감정이 아예 완벽히 다르다 하더라도 여행기에서는 그 당시의 감정을 써야만 한다.


07


3인칭을 써보고 싶지만 왠지 계속 1인칭만 주구장창 쓸 거 같다. 이것은 3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08


1인칭만 주구장창 쓰는 이유는 1인칭이 내가 글 쓰는 스타일과 맞아서 딱히 3인칭을 써볼 생각을 안 해서다.


- 스토리가 중심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스토리에 맞추어가는데, 이렇게 글 쓰기에는 1인칭이 편하다.

- 과감한 진행 방식 및 기법 사용하기에 좋다.

- 의식의 흐름과 독백에서 시제, 어미 선택의 재미가 있다.

- 항상 '전지적 1인칭 시점'이 안 되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써야 한다.

- 매우 자유로우면서 매우 자유롭지 못하다.


앞으로 더욱 노력해야할 점들


- 묘사를 보다 많이 섬세하게 해야 한다. 내가 봐도 나는 '나는 놀았다. 좋았다' 수준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다.

- 내가 쓴 글을 보면 1인칭 관찰자와 3인칭이 아직 모호하다.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의 대화와 행동을 듣고 보는 장면에서)

- 이 외에도 엄청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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