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 있는 24시간 카페를 다녀오고 난 후, 생각이 바뀌었어요.
"여름이니까 카페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한 곳 가서 거기서 밤을 지새우자!"
24시간 카페가 여러 곳 몰려 있다면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다닐 수 있어요. 하지만 여름에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아무리 밤이라도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다보면 덥고 땀이 나고, 이러면 카페 들어가서 졸게 되거든요. 글을 쓰러 밤에 카페를 간다는 목적은 어느덧 사라지고 꾸벅꾸벅 졸기만 하게 되요.
수도권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은 많아요. 그러나 섣불리 갈 엄두가 안 나는 곳들이 많이 있어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의정부에서 살기 때문에 서부권, 남부권은 한없이 멀어요.
춘천을 한 번 다녀오자 원거리 가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사라졌어요. 아무리 멀어봐야 도 경계 세 번 넘는 강원도의 춘천보다 더 하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안산에 있는 24시간 카페는 아무 심리적 부담 없이 다녀왔어요. 안산은 원래 가끔 가던 곳이었기도 했구요.
하지만 천안이라면?
천안은 무려 '충청남도'. 정말로 멀고도 먼 길이에요. 여기도 역시나 의정부에서 출발하면 도 경계를 세 번이나 넘어가야 해요. 수도권 지하철의 남방한계선 같은 곳이에요. 물론 아산까지 들어가기는 하지만 아산에는 24시간 카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므로 수도권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제일 남쪽에 있는 24시간 카페는 천안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천안을 전철타고 가본 적이 딱 한 번 있었지.
우즈베키스탄 다녀오기 전이었을 거에요. 청량리에서 천안행 전철을 타고 천안까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청주로 간 적이 있어요. 한 번 해보고 다시는 안 하기로 다짐했어요. 간단히 말해서 지하철을 타고 아무리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남쪽을 끝내버릴까?"
천안은 매우 춘천만큼, 솔직히 춘천보다 더 부담이 되는 곳이었어요. 이건 멀어도 너무 멀었거든요. 게다가 이미 경험을 해본 적이 있어서 더욱 부담이 되었어요. 그때 지하철에서 아무리 자도 끝이 안 보여서 다시는 이렇게 안 가겠다고 결심했었거든요.
그래, 딱 한 번만 다시 하자.
2017년 8월 2일. 천안에 있는 24시간 카페를 가보기로 결심했어요.
원래 계획은 집에서 밤 9시에 나가는 것이었지만 늦어져서 의정부에서 9시 28분 인천행 전철을 탔어요. 이것을 놓치면 천안행 전철 막차를 아예 탈 수 없어요. 천만다행으로 이 전철을 탈 수 있었어요.
밤 10시 3분.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에 도착했어요. 네이버에서는 구로에서 환승하는 것을 추천하지만 급행을 탈 것이 아니라면 청량리에서 환승하는 것이 훨씬 좋아요. 지하철 1호선 천안행은 청량리 종점이거든요. 그래서 청량리에서 천안행 지하철로 환승하면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어요.
"여기에서 천안행 환승하는 게 대체 얼마만이냐?"
제가 타고 온 것이 바로 스크린에 떠 있는 '이번 열차 : 인천행'. 그리고 제가 타고 갈 전철이 천안행 막차인 '다음 열차 : 천안행'.
인천행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천안행 전철이 곧 왔어요.
지하철 안은 텅 비어있었어요.
지하철을 타고 쭐쭐쭐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영등포에 도착하는 순간.
'얌전히 여기에서 내려서 기차 타고 갈까?'
그러나 내리지 않았어요.
밤 10시 49분. 구로에 도착했어요. 순간 '얌전히 인천에 있는 24시간 카페나 갈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로가 바로 인천행과 천안행의 분기점. 천안행은 이 지하철이 막차지만 인천행은 아주 늦게까지 많이 있었어요. 그러나 여기에서도 내리지 않았어요. 그냥 계속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구로를 넘어가자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가산디지털단지가 나왔어요. 그러나 계속 앉아 있었어요. 전철은 계속 앞을 향해 달려갔어요.
밤 12시 17분. 성환역에 도착했어요. 성환역부터는 천안시.
밤 12시 28분. 드디어 천안시 두정역에 도착했어요.
도착하자 속으로 만세를 불렀어요. 원래 전철을 타고 오면서 글도 쓰고 댓글도 달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다시는 막차는 안 타기로 결심했어요. 막차 바로 전 차를 타기로 마음먹었어요. 왜냐하면...청량리역에서 천안행 열차를 타는 순간부터 정말 화장실이 가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구로역에서 크게 갈등했던 것이었어요. 내리는 순간 끝장이었고, 구로역을 지나가는 순간 집으로 돌아갈 방법도 아예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매 순간이 고통이었어요. 수원에서 확 내려서 오늘은 수원에 있는 24시간 카페 찾아서 돌아다닐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화장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옆옆칸 사람의 얼굴이 보였어요. 동지애를 느꼈어요. 저 사람도 막차라 엄청난 번뇌에 시달렸구나.
지하철 1호선 두정역을 둘러보았어요.
이제 카페를 갈 차례.
두정역에서 나와서 지도를 보며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길을 걸어가다보니 불 꺼진 베스킨라빈스도 보였어요. 혹시 제가 꼭 먹어보고 싶은 아이스크림이 여기는 있나 보았어요. 없었어요. 대체 팝핑샤워는 어디에서 팔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홈페이지에는 판매중이라고 올라와 있던데요. 팝핑캔디라는 평이 확 갈리는 존재와 민트초코라는 평이 모세의 기적으로 갈리는 것이 합쳐져서 바다가 네 갈래로 찢어질 기적이 일어날 것 같은 것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어디로 가야 하지?"
지도를 보며 길을 따라가다 이제쯤 슬슬 방향을 꺾어야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어요.
이건 뭐여?
지금 나에게 감히 수학 문제를 물어보는 거야?
다음 세 방향 중 내가 가야할 방향은? 일단 두정역은 제가 출발한 지점이므로 아니고, 2,3,4 산업단지도 제가 갈 방향은 아닐 거 같았어요. 그러면 남는 것은 저 아무 것도 없이 화살표만 그려진 표지판. 소거법으로 방향을 찍기는 했지만 하필 남은 그것이 아무 것도 없이 화살표만 덜렁 있는 방향이었어요. 그래도 그거 말고는 다 아닌 것이 확실한 길이라 아무 것도 안 적힌 길로 갔어요.
'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걸어가다보니 파스쿠찌 24시간 매장이 나왔어요. 전국에 8개 밖에 없다는 그것 중 하나를 발견했어요.
"뭐야? 여기에 24시간 카페 다 모여 있잖아?"
천안 올 때 24시간 카페 세 곳을 알아보고 왔어요. 하나가 문을 닫았더라도 다른 곳을 갈 수 있어야 했거든요. 의정부에서 천안까지 지하철 예상시간이 2시간 51분이라고 뜨는데 허탕치면 거의 7시간 날려먹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반드시 한 곳이라도 가야 했기 때문에 세 곳을 알아보고 왔어요. 그 세 곳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그래, 저기부터 가봐야지."
이렇게 해서 가게 된 카페는 충청남도 천안시 성정동 두정역의 24시간 카페인 유달리 두정점 이에요.
유달리 두정점 주소는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정공원7길 3 이에요. 지번 주소는 성정2동 1335 1층 이에요.
유달리 두정점 입구는 이렇게 생겼어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 24시간 카페 맞나?'
직원이 내부 청소를 하고 있었어요. 전혀 24시간 카페 같지 않은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어요.
"여기 24시간 카페 맞나요?"
"예. 여기 24시간 영업해요."
음료를 주문하고 카페를 둘러보았어요.
"여기 24시간 카페 진짜 맞나?"
아무리 보아도 24시간 카페 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서울 망원동이나 합정, 연남동에 있는 평범한 카페라고 하면 오히려 더 믿음이 갈만한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카페였어요.
벽쪽 자리는 화부니 예쁘게 놓여 있었어요.
24시간 카페를 이제 40개 훨씬 넘게 가보았지만 여기는 그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편이었어요. 24시간 카페는 대체로 일단 규모가 조금 있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카페 자체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어요. 분위기는 아무리 보아도 24시간 카페보다는 심야시간에 문을 닫는 카페 같았구요.
벽에는 이렇게 말린 꽃이 매달려 있었어요. 밤에 보는 말린 꽃은 느낌이 낮에 보는 것과 또 달라요.
저야 천안 온 보람이 있으니 아주 고맙지만요. 이런 카페에서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여름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카페 안에는 저와 직원 뿐이었어요. 아무리 보아도 지금 이 시각이 8월 3일 새벽 2시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카페 안에 있으면 12월 3일 저녁 8시 같은 느낌이었어요.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잠시 심야시간에서 몇 걸음 떨어져서, 무더운 여름밤으로부터도 몇 걸음 떨어져서 다른 시간 안에 있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멜론 바나나 주스를 주문했어요. 가격은 6000원이었어요.
멜론과 바나나 맛 조화가 참 좋았어요. 절묘하게 균형이 맞았어요. 제게는 이것이 우즈베키스탄에서 먹었던 멜론과 매우 비슷한 맛이었어요. 빵이랑 같이 먹으면 우즈베키스탄 있었을 때 여름날의 점심식사.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맛을 표현하자면 단맛과 익은 과일에서 나는 단맛의 향이 잘 느껴져요. 음료를 삼킨 후 잠시 시간이 지나면 입 안에서 과일 특유의 살짝 풋풋하고 시원한 향이 느껴지구요.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24시간 카페인 유달리 두정점은 전체적으로 다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음료 주문한 것도 만족스러웠고, 심야 시각에 느낄 수 있는 분위기도 좋았어요. 인테리어도 차분했구요. 서울을 벗어나니 상당히 좋은 24시간 카페가 2곳이나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