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75 라오스 루앙프라방 절 - 왓 싸깸, 왓 푸 콰이

좀좀이 2017. 6. 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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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상으로 보면 다음 절까지 그렇게 멀지 않았어요. 애초에 거리가 4km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였거든요. 이 4km 정도 되는 거리에 절이 여러 곳 있었고, 절 하나하나를 들리면서 구경도 하고 루앙프라방 시내도 돌아다닐 계획이었어요. 이론적으로 보면 조금 걷다가 절 가서 삼배 드리고 또 조금 걷다가 절 가서 삼배 드리는 길이었어요. 첫 번째 절을 잘 보았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벼워졌어요.



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평화로운 시골길이었어요.


"내가 대체 얼마나 외곽으로 나온 거지?"


4km면 그렇게 외곽까지 기어나온 것도 아니었어요. 여행자 거리도 그리 도시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영락없는 시골 마을의 풍경. 거리에서 사람들이 가축을 몰고 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어요. 라오스의 매연과 먼지를 음미하며 걸어갔어요. 하나라도 이 장면을 더 기억하기 위해 주변을 잘 살펴보았어요. 길을 다니며 라오어 글자를 익히기 위해 계속 간판이 보이면 읽어보려고 노력했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지도상에서 갈림길로 나온 곳이 등장했어요.



"여기는 왜 길이 이렇게 무섭게 생겼지?"



도로에 인도랄 것이 없었어요. 아스팔트 위에는 모래와 흙이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차가 다닐 때마다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어요. 차가 별로 안 다니면 별 생각없이 걸어갔을 거에요. 문제는 차가 신나게 달린다는 것. 도로가 넓은 것도 아니고, 차가 달려올 때마다 먼지가 풀풀 일어났어요. 차가 많이 다니는 것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어요. 이 길은 왠지 고속도로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 길 맞나?"


아무리 봐도 이 길은 아닌 것 같았어요. 지도상으로는 이 길이 맞았어요. 그런데 생긴 것이 영 아니었어요. 인도는 없고 차는 많았어요. 직감적으로 이 길에서 돌아나가야한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지도가 이 길로 가라고 하니 계속 걸어갈 수 밖에 없었어요.


"어? 강이 나오면 안 되는데?"


라오스 루앙프라방 남칸 다리


남칸 다리가 나와 버렸어요. 다리 아래로는 남칸강이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남칸강


지도를 펼쳤어요. 제가 가려고 하는 절은 절대 강이 나오지 않아야 했어요. 강이 나왔다는 것은 제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 그런데 지도를 보면 제가 길을 제대로 따라간 것이 맞았어요. 지도는 맞다고 하는데 정작 제가 간 곳은 엉뚱한 곳. 길 가는 사람 잡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길을 물어보고 대답을 들을 라오어 실력이 되지 않았어요. 확실한 것은 제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이었어요.


"길 어떻게 찾아야하지."


일단 아까 그 갈림길로 돌아가야 했어요. 길을 되돌아나가기 위해 터벅터벅 걸어갔어요.




다른 길로 들어가서 걸어갔어요.


"아...이 길이었구나. 그런데 지도는 왜 이렇게 나와 있어?"


갈림길로 돌아와 다른 길로 들어서자 얼마 걷지 않아 바로 절이 보였어요.



이것은 찹쌀밥을 말리고 있는 풍경이었어요. 라오스 와서 정말 신기한 것이 바로 이 찹쌀밥을 말리는 모습이었어요. 동남아시아에서 라오스가 유독 찹쌀을 많이 먹어요. 많이 먹는 정도가 아니라 라오스에서 재배되는 쌀 대부분이 찹쌀이에요. 그리고 이 찹쌀밥을 말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어요. 찹쌀밥을 적당히 뭉쳐서 말리는 장면은 지금까지 제가 여행한 나라들에서 보지 못한 풍경이어서 몇 번을 봐도 신기했어요.


라오스 건조 찹쌀밥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자 절 입구가 나왔어요.



이 절 이름은 왓 싸깸 ວັດສະແກ້ມ 이었어요.


ວັດສະແກ້ມ


법전은 문이 잠겨 있었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절 - 왓 싸깸


절 한켠에는 비엔티엔에 있다는 파탓루앙 모형 비슷한 탑이 있었어요.



"여기가 지도에 왜 표시되었지? 뭔가 유명한 절인가?"



아무리 봐도 여기가 왜 지도에 표시될 정도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친구는 덥다고 그늘에 앉아 땀을 닦아내며 쉬고 있었어요. 지도에 절이 표시된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할 것이 없었어요. 절이 있어서 절이 있다고 표시된 것이니까요. 제가 들고 다니던 지도의 제작 목적은 관광 안내. 이것저것 많은 정보가 지도에 있으면 좋기는 해요. 단지 관광 안내 지도에 표시가 된 것이라면 누구든 가서 볼 만한 것 아닌가 하고 기대를 품고 찾아가볼까 고민을 하게 될 뿐이에요.


이 절에 대한 설명이 라오어로라도 적혀 있는 것이 있다면 사진을 찍어가려고 했어요. 아무리 찾아보았지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어요. 이건 태국, 라오스의 흔한 동네 절 중 하나 같았어요. 여기를 왜 꼭 가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어요. 법당에 무슨 중요한 불상이나 벽화라도 있나? 그런데 시간이 시간인 만큼 법당 문이 열려 있어야 했어요. 법당 문이 안 열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절에 찾아오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는 것 같았어요.


"설마 이것 보라고 표시된 것은 아니겠지?"



날이 더운 라오스라서 부처님 머리 위에 지붕을 설치해 드렸어요. 이 부처님은 햇볕도 덜 쬐고 비도 덜 맞으실 거에요. 야외 주택을 한 채 보유하고 계신 부처님이었어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딱히 인상적인 것이 없는 절이라 다음 절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확 피어올랐어요. 딱히 배경을 날릴 생각이 없었는데 먼지 때문에 배경이 날아간 것 같은 효과가 생겼어요.



왓 싸깸처럼 매우 수수하게 생긴 불단이었어요.


"저건 썩도록 방치한 거야?"


동남아시아 과일


나무에 잭프루츠가 매달려 있었어요. 오른쪽 시꺼먼 것은 아무리 봐도 하도 매달려 있다보니 자연적으로 썩어버린 것 같았어요. 풍족해서 방치한 건지, 일부러 저렇게 만드는 건지는 알 수 없었어요. 저건 인도네시아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저렇게 주렁주렁 매달리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공포스러웠어요. 저것 하나 무게가 상당히 무거운데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어요.



라오스 불단


다시 큰 길로 돌아나왔어요. 오늘 맨 처음 갔던 절이 보였어요.



'다음 절도 별 볼 일 없는 거 아냐?'


여기는 동네 자체가 시골. 뭔가 특별한 것이 있게 생기지 않았어. 특별한 것이라고는 아까 그 잭프루츠 뿐. 거리에서 야생 동물이 활개치는 것을 기대한다면 목적을 달성할 지 몰라.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원하는 괜찮은 절을 가는 것은 여기에서 무리인 것 같아. 절을 찾아가지 않으면 큰 길에서 벗어날 일이 전혀 없어서 가기는 하지만 분명히 다음 절도 휙 둘러보고 나올 거다.


"오르막 올라가야 하잖아!"



별로 기대도 안 되는 절인데 오르막까지 올라가야하다니 이건 최악. 친구 얼굴을 보니 어두워졌어요. 내색을 할 수는 없었지만 저도 참 싫었어요. 내색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어요. 내색했다가는 친구가 가지 말고 어서 다음 곳으로 가자고 할 거 같았거든요. 숙소쪽으로 돌아가봐야 할 것이 없었어요. 멍때리고 있는 것보다는 동네 불당이라 해도 절 하나 더 찾아가는 것이 나았어요.


"부처님은 왜 자꾸 운동을 시켜!"


그래. 친한 동생의 말을 떠올리자. 선진국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고, 후진국 사람들은 시간이 남으면 운동을 한다고 했지. 이렇게라도 운동을 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오르막길 끝에 절을 세운 것일 거야. 안 그러면 사람들이 운동을 할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대한민국 국민인데? 그래. 여기 문화를 체험하는 셈 치자. 그렇잖아도 더운데 오르막길을 기어올라가니 땀이 좍좍 났어요.



이번에는 계단. 계단 양 옆으로 나가뱀이 장식되어 있었어요. 절을 돌아다닐 거라 일부러 검은색 면바지를 입고 나왔어요. 더 더웠어요. 마음 같아서는 추해보이든 말든 면바지를 걷어부치고 올라가고 싶었어요. 땀 때문에 바지는 다리에 자꾸 달라붙었어요. 그래서 그냥 걷는 것도 더 피곤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계단을 또 쭉 올라가야 했어요. 그래도 기본 예의는 지키자는 마음에 추하게 바지 걷어부치지 않고 얌전히 계단을 올라갔어요.


이 절은 왓 푸 콰이 포카람 ວັດພູຄວາຍ ໂພຄາຣາມ  이었어요. 간단히 '왓 푸 콰이'라고 해요. 라오어로 푸 ພູ 는 언덕이에요. 콰이 ຄວາຍ 는 물소라는 뜻이에요. 절 이름인 왓 푸 콰이는 '물소 언덕 절' 이라는 뜻이에요. 이때는 이걸 몰랐어요. 만약 알았다면 언덕 기어올라가야 한다고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거에요. 최소한 오르막길 올라가야 한다고 툴툴거리지는 않았을 거에요.


"여기 큰데?"





법당 문은 잠겨 있었지만 절 자체는 꽤 컸어요.



ວັດພູຄວາຍ ໂພຄາຣາມ


"여기 절 짓고 있는 중인가?"




절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스님 한 분이 보였어요. 합장을 하고 공손히 인사를 드렸어요. 스님께서 인사를 받아주신 후, 와서 말을 말을 거셨어요.


"이분 영어 아신다!"


깜짝 놀랐어요. 적당히 몇 마디 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영어를 유창히 잘 하셨어요. 야시장에서 서양인들이 영어가 안 통해서 콧대 꺾고 라오어 몇 마디 하며 다니고 있었어요. 태국과 달리 영어를 잘 하는 사람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웠어요. 그런데 이 스님은 영어를 상당히 잘 하셨어요. 라오스에서는 승려가 지식인 계층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았어요. 라오스에서 불교가 아직도 사회 전체적으로 영향력이 큰 이유 중 하나가 라오스가 공산화되었을 때, 승려를 숙청하면 지식인 계층이 하나도 안 남아서였거든요.


여행 다니면서 최대한 현지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외국어 공부가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에요. 더욱이 이 여행은 초반에 스마트폰을 분실하면서 교재의 mp3 파일을 들을 방법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의욕이 거의 사라져버렸어요. 게다가 라오스는 넘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어요. 당연히 라오어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어요. 이제 예전에 외웠던 라오어 글자들을 다시 외우고 있는 수준이었어요. '안녕하세요', '얼마에요', '감사합니다' 같은 아주 기본적인 말은 할 수 있었지만,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준은 저 멀리 극락세계에나 존재하고 있는 정도였어요. 그래서 영어를 아는 스님을 만나자 놀랍고 반가웠어요. 아무리 중학교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영어만 보면 속으로 '서양귀신 말 꺼져'를 외쳤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어요. 호기심 갖고 보다 태국어랑 햇갈려서 이도 저도 안 된 라오어보다 강제로 세뇌당한 영어가 훨씬 편한 건 사실이었으니까요.


스님께서는 이 절이 조만간 완공될 거라 말씀하셨어요.



이 조그만 연못에도 물이 채워질 예정이라고 알려주셨어요.



절당 한켠에서는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어요.


라오스 스님 식사 준비


"부엌 사진 찍어도 되요?"

"예, 찍으세요."


스님께 허락을 받고 주방 사진을 찍었어요.


라오스 국


"이렇게 밥 짓는구나!"


라오스 전통 밥짓기


라오스의 전통적인 밥 짓는 모습을 처음 보았어요. 사진으로만 이렇게 밥을 짓는다는 것을 보았는데 직접 보니 신기했어요. 우리가 밥을 짓는 것과 달리 여기는 쌀을 쪄내고 있었어요. 아시아는 벼를 많이 먹는 지역이지만, 벼로 밥을 만드는 방법은 천차만별이에요. 밥이라고 다 같은 밥이 아니에요.


라오스 불교 고기 반찬


"여기는 소승불교라서 고기 반찬을 드시는구나!"


상좌부 불교에서는 스님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어요. 초기 불교에서는 육식을 금하는 내용은 없었다고 해요. 더욱이 상좌부 불교 스님들은 탁발을 해서 사는데, 고기고 풀이고 가릴 처지가 되지도 않구요. 그래서 동남아시아 스님들이 고기를 먹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요. 그쪽 불교 교리상 그것은 전혀 잘못된 교리가 아니에요. 참고로 우리나라도 천태종에서는 스님들의 육식과 음주를 허용해요.




스님께서 우보솟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잠긴 문을 여셨어요. 안으로 들어가 먼저 삼배를 드렸어요. 삼배를 드린 후 법당 내부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불상 왼쪽에는 번쩍이는 불단이 있었어요.



그 불단 안에는 작은 인형이 빼곡히 배치되어 있었어요.





말 그대로 법당 속의 법당, 절 속의 절이었어요.


'이런 인형 대체 어디에서 구할 수 있지? 이거 정말로 사가고 싶은데...'


태국에서도 불단 안에 이런 인형이 있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정작 파는 곳은 보지 못했어요. 라오스 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스님께서는 알고 계시지 않을까? 스님께 여쭈어보았어요.


"시장 가면 살 수 있을 거에요."


시장? 여행자 거리 야시장에는 없었는데...진짜 현지인들 물건 사고 파는 일상 생활 속 시장을 가야 하나?


스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법당에서 나왔어요. 왓 푸 콰이는 정말로 볼 만한 절이었어요. 여기는 오기를 너무 잘 했다고 생각했어요.



아까의 오르막길은 이제 내리막길. 길을 내려와 큰 길로 나가니 오전 11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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