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74 라오스 여행 - 루앙프라방 탁발 행렬, 아침 시장, 산티 쩨디, 왓 빠폰파오

좀좀이 2017. 5. 1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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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여행 기록을 정리했어요.


"여행 기록 쓰는 게 무슨 밀린 숙제하는 것 같네."


귀찮아서 후딱 쓰고 끝내고 싶은데 기록을 정리해서 남기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며칠 동안 기록을 남기지 못했는데 그것을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당장 오늘 여행 기록을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거든요. 아주 많이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어요. 지도상 거리만 보면 별로 돌아다니지 않았어요. 단지 절을 참 많이 갔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솔직히 오늘 간 절 이름이 전부 떠오르지도 않았어요. 사진을 보며 기록을 정리해야 하는데 사진도 많았어요. 사진이 150장이 넘었어요. 이 사진을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어요. 150장이 넘는 사진을 보며 기록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일이었어요. 돌아다닐 때 딱히 메모해놓은 것이 없었어요. 스마트폰은 인도네시아에서 잃어버렸고, 수첩은 들고 오지 않았어요. 수첩이 있어도 기록을 하지 못했을 거에요. 날이 더워서 온통 땀투성이였으니까요. 자잘하게 사먹은 것들 가격을 전부 남길 생각도 별로 없었구요.


"이거 참 진 빼네."


TV를 틀어놓고 여행 기록을 정리하는데 짜증이 솟구쳐올랐어요. 절을 많이 다녔더니 절 이름을 적는 것부터 문제였어요. 절 이름을 적고 사진을 보며 감상을 떠올리며 여행 기록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게 이렇게 쓰고 말하면 상당히 간단한 일이었지만, 막상 해보면 참 괴롭고 시간 많이 걸리는 일이에요. '이건 좋았다, 이건 싫었다, 이건 맛있었다' 만 써놓을 거라면 기록을 남길 이유가 없고, 더 문제는 이렇게 남겨놓았다가는 나중에 여행기 쓸 때 제대로 고생한다는 점이었어요. 그러나 솔직히 피곤해서 어서 드러눕고 싶은데 잠도 못 자고 여행 기록을 정리하는 것이 오직 유쾌하기만 할 수는 없었어요.


루앙프라방 도착한 순간부터 여행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아서 최대한 빨리 몰아서 해치워야 했어요.


'한국 돌아가면 바로 이거 여행기 쓸 텐데 그때 정리하든가 해야겠다.'


느긋하게 여행 기록 정리만 잡고 있을 수 없었어요. 당장 다음날 일정을 짜야 했어요. 친구와 원래 계획대로 6월 23일에 야간 이동으로 비엔티안으로 가기로 했어요.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었어요. 이제 2015년 6월 22일. 내일 비엔티안 야간 이동이 있었어요. 내일 왕궁을 구경하고 격렬히 아무 것도 안 할 계획이었어요. 친구가 갑자기 심경에 천지개벽이 일어나 내일 열심히 돌아다니자고 해도 격렬히 결사반대할 거에요. 무조건 오늘 왕궁을 제외한 모든 것 - 푸시산 올라가기까지 다 끝내야 했어요.


'어떻게 해야 루앙프라방을 다 볼 수 있을 건가?'


지도를 펼쳤어요.


무조건 여행자 거리에서 벗어날 거야. 꽝시 폭포 못 보지만 괜찮아. 이 도시 - 루앙프라방을 다 볼 거야. 최대한 많이 안 걷고 다 돌아다닐 거야.


예, 다 갈 거에요. 무조건 다 갑니다. 지도에 나와 있는 절은 무조건 빠짐없이 다 정복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10년 갈 절을 태국과 라오스에서 다 갈 것입니다. 다시는 루앙프라방 안 와도 될 정도로 싹싹 다 볼 것입니다.


절을 가야만 했어요. 깊은 불심으로 간다면 특별히 할 말이 없었을 거에요. 이것은 불심 때문이 아니었어요. 절을 가지 않으면 관광객들이 다니는 길에서 도무지 벗어날 방법이 없었어요. 이동 경로상에서 절은 관광객들이 바글거리는 곳에서 아주 확 벗어나게 해주고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도 담당하고 있었어요. 지도를 보며 경로를 세워갔어요. 지도 맨 아래에 VAT PHON PHAO 라는 절이 있었어요. 아침에 먼저 여기로 뚝뚝이든 오토바이든 타고 이동하기로 했어요. 저 절을 보고 나서 숙소로 돌아오는 경로였어요.


"TV에서는 왜 좋은 노래가 하나도 안 나오냐?"


TV에서 좋은 노래가 나오면 이번 여행의 주제가로 삼으려고 TV를 틀어놓고 있었어요. 좋은 노래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요. 전부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TV만 믿다가는 원하는 라오스 노래를 하나도 못 구할 것 같았어요. 인터넷으로 라오스 노래를 검색했어요. 의외로 노래 장르가 꽤 다양했어요. 글자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니 일일이 다 재생시켜보아야 했어요. 결국 찾아내었어요.


"어? 밤 새었잖아!"


새벽 탁발 행렬을 보려면 일찍 나가야 했어요. 5시 반에는 나가야 스님들의 탁발 행렬을 볼 수 있다고 했어요. 친구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씻고 나가서 탁발 행렬을 보기로 했어요. 이것도 오늘 꼭 봐야 했어요. 그런데 시계를 보니 4시 반이었어요. 머리 속이 복잡해졌어요. 일단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잠을 잘 수는 없었어요. 침대에 드러누워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았어요. 육체의 피로라도 조금 풀 요량으로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었어요.


새벽 5시. 방에 불을 켰어요.



창밖을 보니 슬슬 동이 트고 있었어요. 다시 샤워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어요. 5시 반 조금 넘겨서야 숙소에서 나왔어요. 숙소에서 나오니 벌써 탁발행렬 준비중이었어요.


라오스 문화 - 탁발


적삼을 걸친 스님들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탁발 행렬


라오스 소승불교


탁발 행렬은 꽤 엄숙했어요. 관광객들도 예절을 잘 지키고 있었어요. 모두 자기 자리에 앉아서 탁발 행렬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을 뿐이었어요. 스님에게 다가가서 사진 찍으려고 난리피우거나 스님들을 마구 쫓아가는 골 빈 사람들은 없었어요. 태국에서 본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솔직히 비교가 안 될 수 없었어요. 태국은 이상한 우주의 기운이 쏘아내려오는 곳이라 그 기운에 반응한 외국인들이 다 미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탁발 행렬은 금방 끝났어요. 스님들이 천천히 걸어가며 시주를 받는 것이다보니 스님들이 지나가면 그대로 끝이었어요.


"딸랏 싸오도 보고 들어가야지."


오늘 일정을 생각한다면 지금 들어가서 한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고 나오는 것이 맞았어요. 그러나 내일 또 일찍 일어나기 싫었어요. 여행자 거리 근처에 아침 시장인 딸랏 싸오도 열렸어요. 지금 들어가서 눈을 붙이면 내일 또 일찍 일어나서 딸랏 싸오를 보러 나가야 했어요. 그럴 바에는 이왕 나온 거 딸랏 싸오 보고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어요. 솔직히 딱히 졸리지도 않았구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아침 시장


"장이 제대로 크게 서네?"


딸랏 싸오를 찾아갔더니 제 예상보다 장이 훨씬 크게 열려 있었어요.


라오스 찹쌀


이것은 라오스의 쌀. 라오스는 희안하게 찹쌀이 주식이에요. 라오스에서 생산되는 쌀 대부분이 찹쌀이구요.



라오스 야채


라오스 야자


고추와 생선도 팔고 있었어요.





"어? 저거 개구리 아니야?"


라오스 개구리


시장에서 개구리를 파는 것은 아유타야에서도 본 모습이었어요. 이건 볼 때마다 신기했어요. 딱히 적응이 안 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신기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약재 파는 곳이나 건강원 앞을 지나갈 때 볼까 말까한 모습인데, 여기에서는 당당히 식재료로 판매되고 있었거든요. 왼쪽은 개구리였고, 오른쪽은 다슬기였어요. 어떻게 먹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어요. 이런 것은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어요.







망고스틴 가격을 물어보았어요. 1kg에 낮~저녁 시간에 비해 1만낍 저렴했어요.


"망고스틴으로 아침 해결해야지!"


베트남 호치민에서 베트남 동이 없어서 망고스틴 파는 아주머니께 사정해서 망고스틴 한 알을 구입했었어요. 그러나 지금 제게는 라오스 낍이 있었어요. 망고스틴 1kg 사고도 돈이 충분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망고스틴이 매우 비싸지만 라오스에서는 안 비쌌어요. 아침은 먹어야 했고, 여행 가서 여행 경비 본전을 가장 빨리 찾는 방법은 그 나라 과일을 배불리 먹는 것. 망고스틴을 1kg 구입했어요.


"저거 뭔 물고기지? 설마 가물치인가?"


라오스 메기


왼쪽에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메기였어요. 엄청나게 컸어요. 이거 낚시로 잡는다면 '메기와의 사투'라고 해도 될 것 같았어요.




벌집을 통째로 뜯어와 파는 상인도 있었어요.


라오스 천연 벌꿀


시장 구경을 한 후, 메콩강변으로 갔어요.




느긋하게 망고스틴을 까먹으며 친구에게 오늘 일정을 설명해 주었어요. 오늘 일정이 절대 힘든 일정이 아니라는 점을 크게 강조했어요.


"이거 걸어서 루앙프라방 남쪽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걸어오는 거야?"

"아니. 안 걸어가. 갈 때는 당연히 뭐든 타고 갈 거야."


절을 많이 돌아다니는 길이기는 했어요. 그러나 이동 거리 자체가 긴 거리는 아니었어요. 만약 일 없이 맨 처음 시작할 루앙프라방 남쪽에 있는 절까지 걸어간다면 이게 상당히 힘든 길이 될 거였어요. 하지만 이것은 저도 할 마음이 없었어요. 쓸 데 없이 힘 빼고 육즙 빼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살 빼려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여행자 거리에서 벗어나 루앙프라방을 돌아보기 위해 그 절부터 시작해 북쪽으로 걸어올라가는 것이었어요. 뭐든 타고 남쪽에 있는 절로 가서 그 절을 보고 걸어올라올 계획이라고 알려주자 친구가 그러면 괜찮겠다고 했어요. 대충 편도 4km 조금 넘는 길이었거든요.


"그런데 너 괜찮겠어? 잠 하나도 안 잤잖아."

"하룻밤 샌 거 정도야 뭐. 이따 숙소 일찍 들어가서 푹 자면 돼."


친구는 제가 밤을 새버린 것을 걱정했어요. 괜찮았어요. 정말 졸리다면 어디선가 10분 정도 살짝 눈을 붙였다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요. 며칠을 밤새야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 일정만 끝나면 숙소 들어가서 푹 잘 것이었구요.


메콩강을 보며 망고스틴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숙소로 돌아갔어요.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프론트에 다음날 비엔티안 갈 차를 물어보았어요. 슬리핑 버스가 있고, 밴이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밴으로 예약 되나요?"

"밴은 진짜 타지 마요. 그거 정말 안 좋아요."

"왜요?"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 가는 길이 매우 나빠요. 그거 진짜 힘들어요. 버스랑 걸리는 시간도 별 차이 없어요."


치앙마이에서 루앙프라방 오는 길에 버스를 탔다가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서 결국 승합차를 타고 왔어요. 그래서 버스는 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직원은 제가 승합차를 타고 비엔티안으로 가겠다고 하자 두 손 들고 뜯어말리기 시작했어요. 그건 절대 이용할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을 거라고 했어요. 어지간하면 승합차를 타겠는데 라오스인이 이렇게 뜯어말리는 것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버스에서 계속 멀미해서 토하던 라오인들이 떠올랐어요. 좁은 승합차 안에서 라오인들이 또 멀미해서 웩웩 거리면 견딜 수 없을 거 같았어요.


19만낍을 내고 슬리핑 버스를 예약했어요. 직원은 슬리핑 버스로 가면 12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알려주었어요.


"왓 폰타오는 어떻게 가요?"

"뚝뚝으로 갈 건가요, 오토바이로 갈 건가요?"


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도 같이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뚝뚝으로 가겠다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뚝뚝은 1인당 15000낍이라고 알려주었어요.


"지금 곧 오나요?"

"그 절 어차피 8시에 문 열어요. 조금 이따 올 거에요."


직원을 통해 뚝뚝을 부른 후, 숙소 앞에 앉아서 잠시 쉬었어요. 오늘은 하루 종일 발발발 돌아다녀야 했어요. 루앙프라방 시내를 다 걸어서 돌아다닌 후, 일몰 즈음 해서 푸시산도 올라가야 했어요. 다음날 몇 곳 간다고 하면 일정이 널널해졌을 거에요. 그렇지만 땀에 절은 옷을 입고 밤새 버스 안에 있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다음날은 왕궁이나 다녀오고 최대한 땀 안 내고 푹 쉬다가 슬리핑 버스를 탈 생각이었어요.


뚝뚝이 도착하자 뚝뚝을 타고 산티 쩨디가 있는 왓 빠폰파오로 갔어요.


"여기 대도시 아니야? 왜 아무 것도 없지?"


루앙프라방 시내를 관통해 가는 길인데 차창 밖 풍경은 우리나라 읍내 수준이었어요. 그래도 시내에는 뭔가 좀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없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어요.


'시내는 기사가 길이 막혀서 일부러 한적한 길로 가는 것일 거야.'


분명히 시내를 관통해가는 것이 맞는데 이렇게 부정하고 싶었어요. 시원하고 습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아무리 봐도 뭐 없었어요. 왜 루앙프라방 글을 보면 죄다 여행자 거리 및 그 근처 내용만 나오는지 알 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정말 뭐 없었으니까요. 시골 읍내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정말로 시골 읍내였어요. 이곳에 공항이 왜 있는지조차 의문이 생길 풍경이었어요.


8시 16분. 왓 빠폰파오 Vat Pa Phonphao ວັດປ່າໂພນເພົາ 에 도착했어요.



도착하자마자 먼저 산티 쩨디로 갔어요. 산티 쩨디는 라오어로 ພຣະທາຕໂຄ່ງ ສັນຕິເຈັດີ '빠탓 콩 싼띠 쩨디' PhraThat Khong Santi Chedi 였어요. 이 탑은 1988년에 세워졌고,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산티 쩨디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올라가 1층으로 들어갔어요.



"삼배 드리고 가야지."


불상에 삼배를 드리고 2층으로 올라갔어요.



"불상 또 있네? 삼배 드리고 가야지."


불상에 삼배를 드리고 3층으로 올라갔어요.



"뭐야? 불상 또 있잖아? 삼배 드려야지."


철푸덕 바닥에 주저앉으며 삼배를 드리고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어요.



벌써부터 다리가 아파왔어요. 휘청거리며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어요.



4층에는 불상이 없었어요. 그리고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어요. 바로 5층으로 올라갔어요.




또 삼배를 드렸어요.


"무슨 수련하냐? 층마다 삼배하게 되어 있네."


저와 비슷하게 들어온 라오인들은 아무 불평 없이 매 층마다 삼배를 드리고 있었어요. 차이점이라면 저는 일어났다 엎드렸다 하며 삼배를 드리고 있었고, 라오인들은 다리를 옆으로 모아서 앉아 허리만 까딱거리며 절을 했다는 점이었어요.


5층까지 올라간 후 다시 4층으로 내려왔어요.



이제 꼭대기까지 다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라 여유가 생겼어요. 느긋하게 계단에서 3층을 내려다보았어요. 사실 여유가 생겨서가 아니라 계단으로 5층까지 걸어올라가며 매 층마다 삼배를 드렸더니 힘들어서 쉬엄쉬엄 가는 것이었어요.




탑 가운데에 전망대가 있어서 밖으로 나갔어요.


라오스 루앙프라방


라오스 여행


"경치 정말 좋다!"


빨간 지붕과 새파란 나무들. 구름 너머 보이는 것은 산. 이렇게 보면 뭔가 있어 보이는 풍경이었어요. 느적거리며 쉬기 딱 좋아보이는 장면이었어요.



주변이 전부 산이었어요.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도시가 루앙프라방이었어요.


여기 정말 시골이구나. 이 나라에서는 대도시겠지만, 한국 기준으로는 읍내에 더 가까운 곳이네. 충청북도나 강원도 어느 산골에 이것과 비슷한 풍경이 있다고 해도 믿을 거야.


오늘 열심히 걷겠다고 의욕을 불태우며 여기로 왔는데 그 의욕을 부처님들이 다 회수해 갔어요. 벌써부터 의욕이 뚝 떨어졌어요. 다리가 휘청거렸어요. 걷는 것은 걷는 것이고, 계단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어요. 이 탑 하나 올라갔다 내려왔다고 벌써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욕심을 비워야 한다는데 이 계단이, 이 불상들이 제 마음 속 욕심을 거칠게 잡아뜯어갔어요. 계단에 오를 때마다 제 욕심이 계단 난간에 걸려서 찢겨져 나갔고, 삼배를 드릴 때마다 욕심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어요.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제 욕심은 후두두 떨어져 나갔어요.


새벽에 여행 계획을 짤 때만 해도 의욕 충만하고 루앙프라방을 완벽히 보겠다는 욕심이 철철 흘러 넘쳤어요. 그러나 이제 이 계획은 업보가 되었어요.


산티 쩨디에서 나와 절을 돌아다녔어요.





이것은 스님들이 홀로 수행하는 공간 같았어요.




하지만 얼핏 보면 감옥의 독방이 떠오르는 모습이었어요.


저와 친구를 태우고 온 뚝뚝 기사는 할 일 없이 뚝뚝 위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나 뚝뚝을 타고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이 업보에서 해방되어야 했으니까요. 한 번 세운 계획, 오늘 무조건 끝낼 생각이었어요. 스콜이 몰아쳐도, 강풍이 몰아쳐도 끝까지 다 갈 생각이었어요. 풀뿌리를 움켜쥐고 기어올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푸시산까지 다 마칠 작정이었어요.


8시 55분. 왓 빠폰파오 입구로 돌아왔어요.



"오늘 반드시 루앙프라방 다 돌아본다!"


갑자기 다시 욕심이 마구 철철 흘러넘치기 시작했어요. 수세식 변기 물을 내리면 다시 물이 들어차듯 마음에 욕심이 들어찼어요. 이미 더렵혀져버린 몸, 더 더럽혀지기로 마음먹었어요. 계단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옷이 땀에 절어버렸기 때문에 이제 땀이 나든 말든 느낌이 다를 게 없었거든요. 땀이 더 난다고 더 찝찝해지고 지금 땀이 마른다고 덜 찝찝해질 것도 없었어요. 게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해가 뜨고 있었기 때문에 땀이 더 났으면 났지 마를 일은 없었어요. 내 몸의 땀방울을 상쾌하게 적셔주는 뜨뜻하고 습한 먼지를 맞아가며 걷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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