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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후들거리고, 허리는 끊어지게 아프고, 시간은 없고, 가야 할 절은 아직도 세 곳.


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어요. 태양은 대지를 비추라니까 제 똥줄만 태우고 앉아 있었어요.


'해 저물기 전에 왓 껫까람까지 갈 수 있을까?'


욕심을 버리라는 불교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따르려면 여기에서 이제 모든 것은 될 대로 되라고 하며 천천히 둘러보는 게 맞을 거다. 그렇지만 단 하나의 절도 포기할 수 없다. 돈 없어서 하루 종일 라면 하나로 버텨야 하는 날에는 부페에서 배부르다고 먹지 않은 그 한 접시가 간절히 떠오른다. 군대 훈련소 시절, 입대 전날 왜 맛있는 것을 먹지 않았을까 뼈저리게 후회했다. 지금 절을 하나라도 포기한다면 나중에 이 못 간 절 하나가 계속 떠오르겠지. 미래의 행복을 위해 나는 걷는다.


이것은 대자연의 섭리와 내 의지의 싸움. 욕심을 버리라는 불교의 가르침과 욕심을 모두 만족시켜야겠다는 내 투지와의 대결. 단 한 보도 양보할 마음이 없다.


다음 절은 왓 쌘팡 Wat Saen Fang วัดแสนฝาง 이었어요.



입구를 보면 그냥 지나쳐도 될 절이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다리에 힘이 다 빠지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서 바닥을 기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왓 쌘팡, 왓 우파꿋, 왓 껫까람까지 다 갈 작정이었거든요. 이 절들이 보잘 것 없다 해도 좋았어요. 머리 속 환상 속에서 금빛 번쩍이는 절이 되어 영원히 저를 괴롭히는 꼴을 볼 바에는 차라리 지금 기어가서라도 보고 실망하는 것이 훨씬 더 나았거든요.



이제 날이 밝지 않아 사진을 찍으려면 정말 부동자세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지쳐서 손이 흔들렸어요. 설상가상 상황이었어요.


절 안에 들어가자 버마 양식으로 제작된 쩨디가 보였어요.


Wat Saen Fang


이 쩨디 역시 네 모퉁이에 사자상인 친쎄가 있있고, 바나나꽃 모양 조각이 장식되어 있었어요.


태국 치앙마이 절 - 왓 쌘 팡


왓 쌘 팡은 1500년대에 지어진 절이나, 현재 이 절 안에 있는 건물들은 1800년대 및 그 이후에 건설된 건물들이라 해요. 이 절에 있는 위한은 1860년대 까위로롯 왕의 처소인 호캄으로 사용되었어요. 이후 인타위짜야논 왕때 이 호캄이 위한으로 바뀌었어요.


먼저 위한으로 갔어요.



위한은 문이 열려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삼배를 드리고 불상 사진을 찍었어요.



한가하게 쉴 틈이 없었어요. 바로 밖으로 나와 우보솟을 보러 갔어요.


วัดแสนฝาง


이 우보솟은 지붕에 낀나리가 장식되어 있고, 버마 양식과 란나 양식이 혼합된 건물이라고 해요. 낀나리 Kinnari กินรี 는 불교 문화에서 반인반마의 존재인데, 태국에서는 하반신이 새인 젊은 여성으로 바뀌었어요. 아무 것도 모르고 보았을 때 '동남아시아 불교의 천사' 처럼 생긴 조각이 바로 낀나리에요. 우보솟 지붕에서 우리나라 한옥 지붕의 잡석 장식 같이 쭈루루 달려 있는 조각들이 전부 낀나리 조각이었어요.


왓 쌘팡을 둘러본 후 밖으로 나와 또 걸었어요.


"이거 운하야, 하천이야?"



그러고보니 방콕에서는 운하를 참 많이 보았는데, 치앙마이에서는 운하를 보지 못했어요. 직선으로 쭉 뻗어 있고 양옆으로 건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인공적으로 손댄 티는 나는데, 이것이 자연적인 개천인지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느긋하게 이 운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어요. 이 운하가 신기해보였던 이유는 밤에 이 길을 걸었을 때 하도 어두워서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어두워서 길을 걷는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길 옆에는 이렇게 개천이 있었어요.


สะพานแม่ข่า  Mae Kha Tai Wang Bridge


매 카 다리 สะพานแม่ข่า  Mae Kha Tai Wang Bridge 다리를 건넜어요.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걸어가자 왓 우빠꿋 Wat Upakut วัดอุปคุต 이 나왔어요.



왓 우빠꿋에 도착하니 오후 6시 30분이었어요.



우리나라라면 6월 18일 오후 6시 30분이면 아직 밝아서 돌아다닐만할 때였어요. 하지가 코앞일 때니까요. 그러나 태국은 아니었어요. 태국은 북반구에 위치한 국가이기는 하나, 우리나라보다 훨씬 남위도에 위치한 국가에요. 적도에 가까워질 수록 지구의 공전에 따른 낮과 밤의 시간 변화가 적어져요. 그래서 한국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아직 밝아서 다닐 만한 시각이었지만, 태국에서는 저녁이었어요.



'여기 뭐 특별한 절인가?'


규모가 꽤 있는 절이었어요. 그런데 희안하게 구글 지도에는 이 절이 나와 있지 않았어요. 가이드북에도 이 절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었어요. 규모로 보면 분명히 이 절이 지도상에도 나와 있어야 하고 가이드북에 이름이라도 나와 있어야 하는데 지도에도, 가이드북에도 이 절은 없었어요. 여기가 왜 지도와 가이드북에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는지 이상했어요.


Wat Upakut in Chiang Mai


이것은 허 뜨라이에요. 문은 잠겨 있었어요.


태국 치앙마이 절 - 왓 우빠꿋


법당 앞에는 스님 동상이 있었어요. 이 스님 동상이 우빠꿋 스님인지 Chan Kusalo 스님인지 Luang Pu Thuat 스님인지 알 수 없었어요. 일단 태국 절에서 흔히 보이는 스님 그림과 불상은 Luang Pu Thuat 스님인데, 고승들을 또 불상 및 밀납 인형으로 만들어놓는 경우도 많은데다 고승의 얼굴이 비슷한 경우가 참 많아서 정확히 분간할 수 없었어요.


왓 우빠꿋의 위한 안으로 들어갔어요.


วัดอุปคุต


나의 절을 받아라!


정성껏 삼배를 드리려 했지만 몸에 힘이 없었어요.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어요. 무릎을 꿇는데 털썩 주저앉아버렸고, 고개를 숙이는데 머리를 바로 땅에 내리꽂아버렸어요. 바닥에 주저앉아 쓰러지듯 풀썩 앉아 쾅 머리를 찧었어요. 부처님이 받기 싫다는데 억지로 내 절을 받으라는 모습이었어요. 오체투지하듯 온몸을 던져 삼배를 했어요. 다른 사람이 보면 불심이 깊어서 온몸을 던져 절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어요. 힘들어서 과격하고 힘찬 삼배를 드린 것 뿐이었어요.


Phra Upakut


이 발우에 한 손을 넣은 불상이 마로 우빠꿋 스님 불상이에요.



삼배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어요. 그제서야 이 절 전경 사진을 아직 찍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Wat Upakut in Chiang Mai, Thailand


절에는 우빠꿋 스님 석상이 있었어요.


우빠꿋 스님 석상


위 사진에서 아래에 발우를 한 팔로 안고 있는 석상이 바로 우빠꿋 스님 석상이에요.


인도 아소카왕 시절, 불교가 타락한 것을 본 아소카왕이 이 상황을 극복하고 민심을 구제하기 위해 덕이 높은 스님을 찾았대요. 이렇게 해서 찾아낸 스님이 바로 우빠꿋 스님이었어요. 우빠꿋 스님은 발견 당시 연못의 중심에 연꽃을 띄워놓고 그 위에 앉아 수행중이었어요. 이는 고통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해 명상을 하는 고도의 수행을 한 스님만 할 수 있는 수행이었어요. 아소카왕은 우빠꿋 스님을 모셨고, 우빠꿋 스님은 아소카왕을 도와 인도의 불교를 구제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해요. 이후 우빠꿋 스님은 부를 상징하는 스님으로 알려졌고, 우빠꿋 스님 불상의 특징은 한 손을 발우에 넣고 있는 특이한 모양으로 제작되곤 한대요. 이 발우는 아무리 음식을 꺼내도 음식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전설이 있고, 그래서 이 스님이 오늘날 부의 상징으로 여겨진대요.


치앙마이 전설에 의하면 오래 전 치앙마이 외곽에 사는 한 노부부가 있었는데, 집에서 만든 음식을 새벽시장에서 팔기 위해 매일 밤 자정 무렵에 집에서 나갔대요. 그런데 이 노부부는 매일 물건을 하나도 팔지 못했대요.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정 무렵 집에서 나온 노부부는 왓 우빠꿋 근처에서 동자승 하나를 만났대요. 스님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자정 무렵에 돌아다니는 스님을 보기 어려운데, 그것도 동자승이 자정 무렵에 돌아다니고 있으니 매우 기이한 일이었어요. 노부부는 동자승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았지만, 동자승은 아무 말 없이 노부부만 바라보았대요. 그러자 노부부는 발우를 매고 있는 이 동자승을 불쌍히 여겨 자신들이 갖고 있던 전 재산인 1바트 짜리 동전 2개를 발우에 넣었어요. 그 일 이후 희안하게 노부부가 시장에 들고 가는 물건마다 모두 판매되어 노부부는 큰 부자가 되었고, 이를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노부부에게 물어보자 노부부가 이 자정 무렵 돌아다니던 동자승의 발우에 갖고 있던 전재산인 동전 2개를 넣어준 일을 말해주었어요. 노부부는 그 동자승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그 동자승을 수소문해보았으나 그런 동자승은 전혀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동자승을 우빠꿋 스님의 화신이라 믿게 되었고, 노부부는 그 동자승을 만난 자리에 절을 세웠는데, 그게 바로 이 왓 우빠꿋이라고 해요.


왓 우빠꿋에서 나왔어요. 이제 드디어 마지막 절인 왓 껫까람에 갈 때였어요.


치앙마이 나와랏 다리 Nawarat Bridge สะพานนวรัฐ


핑강 Ping river แม่น้ำปิง 위에 나와랏 다리 Nawarat Bridge สะพานนวรัฐ 를 건너기 시작했어요.


แม่น้ำปิง


치앙마이 핑강


핑강은 짜오프라야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주요 지류 두 개 중 하나에요. 이 강은 나콘사완 นครสวรรค์ 에서 난 강과 만나 짜오프라야강을 형성해요.


나와랏 다리를 건너 왓 껫까람을 찾아보았어요.


"여기 어디쯤 있을텐데?"


왓 껫까람 가는 길을 찾아서 돌아다녔어요. 분명히 이 근방 어디에 있을 텐데 큰 절로 가는 입구가 보이지 않았어요. 한참 돌아다니다 안내 표지판을 발견했어요.



표지판 내용을 읽어보니 이 절이 언제 지어진 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대요. 쁘라 께싸 탓 Phra Kesa That พระเกสาธาตุ이라 부르는 머리카락 유물이 이 절에 있는 쩨디 안에 있대요. 이 절로 올라가는 계단은 Tha Sathan Luang 이라 부르는데, 맹라이 왕조의 쁘라 무앙 껫 끌라오 통치 시기에 여기에서 사제 서품이 행해졌대요. 치앙마이를 1578년부터 1607년까지 다스린 버마 통치자 망 노라타 Mang Noratha 는 1578년 무너진 쩨디를 복구하라 명령했고, 이 복구 작업은 1581년에 완료되었대요. 또한 이 지역 전설에 따르면, 옛날 여기에서 치앙 마이를 다스리는 왕자들이 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의식들이 여기에서 거행되었다고 해요.


왓 껫까람으로 걸어올라가자 쩨디가 보였어요. 저녁 7시. 드디어 왓 껫까람 Wat Ketkaram วัดเกตการาม 에 도착했어요.


วัดเกตการาม


법당으로 가 보았어요.


태국 치앙마이 절 - 왓 껫까람


법당 문은 잠겨 있었어요.


"여기 요일별 불상은 꽤 고급스러운데?"



법당 앞에는 작은 요일별 불상이 있었어요. 붉은 가사를 곱게 입은 불상들이 매우 고급스러워보였어요.


쩨디를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wat ketkaram in chiang mai


"끝났다."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법당은 없었어요. 법당 안을 구경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거든요.



이제 어두워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도 없었어요. 플래시를 터치지 않으면 사진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어요.


'아침에 한 시간만 일찍 나올걸.'


아침에 그 한 시간. 딱 한 시간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여기도 제대로 관람했을 거에요. 그 한 시간이 문제였어요. 아침 10시 넘어서 숙소에서 나왔는데 만약 아침 9시에 나왔다면 이렇게 어두울 때 왓 껫까람에 도착하지 않았을 거에요. 태국은 아침이 일찍 시작되는 나라이니 9시에 숙소에서 나와도 절 구경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 한 시간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만들고 말았어요.


'아쉬워하면 뭐하냐. 어차피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또 10시 넘어서 나올텐데.'


미련은 없었어요. 아쉬움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오늘 아침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아침 10시 넘어서 숙소에서 나올 테니까요.



절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아이스박스가 보였어요. 그 주변에 젊은 스님이 계셨어요.


"안녕하세요."


두 손을 모아 가슴팍까지 들어올리고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어요. 스님은 인사를 받아주었어요.


"여기 왓 껫까람 맞죠?"

"예. 맞아요."


스님께 여기가 왓 껫까람 맞냐고 물어보자 스님은 맞다고 대답했어요.


"물 드세요."


스님은 아이스박스에서 생수병 하나를 꺼내서 하나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어요.


"주스로 가져가도 되요?"

"주스는 우리가 마셔야되니 물 가져가세요."

"예."


스님께 미소를 지으며 아이스박스에서 생수병을 하나 꺼냈어요.


"감사합니다."


왓 껫까람의 법당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생수를 하나 받았어요. 생수를 따서 마셨어요. 시원했어요. 물을 마시고 앉아서 조금 쉬다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이제 숙소 돌아가야지."


이제 어두워져서 더 이상 절을 찾아다닐 수 없었어요. 목표했던 절 15곳보다 한 곳 적은 14곳을 돌았기 때문에 한 곳 더 가고 싶었지만 이제 늦어버렸어요.


다시 삥 강으로 갔어요.




이제 정말 어두워졌어요.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어요. 초승달을 보자 기분이 매우 묘해졌어요.


'이제 라마단 시작되었구나.'


이 여행의 시작은 라마단 전이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라마단을 맞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일정을 짰거든요. 라마단이 시작되기 전에 태국으로 넘어왔어요. 이제 인도네시아에서는 라마단이 진행중이겠지? 라마단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제 여행도 상당히 많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아직 9일 정도 더 남아 있었지만요. 이 여행의 마지막 방문 국가인 라오스가 내일부터 시작될 것이었어요.


삥 강을 건너 숙소가 있는 빠뚜 타패를 향해 걸어갔어요.


"으으!"


허리 통증이 너무 심했어요.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었어요. 허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쭈그려 앉았어요. 주저앉고 싶었지만 땅바닥이 더러워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어요. 확실히 무리했어요. 왓 껫까람까지 반드시 가보겠다는 집념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녔어요. 이제 목표를 달성하니 몸에 긴장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고, 허리의 통증과 다리의 피로가 아주 선명하고 확실하게 느껴졌어요.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잠시 쉬다가 근처에 가게가 있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콜라 하나를 사서 나와 바닥에 다시 쭈그려 앉아 콜라를 마셨어요. 500cc 패트병 하나를 천천히 마시며 쉬었어요.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비틀대며 일어났어요. 다시 숙소를 향해 걸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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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오 여섯시 반즈음인데도 밝긴하네요. 한국도 겨울에는 4시반이면 어두워지지만 여름에는 8시까지 밝긴하죠. 장난기발동해서 말한 주스 달라는 말에 정말로 생수가 아닌 주스를 주셨다면... ㅎㅎ 사진으로만 봐고 불교의 건축물과 불상들이 이국적이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2017.03.12 21: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때가 6월 18일이었어요. 하지가 6월 20일 정도니 낮이 상당히 길 때였죠. 그런데 북반구라 7시 되니 어둑어둑해지더라구요. 6월 20일에 우리나라는 7시에도 그렇게까지 어둡지는 않은데요. 만약 정말로 생수를 주셨다면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인사했겠죠. 꼬쿤크랍 하면서요 ^^ 태국은 불교미술 뿐만 아니라 상좌부불교라 우리가 믿는 불교와 교리적으로도 차이가 꽤 커요 ㅎㅎ

      2017.03.13 00:34 신고 [ ADDR : EDIT/ DEL ]
  2. 정말 대단하세요.. 저 같으면 아마 두어곳 간 후 '앜 더워 앜 힘들어' 하고 주저앉았다가 '힘드니까 포기ㅠㅠ' 그러면서 시원한 곳에 가서 쓰러졌을 것 같아요... 힘들어서 과격하고 힘찬 삼배를 하게 되시다니, 어쩐지 상상이 되면서 조금 웃프기도 하고요.
    흐릿하지만 초승달 사진 좋아요

    2017.03.12 22: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제 멀쩡한 두 다리로 걸으면 되는 일이니 포기를 절대 안 했지요. 제가 조금만 더 참고 걸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ㅎㅎ

      2017.03.13 00:42 신고 [ ADDR : EDIT/ DEL ]
  3. 에구에구... 너무 고생하셨네요. 완전 강행군이예요ㅠㅠㅠㅠ
    일정이 빡빡한 날은 정말 아침 일찍 일어나야 거의 소화가 가능한 거 같아요.
    중반까지 별로 어두운 느낌이 안들어서 좀 의아했는데 일정 마치고 밤하늘 사진을 보니 정말 어둡네요.
    힘드셨겠지만 그래도 지금 떠올려보면 다~ 추억이란 말 식상하지만 남기고 싶네요ㅋㅋㅋㅋ 식상하죠?

    2017.03.13 01: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하루를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강행군이 되어버렸어요. 동선을 보면 그렇게 많이 걸어다닌 것까지는 아니었는데요...저때는 노출을 오버로 찍어서 더욱 안 어두워보이게 사진이 나왔어요. 다 추억이라는 말 식상하지 않아요. 아직 이 세상에 있는 무수한 재미있는 여행 경험 중 제가 해본 게 몇 개 없어서요. 300년쯤 여행하면 그때쯤 나중에 떠올려보면 다 추억이란 말이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2017.03.13 06:07 신고 [ ADDR : EDIT/ DEL ]
  4. 아이구.. 고행이 따로 없네요. ㅎㅎ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뿌듯했겠습니다. ^^

    2017.03.13 09: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의도치 않게 고행을 했어요. 그래도 목표를 무사히 달성해서 정말 뿌듯했어요^^

      2017.03.13 12:38 신고 [ ADDR : EDIT/ DEL ]
  5. 왓 께까람 법당 너무 멋있네요 어둠이 살짝 내리면서 하얀 건물이 정말 멋집니다!!
    여유로운 여행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저도 열심히 돌아다녀야된다는 주의라서
    한 군데만더 조금만 더 이러면서 둘러보곤 헤요 좀좀이님도 열심히 절을 돌아보셨네요
    수행을 위해 가시방석에 앉는 인도의 요가 수도자가 겹쳐 보였습니다 ㅎㅎㅎ

    2017.03.13 16: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왓 껫까람은 조금만 일찍 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절이었어요 ㅎㅎ 청춘일기님께서도 열심히 돌아다녀야 된다는 주의시군요! 저도 여기 또 올 확률은 0에 수렴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돌아다녔어요. 수행을 위해 가시방석에 앉는 인도의 수행자까지는 아니에요. 제가 숙소에서 너무 늦게 나오고 초반에 여유부리다 이렇게 된 거에요 ㅋㅋ;;

      2017.03.14 10:48 신고 [ ADDR : EDIT/ DEL ]
  6. 왓 껫까람까지의 강행군을 드디어 마치셨군요. ㅎㅎ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절도 많이 했을테고요.
    그치만... 돌이켜보면 그날의 기억은 오래오래 남을 것 같네요.^^

    2017.03.14 15: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일정을 너무 늦게 시작하고 초반에 여유롭게 다닌 게 마지막에 고생하게 만든 핵심원인이었어요. 다리와 허리가 아픈 문제도 있었지만 저게 압도적으로 컸어요 ㅎㅎ;; 저건 잊을 수가 없어요. 절 이름은 흐릿해지겠지만 저렇게 절 찾아 하루 종일 발발발 돌아다니고 절에 가서 절한 건 아마 영원히 기억할 거에요^^

      2017.03.15 00:52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