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65 태국 여행 - 치앙라이 왓 롱쿤 (화이트 템플, White temple)

좀좀이 2017. 3. 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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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왔어요. 돌아오는 길이 오늘따라 유독 더 멀게 느껴졌어요. 분명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데 중량천을 완주하던 날 그 고통과 맞먹을 정도로 힘겹게 걸어왔어요. 차이점이라면 중량천 완주하던 날은 다리와 발이 아팠고, 지금은 허리가 아프다는 것이었어요. 아주 오래전에 허리를 한 번 삐끗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 이후 딱히 허리가 안 좋은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여행 와서 갑자기 허리 통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어요.


'이거 가방 문제인가?'


옆으로 메는 가방을 메고 하루 종일 걸어다니는 날이 계속 되어서 허리에 무리가 가고 있는 건가? 원래는 여행 중 어지간하면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고 돌아다녔어요. 이런 버릇이 생긴 것은 지난 베트남 여행에서부터였어요. 베트남 여행 중 손에 무언가 들고 돌아다니는 일이 종종 있어서 가방을 들고 다니자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거든요. 안전 문제 때문에 항상 가방을 옆으로 메고 다녔고, 이것은 이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가방을 들고 다니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물건 산 것은 가방에 다 넣어버리고, 가이드북도 가방에 넣어버리면 되고, 카메라도 가방에 넣어버리면 되니까요. 단, 안전 문제 때문에 등으로 메지는 못하고 옆으로 메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문제 같았어요. 가방에 이것저것 다 집어넣고 다니니 두 손이 자유로워서 편하기는 한데, 대신 가방 무게가 증가했어요. 게다가 옆으로 메는 가방이다보니 당연히 허리에 무리를 안 줄 수가 없었어요. 이게 계속 누적되다가 결국 일을 만든 것 같았어요. 그거 외에는 허리가 아플 이유가 없었거든요. 허리를 한 번 삐끗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거진 10년 전 이야기. 그때 조금 고생한 후 여태 아무 문제 없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아픈 건 가방 때문이 분명했어요.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엎드렸어요.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자고 싶다.


이대로 쓰러져서 자고 싶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 내일 하루 종일 차 안에서 쉬면 모레는 괜찮아질 거 같은데.


그렇지만 침대에 쓰러져 쉴 수 없었어요. 당장 다음날 아침 체크아웃하고 라오스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거든요.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 샤워를 하고 옷을 모두 빨았어요. 밤에 옷이 바짝 마를 리는 없겠지만, 여기는 아침부터 햇살이 강하니 정 안 마르면 아침에 잠깐 널어놓아서 말리면 될 거였어요. 이틀간 차를 타고 가야 하니 깔끔한 옷을 입고 차에 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어요.


빨래를 하고 짐을 꾸렸어요. 내일 제가 타고 갈 차량은 오전 10시에서 10시 반에 올 예정이었어요. 이 차를 타려면 아침 9시에는 일어나야 했어요. 그래야 후다닥 샤워하고 체크아웃하고 밖으로 나갈 테니까요. 짐을 다시 꾸리는 것 자체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애초에 짐 자체를 홀라당 엎은 적이 없었거든요. 짐을 꾸린다는 것보다는 방 정리에 가까웠어요. 방에 뭐 흘리고 나가는 것 없는지 미리 확인한 것이었어요.


옆으로 메는 가방에서 태국어 교재를 꺼내었어요. 틈틈이 펼쳐서 공부하겠다고 했는데 펼쳐본 적은 거의 없었어요. 오늘은 열심히 절 찾아다니느라 책을 꺼내본 적이 아예 없었어요. 무거운 태국 가이드북도 꺼내었어요. 이제 태국은 끝이었어요. 캐리어에 태국어 교재와 태국 가이드북을 집어넣은 후, 라오어 교재와 라오스 가이드북을 꺼내 옆으로 메는 가방에 집어넣었어요. 교재도 가이드북도 전보다 훨씬 가벼웠기 때문에 옆으로 메는 가방 무게 자체가 매우 가벼워졌어요.


짐을 싸고 여행 기록을 정리한 후 자리에 누워 잤어요.


정말 깊게 잤어요. 단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어요. 눈을 떠서 시계를 확인해보니 드디어 2015년 6월 19일 아침이었어요. 이제 이 태국에서 벗어날 날이었어요.


'오늘은 20시간 넘게 이동하는 날이구나.'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동 시간이 24시간이 넘지는 않는다는 것. 라오스 루앙프라방은 내일 아침 도착 예정이었어요.


이렇게 장시간 자동차로 육로 이동하는 것이 대체 얼마만이야?


오랜만에 자동차로 장시간 육로 이동할 생각을 하니 살짝 긴장이 되면서 신이 났다. 순전히 자동차만 타고 이동하는 시간만 따진다면 이번 이동이 가장 긴 이동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이제 내게 애들 장난 수준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2009년 7박 35일 발칸유럽 및 중부유럽 여행 때 몇날 며칠 연속으로 야간이동으로 다닌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낮에는 버스 터미널 및 기차역에 짐을 맡기고 하루종일 도시를 돌아다녔고, 밤에 버스나 기차를 타고 잠을 청했었다. 그거에 비하면 이건 편안한 침대에 누워서 가는 수준에 불과했다. 2011년 카프카스 여행 때 조지아-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질식할 것 같던 버스에서 자던 밤, 2012년 여름 투르크메니스탄을 가기 위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부하라로 가는 야간 기차에서 더위와 습기에 정신 잃고 자던 밤에 비하면 이건 내가 지금껏 해본 여행에서 고생한 축에도 못 들어간다. 오히려 쾌적한 이동, 상쾌한 이동이라 해야할 거다. 단지 이게 이동 시간이 길기 때문에 갑갑할 거라는 것이 긴장하게 만들 뿐이었다.


'드디어 '싸바이디'를 말하겠다!'


라오스는 정말 예전부터 가고 싶었다. 내가 라오스에 관심을 가졌을 때, 라오어 자료만큼이나 라오스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그때는 정말로 '신비의 나라'였다. 주변 국가인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모두 자료 및 관광정보가 많았는데 라오스만 아무 것도 없었다. 오죽하면 친한 동생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다 나눈 다음에 '어? 땅이 비었네?' 해서 남은 쓸모없는 땅에 대충 깃발 꽂은 게 라오스'라고 한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라오스가 정말 가보고 싶었고, 거기 가서 혼자 공부해서 아는 유일한 라오어인 '싸바이디'를 말해보고 싶었다. 이제 드디어 그 '라오스'에 간다.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어요. 옷은 약간 축축하기는 했지만 입을 만한 정도로 말라 있었어요. 이 정도 축축한 것은 입고 밖에 10분간 가만히 서 있으면 알아서 다 마를 것이었어요. 옷을 갈아입고 세면도구를 옆으로 메는 가방에 집어넣었어요. 기회가 되면 세수도 해야 하니까요. 장시간 이동을 할 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대한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이 좋아요. 그래야 이동으로 쌓인 피로와 몸에서 나는 악취를 조금이라도 제거해 덜 피곤하게 갈 수 있거든요. 장거리 이동은 체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회가 되면 무조건 한다는 요령으로 하는 것이에요.


9시 45분. 시간이 되어서 짐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가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갔어요. 역시나 더웠어요.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어요.



"태국어 글자 겨우 다 외우니 떠나는구나."


태국어 글자는 치앙마이 와서야 겨우 다 외웠어요. 이제 정자체로 쓰인 간판들은 다 읽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태국어를 읽게 된 지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 태국은 끝이었어요. 지금부터는 라오어 글자를 외우고 라오어를 공부해야 했어요. 라오스에서 태국어가 통한다고는 하지만, 몇 마디 아는 태국어로 때우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라오스 일정을 나름 길게 잡은 이유는 바로 라오어를 한 마디라도 더 해보고 공부하기 위해서였어요.


"라오어 글자 외우면 태국어 글자 또 다 까먹는 거 아냐?"


괜찮아. 어차피 내 관심은 라오어였지 태국어가 아니었잖아. 라오어 글자라도 확실히 다 외우고 기억해서 한국 돌아가면 그게 성공이잖아.


숙소 앞에 앉아서 허탈해하며 웃었어요. 태국어 글자를 정말 간신히 외웠어요. 태국어 글자를 몰라서 여러 번 고생했고, 이제 드디어 문맹에서 일단 벗어났어요. 성조까지 계산하며 제대로 발음할 수는 없었지만 เชียงใหม่ 를 보고 '치앙마이'라고 읽을 수는 있었어요. 이제 드디어 문맹에서 벗어나 태국어 글자를 읽으며 여행할 수 있겠다고 좋아했더니 라오스로 넘어가야 했어요. 지금껏 외운 태국어 글자는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순간 쓸모없어질 거에요.


10시 조금 넘어서 숙소 앞으로 제가 타고 갈 차가 왔어요. 차는 버스가 아니라 승합차였어요.


"앞자리에 타도 되요?"

"그래요."


기사 아저씨의 허락을 받고 조수석에 앉았어요.



창밖으로 제가 본 치앙마이 시내 풍경이 나왔어요.



"앗! 저 절 내가 못 가본 절이다!"

"야, 이제 왓 그만 가도 돼! 어제 많이 갔잖아."

"아...내가 못 간 왓이 있다니!"

"부처님도 이제 귀찮아서 그만 오라고 하시겠다."


친구의 말에 깔깔 웃었어요. 딱히 할 말이 없었어요. 절을 열심히 찾아간 것은 저 때문에 맞아요. 그렇지만 절에 가서 삼배를 열심히 드린 것은 저 때문이 아니라 친구 때문이었어요. 저는 원래 절에 가면 대법당에 있는 불상에만 삼배를 드리고 나왔어요. 그런데 친구는 법당 안에 불상이 있으면 다 삼배를 드렸고, 친구가 삼배를 하니 저도 따라서 법당마다 불상이 있으면 삼배를 드렸어요. 덕분에 나중에는 나의 삼배를 받아라 파워 절하기를 해야 했구요.


"그래도 오늘 왓 롱쿤 가니까 절 하나는 가네."


아케이드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구입하지 않고 여행사에서 표를 구입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차가 치앙라이에 있는 왓 롱쿤을 들렸다 가기 때문이었어요. 왓 롱쿤 사진을 보고 한 번 가보고 싶었지만 여기는 치앙마이가 아니라 치앙라이에 있어서 이번 일정에서 가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왓 롱쿤은 포기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여행사에서 루앙프라방 가는 버스 표를 구입하면 그 버스가 왓 롱쿤을 들린다고 했기 때문에 라오스도 편하게 가고 왓 롱쿤도 보고 가자는 생각에 표를 구입한 것이었어요.



차는 치앙마이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도로로 들어갔어요.



'내가 치앙마이에서 절 몇 곳 갔지?'


차 안에서 문득 치앙마이에서 절을 몇 곳 갔는지 궁금해져서 하나하나 세어보기 시작했어요.


6월 16일 4곳 - 왓 빤삥, 왓 우몽 마하테라 찬, 왓 두앙디, 도이수텝

6월 17일 7곳 - 왓 삼파우, 왓 인타낀, 왓 차이 프라끼앗, 완 판따오, 왓 퉁유, 왓 시끗, 왓 프라씽

6월 18일 14곳 - 왓 람창, 왓 치앙만, 왓 쩨디 루앙, 왓 창땜, 왓 제틀린, 왓 믄뚬, 왓 빤왠, 왓 뿌악삐아, 왓 폰 소이, 왓 마하완, 왓 부파람, 왓 쌘팡, 왓 우파꿋, 왓 껫까람


총 25곳을 갔어요.


"참 많이도 갔다. 이거 여행기 어떻게 다 쓰냐?"


돌아다닌 곳이 많으니 쓸 건 많은데, 돌아다닌 곳이 전부 절이라 절 이야기만 엄청 써야 했어요. 어떻게 써야하나 생각해보았는데 이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마다 개성이 있기는 했지만 크게 보면 몇 개 절을 제외하면 거의 다 비슷한 절이었어요. 세세한 차이점을 글로 표현해야 하는데 글재주도 없고 태국 절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니 분명 이 부분을 여행기로 쓸 때 토하도록 어려울 것이 뻔했어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여행기 쓰기 싫다고 안 보는 건 더 아니잖아."


"저거 모스크 아니야?"


태국 모스크


태국에 무슬림 정말 많구나. 태국에 무슬림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치앙라이 가는 길에서조차 모스크가 보였다. 방콕이야 국제 도시이기도 하고, 태국 남부에서 올라온 무슬림들이 있다고 하면 이해가 되었다. 아유타야도 방콕에서 크게 먼 도시는 아니니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무슬림이 있게 생긴 곳이 아니었다. 모스크가 설마 나를 막 쫓아오는 건가?


모스크를 보며 놀랐는데, 이번에는 스님 동상이 나타났어요.



차는 어느 도시 안으로 들어갔어요.



도시를 통과해 다시 교외로 나가 쭉 달리더니 왠 건물 앞에서 차가 멈추어섰어요.


"이제 휴게소인가?"



시계를 보니 12시 20분이었어요. 기사에게 몇 분 쉬냐고 물어보니 여기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고 했어요.



정원에는 나무로 만든 소가 두 마리 있었어요.



이것이 바로 제가 치앙마이에서 타고 온 승합차였어요.


"여기 풍경 사진으로 찍으니 잘 나온다!"



사진이 유화로 그린 풍경화처럼 나왔어요. 저 산 아래에서는 시원하게 스콜이 쏟아져내릴 모습이었어요. 오래 보면 질리지만 사진으로 찍어서 보면 오래 보아도 참 예쁜 풍경이었어요.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어요. 맛이 참 없었어요. 출발하기 전 간식이나 잔뜩 사와서 그것으로 때울 걸 후회가 되었어요. 배를 채우고 화장실에 가서 양치하고 세수한 후, 차에 다시 올라탔어요. 라오어 교재를 꺼내었어요. 제일 중요한 숫자를 먼저 보았어요.


"이거 태국어랑 거의 똑같은데?"


성조를 새로 외워야했지만, 발음에서 자음과 모음은 태국어와 별 차이 없었어요.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어요. 성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성조를 틀려도 말이 아예 안 통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한 언어라 해도 성조에 약간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상황과 문맥상 이해가 가능하다면 성조가 틀려도 무슨 말인지 아주 대충은 의미 전달이 되거든요. 게다가 라오스는 아직 '표준 성조' 개념이 확실히 정해져 강력히 보급중인 국가도 아니라 하고, 태국어도 어느 정도 통한다고 했어요. 7박 35일 발칸 유럽 및 중부 유럽 여행을 다닐 때에는 매일 밤 기본 회화를 다 외워야 했어요. 그때에 비하면 라오어 상황은 조금 만만해보였어요.


라오어를 집중해서 보고 싶었지만 차 안에 있으니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책을 조금 보다 한없이 창밖만 바라보다를 반복했어요.


태국 바나나


제가 탄 승합차 앞에 바나나를 실은 트럭이 나타났어요. 그리고 잠시 후. Welcome to Chiang Rai 라고 적힌 표지판이 나타났어요.



오후 2시 25분. 드디어 왓 롱쿤 Wat Rong Khun วัดร่องขุ่น 에 도착했어요.


태국 치앙라이 왓 롱쿤


"우와! 여기 장난 아니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와서 보니 사진보다 훨씬 더 멋있었어요.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하얀 사원은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었어요.


"어서 구경해야지!"


12시가 넘어도 왓 롱쿤에 도착하지 않아서 왓 롱쿤을 생략하는 것 아닌가 했지만 다행히 왓 롱쿤에 제대로 도착했어요. 관람시간도 꽤 넉넉하게 주었어요. 승합차에 타고 있는 서양인들은 아무 흥미도 보이지 않았어요. 이들은 승합차에서 내리자마자 근처 가게로 기어들어갔어요. 그러나 저는 비싼 돈을 주고 이 승합차를 탄 이유가 왓 롱쿤을 보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사원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어요.


Wat rong khun in Chiang Rai




절에 왔으니 당연히 법당에 들어가봐야 했어요. 가장 화려하고 눈에 확 들어오는 법당을 향해 갔어요.



วัดร่องขุ่น


이 하얀 법당이 바로 우보솟이었어요. 이 법당으로 이어지는 다리는 '윤회의 수레바퀴 다리'에요. 이 다리 양옆으로는 억제되지 않은 욕망을 표현하는 손 수백개가 설치되어 있어요.



"이거 완전 지옥같은데?"


하얀 손은 다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잡아끌고가려는 모습이었어요. 조금 오싹했어요.



이 문이 바로 '천당문'이에요.


내부 사진 촬영 금지.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보았어요. 의외로 내부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어요.



"어서 다른 곳도 구경해야지."


관람시간을 30분 주었기 때문에 이 절을 다 보고 사진을 찍으려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했어요.




사원 전체가 하얀색이었기 때문에 검은색이 특히 두드러졌어요.



법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내부는 딱히 인상적인 것이 없네."


왓 롱쿤의 외부는 상당히 멋졌어요. 이 절을 설계한 Chalermchai Kositpipat เฉลิมชัย โฆษิตพิพัฒน์ 의 발상에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 이런 디자인은 깊은 불심과 독특한 미적 감각이 낳은 결과물이었어요. 태국 전통 절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그 절을 이렇게 만들어낼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어요. 저 멀리 달나라 뒷편에 있는 절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어요.


20세기 말, 왓 롱쿤이 상당히 나쁜 상태라 큰 보수 공사가 필요했대요. 이때 치앙마이 지역 미술가인 짤름차이 코씻피팟은 왓 롱쿤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 재건을 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위한 기금을 조성했대요. 짤름차이는 자신의 돈 4천만 바트를 이 기금에 봉헌했고, 불교의 가르침을 보여주는 디자인으로 건설했대요. 재미있는 점은 이 미술가가 거액기부자가 이 절에 영향을 끼지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한 사람당 1만 바트 이상의 기부금을 내는 것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외관은 보자마자 상당히 멋지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모습이었지만 내부는 외부와 달리 상당히 수수했어요.


"여기에서 삼배 드려야 하나?"

"어제 우리 많이 했잖아. 오늘 하루 절 와서 삼배 안 해도 어제 많이 가서 했으니까 부처님이 괜찮다고 하실껄."


이 법당 안에서 삼배를 드려야하나 망설였어요. 법당에 들어가서 불상이 있으면 예의상 삼배를 드렸지만 이때는 참 드리기 싫었어요. 전날 절을 다닌 후유증이 아직 다리에 남아 있었거든요. 그래서 친구에게 어떻게 할 지 물어보자 친구는 어제 우리가 절 14곳 가서 법당에 불상 있으면 삼배 꼬박꼬박했으니 부처님도 오늘 하루 그냥 가는 것은 괜찮다고 할 거라 대답하며 하지 말자고 했어요.


어? 꽤 그럴싸한데?


어제 그렇게 절을 열심히 돌아다니고 몸을 던져 삼배를 드렸는데 오늘 하루 안 한다고 별 일 있겠어? 오늘은 그냥 하지 말자. 지금은 정말 삼배 드리기 싫은데 억지로 드려봐야 뭐해? 오늘 하루 안한 것 정도는 봐주시겠지. 어제 마일리지 많이 쌓았잖아? 친구가 자기는 안 한다고 하자 저도 좋다고 하며 그냥 법당에서 나왔어요.




왓 롱쿤 관람을 마치고 차로 돌아왔어요. 이제 진짜로 태국은 끝이었어요. 이제 다음번 이 차에서 내릴 때는 국경이었어요. 태국에서 마지막 절 방문은 이렇게 끝났어요.



승합차가 출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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