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프롤로그

좀좀이 2012. 1. 2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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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급속히 추워지던 2009년 10월말. 저는 몰타를 향해 떠났어요.

2008년도에 번 돈을 조곤조곤 갉아먹으며 하루하루 보내던 2009년의 매일매일.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놓은 것은 아니다보니 슬슬 위기감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나타난 제 친구 Y군.

"몰타로 영어 어학연수 가자."

영어라고는 '하와유', '땡큐' 수준인 저. 일단 영어를 좀 배우고 오기로 결심했어요. 하루하루 벌어놓은 돈을 허무하게 갉아먹으며 보낼 바에는 차라리 영어 한 마디라도 배워오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1월부터 몰타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첫날 시험을 보았는데 당연히 최악의 결과. 맞은 게 안 보였어요. 하지만 굴욕적인 beginner 는 피해서 elementary로 들어갔어요. 다행히 이 코스에서는 배우는 것이 의문문 만들기. 제일 큰 성과라면 제가 '하와유', '땡큐' 보다는 더 많은 영어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는 것이었어요.

"너는 실력이 되니 승급해."
2주를 마치자마자 승급하라는 선생님의 권유. 거기에 몰타섬을 다 돌아보아야겠다는 의욕으로 매일 수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휙휙 다녔어요. 저와 같이 놀던 친구들은 모두 제게 '너는 정말 이번주말에 몰타를 떠날 거 같아. 왜 그렇게 전투적으로 몰타를 돌아다녀?'라고 했지만 저는 절대 그런 조언에 굴하지 않고 매일 버스를 타고 열심히 돌아다녔어요.

문제는 바로 이 2주 후. 승급을 함과 동시에 몰타 섬 전체를 다 보았다는 것이었어요. 무슨 동네 시골마을까지 다 가버린 저. 바로 심심함의 극치에 빠져버렸어요. 방에 돌아오자마자 갈 곳이 없어서 뒹굴뒹굴 거렸어요. 그래도 3주까지는 버틸만 했어요. 몰타 섬을 다 돌아보지 못한 친구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끌고다니는 맛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4주차. 모든 것이 끝나버렸어요. 저 때문에 저와 같이 간 친구도 몰타를 다 보아버렸고, 더 이상 끌고다닐 친구조차 없어졌어요.

이때부터는 방에서 한국에서 미리 다운받아간 영화나 애니를 보기 시작했어요. 시작은 친구. 어느 날 밤의 대화.
"야, 너 하드에 애니 있어?"
"응."
친구가 보기 시작하자 저도 급 호기심 발동. 그렇게 다 보고나니 또 할 것이 없었어요.

마침 학원에는 12월 18일까지 수업을 하고 1월 3일까지 성탄절-신년 방학이 있었어요. 학원에 있는 한국인들은 모두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야, 우리도 여행 가자."
사실 원래 계획은 방학 동안 숙소에서 둘이 뒹굴뒹굴 폐인으로 사는 것이었어요. 정 심심하면 몰타를 돌아다니는 것. 하지만 몰타를 돌아다니는 것을 끝내버린 우리. 거기에 주변에서는 여행 준비 바람. 거기에 휩쓸려 버렸어요.

"어디를 갈까?"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이 마땅히 정해지지 않은 우리들. 그나마 저는 가고 싶은 곳이 확실했어요. 알바니아. 하지만 친구는 그다지 가보고 싶은 곳이 많지 않았어요.

"야, 그럼 우리 동유럽이나 가자."

친구의 입장에서 나름 생각해서 제가 결단을 내렸어요. 서유럽이라면 친구가 나중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올 수 있어요. 하지만 동유럽은 절대 안 올 거에요. 이스탄불을 온다고 해도 동유럽에 갈 리 없어요. 이스탄불에 온다면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로 들어가 버리겠죠. 배낭여행을 한다면 끽해야 프라하, 부다페스트 정도? 어쨌든 친구가 거기를 갈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생각에 친구도 수긍했어요.

"나는 프라하와 이스탄불을 가고 싶어."

지난 7박 35일 여행때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자 프라하를 가고 싶다는 친구. 그리고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보고 싶다고 했어요. 대항해시대의 느낌을 가서 받아보고 싶다고 했어요.

"표를 구하자."
마침 제 카드 해외결제 문제도 해결이 되었어요. 그래서 표를 구하기 시작했어요. 일단 돌아오는 날짜는 1월 3일. 라이언에어를 통해 베니스행 표를 샀어요.

문제는 표를 사고나서 이스탄불이 추가되었다는 것. 원래 계획은 베니스에 가서 부다페스트-프라하 보고 돌아오는 것. 하지만 전혀 엉뚱한 이스탄불이 추가되어 버렸어요.

"야, 나는 그냥 일주일 결석할란다."
다시 한 번 저의 용단. 이것은 정말 저의 독단이어었어요. 당황한 친구. 제가 자기와 가기 싫어하는 줄로 오해를 했어요. 하지만 오해를 풀고 같이 알바니아로 가고 일주일 결석하기로 했어요. 그 결정을 내리자마자 바로 베니스-티라나행 편도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라이언에어 표를 하나 더 구입했어요.

"이건 보험이다."
원래 이렇게 날짜를 늘릴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몰타 오르미 (Qormi)에 놀러가 찻집에서 둘이 잡담하다 까짓거 그냥 돈 20유로씩 날리더라도 여행자 보험 하나 가입한 셈 치고 표 하나 더 잡자고 합의를 보았고, 그렇게 라이언에어 표를 하나 더 샀어요.

여행 코스를 짜는데 이상하게 남는 시간.
"나 빈도 가보고 싶어. 클림트의 그림이 보고 싶거든."
"그래? 그럼 빈도 넣자."
어차피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고민하던 차에 친구가 오스트리아 빈에 가보고 싶다는 말은 대환영이었어요. 그래서 코스에 빈도 집어넣었어요.

루트는 대충 제가 갔던 루트를 따라가기로 했어요. 어차피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자료가 없었어요. 그냥 조금 찾다 포기.

무언가 매일 준비한다고 나름 열심히 알아보고 준비하는데 막상 준비한 것이라고는 없었어요. 대충 대략적인 여행 루트 하나 정해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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