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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뉴스에서는 불안한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어요. 유럽 본토에 폭설.

"야, 유럽에 계속 폭설 내린다는데?"

"엄청 춥겠다."

"옷 최대한 껴입고 가야겠는데?"


2010년 12월 19일.


드디어 여행 당일이 돌아왔어요. 오직 이 날만을 기다렸어요. 아침부터 짐을 싸고 발레타에 갔어요. 발레타 입구 앞에 있는 기사식당에서 간단히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버스를 루카 공항에 가는 버스에 올라탔어요. 우리 둘의 짐은 제 캐리어 한 개와 백팩 2개가 전부. 저가 항공이라 짐을 하나 부칠 때에도 돈을 추가로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혹시나 액체류를 사게 되면 보낼 용도로 제 캐리어 한 개만 부치기로 했어요. 나머지 짐은 전부 가방에 우겨넣고 최대한 껴입었어요. 짐이 적으니 다행히 엄청나게 작은 몰타 버스를 타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어요. 캐리어는 사실상 빈 가방.


몰타의 겨울은 우리나라의 10월 말~11월 초 날씨. 얇게 입으면 춥고 두껍게 입으면 더워요. 정말 애매한 날씨에요. 그런데 옷을 최대한 껴입었으니 땀이 삐질삐질 났어요.


루카 공항에 도착했어요. 짐을 부치고 햄버거 하나씩 사먹었어요. 돈이 너무 아까웠지만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었어요. 햄버거를 먹는데 다른 외국인들은 치킨도 먹고 있었어요.

"진짜 내일까지만 참자. 모레부터는 물가가 엄청나게 싼 동유럽이다!"


햄버거를 다 먹고 공항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어요.



"야, 이거 딱 너인데?"

Playmobil의 밀렵꾼 시리즈. 정말 구입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일단 가격이 장난 아니었어요. 저 밀렵꾼 시리즈 딱 내가 좋아하는 건데...친구는 왼쪽의 덫으로 멧돼지 잡으려는 밀렵꾼보고 완전 제가 아프리카 가서 할 짓이라고 장난쳤어요.


문제는 루카 공항이 정말 엄청나게 작다는 것. 우리나라 지방의 작은 공항 정도밖에 안 해요. 김포 공항과는 당연히 비교조차 불가능해요. 정말 볼 것이 없어서 본 것 또 보고 본 것 또 봐도 시간이 가지 않았어요. 면세점이라고 있는 것은 밖에서 사는 것이랑 큰 차이도 없었어요. 정말 별 볼 일 없는 루카 공항.

"트럼프라도 한 벌 사올 걸 그랬다."

시간을 때워야 하는데 시간을 때울 방법이 없었어요. 둘이서 멍하니 의자에 앉아서 천장만 바라보았어요. 


일단 우리가 타야 하는 비행기는 베니스행 비행기. 그런데 이게 시각이 지났는데도 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비행기 왜 안 뜨지?"

우리의 계획은 공항에서 노숙이 아니었어요. 베니스 시내로 나가서 저렴한 숙소를 찾아 1박 하고 다음날 공항 가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비행기 탑승이 도통 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진짜 무슨 문제 생겼나? 폭설 때문에 비행기 결항되는 거 아냐?"

비행기가 결항되면 상당히 골치아픈 문제가 발생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다음날 베니스에서 알바니아 티라나행 비행기를 타야 했거든요. 더욱이 우리가 이용하는 것은 저가 항공사.


탑승 예정 시간을 훨씬 넘겨서야 겨우 비행기에 올라탔어요. 이때부터 시작된 고문. 저가항공사이기 때문에 물 한 잔 안 줘요. 우리나라는 저가 항공사도 국내선에서 음료수 한 잔은 주는데 유럽의 저가항공사는 정말 아무 것도 안 줘요. 목은 마른데 마실 것이 없으니 괴로웠어요. 물론 비행기 안에서 사 마실 수는 있는데 매우 비싸요. 가격을 보면 절대 사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 가격에 사서 마실 바에는 몇 시간 걸리지도 않는데 그냥 참고 말지.


베니스에 도착했어요. 온 세상이 하얀 세상이었어요. 정말 눈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어요. 뉴스의 폭설이 이 정도였구나. 비행기가 계속 미루어졌던 이유도 바로 이 망할 눈 때문이었구나.


이제 짐을 찾을 시간. 그런데 짐이 안 나왔어요. 두어 개 나오더니 갑자기 컨베이어 벨트가 작동을 멈추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작동하지 않았어요. 이게 작동하지 않으니 당연히 짐이 나올 리 없었어요.

"아놔...우리나라면 저거 손으로라도 꺼내서 벨트에 올려놓는데 여긴 완전 최악이네."

화가 나는데 목까지 말라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셨어요. 다행히 몰타와 이탈리아는 유로를 쓰는 지역이라 환전할 필요는 없었어요. 만약 여기가 유로존이 아니었다면? 화가 나는데 현지화 없어서 두 배로 화가 났을 거에요. 음료수를 마시며 가만히 기다렸어요. 그러나 뭐가 문제인지 짐은 계속 나오지 않았어요.


결국 짐 찾는데 30분 넘게 걸렸어요. 이제 시각은 밤 11시. 짐을 찾아 공항에서 나오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 공항 안을 헤매고 있는데 어떤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왔어요.  

"라이언에어 타고 오셨어요?"

"예."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은 우리를 버스에 태웠어요.

"늦었다고 숙소에 집어넣어주나?"

버스 안은 만원.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았어요. 눈이 무섭게 내리고 있었어요. 그래도 우리를 숙소에 집어넣어 주다니 저가항공도 서비스 나름 괜찮은데?


꿈이 야무졌어요. 버스는 다른 공항 앞에 서더니 모두 내리라고 했어요. 그제서야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일어났던 것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우리가 내려야 하는 공항은 베니스의 트레비소 (Treviso) 공항. 그러나 폭설이 내리는 관계로 베니스에 있는 다른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고, 버스로 우리를 트레비소 공항으로 이동시켜 준 것이었어요.


시계를 보았어요. 이미 자정이 넘었어요.

"어쩌지? 공항에서 노숙해야 하나?"

지금 숙소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들어가서 몸이나 좀 녹이고 샤워하고 잠깐 쉬다가 바로 공항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잠을 잘 시간조차 없었어요. 몇몇은 이미 공항에서 노숙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우리도 노숙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지만 너무 추워서 도저히 노숙을 할 수 없었어요. 난방을 안 틀어놓아서인지 너무 추워서 난방 효과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난방비를 절약하려고 정말 최소한의 난방만 틀어놓는 것인지 안이나 밖이나 기온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추워서 도저히 못 자겠다. 어쩌냐?"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너무 늦은 시각이다보니 택시조차 한 대도 없었어요. 그때 동양인 남성이 동양인 여성의 짐을 들어 자기 차에 실는 모습이 보였어요. 친구가 다가가 몇 마디 했어요.

"야, 와! 베니스 시내까지 태워준대!"


그 동양인 커플은 중국인 커플이었어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친구가 상대가 중국인임을 알아차리고 중국어로 이야기하자 그 둘은 우리가 중국인인줄 알고 차로 시내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한 것이었어요.

'괜찮은 중국인도 있구나...'

유럽에서 중국인의 도움을 받다니...이것은 정말 믿기지 않는 기적이었어요.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중국인' 때문에 피곤한 일이 꼭 한 번은 있었어요. '칭 쳉 총', '차이니즈', '쉬누아'라고 놀리는 것은 그냥 당연한 일이고 국경심사도 까다롭게 하는 것도 당연한 일. 첫 해외여행에서는 모로코-스페인 국경에서 중국인 밀입국자 때문에 모로코 출국심사대에서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어야 했어요. 항상 제 여행에서 부정적 요소로만 작용하던 '중국인'이 처음으로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어요.


이 중국인 커플은 우리를 베니스 기차역 앞까지 데려다주려 했지만 저는 알고 있었어요. 자동차로 베니스 기차역에 갈 방법이 없어요. 다리 하나만 건너면 베니스 기차역인데 문제는 이 다리를 자동차로 못 지나가요. 만약 있다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크게 돌아가야 해요. 친구에게 절대 자동차로 베니스 기차역까지 갈 수 없다고 말해 주었어요. 친구가 중국어로 이것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꼭 기차역 앞에 내려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같은 자리를 몇 바퀴 돌다가 베니스 버스 정류장 앞에 내려주었어요.


친구의 뛰어난 중국어 실력과 천운이 더해져 가까스로 베니스 기차역까지 왔어요. 일단 베니스 기차역에 들어가 보려고 했어요. 사실 베니스역도 밤을 지새기엔 매우 부적합한 장소였어요. 대합실과 타는 곳이 다른 층이 아니라 한 층에 다 있어서 바깥의 찬 바람이 슝슝 들어오는 구조에요. 그래도 일단 밖에서 벌벌 떠는 것보다는 안에 앉아서 조금이라도 쉬는 것이 나을 것 같았어요. 이미 1시가 넘었어요. 이제 숙소 들어가서 쉬기는 아예 글렀어요. 들어가서 4~5시간 후에는 바로 나와야 했어요. 왜냐하면 베니스를 나누어서 보기로 했거든요. 이날 베니스를 대충 둘러보고 돌아올 때 베니스를 또 보는 것을 베니스 여행 계획을 짰어요. 7시면 해가 뜰테고, 그러면 돌아다니면서 베니스를 볼 수 있어요. 베니스 일정을 빼고 쉴 수도 있지만 비행기 시각에 맞추어 공항에 가려면 늦어도 11시에는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야 했어요.


그러나 행운은 한 번 뿐. 역시 나는 로또를 해서는 안 되나봐. 연이은 행운이나 대박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요. 모처럼 운좋게 일이 잘 풀린다 싶더니 기차역은 문이 잠겨 있었어요.


베니스 길이라면 자신 있다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두 번 와 보았기 때문에 중요한 곳 가는 길은 잘 알고 있어요. 더욱이 베니스는 여행책자의 지도를 믿을 게 못되고 도시 이정표도 믿을 게 못 되요. 워낙 다리와 골목이 많아서 지도에 다 표시되어 있지도 않은데다 이정표대로 따라가면 이상하게 엉뚱한 곳으로 가요. 더 열받게 하는 것은 베니스가 운하의 도시라는 것. 이게 왜 사람 머리 끝까지 열받게 하냐 하면 운하 맞은 편에 가려고 하는 곳이 있어도 갈 수가 없어요. 멀리뛰기로 건너갈만큼 좁지는 않아요. 그래서 맞은편으로 가려면 다리를 찾아가야 하는데 다리가 엉뚱한 곳에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즉, 맞은편 - 불과 5m 앞이 목적지인데 다리가 없어서 못 가고 한참 뱅글뱅글 도는 경우도 있다는 거에요.


"너무 추워!"

눈은 보통 발목까지 쌓여 있었어요.깊은 곳은 신발이 푹 빠졌어요. 노숙을 할래야 할 수 없는 추위였어요. 생존의 문제였어요.

"숙소나 찾아보자."

숙소를 찾으러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50유로 정도면 그냥 들어가기로 했어요. 여행 시작부터 피로와 감기로 고생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50유로면 꽤 큰 돈이지만 감기 들면 50유로 넘게 돈이 들어요. 그냥 예방접종 맞는 셈 치고 50유로 정도면 무조건 들어가기로 했어요.


베니스를 돌아다니는데 호텔 외에는 숙소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몸도 녹이고 가격도 물어볼 겸 해서 호텔에 일단 들어갔어요. 다행히 우리와 비슷한 시각에 중국인 단체 여행객이 호텔로 들어왔어요. 호텔 프런트는 매우 정신없었어요. 덕분에 우리는 일단 조용히 몸을 녹일 수 있었어요.

"이야, 여기 천국이다."

"그러게...이렇게 따뜻한 곳이 있다니!"

중국인들이 호텔 프런트에서 왁자지껄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소리치고 다음날 일정 알려주는 동안 우리는 구석에서 조용히 몸을 녹였어요. 중국인이 다 방으로 들어가자 그제서야 호텔 직원에게 가격을 물어보았어요. 우리는 4시간만 머무르면 된다. 혹시 50유로에 안 되겠지?


"안 돼. 120유로."

그래서 나왔어요. 120유로면 정말로 큰 돈. 이 돈 내고 4시간 몸 좀 녹이고 나올 수는 없었어요. 차라리 밖을 미친듯이 돌아다니면서 가게가 1개라도 열 때까지 버티다가 가게가 한 개라도 열면 거기 들어가서 먹을 거 시키고 최대한 버티고 말지.


다시 나왔어요. 막막했어요. 호텔이 몇 군데 있기는 했지만 전부 가격은 기본 100유로 깔고 시작.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이라면 제가 베니스를 2번 왔었고, 길을 엄청나게 잃어버리고 헤맨 적이 있어서 길은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날도 추운데 길까지 잃어버렸다면 정말 최악의 상황. 참고로 이때 우리는 짐을 다 끌고 다니고 있었어요. 백팩 때문에 등은 안 시려웠어요. 이게 그나마 잘 된 건지 아닌 건지 구분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어요.

"야, 저기 불 켜져 있는데?"

친구가 무언가를 발견했어요. 일단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갔어요. 그곳은 바로 무인 자판기 가게. 가게는 가게인데 자판기밖에 없었어요.

"일단 저기 들어가자!"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당연히 난방 따위는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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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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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여행 첫날부터 엄청 고생하셨네요.

    2012.09.13 13: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이런 게 겨울 여행의 묘미 아닐까요. 정말 날씨가 안 따라주려고 작정하면 제대로 꼬여버리는 거요 ㅎㅎ

      2012.09.14 00:4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