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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쉴까?"

아무리 난방이 없다고 해도 바깥보다는 매우 따뜻했어요. 밖에는 바람도 불고 눈도 내리고 있었어요. 여기는 베니스. 바닷가 동네라서 해풍이 슁슁 불어요. 그 차가운 바닷바람에 눈까지 내리는 끔찍한 바깥. 차가운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확실히 따뜻했어요.

"뭐 하나 먹자."

양심적으로 자판기에서 뭔가 하나 뽑아먹어야겠지? 그래서 고른 것이 가장 가격이 싼 과자였어요. 혹시 주인이 와서 쫓아낼 지도 모르니 과자를 하나하나 세어 가면서 먹었어요. 입에 넣고 녹여가며 재료와 양념의 맛을 하나하나 음미했어요.


친구는 짐에서 옷을 꺼내 껴입었어요. 저는...신발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어요. 양말이 축축하게 젖었어요. 무엇이 문제인지는 몰랐지만 확실히 신발에 문제가 있었어요.

"혹시 그때 그것 때문에 신발 버렸나?"

몰타에서 신발 바닥에 깨진 유리병 조각이 제대로 박혔던 적이 있었어요. 그냥 뽑아내기는 했는데 신발 바닥에 구멍이 났어요.

"에이...설마 그 유리 조각이 신발에 박혔던 것 때문에 신발에 물이 새겠어."

그래도 젖은 양말을 신고 계속 있는 것은 매우 위험했어요. 이 정도 날씨라면 충분히 동상에 걸리고도 남을 날씨였어요. 그래서 염치 불문하고 자판기 뒤로 기어들어가서 양말을 갈아 신었어요. 신발 깔창도 젖어 있어서 축축했지만 그래도 젖은 양말을 그냥 신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어요. 신발 속을 말려야 하는데 마땅히 말릴 방법이 없어서 한 발만 벗어 신발 앞축을 밟고 서 있었어요. 그 자세로 친구와 가끔 입에 과자를 한 알씩 집어넣으며 창 밖을 쳐다보았어요. 눈은 이제 그쳤지만 나갈 엄두는 안 났어요.


"오늘 여기에서 뭐 할 거?"

"산 마르코 대성당 보고 버스 타고 공항 가면 시간 맞을 거야."

정말 대책 없었어요. 이렇게 계속 있자니 누군지는 모르지만 주인에게 미안했어요. 그렇다고 나가자니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시계를 보았어요. 아직 새벽 6시도 되지 않았어요.

"이제 기차역 열었겠지?"

"아마도? 아까 연다고 한 시각은 넘겼잖아."

"그럼 일단 기차역으로 가자."


그래서 기차역으로 돌아갔어요.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어요. 아직 문을 연지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대합실이 한산했어요.

"여기가 아까 거기보다 훨씬 추운데?"

"그래도 어쩌겠냐..."

일단 구조상 추운 베니스 역이었는데 사람들도 없으니 밖이랑 큰 차이가 없었어요. 둘 다 새우처럼 몸을 최대한 오그리고 버텼어요.

"아침 먹을까?"

기차역 안에는 식당이 있었어요. 그래서 식당에 갔어요.

"가격이 너무 비싼데?"

딱 봐도 그다지 먹고 싶은 게 없었는데 가격은 너무 비쌌어요. 그래요. 여기는 물가 비싼 베니스. 프랑스 파리보다야 물가가 싸지만 어쨌든 여기도 물가가 비싼 곳.

"이따 가게 열면 가게에서 아무 거나 사먹자. 여기는 너무 비싸다."


드디어 날이 밝았어요.

"산 마르코 성당이나 가자."

짐을 끌고 기차역에서 나왔어요. 산 마르코 성당 가는 길이라면 정말 잘 알고 있었어요. 한 두 번 그거 찾으러 헤맸어야지. 절대 잊을 수 없는 길. 표지판따위는 다 무시해버리는 게 나아요. 표지판대로 가면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 딱 좋아요. 기차역에서 산 마르코 광장을 가는 길은 복잡한 베니스의 거리에 비해 의외로 단순하고 쉬워요. 일단 기차역 앞 길을 쭉 가요. 모든 표지판 무시하고 쭉 가다 보면 삼거리가 나와요.



이 탑까지 쭉 걸어 내려온 후 오른쪽으로 꺾어서 또 쭉 걸어가면 



이렇게 산 마르코 광장이 나와요. 베니스에서 시간이 없을 때 산 마르코 광장 하나만 보고 올 계획이라면 매우 유용한 길. 전혀 헤맬 필요가 없어요. 길을 잘 찾는 친구도 베니스에서는 혀를 내둘렀어요. 왜냐하면 여기 길이 매우 복잡하고 사람 약올리는 것을 밤에 헤매면서 보았거든요.



역시 바다의 힘. 여기는 눈이 거의 안 쌓여 있었어요. 눈도 그쳤어요. 단, 바닷바람 때문에 기차역 앞보다 더 추웠어요.



하지만 여기도 전날 폭설의 흔적이 남아 있었어요.


산 마르코 대성당을 들어갈까 했지만 짐도 많고 시간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들어가기로 했어요. 이번 여행의 시작은 베니스로 시작해서 베니스로 끝나요. 아직 세부 일정을 다 짜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마지막에는 베니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몰타로 다시 돌아가야 했어요.



이렇게 춥고 엉망진창인 날에 곤돌라를 타고 베니스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겠지?



보기만 해도 춥게 만드는 고드름. 바람이 세서 파도가 자꾸 넘어왔어요.


사진도 찍고 놀고 싶었지만 일단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가장 큰 문제는 바람. 옷을 껴입어도 옷 속으로 찬 바람이 마구 들어왔어요. 거기에 시간도 많지 않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도 없었어요.

"공항이나 가자. 여기는 도저히 추워서 못 있겠다."

"그래. 지금쯤이면 공항도 난방 틀어놓았겠지."


기차역으로 돌아와 간단히 빵 하나씩 사 먹고 트레비소 공항행 버스를 탔어요.



다시 시작된 폭설.



공항 안과 밖은 천당과 지옥. 생각만큼 공항이 따뜻하지는 않았어요. 아까 새벽보다야 따뜻했지만 춥기는 매한가지. 우리나라의 한겨울에 후끈후끈 따뜻한 공항과는 천지차이. 따뜻하게 몸을 녹이고 싶었지만 몸을 녹일 곳이 없었어요. 여기 공항은 겨울 외투를 입고 버틸만한 온도.


베니스발 티라나행 비행기 수속 시간이 다가왔어요. 오늘 저녁, 알바니아 티라나에서 이 고생을 전부 보상받을테다! 저렴하고 맛있는 피자! 친절한 사람들! 기다려라, 알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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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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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네치아도 겨울에는 을씨년스럽군요. 고드름이 얼었다뇨!
    이탈리아도 겨울에는 꽤 추운가봐요.ㅎㅎ

    2012.01.30 00: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