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03 이탈리아 베니스

좀좀이 2012. 1. 28.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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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탈 비행기는 오후 2시 출발. 그래서 아침, 점심 합쳐서 빵 1개 먹고 공항에 왔어요.


티라나행 지연.


"뭐라고!"

베니스발 티라나행 비행기가 2시간 지연이라고 전광판에 떴어요. 공항에 12시에 도착해 비행기 타기만을 기다리던 우리에겐 정말 힘빠지는 소식.


사진 재활용.


창밖을 보니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리고 있었어요. 도무지 그칠 기색이 아니었어요.

"설마 오늘 결항되나?"

숙소를 예약하고 다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결항된다고 해서 일정이 크게 꼬이는 것은 없었어요. 하지만 공항에서 하룻밤 또 노숙을 해야 한다면 정말 돌아버릴 일. 날이라도 따뜻하면 어떻게 버틸 수 있어요. 하지만 전날 이 공항이 얼마나 추운지 경험했기 때문에 그냥 눈 앞이 깜깜했어요. 눈이 어느 정도로 많이 내리고 있었냐하면 눈 쌓이는 것이 보일 정도였어요. 정말 어마어마한 눈이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었어요. 가뜩이나 여기 공항은 시내에서 멀고, 버스비도 비싸요. 만약 결항되면 이래저래 극도로 피곤한 밤을 또 보내야 했어요.


"설마 결항은 안 되겠지."

친구가 배고프다며 과자를 사왔어요.

"그거 뭐냐?"

"뭔가 희안한 게 있길래 사왔어."

친구는 봉지를 뜯어서 과자를 입에 집어넣었어요.

"아 시박!"

"왜?"

"야, 이거 먹지 마. 맛 완전 이상해."


참고로 이 친구가 어떤 친구냐 하면

이 악마의 과자도 맛있게 먹는 녀석이에요. 몰타 와서 한국인들이 절대 소금&식초 맛 프링글스는 사먹지 말라고 했는데 호기심에 제 돈 주고 사 먹었어요. 이 정도는 뭐 서양 문화에 대한 호기심 차원으로 이해 가능. 방에서 저것을 뜯자마자 올라오는 강력한 빙초산 냄새. 저는 딱 한 개 입에 넣자마자 창문 열고 환기시킨 후 방에서 나갔어요. 그런데 맛있다고 버리지 않고 다 먹은 친구였어요. 물론 그 후 이것을 또 사먹지는 않았지만요. 이 소금&식초 맛 프링글스도 맛있다고 잘 먹던 녀석이 도저히 못 먹겠다고 과자를 버린 것. 대체 얼마나 지옥의 맛이길래?


"아우..."

바로 욕이 올라왔어요. 바로 쓰레기통 행.


이 과자 덕분에 식욕은 뚝 떨어졌어요.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공항. 둘이서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다 꾸벅꾸벅 졸다 하면서 어떻게 2시간을 버텼어요.


베니스발 티라나행 비행기 2시간 지연


"아...ㅁ;ㅏㅣ얼;ㅁㅇ냐러"

욕 나오는 순간. 수속이 뜨기를 기다리며 전광판을 바라보는데 추가로 2시간 지연이 떴어요. 어떻게 2시간을 버텼는데 정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어요. 한숨만 푹푹 내쉬었어요. 알바니아...육로로 들어가는 것도 힘들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항공로. 이건 큰 고생이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비행기 출발 시간 지연. 정말 들어가기 어려운 나라, 알바니아. 둘이서 잡담할 것도 없었어요. 잡담거리는 이미 첫 번째 지연에서 다 떨어졌어요. 무언가 사서 먹는 것도 싫었어요. 과자의 충격으로 인해 여기에서는 절대 아무 것도 안 사먹겠다고 결심했어요.


정신줄 놓고 멍하니 앉아있었어요.


저녁 6시. 드디어 수속이 떴어요. 공항에서 6시간 버텼어요. 저도, 친구도 아무 말 없었어요. 피로와 짜증이 극에 달했지만 그래도 비행기가 결항되지 않은 것에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오후 6시가 되어서도 눈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어요.

"저 망할 악마의 똥가루!"

군대에서 눈을 싫어했던 것 만큼 창밖에 내리는 눈이 보기 싫었어요. 눈이 여행 초장부터 제대로 망쳐놓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무표정한 사람들. 저도, 친구도, 저 사람들도 모두 몇 번씩 비행기 언제 뜨냐고 공항에 물어보았어요. 그때마다 '1시간 뒤'라고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공항 도착한지 7시간 반 지나서야 비행기에 탑승. 모두 지쳤어요.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티라나행 비행기에 동양인이라고는 저와 친구 - 오직 둘 뿐이었어요. 사람들이 나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했으나 무반응. 몇몇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았고 우리를 특별히 배려해주려는 것이 느껴졌어요.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탔어요.

"이제 알바니아구나!"

짐을 짐칸에 우겨넣느라 시끄러운 기내. 뭐라고 떠들어대는데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이탈리아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언어. 물론 저는 이탈리아어를 전혀 몰라요. 아는 것이라고는 '쨔오' 정도에요. 하지만 몰타 있을 때 이탈리아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들으면 대충 '얘네들 이탈리아어 하는 구나'라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전혀 다른 말. 왁자지껄한 기내. 드디어 알바니아구나!


이번 여행에서 동선을 이상하게 꼬아가면서 알바니아를 집어넣은 이유는 알바니아만큼은 정말 다시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알바니아는 2009년 여행 (7박 35일편) 에서 2번 갔어요. 발칸반도를 돌아다니며 가장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알바니아였어요. 저렴한 물가와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직 관광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나라!


제 고향은 제주도에요. 우리나라에서 관광으로 매우 유명한 지역. 어떻게 관광지로 개발되는지 많이 보아 왔어요. 동네 주민들 물놀이 하던 계곡이 관광지로 개발이 되고 조용한 시골길에 화려한 가게들이 들어서는 등, 인위적인 개발로 인해 원래의 맛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해서 관광지로 개발된 곳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오히려 개발되지 않은 조용한 마을을 보는 것이 더 좋아요. 알바니아는 바로 이런 저의 욕구를 완벽히 충족시켜주는 나라였어요.


더욱이 지로카스트라는 가 보지 못했어요. 알바니아 사람들은 알바니아에서 어느 곳이 가장 아름답냐고 하면 베라트를 추천해요. 베라트는 알바니아 동전에도 나오는 도시. 하지만 저는 지로카스트라 만큼은 꼭 가보고 싶었어요. 지로카스트라는 돌을 쌓아 만든 지붕이 유명한 곳. 그리고 그 유명한 엔베르 호자와 이스마일 카다레의 고향. 부서진 4월과 꿈의 궁전을 읽고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에 푹 빠졌어요. 그 이스마일 카다레의 고향이 바로 지로카스트라. 불가리아에 벨리코 터르노보가 있다면 알바니아에는 지로카스트라가 있어요. 여기를 못 간 것이 계속 마음에 남아 이번에 알바니아에 가기로 결심한 것이었어요.


비행기가 이륙했어요. 알바니아, 내가 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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