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45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용다리 Zmajski most

좀좀이 2012. 1. 16. 19:52
728x90

성에서 내려와 다시 시내를 향해 걸어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어요. 아무리 도시가 작아도 그렇지, 여기는 엄연한 한 나라의 수도에요. 그런데 벌써 성까지 다 보았어요. 성도 크지도 않았어요.


어쨌든 여기를 와서 발칸 유럽 국가는 전부 간 것이 되었어요. 아까 성에서 본 성당에 간 후,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고 점심을 먹기로 했어요.



류블라냐 관광을 잘 하는 방법 - 첫 번째, 절대 그 어떤 기대나 상상도 하지 말 것.


정말 기도에 집중 잘 하게 생긴 교회였어요. 너무 휑해서 아직도 공사중인 교회인줄 알았어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사바 교회가 이렇게 생겼다면 이해를 해요. 그 교회야 겉만 완성해놓은 교회이니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사바교회보다도 더 휑하고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이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설명이 불가능했어요.



길 위의 집, 새장 속 해골과 더불어서 류블라냐에서 정말 인상 깊었던 것은 이 표지판이었어요. 솔직히 애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는데 차로 들이박아 버리는 일은 거의 없죠. 이건 진짜 미친놈들이나 하는 거고, 이런 일이 일어나면 뉴스에 대대적으로 떠요. 솔직히 학교 앞에서는 애들이 갑자기 뛰쳐나오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잘 나요. 애들이 얌전히 걸어가는 표지판보다 이렇게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훨씬 더 사실적이에요. 저 담장을 뚫어버리고 뛰어나오는 아이들...'리얼리티'가 살아있어요.



시내 중심으로 추정되는 삼다리를 향해 다시 걸었어요. 하늘만 맑다면 정말 다니기 좋은 날이었을텐데 비가 당장 쏟아지기 시작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하늘이었어요.



도시 곳곳에 용 모양을 장식해 놓았어요. 그러고보니 류블라냐의 명물 '용다리'를 못 봤다는 게 떠올랐어요. 지도를 보니 용다리는 왠지 한참 가야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점심을 먹은 후에 보러 가기로 했어요. 도시 곳곳에 용 모양을 장식해 놓았기 때문에 용다리에 대한 기대는 정말 컸어요.


'진짜 용다리는 볼만하고 멋있겠지?'


류블라냐도 아무 생각 없이 좋게 생각하며 본다면 볼만은 해요. 하지만 지금까지 봐 온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지 않을래야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머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비교하며 보게 되었어요.


이때까지 최악의 도시라면 단연코 부쿠레슈티와 프리슈티나에요. 그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뭔가 특이한 건물도 몇 개 스쳐가며 보았고, 언어도 너무 달랐기 때문에 뭔가 확실한 느낌이 있었어요. 프리슈티나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도시였어요. 하지만 그 싸한 느낌이 너무 컸어요. 특별히 공포나 위험을 느낀 것은 없었지만 하여간 뭔가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어떤 느낌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원인은 아마 전쟁과 실업이었겠죠.


최악의 도시였던 프리슈티나조차 무언가 확실한 느낌이 있었어요. 하지만 여기는 너무 밋밋했어요. 힘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너무나 독특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깨끗한 거리' 외에는 마땅히 특징이라 봐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어요. 그나마도 길이 전날 내린 비 때문에 젖어 있어서 길바닥은 깨끗하지 않았어요.



들어가보려고 했지만 문이 잠겨 있었어요.



지도를 보며 류블라냐를 돌아다니는데 도시가 워낙 작다 보니 자꾸 길을 놓쳤어요. 잠깐만 정신 다른 곳에 팔면 꺾어야할 곳에서 꺾지 않고 휙 지나쳐버리기 일쑤였어요. 지나치고 나서 뭔가 지도랑 길이 안 맞아 현재 위치를 찾아보면 그제서야 '아...아까 그 골목에서 꺾었어야 했구나!' 하면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일쑤였어요. 다른 도시를 돌아다닐 때처럼 신나게 걷다가는 지도에 표시된 것들을 휙휙 지나치기 딱 좋을 정도로 작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도시가 하도 작다보니 원래 오후에 보기로 했던 곳마저 모두 오전에 다 봐 버렸어요. 그래서 일단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샀어요. 우표를 산 후 서점에 갔어요. 도시는 엄청 작은데 서점은 의외로 다른 발칸 국가에서 갔던 서점들보다 컸어요. 서점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슬로베이아어판과 포켓 슬로베니아어-영어 사전을 구입한 후 점심을 먹으러 맥도날드에 갔어요.


맥도날드는 절대 싸지 않았어요. 역시 유로의 힘이었어요. 그래도 거리에 보이는 레스토랑의 가격표보다는 가격이 저렴했어요. 그래서 그냥 먹었어요.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라냐에서 먹는 맥도날드 햄버거 맛은 한국 햄버거랑 큰 차이 없었어요. 햄버거를 먹고 맥도날드 화장실에 갔어요.


- 영수증에 있는 번호를 누르셔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뭐 이런 화장실이 다 있어? 진짜 유로존은 인심 야박하구만!"


영수증을 가지러 다시 자리로 돌아갔어요. 후배에게 영수증을 달라고 했어요. 후배는 왜 영수증을 달라고 하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래서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영수증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영수증을 가지고 다시 화장실로 갔어요. 영수증에 나와 있는 번호대로 번호를 눌렀어요.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았어요. 몇 번을 해도 문이 열리지 않았어요.


"분명 맞게 눌렀는데..."


계속 눌러보았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어요. 결국 지나가는 직원을 불러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겨우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어요.


화장실에서 나와 후배에게 화장실 다녀오라고 하고 짐을 지켰어요. 후배가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짐을 챙기고 드디어 대망의 용다리를 보러 나왔어요.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예."


햄버거만 먹으니 뭔가 아쉬웠어요. 다른 발칸 유럽에서는 비록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적은 거의 없지만 정말 잘 챙겨먹고 이것 저것 거리 음식도 많이 사먹었어요. 그러나 여기는 유로존. 물가 차이가 확실히 있었어요. 아침부터 가격만 보고 '이런 살인적인 물가!'라고 외치며 기겁하며 아무 것도 사먹지 않고 있었어요. 이제 류블라냐 관광은 거의 다 했고, 점심도 먹었어요. 적당히 시간 때우는 일만 남았기 때문에 아무리 물가가 비싸다고 해도 아이스크림 정도는 부담 없이 사먹을 수 있었어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샀어요. 가격은 1스쿱 콘이 1유로였어요. 정말 알바니아에 비하면 너무 살인적인 물가.


"용다리는 여기에서 조금 많이 걸어가야겠는데요?"


...아이스크림 반도 못 먹어서 용다리 앞에 도착했어요.



너 금 랑 는 지?


늘 고 냐?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을 해도 뻥을 쳐도 심하지만 않으면 용서가 되는 날이에요.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이스크림 반도 못 먹어서 도착한 것까지야 이해해요. 여기가 워낙 작은 도시인데다 제가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먹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이건 아니었어요.



좀좀이 : "야, 진짜 용다리 어디 있냐? 너 같은 짝퉁 말고 진짜."

다리 : "제가 진짜인데요."

좀좀이 : "아놔...장난치지 말고. 만우절이라고 뻥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같은 뻥 계속 칠래?"

다리 : "진짜 뻥 아니에요."


이건 아니잖아!!!!!


류블라냐에 울려퍼지는 좀좀이의 절규.


진짜 어이가 없었어요. 도시에 용 장식을 많이 해 놓아서 용다리가 진짜 대단한 다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 보니 그냥 할 말이 없었어요. 만우절이라고 뻥치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이건 청계천에 있는 무수히 많은 다리들과 비교할 수 없었어요. 그 다리들과 이 다리를 비교한다는 것은 그 다리들에 대한 모욕이었어요. 제가 살던 집 옆에 내창이 있는데 그 내창 위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었어요. 진짜 그 다리와 비교해야 용호상박, 막상막하의 경쟁이 될 수준이었어요. 청계천 다리하고는...'감히 청계천 다리에게!'라는 표현이 맞았어요.


정말 하도 어이가 없어서 분노의 사진 찍기를 했어요.



용 조각만 어이없게 만드는 게 아니에요. 다리 자체가 엄청나게 좁고 짧아요. 이건 그냥 동네 하천 위에 지어놓은 다리 수준이에요.



보이시나요? 용 조각 한 개가 사람 키 정도 해요. 아니, 사람 키보다 작을 수도 있어요. 이게 용인지 도마뱀에 날개 달아놓은 것인지 햇갈릴 정도에요. 차라리 동물원에 있는 목도리 도마뱀이 더 무섭겠네요. 이 정도 용이라면 굳이 전설 속 용사의 장비를 갖출 필요가 전혀 없어 보였어요. 이런 거 잡으려고 용사의 장비를 갖추는 건 말 그대로 우도할계. 적당히 몽둥이 하나 들고 가면 충분히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게 대체 왜 유명한 다리인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삼다리도 정말 작은 다리 3개로 된 다리였지만 그것은 그래도 나름 괜찮았어요. 3개 다리가 한 지점에서 만난다는 것 때문에 한 번 쯤 그 위를 걸으며 한붓 그리기를 해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었어요.



'1848'과 '1888'이 적혀 있었어요. 그래도 용서가 안 되요. 이건 모스타르 다리 위의 돌멩이와 비교할 수 없어요. 진짜 이 다리 사진 찍는다고 돈까지 받았다면 정말 너무 화가 났을 거에요.


용다리를 건넜어요. 이제 갈 곳이 정말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 곳이나 마구 걷기 시작했어요.



시장이 나왔어요. 뒤에 아까 갔던 성도 보였어요.



무언가 너무 한산했어요. 무조건 날씨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어요. 이 시장은 전혀 발칸 유럽의 시장 같지 않았어요. 시끄러움도 없었고 북적임도 없었고 너무 깔끔했어요.


"이거 정말 귀엽다!"



정말 너무 잘 만든 닭과 병아리였어요. 류블라냐는 확실히 작은 것들이 예뻤어요. 큰 것을 보려고 들면 무엇을 보든 후회하게 되는 도시.



길을 걷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아까 산 우표를 다시 구경하려고 찾았어요.


"우표 어디 갔지?"


아무리 뒤져도 우표가 보이지 않았어요. 정말 주머니를 다 뒤져보고 카메라 가방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우표는 없었어요.


"우표 어디에 두었지?"


이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이네요. 이번 여행하며 우표를 사서 모은 국가 중 단 한 나라도 빠짐없이 전부 한 번씩은 우표를 잃어버렸어요. 체코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며 우표를 한 번 다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겨우 다시 사고 있었는데 슬로베니아에서 산 우표만 사라졌어요.


다시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고 거리를 걸었어요.



진짜 남는 것은 시간이고 할 것은 너무나 없었어요.



역시나 문이 잠겨 있는 교회.



아까 다리가 용다리라면 이것은 삼각뿔 다리에요.



정말 할 일이 없어서 걷다가 왠지 뭔가 있어 보이는 교회라 사진을 찍었어요.



역시나 문은 굳게 걸어잠겨 있었어요. 아마 예배 시간에만 문을 열어주나 봐요.



비록 날이 우중충하고 도시가 크게 볼 것은 없었지만 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했어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사과를 씻고 있는데 왜 사과를 씻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설마 저 사과는 아침에 자판기에서 뽑았던 그 반은 썩은 사과는 아니겠죠.


거리를 돌아다니다 갑자기 류블라냐에서 유레일 셀렉트 3국을 찍으면 프랑스 파리까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급히 기차역으로 갔어요.


"여기에서는 유레일 패스 못 사요."


류블라냐 기차역에서는 유레일 셀렉트 3국 표를 살 수 없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베네치아에서는 살 수 있을 건가? 만약 유레일 셀렉트 3국을 구할 수만 있다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을 할 생각이었어요. 지난 여행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못 갔기 때문에 바르셀로나도 가고 후배에게 알함브라도 보여주면 남은 일정을 매우 알차게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급히 버스 터미널로 달려가 수수료를 물고 표를 환불받아 베니스행 기차표를 샀어요.


기차표를 산 후 저녁을 먹으러 다시 시내로 나왔어요. 대충 저녁을 먹었는데 역시나 유로존이라 나름 저렴하게 먹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저렴하지가 않았어요. 저녁을 먹은 후, 대충 돌아다니다 기차역으로 되돌아갔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