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를 구입하고 버스 터미널에 짐을 맡긴 후 점심을 먹으러 다시 구시가지로 돌아왔어요. 간단히 점심을 먹고 사라예보의 공원에 가기로 했어요.
트램 타러 가는 길에 본 유고 연방군 및 세르비아 민병대의 사라예보 포위도에요. 이때 사라예보 시민들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공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땅굴 때문이었어요. 유엔이 공항에 보급품을 내려놓으면 땅굴로 사라예보 시내로 보급품을 운반, 도시에 물자를 공급해서 버텼대요.
이것은 유고 내전 지도에요. 내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는 단연코 보스니아, 코소보에요. 크로아티아에서도 많은 전투가 일어났지만 보스니아는 그냥 전국이 전쟁터로 나와 있어요. 유고 내전 중 유일하게 전쟁이 없었던 곳은 마케도니아 밖에 없어요. 여기는 전쟁 없이 조용히 독립한 유일한 국가에요. 하지만 여기는 코소보 전쟁으로 알바니아계가 엄청나게 유입되면서 알바니아인과 마케도니아인 간의 갈등이 있었대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피해는 전부 나토의 폭격 때문이에요. 이 두 국가에서 나토 공습을 제외하면 전투는 발생하지 않았어요.
점심을 먹고 드디어 공원에 가기 위해 라틴 다리 트램 정류장으로 갔어요. 지난번에는 무임승차를 했지만 이번에는 왠지 표를 사야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표를 사고 3번 트램을 탔어요. 이때가 오후 3시.
트램에서 현지인들에게 공원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나 모두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어요. 심지어는 영어를 아는 사람들조차도 공원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자 무슨 공원이냐고 되물어봤어요. 그래서 트램 종점 근처 공원이라고 했는데 모두 고개만 갸웃거렸어요.
"아까 산 엽서 줘봐요."
공원 이름은 몰랐어요. 그래서 아까 엽서를 모으는 후배에게 공원이 그려진 엽서를 사 주었어요. 안 되는 외국어로 물어보는 것보다 엽서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어요.
"엽서 짐 속에 넣었는데요."
후배는 맡긴 짐 속에 엽서가 들어있다고 했어요. 잠깐만...엽서 사서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길 물어보자고 한 건 그쪽 아이디어였잖아? 왜 하필 오늘...가장 엽서가 필요한 상황에서 엽서를 짐에 넣고 온 건데...이제 믿을 것이라고는 '3번 트램 종점에서 택시 타고 1km 들어가면 된다는 정보 뿐이었어요.
오후 4시. 트램이 종점에 도착했어요. 어쨌든 종점에 왔어요. 사람들에게 공원 가는 길을 물어보았어요. 그러나 사람들 모두 모른다고 했어요.
"이 종점이 아닌가?"
엽서가 있으면 간단히 엽서를 보여주면 쉽게 풀릴 문제였는데 엽서가 없으니 어떻게 물어보며 길을 찾을 수도 없었어요. 당장 우리라도 외국인이 서울 와서 무조건 '공원! 공원 어디 있어요?' 라고 물어보면 알려주기 참 막막하잖아요. 그것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어요. 분명 3번 트램 종점에 가면 관광용 마차도 있고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는데 관광 마차는 고사하고 사람들도 별로 없었어요. 보이는 것은 동네 주민들 뿐. 정말 유명한 공원이라면 동네 주민들도 알텐데 동네 주민들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어요.
지금 이 여행기를 쓰면서 대체 그 공원 이름이 무엇인지 검색해서 찾아냈어요. 그때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공원 이름은 브렐로 보스네 (Vrelo Bosne)였어요. 이 이름만 알았더라도 어떻게든 이 공원에 찾아갔을 거에요. 그러나 이름을 몰라서 찾을 방법이 없었어요. 짐에서 엽서만 꺼내서 다시 도전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시간이 늦었어요.
다시 트램 표를 사서 3번 트램에 올라탔어요. 몇 정거장 가지 않아 검표하시는 할머니께서 제게 표를 보여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표를 보여드렸어요. 역시 뭔가 꼭 사야할 것 같더니 그 직감이 맞았어요.
다른 종점이 있나 생각하며 트램 밖을 보았어요. 그런데 라틴 다리를 지나 아까 우리가 갔던 길을 그대로 달려가고 있었어요. 3번 트램은 순환 노선이었어요. 즉 종점은 1개 뿐이었어요.
사라예보는 일방 통행이 엄청나게 많은데 트램 노선 위로 차량도 그냥 막 같이 다니기 때문에 길이 막히면 트램도 덩달아서 늦게 갔어요. 오후 5시. 라틴 다리에서 조금 더 가서 트램에서 내렸어요. 20시 40분 버스를 타러 가기에는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돌아다녔던 시내를 다시 할 일 없이 돌아다니기에는 긴 시간이 남아 있었어요.
"저 언덕 올라가 볼까요? 저 언덕에 뭔가 있는 거 같은데요."
강을 따라 걷다 보니 무언가 큰 언덕이 보였고, 그 위에 요새가 보였어요.
"어제도 언덕 하나 넘어갔다 왔잖아요. 아, 저건 절대 안 가. 절대 안 올라갈 거에요!"
"그러면 택시! 택시 타고 가요."
꼬불꼬불한 길로 한참 올라가야 하는 언덕에 가자고 하자 후배는 단칼에 싫다고 거절했어요. 그래서 제가 택시비를 낼테니 택시타고 가자고 했어요. 후배는 망설였어요.
"그러면 일단 택시 타고 올라가서 내려올 때도 택시 있으면 택시 타고 내려와요."
그제서야 후배는 마지못해 가보자고 했어요.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앞에 보이는 언덕 맨 위로 가달라고 했어요.
"저거 이름 뭐에요?"
"고레에요."
택시 기사는 언덕 위에 가면 '고레'라는 과거 군사 요새가 있다고 했어요. 택시는 꼬불꼬불한 길을 열심히 올라가서 금방 정상 근처에 도착했어요.
택시에서 내려서 내려다 본 사라예보에요.
정상으로 올라가다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어요.
정상 근처에는 알 수 없는 대저택이 하나 있었어요.
"여기에서 라틴 다리까지 다 보이는데요!"
강을 따라가다 보면 가장 멀리 보이는 하얀 다리가 바로 라틴 다리에요. 사라예보 전망 보기에는 정말 좋은 곳이었어요.
산 너머 산 너머 구름 넘어 다시 산 너머였어요.
이쪽도 알고 보면 그냥 평범한 동네였어요.
이제 대저택으로 가는 길.
여기는 깨진 병을 심어놓지는 않았네요.
이것은 전쟁의 흔적인지 아니면 그냥 보수를 하지 않아 부서진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어요.
문패가 달려 있었어요.
더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유리창이 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버려진 주택 같았어요.
사라예보의 모습은 왠지 왼쪽 산에서 오른쪽으로 집들이 밀려 내려오는 모습이었어요.
옆을 보니 요새가 있었어요.
요새로 갔어요. 정말 별 것 없었어요. 다시 사라예보 풍경을 보며 아래로 천천히 걸어내려오기 시작했어요.
언덕에서 끝까지 걸어서 내려왔어요. 내려가는 동안 택시가 없었거든요. 버스 터미널까지 걷기 시작했어요.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날씨가 매우 좋아졌어요.
내가 그렇게 싫었나? 왜 꼭 가려고 하면 날씨가 좋아지지?
버스 터미널에 가서 저녁으로 케밥을 시켰어요.
뭔가 입맛에 안 맞는 고기. 그래도 고기는 먹을만 했어요. 문제는 저 빵. 빵을 기름 잔뜩 발라서 구워 주었어요. 솔직히 그냥 굽기만 한 빵을 주었다면 꽤 괜찮게 먹었을 거에요. 그런데 빵은 기름 범벅이었고 고기는 느끼한데다 무언가 신경 거슬리게 하는 냄새가 나서 다 먹느라 고생했어요.
류블라냐 가는 버스가 출발했어요. 버스는 여러 도시를 거쳐 갔어요. 간간이 불빛이 보이는 창밖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너무나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졌어요.
"여기 어디에요?"
옆 좌석 보스니아인에게 물어보았어요.
"야이체."
공책에 Jaiče 라고 써서 이것 맞냐고 물어보았어요.
"맞아요. 야이체."
정말 야경이 너무 예뻐서 다음에 다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오게 되면 꼭 가 보기로 결심했어요. 만약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다시 가게 된다면 저는 반드시 갈 곳이 두 곳 있어요. 하나는 야이체, 그리고 하나는...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의 브렐로 보스네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