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46 이탈리아 베니스

좀좀이 2012. 1. 1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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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탈 기차는 새벽 2시 반 기차였어요. 류블라냐 밤거리를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역시나 작은 동네. 얼마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계속 제자리만 맴돌고 있었어요.


"우리 기차역으로 돌아가요."


후배가 기차역 대합실에서 앉아서 쉬다가 기차를 타자고 했어요. 날이 어두워진 유럽의 거리는 우리나라처럼 안심하고 돌아다닐 거리는 확실히 아니었기 때문에 무의미하게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짓을 그만하고 기차역으로 가서 쉬기로 했어요.


어두컴컴한 대합실. 잠을 자기에는 너무 불편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어요. 밤이 깊어갈수록 기온도 뚝 떨어져 갔어요. 말이 새벽 2시이지, 기차역에 들어온 시각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긴 시각이었어요.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어요. 가끔 후배와 잡담하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한국인이세요?"


누군가 우리를 향해 한국어로 물어보았어요. 어둠 속에서 말을 건 사람을 쳐다보았어요. 키가 작은 여자였어요.


"예. 한국인인데요."

"반가워요!"


그래서 그 여자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 여자는 여행 중 한국인을 못 보아서 한국인과 너무 이야기하고 싶었는더 우리를 만나서 너무 반갑다고 했고, 자기는 몰타로 간다고 했어요. 우리가 슬로베니아 물가 너무 비싸다고 하자 베니스는 물가가 훨씬 더 비싸다고 했어요.


그 여자와 잡담을 하다보니 시간이 다행히 잘 갔어요. 정말 잡담을 하지 않았다면 암담한 밤이었을 거에요. 잡담을 하다보니 어느새 새벽 2시 반이 되었고 우리는 기차에 올라탔어요. 그 여자는 자기는 곧 내릴 거라고 하며 일반 좌석에 앉았고, 우리는 한참 가야 했기 때문에 객실로 들어가서 의자에 드러누웠어요.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창밖에 물과 건물이 보였어요. 여기가 바로 운하의 도시 베니스구나! 왜 베네치아를 '운하의 도시'라고 하는지 바로 이해가 되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어요. 베니스로 들어가는 기차의 압권은 물 바로 옆을 달릴 때에요. 이 장면은 이제까지 기차를 타고 본 풍경 중 최고의 장면이었어요.


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본 베네치아. 대항해시대2 유저라면 베네치아는 이스탄불, 아테네보다 훨씬 많이 들어본 곳이에요. 그 이유는 바로 해적들이 끌고 다니는 '베네치안 갤리어스' 때문. 이 망할 해적 때문에 로드를 상당히 많이 했어요. 진짜 알 베자스로 플레이할 때 이 해적놈들 때문에 몇 번 로드를 했는지 몰라요. 나중에 금괴 모아오기 미션을 깰 때 항구에서 돈 털려서 다시 로드하는 것도 짜증나는데 그때마다 와서 쓸데없이 플레잉 시간을 늘려주는 나쁜 해적들 때문에 잊을 수가 없어요.


베니스는 관광을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순전히 '파리'를 가기 위한 경유지로 온 것이었어요. 그래서 원래 목적에 맞게 일단 기차표를 알아보았어요.


"유레일 패스는 모르겠고 파리행 기차는 29유로에요."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파리까지 29유로라고 한 거 맞지? 몇 번을 확인했지만 29유로가 맞다고 했어요.


"29유로면 굳이 유레일 셀렉트 3국 살 필요가 없잖아요. 이게 훨씬 싼데요."


그래서 그냥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어요. 일단 밖에 나와 버스 터미널로 갔어요. 베니스발 베오그라드행 버스를 예약하고 나서 기차표를 구입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버스 터미널에서 베오그라드행 버스를 찾을 수 없었어요.


"베오그라드는 기차 타고 들어가야겠네요."


나중에 파리에서 돌아올 때 베오그라드는 그냥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 후, 기차표를 사러 갔어요.


"뭔 소리? 파리까지 29유로짜리 표 없음!"


아까 그 직원이 갑자기 딴 소리를 했어요. 29유로짜리 표는 당연히 없을 뿐더러 파리까지의 기차표는 모두 침대칸이라고 했어요. 분명 아까는 29유로라고 하고서는 이제 와서 다른 소리를 해대니 어이가 없었어요. 솔직히 아까도 뭔가 이상했어요. 베니스에서 파리까지 절대 기차값이 편도 29유로가 나올 수 없었거든요. 당장 거리만 봐도 이 가격이 나올 수 없었어요. 결론은 창구 직원이 아까 헛소리를 해댄 것이었어요.


"우리 그냥 일반 기차표 사서 가죠."


프랑스 파리로 가기 위한 선택권 따위는 없었어요. 어차피 기차는 전부 침대칸이었고, 29유로짜리 표도 없었어요. 파리행 기차표를 구입하고 이번에는 짐을 맡기러 수하물 보관소로 갔어요. 역시나 비싼 가격. 그 여자 말이 맞았어요. 뭐 하나 싼 게 없었어요.



전날 여기도 비가 내렸는지 길이 다 젖어 있었어요.



동상 앞에 놓여 있는 꽃다발들. 개인적으로 이런 장면을 좋아해요.



역시 여기는 운하의 도시!



아무리 봐도 신기한 운하들. 여기가 조금씩 물에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어요. 정말 물에 가라앉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과 땅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곳도 종종 있었어요.



지금까지 봐 왔던 도시들과는 아주 다른 풍경이라 너무나 신기했어요.



일단 산마르코 광장으로 가기로 했어요. 베니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산마르코 광장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표지판을 따라 산마르코 광장을 향해 가기 시작했어요.



"분명 표지판대로 따라온 것 맞는데..."


저희는 분명히 표지판을 보며 길을 잘 따라갔어요. 그러나 확실히 아주 이상한 곳으로 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설마 선진국 이탈리아에서 표지판이 엉망으로 나왔겠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표지판을 따라갔어요.


왜 저걸 못 넘어!


점점 아름답고 신기해 보였던 운하가 사람 짜증나고 미치게 하는 존재로 바뀌어가고 있었어요. '환상의 운하'에서 '환장의 운하'로 이미지가 바뀐지는 이미 오래 되었어요.



저곳도...



저곳도...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요. 다른 도시였으면 10분만 열심히 걸으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 그러나 여기는 그게 안 되었어요. 그 이유는 바로 물!


폭이 1미터라면 그냥 뛰어 넘을텐데 폭 1미터 짜리는 없었어요. 아무리 좁아도 폭이 2미터는 넘었어요. 이 눈 앞의 운하 하나만 건너가면 목적지에 도착할텐데 운하를 건너기 위해서는 일단 다리를 찾아야 했어요. 그런데 다리는 지천에 깔려있는 것이 아니라서 다리를 찾아 한참 길을 헤매야 했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엉뚱한 곳으로 빠지게 되어 있었어요.


대체 산마르코 광장은 어떻게 가라는 거야!


표지판에서 나온 대로 갔더니 전혀 엉뚱한 곳에 도착해 버렸어요. 이건 아무리 봐도 산마르코 광장이 아니었어요. 멀리 산마르코 광장이 보이기는 했지만 다리를 하나 건너가야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 운하 하나만 건너뛰면 바로 산마르코 광장으로 갈 수 있었는데 그 다리를 못 찾아서 헤매고 있었어요.


우리가 외적이냐?!


옛날 외적들이 여기를 침입했다면 정말 여기를 점령하기 힘들었을 거에요. 바로 코 앞에 길이 있는데 운하가 가로막고 있어서 다리를 건너지 못하면 바로 코 앞에 있는 지점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정말 여기는 다리 몇 개 끊어버리면 길 헤매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어요. 아니, 다리가 끊어져 있지도 않은데 길을 헤매기 딱 좋은 곳이었어요.


물의 도시 베니스답게 하늘에서도 물이 넘치네.


이정표대로 따라와서 길을 잃어버린 것도 짜증나고 다리 하나를 못 찾아 맞는 길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열받는데 하늘에서는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 몇 방울 시작부터 아주 씨알이 튼실한 놈들이 떨어졌어요. 지금 땅에 있는 물도 충분히 넘쳐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늘에서도 물이 넘쳐나는 이곳이 바로 물의 도시 베니스...꼭 이렇게까지 물의 도시라고 강조 안해도 되는데 말이죠.


점심 먹을 시간도 지났고 길은 못 찾겠고 비는 떨어져서 일단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비를 피하기로 했어요. 동네 식당을 찾아 다니는데 가격이 전부 10유로를 넘을 뿐만 아니라 몇 곳 있지도 않았어요. 가격만 봐도 다이어트가 될 것 같은 동네였어요. 식당은 전부 세트 메뉴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일단 가격이 제일 만만해 보이는 - 그러나 10유로는 가볍게 넘는 동네 식당으로 들어갔어요.


"세트 하나만 시켜도 되나요?"


우리가 간 곳은 진짜로 동네 식당. 영어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손짓 발짓 해가면서 '세트 하나는 나 혼자 먹기엔 많다'는 것을 최대한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우리가 시킨 것은 스파게티와 스테이크로 구성된 세트였어요. 한 마디로 무슨 코스 비슷한 것이었어요. 저는 후배에게 스테이크를 양보하고 스파게티를 먹기로 했어요.


여기 너무 친절해!


서빙하는 아가씨는 머리에 매우 큰 꽃을 꽂고 있었어요. 전형적인 '광년이 패션'이었어요. 장식용 조화를 꽂은 것도 아니고 진짜 아주 큰 백합을 귀에 꽂고 활짝 웃으며 서빙을 하는데 전혀 '광년이 패션'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귀에 꽃을 꼽는 패션은 정말 소화하기 극악으로 힘든 패션인데 그것을 소화해내다니! 이건 새로운 유럽을 본 기분이었어요.


1인용 점심 코스를 두 명이서 나누어 먹겠다고 하면 식당에서 불쾌해 할만도 한데 여기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어요. 후배가 잠시 손을 씻으러 간 사이 크림 소스 스파게티가 나왔어요.


"치즈 쳐드릴까요?"


식탁에 파마산 치즈 가루가 있어서 제가 알아서 쳐 먹으면 되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오시더니 제게 치즈 가루를 뿌리겠냐고 물어보셨어요. 정확히 표현하자면 '물어보셨을' 거에요. 이탈리아어로 이야기하시는데 뭔 말인지 이해를 당연히 할 수는 없었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충 분위기가 '치즈 가루 쳐 먹으면 더 맛있어' 같았어요. 고개를 끄덕이자 직접 제 스파게티에 치즈 가루를 듬뿍 뿌려주셨어요.


음식 맛도 괜찮았어요. 입에 아주 잘 맞았다고 말은 못해요. '한국화'된 스파게티와는 확실히 다른 맛. 스테이크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그 차이를 뛰어넘는 맛있음이 있었어요. 정말 '이것이 이탈리아 스파게티와 스테이크다!'라고 하는 맛이었어요.


너무 친절한 서비스에 음식 맛도 괜찮아서 계산 후 나오면서 꽃을 머리에 꼽은 아가씨에게 팁으로 1유로를 주었어요. 팁을 받은 아가씨는 진심으로 해맑게 웃으며 너무 좋아했어요. 정말 팁을 준 보람이 느껴질 정도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오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잔인한 현실. 비가 좍좍 퍼붓고 있었어요. 우리나라 장마철 장대비처럼 무섭게 퍼붓고 있었어요. 저는 우산을 챙겨 나오지 않아서 둘이 우산을 같이 써야 했어요. 웬만해서는 후배에게 혼자 쓰고 저는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날씨가 아니었어요.


우산을 쓰고 한참 돌아다니다 어떻게 겨우 산마르코 광장을 찾았어요.


"이게 산마르코 광장인가?"


비가 퍼붓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휙 보고 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쉬운 길이 있다니!


베니스 기차역에서 산마르코 광장까지 아주 쉽게 가는 길을 찾아냈어요. 이 길은 표지판에 나온 길과 전혀 다른 길이었어요. 딱 한 번 방향을 꺾으면 되는 길이었어요. 우리가 점심때까지 계속 미친듯 길을 헤맸던 이유는 바로 기차역에서 나와 처음 만나는 '산마르코 광장' 방향을 나타낸 표지판 때문이었어요. 절대 그 표지판으로 가면 안 되요. 그 표지판대로 가면 100% 길을 잃게 되어 있어요.


비도 내리고 거리에 사람은 많아서 정신이 없는데 한 가지 퍼뜩 떠오른 것이 있었어요.


'여기에서 환전 해야 한다!'


제가 가지고 있던 돈은 미국 달러. 하지만 프랑스에서 쓰는 돈은 유로. 당장 프랑스에서 쓸 유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웬만하면 프랑스 파리 가서 유로로 환전하려고 했지만 당장 내일 아침 쓸 유로도 부족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환전소에 들어갔어요.


"100달러면 56유로에요."

"예?"


중국인이 운영하는 환전소였어요. 환전소 중국인 직원들은 100달러를 환전하면 56유로라고 했어요. 이것들이 지금 관광객한테 장난친다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그 가격은 말도 안 돼요."

"그러면 다른 환전소 가 봐요. 여기만큼 잘 쳐주는 가게 없을 걸요?"

"진짜지?"

"진짜!"


이 미친 놈들, 단체로 약 먹었나? 아무리 달러가 폭락했다고 해도 100달러에 56유로는 말이 안 되는 가격이에요. 더욱이 아침에 기차표 사느라 베니스 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환전을 해서 대충 가격을 알고 있었어요. 버스 터미널 근처 환전소에서는 100달러를 환전하면 수수료를 제외한 실수령액이 69유로였어요.


"저 미친 중국인들, 아주 제대로 돌았구만!"


대체 무슨 깡으로 백주대낮에 저렇게 사기를 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 동네가 원래 관광지이니까 환율이 최악인가 궁금해서 주변 다른 환전소에 들어갔어요. 다른 환전소에서도 그 정도로 후려치지는 않았어요. 뻥을 치고 사기를 치려고 해도 정도껏 쳐야 속죠. 아무리 달러가 폭락했어도 유로와 1:2까지 된 적은 없어요. 이건 이렇게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에요. 더욱이 당시 헝가리, 체코에서는 달러 대 유로가 1.4:1 정도였고 다른 곳에서 아무리 달러 가치를 낮게 봐도 1.5:1 아래로 떨어지는 곳은 없었어요. 2:1 이라는 비율은 아주 미치거나 돈 바꾸어주기 싫다는 것이 아닌 이상 정상적인 인간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는 달러와 유로의 가치 비율이었어요. 이 미친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환전소 바로 근처 환전소에서도 100달러에 65유로 정도 불렀어요. 여담이지만 다음화에 나오는 파리에서는 100달러를 유로로 환전하면 72~74유로를 주었어요. 베니스가 이렇게 짠 이유는 환전소에서 수수료를 떼어가기 때문이에요.


"내가 귀찮아도 그냥 버스 터미널까지 가서 환전하고 만다."


기차역에 도착했어요. 버스터미널과 산마르코 광장은 정 반대 방향. 그래도 다음날 쓸 유로를 환전하기 위해 버스 터미널까지 가서 환전했어요. 여기는 역시나 100달러를 환전하니 수수료 떼고 69유로를 주었어요.



기차역에 돌아오니 날씨가 개기 시작했어요.


저녁은 가격이 가장 싼 식당을 찾아 다니다 보니 아랍인인들이 운영하는 피자 가게에서 먹게 되었어요. 아랍인인 것 같아서 한 번 아랍어로 주문을 해 보았어요.


"아랍어 아세요?"

"예. 할 줄 알아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당신들은요?"

"우리는 이집트 사람이에요."


아랍어를 하자 식당 주인부터 직원까지 이집트인들이 매우 놀라고 재미있어하며 웃고 좋아했어요. 특별히 가격을 깎아주거나 그런 것은 없었어요. 아...물은 잘 주었어요. 맛있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물잔이 비면 바로바로 물을 채워 주었어요.


저녁을 먹고 기차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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