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41 몬테네그로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좀좀이 2012. 1.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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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35분. 울친 구경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자축하며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잠들었어요. 기억난다고 할 게 없어요. 진짜 의자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었어요. 다행히 버스 종점은 포드고리차였어요.


아침 11시 35분.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에 도착했어요. 버스 시각을 보고 경로를 결정해야 했어요. 일단 울친에서 버스시간표는 아래와 같았어요.


울친 -> 두브로브니크 (새벽 05시 20분)

울친 -> 포드고리차 (아침 09시 35분)


두 개의 선택권이 있었는데 울친을 보고 나오기 위해 울친에서 두브로브니크로 바로 가는 것은 포기했어요. 그래서 온 포드고리차. 이제 확실히 결정을 내려야 했어요. 두브로브니크로 들어갈 것인가, 다른 도시로 들어갈 것인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오늘은 반드시 숙소에서 잔다' 였어요. 오늘은 3월 30일. 3월 21일부터 단 한 번도 숙소에서 잠을 자지 않았어요. 벌써 이 야간 이동으로 숙박을 대체한지도 열흘째였어요. 야간 버스 이동만 4일째.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버스 이동 중에는 씻을 기회가 없어요. 진짜 발을 씻고 안 씻고의 차이가 피로 누적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어요. 기차 이동을 하면 어떻게든 발이야 씻겠지만 더 이상의 야간 이동은 정말 무리였어요. 진짜 쓰러질 거 같았어요. 후배 앞이라 정말 아무렇지 않고 쌩쌩한 척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한계를 뛰어넘었어요. 열흘째 쉬지 않고 야간 이동을 해서 쌓인 피로는 이미 제 통제를 벗어났어요. 그 증거가 바로 버스에 타자마자 골아떨어지는 것이었어요. 버스에 타서 의자에 머리가 닿기만 하면 쓰러져 잠들었어요.


"그냥 사라예보 갈까요? 거기는 숙소 어디 있는지 아는데다 유로 쓰니까 힘들게 돌아다닐 필요도 없잖아요."

"그래요. 거기로 가요."


그래서 두브로브니크는 안 가기로 했어요. 무조건 사라예보로 달려가서 일단 잠을 잔 다음에 어떻게 할지 생각하기로 했어요. 두브로브니크에서 내려서 숙소를 찾아다닐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게다가 크로아티아는 유로를 안 쓰고 자국돈 쿠나를 쓰기 때문에 환전 문제도 있었어요. 지난번 호되게 당했기 때문에 거기 가서 똑같은 일을 또 겪으면 아마 돌아버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돌아버리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문제는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하나도 없다는 것. 체력이 되어야 ATM 가서 돈이라도 뽑고 숙소라도 찾을텐데 그럴 힘이 없었어요. 아침에 울친의 언덕을 모든 짐 다 끌고 넘은 것이 결정타였어요.


이제 이동 경로가 확정되었어요. 13시 35분 포드고리차발 사라예보행 버스를 타고 사라예보 가서 잠을 자기로 했어요. 오늘 일정은 오직 사라예보에 가서 간단한 빨래를 하고 박박 씻고 자는 것. 이것 외에는 그 어떤 일정도 집어넣지 않았어요.


버스 터미널 안에 우체국이 있어서 우표를 사고 카페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는 것으로 점심을 때우고 시간을 보내다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가 이번에도 역시나 정말 옆으로 굴러떨어져도 이상하지 않게 생긴 길을 달려갔어요.



정말 경치가 좋았어요. 옆에 가드레일만 있다면 참 좋을텐데 가드레일이 없어서 볼수록 후덜덜한 길이었어요. 앞에 달리고 있는 버스를 보면 이 공포가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버스가 커브를 돌 때 길 옆 바닥을 보면 정말 짜릿한 느낌이 있었어요.



경치 하나는 정말 멋졌어요.


15시. 니시치에 도착했어요.



버스 터미널에서 10분간 정차해서 짐이 없어지는지 볼 겸 내려서 담배를 한 대 태웠어요.



버스에서 본 니시치는 포드고리차랑 별반 다를 게 없었어요.



니시치는 그냥 평범한 도시였어요. 아직까지는 몬테네그로.



역시나 아름다운 몬테네그로. 유고슬라비아 풍경은 보기만 해도 좋았어요. 게다가 버스가 평지를 달려서 아까처럼 조금의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이런 평지에 가드레일 설치해놓지 말고 아까 그런 험한 산길에 가드레일 설치해 놓으란 말이야!


버스는 다시 산 속 깊이 들어갔어요.



정말 옥빛 강물. 댐 때문에 갇혀 있는 물조차 옥빛이었어요. 우리나라는 강물이 파란빛인데 여기는 초록빛이라는 것이 너무 신기했어요.



댐 때문에 물이 많아서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어요.



정말 저 험한 계곡 위로 어떻게 다리를 놓았는지 신기했어요. 터널은 우리나라 터널처럼 잘 뚫은 게 아니라 정말 문경새재처럼 생겼어요.


아름다운 풍경을 감삼하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 풍경 언젠가 본 풍경 같은데...'


언제 이거랑 비슷한 풍경을 보았더라...기억의 왜곡으로 인해 데자뷰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진짜 본 기억이 있었어요.


"이거 보스니아 들어갈 때 보았던 광경인데?"


기억났어요. 이 풍경과 아주 비슷한 풍경을 세르비아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들어갈 때 보았어요. 그떄와 같은 길로 갈 리야 없죠. 이건 국경을 넘는 문제니까요. 하지만 경치가 너무 비슷했어요.


잠시 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스릅스카 공화국 국경에서 입국 심사를 받았어요. 이번에도 역시 버스에서 내려서 국경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었어요. 차장에게 여권을 건네주고 건네받는 것으로 국경심사가 끝났어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입국하자마자 머리를 의자에 기대고 두 눈을 감았어요.



정말 낯익은 풍경이었어요. 이건 비슷한 정도를 뛰어넘어 똑같은 풍경이었어요.



오후 18시 10분. 포차에 도착했어요. 여기는 지난번 세르비아에서 들어올 때에도 들렸던 곳이에요.



버스에서 본 포차에요. 포장마차 아니에요. 도시 이름이 포차에요.



이제야 포차에 왔다는 사실에 한숨만 나왔어요.



버스가 포차에서 나와 사라예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어요. 이번에도 역시나 버스는 연착.


사라예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밤이었어요. 당연히 환전할 방법이 없었어요. 우리는 우리가 전에 머물렀던 호스텔에 가서 방이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호스텔에서는 '당연히' 방이 있다고 했어요. 역시 비수기의 힘이었어요.


방에 짐을 풀고 바로 샤워하러 갔어요. 빨래를 하고 정말 아주 정성스럽고 열심히 온몸을 박박 닦았어요. 가만히 떨어지는 물을 맞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머리도 두 번 박박 감았어요. 이태리 때타올을 안 가져온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몸에 물이 닿을 때마다 그 자리의 피로가 씻겨 내려갔어요.


다 씻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어요.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 했는데 나갈 힘조차 없었어요. 침대에 몸이 닿자마자 근육이 다 풀어져버리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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