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국경심사를 받고 바로 다시 골아떨어졌어요. 깊게 자다 잠시 눈을 떴어요. 버스 안도 밖도 어두컴컴해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었어요. 시계를 보았어요. 포드고리차 도착 시간을 훨씬 넘긴 시각이었어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잠이 덜 깨어서 비틀거리며 운전기사 옆으로 갔어요.
"포드고리차 멀었어요?"
"포드고리차 지나갔어."
"예? 저 포드고리차에서 지나가는데요?"
"포드고리차 지나갔어. 울친에서 내려!"
그제서야 정신이 확 들었어요. 후배를 깨웠어요.
"무슨 일이에요?"
"포드고리차 지나갔대요!"
"예?!"
후배도 당황해하며 잠이 깼어요. 우리 둘은 짐을 가지고 앞좌석으로 옮겼어요. 사람들이 거의 다 내려서 버스는 거의 텅 비어 있었어요.
앞좌석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창밖을 보았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버스의 흔들림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어요. 버스 기사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뻑뻑 태우며 운전하고 있었어요. 오직 버스의 흔들림과 담배 연기만이 저와 놀아주고 있었어요. 승객 하나가 버스 기사 옆에 가더니 담배를 같이 태우기 시작했어요. 딱 거기까지 보고 다시 눈을 감았어요.
버스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에야 잠에서 깨어났어요. 하마터면 울친에서조차 못 내릴 뻔 했어요. 옆에서 쿨쿨 자고 있는 후배를 흔들어 깨워 버스에서 내렸어요.
버스에서 내려서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어요. 터미널이 열려 있기는 했지만 불만 켜져 있을 뿐 아무도 없었어요. 매표소 창구 직원도 없었어요. 벽에는 아름다운 파라솔이 늘어서 있는 해변 사진이 걸려 있었어요. 여기도 나름 유명한 관광지인가 봐요. 그러나 울친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었어요. 일단 사진을 보니 여기는 무조건 바다를 가야 되는 곳이라는 정보는 얻을 수 있었어요.
가방을 끌고 무작정 나왔어요. 거리에는 당연히 가끔 쌩쌩 지나가는 차 외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어디가 바닷가 쪽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곳도 없었어요. 새벽 4시에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유럽에 거의 없어요. 그래서 무작정 방향을 찍어서 걸었어요. 한참 가방을 끌고 가는데 점점 민가가 적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계속 산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빠, 우리 돌아가요. 이따 매표소 열리면 직원에게 물어보고 움직여요."
포드고리차행 첫 버스 타기 전 바다를 보고 올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어그러졌어요. 그래도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엉뚱한 곳에 가서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아 왔던 길을 되돌아갔어요.
버스 터미널 앞까지 왔어요. 그냥 버스 터미널에 들어가자니 뭔가 아쉬워서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갔어요.
테레사 수녀 동상이 있었어요. 설마 여기도 알바니아인들이 몰려 사는 곳인가?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 굳이 건물 앞까지 가지 않아도 병원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어요.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비가 꽤 많이 왔나 봐요. 거리는 물에 젖어 있었어요.
이쪽으로 가도 바다로 가는 것 같지 않아서 다시 돌아가기로 했어요.
모든 것은 밝혀졌다!
왜 아까 테레사 수녀 동상이 서 있었는지 입간판을 보니 알 수 있었어요. 입간판에 적혀 있는 언어는 알바니아어. 여기도 알바니아인들이 몰려 사는 동네였어요.
여담이지만 나중에야 안 사실이 하나 있어요. 몬테네그로에서 울친도 매우 유명한 관광지이기는 한데, 여기는 다른 몬테네그로 도시들과 다른 특징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바로 알바니아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 그래서 알바니아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알바니아인들에 대해 궁금하다면 여기를 가라고 추천하기도 한대요. 그런데 저...알바니아, 코소보는 물론이고 마케도니아까지 갔다왔어요. 잠결에 내릴 곳 놓쳐서 덤으로 보게 된 곳이기는 하지만...
"대체 여기 어디에 바다가 있는 거야? 막 10km 떨어져 있는 거 아니야?"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산 밖에 없었어요. 바다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어요.
더 이상 돌아다니는 것은 무의미하고 체력만 갉아먹는 짓이라고 생각해서 버스 터미널로 돌아갔어요. 다행히 버스 터미널 매표소는 문을 열었어요. 창구 직원에게 포드고리차 첫차가 몇 시에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직원은 아침 9시 35분에 포드고리차행 버스가 있다고 알려 주었어요.
버스 터미널 안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어요. 아침 9시 35분까지 기다리자니 시간은 충분히 남은 것 같았고, 어쨌든 울친까지 왔는데 바다를 보고 가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그러나 분명히 걸어가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버스 터미널에서 자랑하고 있는 울친의 바다를 보고 가고 싶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어요.
의자에 앉아서 쉬다가 담배를 태우러 밖으로 나갔어요. 버스 터미널 앞에 택시가 서 있었어요.
"저거다!"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안으로 들어가 멍하니 앉아있는 후배에게 제안했어요.
"우리 택시 타고 바다 갔다 와요.
"택시요?"
"그래요. 택시 타고 무조건 바다로 가는 거에요. 만약 진짜 멀리 있다 싶으면 바다만 보고 택시로 바로 돌아오면 되잖아요."
"그거 매우 좋은 생각이에요!"
짐을 끌고 밖으로 나갔어요. 담배를 태우며 본 택시 옆에 청년이 서 있었어요. 청년은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하고 있었어요. 상당히 뭔가 짜증난 것 같았어요. 청년이 전화를 끊자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어보았어요.
"당신 이 택시의 기사에요?"
"그래요."
"여기서 바다 멀어요?"
"아니요. 가까워요."
"그러면 바다로 가요."
"잠깐만요."
청년은 조금 기다리라고 하더니 다시 전화를 걸었어요. 뭐라고 말하더니 다시 전화를 끊고 우리에게 5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거리에 택시라고는 이 택시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냥 기다렸어요. 5분이 지났는데도 청년은 택시에 타라는 말을 하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10분쯤 지나서 다른 택시 한 대가 오더니 청년과 뭐라고 대화를 했어요. 청년은 택시 보닛을 열었고, 다른 택시 기사는 자신의 택시 보닛을 열고 트렁크에서 점퍼선을 가져와 양쪽 택시 배터리에 연결했어요. 청년은 점퍼선이 연결된 것을 보자 택시 안에 들어가 시동을 걸기 시작했어요. 왜 청년이 짜증이 잔뜩난 표정으로 전화를 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다른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어요.
청년이 택시에 타라고 했어요.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자 바다로 가자고 했어요. 청년은 우리가 처음 걸었던 길 반대쪽으로 택시를 몰더니 갑자기 급한 언덕길을 기어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이래서 바다를 못 찾았구나!"
높은 언덕 하나를 넘어가야 바다가 나오니 버스 터미널에서 바다가 보일 리가 없었어요. 바다까지는 정말 금방이었어요. 택시 요금은 2.5유로였어요. 택시 요금은 그저 그랬어요.
"와! 바다다!"
진짜 억지로 바다를 봐서 즐거운 시늉을 했어요. 이게 뭐가 아름다워? 물론 이 바다도 아드리아해에요. 두브로브니크의 바다와 같은 바다에요. 하지만 전혀 아름답지 않았어요. 버스 터미널에 있는 사진은 진짜 후보정 떡칠을 해놓은 건지 아니면 진짜 한여름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장면인지 눈 앞의 바다와는 전혀 다른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였어요. 제 고향에서 흔히 보는 바다도 이것보다는 아름다워요. 원래 바다 보면 마음이 답답해져서 바다 보는 걸 매우 싫어하는데 그래도 여기는 바다가 유명하다고 해서 기껏 왔는데 고향 바다만도 못한 바다였어요.
"아놔...진짜...아주 그냥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네!"
구름이 걷히고 해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어요. 그래도 바다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어요. 정말 흔해빠진 평범한 바다였어요.
해안가 뒤쪽은 이렇게 생겼어요.
저 언덕을 넘어가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요. 여기는 바다 보고 이 언덕길 넘어가다가 성에 들려서 성 보면 되는 곳이었어요. 관광하기에 크게 어려운 도시는 아니었어요. 문제는 짐을 끌고 언덕을 넘어야 한다는 것.
"이제 갈까요?"
"히에엑..."
후배는 주위를 둘러보며 택시를 열심히 찾았지만 택시가 있을 리 없었어요. 후배는 절대 짐을 끌고 언덕을 넘어가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없이 택시를 기다릴 수도 없었어요. 큰 길이라면 택시를 기다릴텐데 여기로 택시가 지나가갔데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