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거리를 후배와 둘이 걸으니 그래도 좀 나았어요. 다시 느끼는 것이었지만 전쟁의 참상을 느끼는 도시보다 그냥 황량함을 느끼게 하는 도시였어요. 진짜 전쟁으로 인해 부서진 도시들은 보스니아에 몰려있고 여기는 스산하고 황량한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폐허는 아니었어요. 그냥 개발이 잘 되어 있지 않았어요.
지난번이 '저개발 + 새벽'의 힘이었다면 이번은 '저개발 + 일요일'의 힘이었어요.
계속 스산한 길을 걷다 보니 프리슈티나 국립 도서관에 도착했어요. 들어가보려 했지만 이게 사용하는 건물인지 버려진 건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어요. 디자인도 특이하기는 했지만 예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더욱 정체 불명으로 보이게 만드는 디자인이었는데 주변까지 사진 속에서 보이는 것처럼 되어 있어서 건물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지난번 왔을 때도 정체가 궁금했던 이 건물에 도착했어요. 분명 동방정교 교회이고 뭔가 있어 보이는데 뭔지 알 방법이 없었어요. 근처에 다가갔는데 철조망이 쳐져 있었어요. 철조망을 뛰어넘어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금방 생각을 접었어요. 혹시나 지뢰나 불발탄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겉보기는 그저 스산하고 별 볼 일 없는 저개발 도시지만 여기도 유고 내전의 현장이에요. 나름 전쟁터였기 때문에 아무 데나 막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좋은 짓은 아니에요.
시멘트를 발라놓은 것으로 보아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건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여간 정체 불명의 교회.
그리고 이 유물. 이 유물 사진도 엄청나게 많이 보였어요. 진짜 프리슈티나 돌아다니며 본 3대 수수께끼 중 하나였어요.
코소보 3대 수수께끼란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돌아다니며 정말 궁금했지만 뭔지 몰랐던 것들이에요.
1. Bac, u kry!
2. 프리슈티나 폐교회
3. 이상한 유물 사진
이거 세 개만 이해하면 왠지 '이제 코소보를 보았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세 개가 무엇인지 대체 알 수가 없었어요.
길을 가는데 비석이 푹푹 꽂혀 있는 공터인지 공원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곳이 나왔어요.
비석이 오래된 것 같아서 전부 사진으로 찍었어요.
정처 없이 걷는데 마음 속 한켠에 드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어요. 그것은 바로 코소보 우표. 여기는 독립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정말 별 볼 일 없는 곳이에요. 그래서 여기 우표는 정말 갖고 싶었지만 오늘은 일요일. 우체국이 문을 열었을리 없었어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에 들어가서 물어보았어요.
"우표 살 수 있나요?"
"우체국 가세요."
"오늘 우체국 열어요?"
"저 위쪽 길 따라 가면 우체국 있어요."
여기는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 확실히 유엔군이 주둔하고 있어서 그런지 영어가 잘 통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매우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프리슈티나에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우체국이 있는데 거기 가면 아마 우표를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코소보 우표도 빠트리지 않고 구입하는구나!"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코소보 우표를 다시 구입해 이 수집에 구멍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안 팔아요."
"예?"
"오늘 우표는 안 팔아요."
겨우 우체국을 찾아갔는데 우표는 일요일이라 안 판다고 했어요. 우체국까지 왔는데 우표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제발 우표 팔아주세요."
"내일 오세요."
"저 오늘 몬테네그로로 떠나요."
우체국에 가서 제발 우표 좀 팔아달라고 빌기는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프리슈티나에서 일박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우표를 사든 못 사든 떠나야하는데 일단 우표가 있는 우체국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팔아달라고 빌었어요.
"어디에서 왔어요?"
"남한이요."
이 사람들이 남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2002년 월드컵 때문에 남한은 잘 알고 있었어요. 참고로 우리나라는 코소보를 정식 독립 국가로 인정했어요.
인내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빌자 직원 우체국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가서 뭐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자 우체국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잠시 기다려 보라고 하고는 어딘가에 전화했어요. 알바니아어로 무언가 전화 상대에게 물어보더니 알았다고 하더니 전화를 끊고 금고를 열고 우표를 꺼내서 보여주었어요.
제가 우표를 골라서 가격을 지불하자 우체국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제가 구입한 내역을 쪽지에 적어 우표와 같이 끼워넣고 다시 금고에 집어넣었어요. 쪽지에 제가 구입한 내역을 적어서 우표와 같이 캐비넷에 넣는 것으로 보아 아마 우표 판매 직원에게 오늘 제게 우표를 팔테니 내일 와서 돈 받아가고 내일 판 것으로 장부에 기입하라고 한 것 같았어요.
우표를 사고 나오니 날이 슬슬 어두워질 것 같았어요. 이제 프리슈티나를 더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버스 터미널 카페에서 남은 시간을 때우기로 하고 택시를 잡았어요.
택시 기사는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잘 했어요. 택시 기사는 자기가 독일에서 일하다 돌아왔는데 여기는 일자리도 없고 돈 벌 것도 없어서 지금 택시 기사를 하고 있는데 다시 독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어요.
택시 기사가 영어를 잘 해서 코소보 3대 수수께끼에 대해 물어보았어요. 택시 기사는 이 수수께끼에 대해 매우 잘 설명해 주었어요.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은 그때 택시 기사에게 들었던 내용과 이를 토대로 인터넷에서 찾아본 결과에요. 제가 궁금해했던 3대 수수께끼는 코소보의 독립 과정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 핵심적인 상징들이라는 것을 이 여행기를 작성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하긴 매우 중요하니 많이 보이고 확 눈에 띄었겠죠.
1. 교회
프리슈티나의 Sheshi Hasan 지역의 국립 도서관 옆에 있는 이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은 극단적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어리석은 포부와 야심, 그리고 그 결과를 보여주는 건물이에요. 코소보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시작인 '코소보 전투' (세르비아 연합군이 오스만 튀르크군에게 무참히 패한 전투임) 때문에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매우 상징적인 곳인데,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세르비아를 점령한 후 이 코소보 지역에 알바니아인들이 넘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알바니아인들의 땅이 되었어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코소보에서 알바니아인들을 쫓아내고 세르비아인들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알바니아인들에게 주어졌던 자치권을 박탈하고 철저하게 억압하기 시작하자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은 코소보 해방군 UÇK (영어 : KLA) 를 만들어 무장투쟁을 시작했어요. 이에 세르비아군은 이들에 대해 철저한 진압을 시작했고, 코소보를 세르비아인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어요. 밀로셰비치 정부는 그 원대한 계획의 일환으로 1995년에 이 교회를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원래 계획은 1999년 완공이었지만 유고 전쟁 (코소보 전쟁)에서 알바니아인들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으로 전락했어요. 하지만 큰 공격은 거의 없었고 주로 낙서 (graffiti)와 작은 파괴가 대부분이라 성당의 기본적인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어요. 1999년 3월 24일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이 시작되었고 공사는 당연히 중단되었어요. 이후부터는 뻔한 스토리에요. 나토는 세르비아에 1999년 3월 24일부터 6월 10일까지 78일간 공습을 퍼부었어요. 이때 투하된 폭탄이 13,000톤, 유고슬라비아가 입은 경제 손실액은 약 2,000억 달러가 넘었어요. 나토의 무지막지한 폭격에 밀로셰비치는 결국 항복했고, 이 교회는 미완성인 채로 남게 되었어요. 현재는 유엔평화유지군의 원칙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며, 철조망으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어요. 또한, 이 교회의 완공을 요구하고 있는 세르비아 정교회의 허가 없이 이 교회를 이용하거나 개조하는 것 역시 금지되어 있어요.
간단히 요약하자면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세르비아화하기 위해 짓기 시작한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이었으나 코소보 전쟁의 패배와 코소보의 독립으로 인해 완성되지 못하고 흉물로 남게 된 건물이에요.
2. 유물
이 유물은 '옥좌에 앉은 여신' (Goddess on the Throne)이에요. 이 유물은 1956년 프리슈티나 근교에서 발굴되었으며, 약 6천년 이전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어요. 이 유물은 원래 프리슈티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코소보 전쟁이 발발하기 몇 달 전, 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다른 1,247개의 유물과 함께 '전시회'라는 명목 하에 베오그라드로 옮겨졌어요. 이때 프리슈티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유물 중 다른 가장 가치있는 유물들도 함께 베오그라드로 '납치'당했어요. 2002년 5월, 이 유물 반환 문제는 UN의 개입을 통해 다시 코소보로 반환되며 해결되었고, 가장 중요한 유물이었던 이 '옥좌에 앉은 여신'은 코소보로의 귀환과 함께 코소보 해방의 상징이 되었어요.
3. Bac, u kry!
프리슈티나 가면 '옥좌에 앉은 여신'보다 더 질리도록 많이 보는 'Bac, u kry!'. 이 말은 직역하면 '삼촌, 다 끝났어!' (It is done!)이라는 의미에요. 그리고 그림은 바로 이 말을 한 인물인 아뎀 야샤리. (Adem Jashari)
아뎀 야샤리는 코소보 해방군 UÇK의 최고 사령관 중 한 명으로, UÇK 의 Drenica 구역 총사령관이었어요. 유고슬라비아군에 대항해 무장 독립투쟁을 이끌던 아뎀 야샤리는 1998년 2월 28일, 자신의 고향인 프레카즈 (Prekaz)에서 자신의 부대원을 이끌고 유고슬라비아 경찰 순찰대를 급습, 4명을 사살하고 2명에게 부상을 입혔어요. 동년 3월 5일, UÇK 는 도녜 프레카제 (Donje Prekaze)에서 유고슬라비아 경찰에 대한 2차 공격을 감행했어요. 이에 유고슬라비아 경찰과 군대는 반격에 나섰고, 3월 7일 아뎀 야샤리와 그의 대가족이 모여 사는 곳을 포위하는 데에 성공했어요. 유고군은 2시간의 여유를 주었고, 2시간 후 총격을 개시했어요. 야샤리 및 그의 대가족들이 모여 있던 집에는 최루탄을 살포하고 박격포를 발사했어요. 이로 인해 아뎀 야샤리를 포함해 야샤리 가족 64명이 사살당했어요. 이 사건을 '프레카즈 공세' 또는 '프레카즈 학살'이라고 해요.
이 사건으로 아뎀 야샤리는 코소보 해방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코소보 해방군 지도자가 아뎀 야샤리를 기리며 코소보의 해방을 'Bac, u kry!'로 표현했대요. 그때부터 이 슬로건도 코소보의 상징이 되었대요. 'Bac, u kry!'라는 문구 위의 얼굴이 바로 아뎀 야샤리.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 카페에 들어가 콘센트에 디지털 카메라 충전기를 꼽고 커피를 시켰어요.
"저 벽의 사진 아뎀 야샤리네?"
이제 저 벽에 걸려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요. 그래서 카페 주인에게 아뎀 야샤리 그림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았어요. 주인은 별 걸 다 찍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연히 찍어도 된다고 했어요.
또 카페에서 커피 두 잔을 마시고 버스 시간까지 시간을 보내다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행 버스에 올라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