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왜 이렇게 볼 게 없지?"
"진짜 볼 거 없다. 덥기만 엄청 덥고."
시장 구경은 금방 끝나버렸어요. 시장 구경을 하며 이것저것 길거리 음식도 사먹고 구경도 하려고 하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어요. 말린 도마뱀을 본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 그 외에는 그 어떤 수확도 없었어요. 왕대추를 많이 팔고 있고, 건포도가 수북히 쌓여 있다는 것 뿐이었어요. 이 시장에 제대로 돌아가는 시장인지조차 의문이었어요. 시장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정말 없었거든요.
"이제 홍산공원이나 갈까?"
"응. 그러든가."
어디 적당히 앉아서 쉴 만한 곳이 없나 살펴보았어요. 마땅히 쉴 곳이 없었어요. 찻집이나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서 앉아서 쉬고 싶었어요. 친구 핸드폰도 충전시키구요. 하지만 마땅히 그럴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어요. 바닥에 널부러져 앉아서 쉬려 해도 그늘이 없었어요. 목적지는 없고 시간은 남았어요.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할 만한 것이 주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차오판을 주변 식당에서 구입하기로 했기 때문에 멀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멀리 갔다가 미라가 되어가는 기분만 체험하고 돌아왔어요. 기차역에 한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무턱대고 모험하는 셈 치고 멀리 갈 수도 없었어요. 의욕도 없고 상황도 되지 않았어요.
"저기로 가자. 동네 구경이나 하게."
"저기에는 쉴 만한 곳 있을까? 찻집 같은 거."
"그래도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어요. 그냥 벤치 하나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어요. 친구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 - 쉬는 것 뿐이었어요. 그것 외에는 특별히 바라는 것이 없었어요. 기차역 들어가서 쉴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기차역으로 바로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일렀어요. 한족 볶음밥 사들고 기차역 근처에서 돌아다녀보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은 친구가 전혀 원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식당에 들어가서 차오판 하나씩 시켜서 밥알을 세어가며 먹으며 쉴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공원까지 걸어가기도 귀찮았고, 벤치가 있다면 벤치에 앉아서 그냥 쉬고 싶을 뿐이었어요. 적당히 음료수나 마시며 시간 좀 보내다 밥 사들고 기차역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었어요. 특별히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계속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쉴 만한 것도, 인상적인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사진을 찍을 만한 것을 찾아보았지만 사진을 찍을 만한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친구는 찻집이 보이면 찻집에 들어가서 앉아서 쉬다가 나오자고 계속 말했어요. 저도 그러고 싶었어요. 그런데 존재하지 않는 찻집을 제가 뚝딱 만들어서 쉴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작은 길로 들어온 이유는 혹시 동네 찻집이 하나 정도 있지 않을까 해서였어요. 그러나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어요.
말 없이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양꼬치를 굽고 있는 사람이 보였어요.
"우리 양꼬치나 먹을까?"
"너 먹고 싶어?"
"응. 뭐라도 먹는 게 낫잖아. 양꼬치나 먹으면서 좀 쉬자."
앉을 곳이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이렇게 계속 무의미하게 걷기는 싫었어요. 일단 조금 앉아 있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양꼬치를 계속 사가는 것으로 보아 맛이 없는 가게는 아닌 것 같았어요. 게다가 손님들은 주로 한족이었지만, 케밥을 굽고 있는 사람은 위구르인이었어요. 맛이 지나치게 없지만 않다면 케밥을 먹는 동안 앉아서 쉴 수 있었어요. 그것만으로도 지금 당장 이득이었어요.
'어차피 내일 아침도 못 먹을 건데.'
저녁으로 차오판을 싸들고 가서 기차에서 먹기로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다른 먹을 것도 사들고 타기는 하겠지만, 지금 뭐라도 하나 더 먹어두는 것이 더 낫겠지. 기차에서 무언가 사먹고 싶어지면 결국 지출만 늘어나는 거니까. 어차피 카슈가르 기차역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을 리는 없을테고, 그렇다면 카슈가르 시내 들어갈 때까지 배고프지 않는 것이 중요했어요. 먹을 수 있을 때 잘 먹어놓는 것 또한 여행 경비를 절약하는 중요한 방법이었어요.
"양꼬치 얼마에요?"
"3콰이."
양꼬치 크기는 작았어요. 1위안은 1위안 가치를 갖고 있다는 말을 보여주는 크기였어요.
"몇 개 먹을까?"
"2개씩 먹자. 난 하나 주문하고."
"너 배고파? 나는 배 안 고픈데."
"지금 뭐 하나라도 먹어야하지 않겠냐?"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고, 점심을 먹은지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양 자체가 적었어요. 양고기 케밥 하나 가지고 충분히 의자에 앉아 쉴 수 없었어요. 아무리 양꼬치 하나 가지고 아껴먹어서 앉아서 쉴 시간을 번다 해도 빵조각 뜯어먹는 것처럼 무한정 조금씩 쏠아먹을 수는 없었어요. 이렇게 먹는다고 해서 돈이 크게 부담되는 것도 아니었구요. 어차피 앉아서 쉴 곳은 보이지 않았고, 지금 양고기 케밥과 난을 먹는다고 손해볼 것도 없었어요.
게다가 이 거리의 케밥은 정육점에서 운영하는 것이었어요. 정육점에서 바로 고기 떼와서 만들어 굽는 케밥이니 먹고 후회할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어요.
케밥 4개와 난 하나를 주문하자 아저씨는 케밥을 굽기 시작했어요. 여기도 케밥 위에 난을 얹어서 굽고 있었어요.
다른 한쪽에서는 아주머니가 커다란 잎으로 밥을 싸고 있었어요. 저건 딱 봐도 한족 음식이었어요.
아저씨가 케밥을 서서히 익혀갔어요. 아저씨가 천천히 케밥을 구워갈수록 몸의 피로도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어요. 아저씨 역시 난에 양고기 기름을 바르고 양념 가루를 뿌리고 있었어요. 확실히 이 점은 우즈베크식과 다른 점이었어요. 투르판에서도, 여기에서도 난에 양념을 해서 같이 굽고 있었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이렇게 난을 같이 구워주지는 않았어요.
'여기는 난을 항상 먹는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하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식당에서 무슨 음식을 시키고 난을 시키지 않으면 꼭 난을 시킬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실제로 우즈베크인들은 난을 상당히 많이 먹었어요. 심지어는 기름밥인 오쉬를 먹을 때조차 난을 시켜먹었어요. 밥조차 난을 먹기 위한 반찬이었어요. 식사라 하면 '난을 먹는 것'이라 해도 될 정도였어요. 그래서 난 굽는 곳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그에 비해 투르판, 우루무치에서는 난을 주문하지 않아도 난을 시킬 거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없었어요. 위구르인들이 난 없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었어요. 케밥 굽는 방법도 달랐지만, 난을 시키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 또한 다른 점이었어요.
케밥이 나왔어요.
"여기 맛있네."
크기는 작았지만 가격도 그만큼 저렴했기 때문에 가격에 대한 불만은 없었어요. 그리고 맛있었어요. 확실히 정육점에서 구워서 파는 케밥이라 그런지 고기 질이 상당히 좋았어요.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거의 나지 않았어요. 양념을 쳐서 구운 난 또한 매우 맛있었어요. 혼자 왔다면 케밥 2개에 난 하나를 더 시켜서 먹었을 거에요. 그러나 친구가 같이 있었어요. 이것은 공금으로 처리하기로 했고, 친구는 더 먹을 생각은 없다고 했어요. 제 돈 내고 더 사먹어도 되지만, 케밥이 빨리 구워지는 것이 아니다보니 친구에게 제가 먹는 동안 멍하니 앉아 있으라고 하기도 그랬어요. 한 번 먹은 것을 또 먹을 만큼 돈에 여유가 있지도 않았구요. 일단 책을 구입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먹는 데에 돈을 마구 쓸 수는 없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따라 더 안쪽으로 걸어갔어요.
길거리에서 오렌지를 수북히 쌓아놓고 팔고 있었어요.
'기차에 과일이나 좀 사들고 탈까?'
오렌지를 보니 오렌지나 구입해서 기차를 탈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칼이 없기는 하지만 손으로 껍질을 까서 먹으면 되었어요.
'여기가 원래 오렌지가 나오는 곳인가?'
중앙아시아에서 오렌지 과수원을 본 적이 있던가? 겨울에 춥기는 하지만 일단 겨울 빼면 날씨가 뜨거우니 오렌지가 재배된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오렌지가 지금이 제철인가? 제가 알기로는 오렌지도 겨울이 제철이었어요. 오렌지야 저장성이 좋은 과일이라 연중 쉽게 볼 수 있는 과일이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제철에 먹는 것이 맛도 좋고 가격도 싼 법이었어요.
특별히 사진을 찍을 것은 없었지만, 거리에서 과일과 야채를 팔고 있는 노점상과 과일 가게는 종종 보였어요.
'6월이면 살구 나올 때인데.'
살구를 팔고 있는 노점상이 몇 곳 있었어요. 제가 찾는 살구는 보이지 않았어요. 일단 알이 너무 작았어요. 제가 원하는 살구는 눈깔사탕만한 크기의 살구였는데, 거리에서 팔고 있는 것은 왕구슬만한 살구였어요. 게다가 제가 원하는 살구는 껍질이 무광에 솜털이 있는 것처럼 생겼는데, 거리에서 팔고 있는 살구 대부분은 껍질이 매끈하고 윤기가 흐르고 있었어요.
"먹어봐도 되요?"
"예."
왕구슬만한 살구를 하나 먹어보았어요. 이건 아니었어요. 제가 찾던 살구에 비해 향과 단맛은 약하고 신맛은 강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이것도 달콤한 살구라고 하겠지만, 제가 찾는 것은 아니었어요.
'멜론을 사갈까?'
마침 멜론을 시식해볼 수 있는 가게가 보였어요. 멜론을 시식해보았어요. 멜론은 밍밍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어요. 물론 이런 멜론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들은 이것도 충분히 달고 맛있다고 하겠지만, 제 기준에서는 그냥 보통보다 조금 떨어지는 맛이었어요.
"우리 기차에 과일 사들고 탈까?"
"나는 수박 살래."
"너 혼자 한 통 다 먹어질래? 나는 수박 잘 안 먹어."
"혼자 먹을 수 있어."
친구는 수박 한 통을 사서 기차를 타겠다고 했어요. 들고 다니기도 무겁고 양도 많을텐데 괜찮을까 싶었지만 친구가 먹고 싶다고 하니 그러라고 했어요.
"너 수박 안 좋아해?"
"수박은 별로."
"그러면 과일은 사비로 살까?"
"뭐 한 조각 정도는 먹지 않을까?"
저는 수박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지도 않아요. 있으면 적당히 한두 조각 맛보고, 없어도 괜찮았어요. 그에 비해 친구는 수박을 광적으로 좋아했어요.
"너 그런데 상해에서 수박 못 먹었냐? 수박 엄청 좋아하네."
"상해에서 수박 비싸. 거긴 뭐든 비싸다니까."
수박을 좋아하는 친구는 상해에서는 수박이 비싸서 마음껏 먹지 못했다고 툴툴대었어요. 수박을 광적으로 좋아하던 친구는 상해에서 참던 욕구를 여기에서 풀려고 했어요. 여기는 수박이 확실히 저렴했거든요. 한 조각 잘라서 파는 것은 보통 1위안, 한 통은 10위안 수준이었어요. 1위안이 이 당시 178원 정도 했으니 10위안이라고 해봐야 1800원 채 되지 않는 돈이었어요. 확실히 수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는 천국이었어요.
"먹어보아도 되요?"
"예."
친구는 살구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저 혼자 일단 맛을 보았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먹던 것보다 향과 단맛이 조금 약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저의 살구에 대한 갈망을 채워줄 수준은 되었어요. 멜론은 우리나라에서도 먹을 수 있는 과일.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멜론이 우리나라 것보다 향과 단맛이 훨씬 강하기는 하지만 정말 먹고 싶을 때에는 어쨌든 맛볼 수 있었어요. 그러나 살구는 아니었어요. 우리나라 살구는 셔서 우즈베키스탄에서 먹었던 살구의 대용품이 될 수가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살구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하면 저를 아는 사람들은 다 경악하며 입맛이 바뀌었냐고 물어보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신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우즈베키스탄 살구는 전혀 시지 않았고, 살구맛 음료수 맛이었어요. 그래서 살구는 정말 다시 먹고 싶었지만 못 먹던 과일이었고, 이렇게 그 당시 먹었던 것보다 조금 질이 떨어지는 것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어요.
"1kg 주세요."
"10콰이."
"8콰이에 주세요."
"그래요."
1kg을 8위안에 구입했어요. 살구를 받아들고 옆에 있는 작은 귤 한 알을 집어들었어요.
"이거 맛 봐도 되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덤으로 귤 하나를 받았어요. 귤은 친구에게 주었어요.
"자, 먹어."
친구는 기쁘게 받아먹었어요. 저는 살구를 한 알 입에 집어넣었어요. 그래, 이맛이야! 보통 벌레가 있나 확인할 겸 해서 반으로 쪼개서 먹지만, 언제나 귀찮아서 한 입에 집어넣어버렸어요. 과육이 부드러워서 혀로 커다란 씨를 발라내 뱉으면 끝. 이러면 두 손을 쓰지 않고 한 손만으로 살구를 먹을 수 있어요. 살구맛 눈깔사탕을 입에 집어넣고 먹는 기분이었어요. 계속 살구를 꺼내서 입에 집어넣고 씨를 뱉어내자 친구가 신기하게 쳐다보았어요.
"그거 맛있냐?"
"하나 먹어보든가."
"하나만 줘봐. 그런데 이거 씻어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냥 먹어. 이거 그냥 나무에서 열리면 따서 내다파는 거야."
친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에 살구를 집어넣었어요.
"이거 진짜 맛있네! 한 알 더 줘."
친구는 살구를 한 알 먹더니 또 달라고 했어요. 친구에게 살구를 한 알 주고 저도 한 알 먹었어요. 향긋하고 달콤한 살구 쥬스 향기가 전해졌어요.
아파트 단지라서 그런지 저렇게 여러 집 우편함이 한 곳에 모여 있었어요. 확실히 저렇게 한 곳에 우편함을 모아놓으면 우체부는 일이 좀 줄겠다. 예전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 할 때 이런 우편함 몰려 있는 곳 하나 발견하면 쾌재를 불렀는데. 이런 우편함 하나 찾으면 할당된 전단지를 한 번에 많이 줄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아파트 단지가 나오면 쾌재를 부르곤 했어요.
"돌아가자."
더 가보아야 볼 것이 없어보였어요. 길도 막혀 있었어요. 이제 더 간다면 저 주택단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친구와 발걸음을 돌려서 왔던 길을 다시 걸어나가기 시작했어요. 저는 계속 살구를 먹었고, 친구 입에도 몇 알 넣어주며 걸어갔어요.
"여기서 수박 사야겠다."
"너 수박 들고 돌아다녀질래? 꽤 무거울 건데."
"괜찮아."
길거리에 세워진 트럭에서 수박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자 친구가 수박을 구입하겠다고 했어요. 지금 당장 기차역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무거운 것을 어떻게 들고 다닐지 조금 걱정이 되었어요. 그러나 친구는 괜찮다고 하면서 수박을 한 통 구입했어요. 수박 한 통은 10위안이었어요. 친구는 상인에게 수박을 잘라달라고 했고, 상인은 칼로 쓱쓱 잘라서 비닐봉지에 넣어주었어요.
"이제 공원이나 가자. 거기서 쉬다가 밥 사서 기차역 가자."
친구와 바이두 지도를 보며 근처 공원을 향해 걸어갔어요. 비록 바이두 지도가 우리를 한 번 거하게 속였지만, 우리는 바이두 지도를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무겁냐?"
"응."
"줘. 조금 들어줄께."
"오, 고마워!"
수박이 좋은 것과 수박을 들고 가는 것은 별개였어요. 당연히 수박은 무거웠어요. 웃으며 들고다닐 무게는 아니었어요. 수박의 무게 때문에 친구 얼굴이 슬슬 굳어가는 것을 보며 수박을 조금 들어주겠다고 하자 친구는 매우 좋아했어요. 그렇게 수박을 돌아가면서 들고 걸어갔어요. 바이두 지도를 보며 길을 두 번 건너니 한족 양식으로 지은 문, 그리고 그 너머 멀리 홍산탑이 보였어요.
"여기도 홍산공원이지?"
홍산탑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여기도 홍산공원 같은데 전날 들어갔던 입구와는 달랐어요.
'그냥 다른 입구인가 보다.'
나중에야 이것이 홍산공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홍산탑이 있는 홍산을 중심으로 홍산 공원이 있었고, 인민 공원도 있었어요. 전날 간 곳은 홍산공원이었고, 이날 간 공원은 인민공원이었어요.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여기가 같은 홍산공원인줄 알았어요.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호수와 한족식 건물이 나타났어요.
할아버지와 아이가 팔씨름을 하는 조각이 보였어요.
장기를 두는 조각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어요.
거대한 중국 장기판 조형물이 장기말 역시 사람들의 의자로 이용되고 있었어요.
"어디 앉을 곳 없나?"
공원에 들어와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앉아서 쉴 의자를 찾아보았어요.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앉을 수 있는 자리에는 모두 사람들이 앉아 있었어요. 빈 의자가 몇 곳 있기는 했는데, 그 의자는 모두 스프링쿨러 때문에 젖어서 앉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그냥 적당히 앉자."
의자에 앉아서 쉬는 것은 결국 포기했어요. 그래도 다행히 화단 턱이 높아서 화단 턱에 앉아서 쉴 수 있었어요. 화단 턱에 앉아서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어요. 공원은 작지 않았고, 앉을 수 있는 자리도 많았지만, 사람들 또한 많아서 그늘지고 쉬기 좋은 자리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거든요. 그나마 땡볕에 바닥에 주저앉아 쉬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어요.
저는 살구를 계속 먹고 있었고, 친구는 빈 의자가 생기는지 계속 살펴보고 있었어요.
"야, 그냥 여기 있어. 어차피 빈 의자 우리 차지 안 된다니까?"
"그래도. 의자에서 앉아서 쉬면 편하잖아."
"그러지 말고 신발이나 벗고 있어. 신발 벗으면 피로 더 빨리 풀려."
신발을 벗고 가만히 앉아서 살구를 먹으니 피로가 풀리는 것이 느껴졌어요. 친구는 계속 포기하지 않고 빈 의자가 생기는지 주변을 관찰하고 있었어요. 빈 의자가 멀리서 생기는 것이 보이기는 했어요. 단지 우리가 가기 전에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앉아버린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었어요. 괜히 빈 의자 차지하겠다고 일어났다가는 지금 이 자리조차 놓쳐버릴 수가 있었어요. 친구에게 헛짓하지 말고 신발 벗고 발이나 쉬게 하라고 하며 살구를 먹는데 문득 중요한 것 하나가 떠올랐어요.
"야, 우리 여기서 텐트 펴보자."
"여기서 텐트 치고 눕게?"
"뭘 여기서 텐트 치고 누워."
"한족 애들은 남이 뭐하든 신경 안 쓴다니까?"
제가 텐트를 한 번 펼쳐보자고 한 이유는 다음날 밤 카슈가르에서 텐트를 치고 자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친구도 텐트를 구입한 후 단 한 번도 펼쳐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친구나 저나 이런 텐트는 처음이었어요. 말뚝 박고 끈 묶고 기둥 세울 없이 한 번에 탁 펼쳐지고 쉽게 접을 수 있는 텐트라는데, 그런 텐트를 이용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카슈가르 가서 밤에 텐트를 쳐야 할텐데 텐트를 치지 못한다면 분명 문제였어요. 그리고 아침에 텐트를 접어서 치워야 할텐데 텐트를 접지 못하면 그것도 문제였어요. 텐트를 다시 접지 못하면 그 다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생각만 해도 웃겼어요. 친구와 사이좋게 펼쳐진 텐트를 들고 다니든가, 억지로 접어서 펼쳐지지 못하게 꼭 껴안고 다니든가 할 테니까요.
하지만 친구는 제 말에 전혀 다른 쪽으로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의자에 앉아서 쉬기는 글렀어요. 그런데 편하게 쉬고 싶기는 하니, 아예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서 누워서 쉬자는 것이었어요. 이야, 너는 진짜 이제 중국인이다! 친구가 당당히 텐트를 펼치고 그 속에 들어가 누워서 쉬자는 말에 감탄했어요. 이렇게 깊이 한족화된 친구를 보며 할 말을 잃었어요. 아무리 한족들이 남의 일에 무신경하다지만 여기는 정말 텐트를 치고 들어가서 누울 만한 자리가 아니었거든요.
어쨌든 텐트를 일단 펴보자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에 텐트를 펼쳤어요. 천으로 만든 봉지 같은 커버를 벗기고 고무 밴드를 풀자 바로 펼쳐져서 텐트가 완성되었어요.
"야, 너 진짜 거기 들어가서 누우려고?"
"응."
친구는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누웠어요.
"완전 좋아! 이거 쩐다! 아, 진짜 편하네."
"그래, 많이 쉬어라."
"너도 들어와! 여기 두 명 충분히 눕겠네!"
"아니. 그냥 너 혼자 많이 쉬어."
친구가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드러눕자 사람들이 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원숭이 보듯 텐트를 쳐다봤어요. 친구는 안에서 뒹굴거리고 있었어요. 중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저렇게 얼굴에 특수 철판을 깔아야 하는구나. 사람들이 구경하든 말든 친구는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중국에 갓 들어온 저와 너무나 달랐어요. 내공 차이가 어마어마했어요. 친구는 중국에서 몇 년 있었으니 나보다 당연히 중국을 잘 알겠지. 그래서 그냥 친구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놔두었어요.
"너도 들어와."
"싫어. 너 혼자 잘 쉬어."
"진짜 편하다니까?"
"응, 응. 알았으니까 너 혼자 푹 쉬어."
친구가 자꾸 저한테도 텐트 안으로 들어오라고 강권했지만, 정말 텐트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물론 온갖 기예와 또라이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대륙의 기상 중국에서 이 정도로 15억 인민의 바이두 스타가 될 수는 없었어요. 친구가 지금 텐트 안에서 계속 몸을 굴려서 앞의 연못에 풍덩 빠진다 해도 바이두 스타가 되기에는 무리였어요. 아무리 친구가 한족들은 남이 뭘 하든 신경 안 쓴다고 해도 백주대낮에 공원에 텐트치고 들어가 드러누워 쉬는 것은 아닌 것 같았어요.
조용히 누워서 쉬던 친구가 저를 또 불렀어요.
"너 진짜 안 들어올거?"
"어!"
단호하게 텐트 안으로 안 들어가겠다고 하자 친구가 시무룩해져서 텐트 밖으로 나왔어요.
"이제 접자."
그런데 어떻게 접지?
아까 펼치는 것을 볼 때는 쉽게 접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접는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어요. 저나 친구나 그렇게 눈썰미가 좋지는 못했거든요. 텐트가 펼쳐지는 모습을 보며 그 역순으로 접는 방법을 한 번에 알아낸다는 것은 무리였어요. 게다가 텐트를 단계적으로 펼쳐가며 완성한 것이 아니라 고무 밴드를 푸르자마자 확 펼쳐졌기 때문에 접는 방법을 제대로 유추할 수도 없었어요. 친구는 텐트 제조사 홈페이지에 접속했어요. 다행히 접는 방법이 있었어요.
"이거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텐트의 양끝을 지붕살과 포개어 접으라는 것까지는 이해했어요. 그것까지는 어떻게 흉내를 내었어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그 다음 단계에서 바로 8자 모양이 되고 둥그렇게 말려야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중국어로 깨알같이 뭔가 적혀 있기는 했는데, 친구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보지 못했어요. 둘이서 어떻게든 8자 모양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어찌어찌 8자 모양 비슷하게 접기까지는 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둥그렇게 딱 접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아, 짜증나! 설명을 뭐 이따위로 써놔? 글자 보이지도 않네!"
친구가 짜증을 버럭버럭 내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짜증을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어요.
"중국인한테 물어봐봐. 이거 어떻게든 접어야하잖아. 이거 이렇게 버리고 갈래?"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은 다 한족이었어요. 친구가 지나가는 남성에게 중국어로 부탁했어요. 한족 남자는 설명을 보며 천막을 어찌어찌 만지더니 동그랗게 딱 접었어요. 텐트의 양끝과 지붕살을 포개어 접은 후, 측면살 한 쪽을 다른 한쪽 끝까지 꾸겨넣으면 되는 것이었어요. 이 한족 남자는 그야말로 2002년 월드컵 거스 히딩크 감독 같은 존재였어요. 친구는 계속 짜증내면서 텐트 확 버리고 갈까, 돈 날렸네 하고 있었고, 저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던 것이 아니었어요. 만약 기차역 가야하는 시간까지 텐트를 접지 못했다면 버리고 가야만 했어요. 한족 남성은 자신의 친척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며 한국에 대해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텐트를 접고 남은 살구를 다 먹어치운 후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출구로 나가는데 한 한족 여성이 유모차를 힘겹게 들고 턱을 넘으려 했어요.
'나도 도움 받았는데 하나 도와줘야지.'
유모차 바퀴를 들고 유모차가 턱을 넘는 것을 도와주었어요. 한족 여성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맙다고 말했어요.
"저 한족 여성 나한테 고마워했을까?"
"별로 안 좋아했을걸? 한족들은 남들이 도와주는 거 별로 안 좋아해."
한족 여자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마워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표정이 떨떠름해서 친구에게 물어보자 친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고 대답했어요. 뭔가 기분이 상당히 이상했어요. 일본인처럼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연신 고맙다고 말해달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와주는 것 자체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 반응은 상당히 어색했거든요. 친구는 저보다 훨씬 많은 중국인을 겪어보았고, 친구의 친구들 가운데에는 중국에서 사는 사람, 중국인과 결혼한 사람도 여럿이었어요. 친구가 단편적인 몇몇 모습만 보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아까 갔던 가게로 가서 차오판을 포장하고, 잠깐 친구의 핸드폰을 충전시켰어요. 차오판은 11원이었어요. 평범한 계란 볶음밥이었지만, 의외로 상하이보다 비쌌어요.
차오판을 구입한 후, 우루무치 남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어요.
"저 할아버지 분명히 기차 탄다."
짐을 보니 딱 기차 타러 가는 모습이었어요. 기차역마다 저렇게 짐을 가득 들고 타는 사람들을 보았더니 친구의 말에 바로 수긍하게 되었어요.
저녁 7시 30분. 우루무치 남역에 도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