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일 아침 8시. 우루무치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 눈을 떴어요. 너무 졸렸어요. 굳이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었어요. 일정이라고는 박물관 가서 미라 보는 것 뿐이었어요. 저녁 기차였기 때문에 열심히 돌아다니며 땀을 흘리고 싶지 않았어요. 땀에 절은 몸은 기차 안에서 못 씻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거든요. 다음날 밤은 카슈가르 안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자기로 했기 때문에 이틀 연속으로 샤워를 할 수 없었어요.
다시 눈을 감고 잤어요. 짐을 쌀 것도 없었어요. 전선과 전자기기만 잘 챙겨서 나가면 끝이었어요. 이틀밤을 한 방에서 머물렀다면 짐을 어느 정도 풀렀겠지만, 이틀을 다른 방에서 잤어요. 덕분에 짐을 다 풀지 않았어요. 짐이랄 것 자체가 별로 없기는 했지만요. 그저 신경이 조금 쓰이는 것이라면 과연 양말이 다 마를지였어요. 건조기후에 해까지 떴으니 잘 마르기는 하겠지만, 혹시 안 마른다면 전날 헛수고한 것이었어요.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다시 일어났어요. 일어나자마자 양말을 확인해보았어요. 바짝 잘 말라있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깔창도 같이 빨아버릴걸.'
햇볕에 깔창을 널어놓았기 때문에 깔창 냄새도 어느 정도 빠지기는 했어요. 그러나 한 번 빠는 것이 좋을 것 같았어요. 이렇게 빨래가 잘 마를 줄 알았다면 깔창도 빨아서 널어놓았을 거에요. 신발 깔창 빠는 것은 어렵거나 힘든 일도 아니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아직 체크아웃까지 2시간 더 남아있었어요. 만약 전날 빨았다면 말리기 위한 시간은 너무나 충분했어요.
침대에 다시 드러누웠어요. 서두를 이유가 아무 것도 없었어요. 박물관에 가는 이유는 미라를 보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 안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한 목적도 있었어요. 오늘은 어떻게든 널널하게 잘 보내는 것이 관건이었어요. 전날 우루무치에서 꼭 보아야할 것을 다 보았기 때문에 이런 여유가 생겼어요. 만약 전날 홍산공원을 가지 않았다면 백주대낮에 짐을 다 들고 홍산탑까지 올라가야 했을 거에요.
"어서 씻어. 슬슬 나가야지."
친구가 먼저 샤워를 하고 나와서 이제 슬슬 나가자고 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서 짐을 꾸리고 신발 깔창을 신발 안에 집어넣었어요.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어보니 확실히 전날보다 보송보송하고 깔끔한 느낌이 발로 전해졌어요. 친구와 저 모두 전자기기 충전 상태는 100%. 그래도 오늘은 카메라 배터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어요. 어떻게든 다다음날 아침까지 배터리 두 벌로 버텨야 했거든요. AA 사이즈 건전지 4개를 집어넣는 디지털 카메라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배터리를 구입해서 급한대로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배터리 사는 돈이 아까웠어요.
11시 50분. 숙소에서 나왔어요. 우리가 갈 곳은 우루무치 박물관. 친구가 바이두 지도로 버스를 검색했어요. 63번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고 나왔어요.
'오늘은 정말 조금만 걸어야지.'
버스를 기다리는데 상당히 더웠어요. 짐까지 다 메고 있으니 더 더웠어요. 이 짐을 메고 다니면 옷은 땀에 절어버릴 것이었고, 허리 통증이 다시 심해질 수 있었어요. 게다가 양말을 빨고 신발 깔창을 말려서 발냄새를 겨우 줄였는데 발냄새가 폭증할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 신발을 빨아올 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어요. 어떻게 해도 신발을 빨 상황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어요. 그냥 안 걸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안 걷고, 신발을 벗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벗고 있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63번 버스를 탔어요.
다행히 자리에 앉을 수 있었어요.
창밖을 내다보았어요. 창밖 풍경을 많이 찍고 싶었지만 배터리를 아껴야 했어요.
길은 예쁘게 막혔어요. 친구가 보여준 바이두 지도를 보니 오늘도 중국 국기처럼 빨간색으로 도로가 물들어 있었어요. 12시 45분인데 왜 이렇게 차가 막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신장 시각으로 계산해도 10시 45분이었어요. 차가 막힐 시간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이었어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서 납득이 가는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교통체증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어요.
내려야할 버스 정거장에 도착하니 오후 1시였어요. 이렇게 한 시간 걸릴 거리가 절대 아니었어요.
길을 건너가니 공익광고가 그려진 광고판이 보였어요.
讲文明树新风公益广告 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림은 위구르인을 정말로 중국풍으로 그려놓았어요. 이 정도면 거의 한족이 위구르인 코스프레한 수준이었어요. 그림 옆 단어 12개만 없어도 그래도 나았을 것인데...저 단어들과 정말 거리가 먼 것들이 저것을 부르짖고 있었어요. 오죽하면 한때 웹사이트에 중국인들 접속을 금지시키기 위한 주문이 존재한다는 말까지 있었죠. 그림을 제외하면 자원낭비였어요.
정면에서 보았을 때 입구로 보였던 문은 잠겨 있었고, 건물 뒤로 돌아가야 문이 있었어요. 건물 뒤로 돌아가는데 마침 폴로를 파는 식당이 보였어요.
"우리 저기에서 점심 먹고 박물관 들어갈까? 저기에서 폴로 판다."
제가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하자 친구는 별 말 없이 동의했어요. 밥을 먹어야할 때였거든요. 오후 1시라서 점심을 먹어야 했어요. 이렇게 한 번 먹어야 밖에서 한 끼를 더 먹을 수 있었거든요. 기차로 야간이동하는 것이다보니 밖에서 최대한 많이 먹어놓는 것이 중요했어요. 기차에서 판매하는 음식은 맛없고 비쌌거든요. 기차에서 뭐 사먹는다고 돈을 쓰지 않기 위해서는 기차 타기 전에 이것저것 잘 먹어야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점심을 이때 먹어야만 했어요.
가격을 물어보니 폴로 한 그릇이 10위안이었어요. 게다가 반찬은 마음껏 가져다 먹어도 된다고 했어요.
"야, 여기서 먹자! 여기가 최고네."
밑반찬은 마음껏 가져다먹어도 되고, 폴로 한 그릇은 10위안. 이보다 더 저렴한 식당은 여기 오기 전까지 단 한 곳에서도 보지 못했어요. 폴로 맛이 좋든 맛없든, 밑반찬이 맛있든 최악이든 상관 없었어요. 이 정도라면 그냥 밥을 팔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야할 정도였어요. 식당 주인은 한족이었고, 요리사는 위구르인이었어요. '10위안'이라는 가격과 '반찬 리필 가능'이라는 점 때문에 폴로 맛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여기서 우리 배부르게 먹어야해."
"당연하지."
폴로가 나왔어요.
"맛 괜찮네?"
"그러게. 맛 형편없을 줄 알았는데 괜찮은데?"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 정도로 맛있지는 않았지만, 맛있었어요. 10위안에 반찬 리필 가능 치고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괜찮은 맛이었어요. 맛집이라고 소개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누구에게 거기 괜찮은 식당 있으니 가서 먹어봐도 괜찮다고 말해도 될 정도는 되었어요. 10위안이라서 양이 형편없이 적은 것 아닌가 했지만, 양도 적지는 않았어요.
밑반찬도 맛있었어요. 폴로와 곁들여먹기 좋은 맛이었어요. 역겨운 중국 식초 냄새도 별로 심하게 나지 않았어요. 반찬도 괜찮아서 두 번씩 수북히 더 가져와서 먹었어요.
밥을 먹고 나와서 박물관 건물로 들어갔어요.
박물관 담장에는 위구르인 문화를 그린 중국의 공익광고가 붙어 있었어요. 저런 것을 엽서로 만들어서 판매한다면 종류별로 다 구입하고 싶었어요. 어딘가에서는 저런 것을 팔지 않을까? 저런 그림을 엽서로 제작해 판매한다면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상당히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중국풍과 위구르풍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서 가볍게 한두 장씩 돌리기 좋게 생겼거든요.
"여기에 짐 놓고 들어가세요."
짐검사를 받은 후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짐을 사물함 위에 올려놓고 들어가라고 했어요. 짐을 사물함 위에 올려놓고 건물 내부를 둘러보았어요.
"여기 뭔가 이상하지 않냐?"
아무리 보아도 이것은 박물관이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간간이 들어오고 있었고, 제대로 전시된 물품은 하나도 없었어요. 전시된 것은 없고 책만 꽂혀 있을 뿐이었어요. 그나마 볼 만한 것이라고는 건물 윗층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뿐이었어요. 아파트가 볼 만한 것일 정도로 정말 볼 것이 없는 곳이었어요. 직원이 한족이라 친구가 물어보았어요. 저희가 들어간 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도서관이었어요. 박물관은 그 옆 건물이었어요. 짐을 챙겨서 옆 건물로 갔어요. 대체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있는 박물관이기에 큰길쪽 커다란 문은 막아놓고, 도서관과 박물관 입구도 쉽게 분간되지 않게 만들어놓았는지 모르겠다고 사이좋게 툴툴거렸어요.
옆 건물로 들어갔어요.
"여기 미라 있는 거 맞아?"
박물관은 박물관인데 미라가 전시되어 있게 생기지 않았어요. 일단 규모가 매우 작았어요.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았을 때, 박물관 규모가 작은 규모는 아니었어요. 눈 앞에 펼쳐진 박물관 전시실 내부 규모는 학교 교실 하나보다 조금 커 보였어요. 게다가 들어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은 서예 관련 전시회였어요. 위구르 문화와 관련된 것은 보이지 않고, 관심도 없는 한족 문화와 관련된 것만 눈에 들어왔어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국에서 한족 전통 문화를 찾는 것 자체가 별 의미없는 일인데, 여기는 더욱이 한족 땅도 아닌 위구르인의 땅. 여기에서 한족 문화 관련된 것을 보는 것은 시간낭비였어요. 그래서 전시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바로 직원에게 물어보았어요.
"여기가 미라 있는 박물관이에요?"
"아니요. 여기는 우루무치시 박물관이고, 미라가 전시된 박물관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박물관이에요. 나가서 52번 버스를 타고 더 가야 해요."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친구는 스마트폰으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박물관을 검색했어요. 우루무치시 박물관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문제는 교통체증 및 자잘한 버스 정류장이 많아서 거기까지 가는 데에 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었어요. 직원에게 물어보니 박물관은 4시 반에 문을 닫는다고 알려주었어요. 지금 시각은 오후 2시 반이었어요. 지금 바로 버스에 탔다고 해도 도착 예정시각이 3시 반. 버스 기다리고, 정거장에서 박물관 찾아가는 등 이런저런 소요시간을 제하면 30분 정도 관람할 수 있었어요.
미라를 봐? 아니면 그냥 여기서 대충 구경하고 시간 좀 때우다가 돌아가?
"가자!"
어? 네가 웬일이냐!
친구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박물관으로 가자고 했어요. 순간 깜짝 놀랐어요. 박물관, 유적에 정말 흥미가 별로 없는 친구가 박물관에 가자고 제의했거든요. 귀찮게 거기까지 가 봐야 실제 관람시간은 30분 남짓. 그까짓 미라를 꼭 보러 가야하나 고민중이었는데, 전혀 예상외로 그런 쪽에 별 관심이 없는 친구가 가자고 한 것이었어요. 게다가 이것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들어와서 친구가 처음으로 가보자고 한 것.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여기텐트 치고 자기 좋지 않냐?"
버스 정거장 주변에 공원이 있었어요. 친구가 공원을 보더니 이런 공원에서 텐트 치고 자면 숙박비도 아끼고 꽤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입구에 보안검색대가 설치되어 있었어요. 이런 공원에 보안검색대를 설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겁주기? 아니면 진짜 위험해서? 이 동네가 한족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기는 했지만, 이 공원이 무언가 특별하게 생긴 공원은 아니었어요. 딱 동네 공원처럼 생긴 공원이었어요.
버스 정거장에 도착하자마자 다행스럽게도 52번 버스가 바로 왔어요.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본 결과와 달리 길은 별로 막히지 않았고, 버스는 신나게 달렸어요. 오후 2시 33분. 드디어 버스에서 내렸어요.
이제 이 길을 타고 쭉 걸어내려가면 박물관이 나온다고 했어요.
"여기 맞냐?"
"응. 정류장에서 조금 멀어."
뜨거운 햇살. 오늘만큼은 정말 웬만해서는 안 걸을 생각이었는데 예기치 않게 많이 걷고 있었어요. 우루무치시 박물관에 갈 때까지만 해도 좋았어요. 그때까지는 걸은 거리가 거의 없었거든요. 체크아웃해서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간 것, 그리고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로 걸어간 것이 전부였어요. 이렇게 줄인 걸은 거리를 미라가 전시된 박물관 찾아가며 다 채워넣고 있었어요.
미라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내가 미라가 되겠다.
날은 덥고 건조했어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공기중에 먼지도 많았어요. 입안이 마르고 목이 깔깔했어요. 햇볕은 머리 위로 쏟아져내리고 있었어요. 앞뒤로 메고 있는 가방 2개는 허리에 계속 무리를 주고 있었어요. 평소에 앞쪽으로 가방을 메고 다닐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가방을 메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자세였어요. 미라를 꼭 봐야 하나? 이집트 미라처럼 일부러 만든 것도 아니고 시체가 건조되어 말라 비틀어진 거잖아. 미라를 보러 가기 위해 미라가 되어가는 체험과정을 겪는 거야? 둘 다 말없이 앞으로 걸어갔어요.
박물관 앞에 도착했어요. 굳게 잠긴 정문. 뭔가 불길했어요.
"야, 여기 아니랜다."
친구가 경비와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더니 우리가 잘못 왔다고 알려주었어요. 우리가 온 곳은 사설 박물관. 그런데 주요 자료들을 도난당해서 작년 12월부터 문을 닫았대요. 우리가 가려는 미라가 있는 박물관은 훨씬 전 정거장에서 내려야 했어요.
"아 진짜 중국제!"
얼핏 보면 친구가 잘못한 것 같아보이지만, 친구는 잘못한 것이 전혀 없었어요. 친구는 제대로 검색했고, 검색 결과에서 알려준 박물관이 바로 이 작년 12월에 문을 닫은 이 박물관이었어요. 지도가 엉뚱한 곳을 알려준 것이었어요. 친구는 그저 지도가 알려준대로 가자고 했고, 그 길을 갔을 뿐이었어요. 둘 다 미라가 되기 직전 방황하는 패잔병이 되어 비틀비틀 버스정거장으로 걸어갔어요.
"박물관 가고 싶어?"
"미라 안 봐! 어차피 이제 박물관 가기도 늦었다."
친구가 제게 박물관 가서 미라를 보고 싶냐고 물어보자 바로 안 가겠다고 대답했어요. 이제 박물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버스가 일찍 와서 박물관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다 하더라도 딱 미라만 보고 나와야 했어요. 애초에 그냥 미라니까 신기해서 보러 가려던 것 뿐이었어요. 그 이전에 오늘 일정이 정말 아무 것도 없어서 박물관이나 보러 가자는 것이었어요. 즉, 미라만 보고 나올 거라면 애시당초 그 박물관에 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에요.
52번 버스를 탔어요.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우리가 가려 했던 미라가 전시된 박물관이 보였어요. 친구가 제게 또 가보고 싶냐고 물어보았어요. 이때 시각은 오후 3시 30분. 바로 갈 생각 전혀 없다고 대답했어요.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내려야 할까? 갈 만한 곳이라고 해봐야 홍산공원, 신장 국제 대바자르, 기차역 셋 중 하나였어요. 기차역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으니 기차역에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고, 홍산공원으로 가서 느긋하게 앉아서 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너 따바자 안 가? 팔찌 산대메."
"팔찌야 카스 가도 있겠지."
"그럼 홍산공원 가자. 거기서 앉아서 쉬다가 적당히 시간되면 기차역 가게."
"그러자."
순간 버스가 시장 앞을 지나갔어요.
"야, 우리 저 시장이나 가볼까?"
"그러게."
시장이 보이자 시장 구경이나 하고 홍산공원 가서 쉬자고 제안했어요. 친구는 좋다고 했어요. 그래서 시장을 지나쳐서 나온 첫 번째 정류장에서 버스에서 내렸어요.
친구와 버스에서 내린 곳은 홍산공원과도 그렇게 먼 곳이 아니었어요. 큰 길을 보니 저와 친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었어요.
거리에는 한족 음식점도 있고, 나이차를 파는 가게도 있었어요.
"저 가게에서 차오판 팔 건가?"
"왜? 배고파?"
"아니. 우리 기차 탈 때 저녁 먹을 거 사서 가야 하잖아. 차오판 사가면 되지 않을까 해서."
"너 폴로 좋아하잖아. 폴로 보이면 폴로 싸가자."
"안돼. 폴로는 그렇게 도시락으로 싸가면 정말 맛없어."
"뭐가 또 맛없어? 그냥 폴로 들고 타."
"내 말 들어. 그거 기름 엄청 많고 해서 식으면 엄청 맛없어. 내가 우즈벡에서 한두 번 먹어봤겠냐."
친구는 기차에 위구르식 기름밥인 폴로를 사서 들고 타자고 했어요. 그러나 저는 그 친구의 주장에 반대했어요. 친구가 폴로를 도시락으로 싸가서 먹자고 하는 이유는 이 식당으로 돌아오기 귀찮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기차역 주변에 폴로 파는 가게가 있을 테니 적당히 그거 사서 들고 타자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제가 반대한 이유는 도시락으로 싸가서 먹는 폴로는 참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요. 폴로는 기름기가 엄청나게 많아서 도시락으로 싸가서 먹기에는 적합한 음식이 아니었어요. 중국 볶음밥도 기름지기는 했지만, 폴로에 비할 바는 아니었어요. 기름진 음식일수록 시간이 흘러갈 수록 맛이 급격히 떨어져요. 오래 놔두었다 데워먹지 않고 먹을 거라면 조금이라도 덜 기름진 음식을 고르는 것이 좋아요.
여기에 폴로의 문제점이 하나 더 있었는데, 폴로는 즉석에서 바로 만들어주는 요리가 아니라 미리 크게 한 솥 만들어놓고 판매하는 요리라는 점이었어요. 기차역 주변에서 못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어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1%라도 줄이고 싶었어요. 차오판을 구입해서 기차역으로 가면 문제가 생길 일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기차에서 도시락을 먹으니 친구가 좋아하는 기차 여행 분위기도 낼 수 있고, 둘 다 밥을 먹었으니 밤에 허기질 일도 없었어요. 기차역 가기 전에 조금만 움직이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었어요.
친구와 가게로 들어갔어요.
"여기 차오판 팔아요?"
"예."
"포장 되요?"
"예."
"얼마에요?"
"11위안요."
친구와 이쪽에서 시간을 보내다 이 가게로 돌아와 차오판을 하나씩 구입한 후 기차역으로 가기로 했어요. 이제 버스에서 본 시장으로 갈 차례였어요.
이 시장은 홍산 건과일 시장 红山干果市场 이었어요. 위구르어로는 '크즐타그 쿠룩 메베 바즈르' 라고 적혀 있었어요. '크즐' 은 '붉다', '타그' 는 '산', '쿠룩' 은 '마르다, 건조하다', '메베'는 '과일'이라는 뜻이에요.
이 시장 역시 입구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여기 뭐지? 왜 이리 휑하냐?"
시장이라고 해서 왔는데 돌아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제대로 장사하지 않는 가게들까지 있었어요.
"왕대추다!"
사진 속에서 제일 알이 잘은 대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크기의 대추에요.
"여기에 박제는 왜 있지?"
무언가 잘못 왔다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시장이라고 해서 이런 저런 먹거리도 팔고 식료품도 팔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어요. 제대로 장사하지 않는 가게도 여럿이었고,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어요. 나중에야 사진에 적혀 있는 시장 이름을 보고 이곳이 건과일 시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때는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이 시장은 대체 왜 이렇게 생겼나 사이좋게 툴툴댈 뿐이었어요.
"이거 뭐냐?"
말린 도마뱀도 팔고 있었어요.
이거 조금만 구입할 수 없을까?
왕대추를 갈라 씨를 빼고 호두를 집어넣은 것이 있었어요. 이것은 몇 개 사고 싶었어요. 몇 개는 친구와 나누어먹고, 몇 개는 한국으로 들고 와서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고 싶었어요. 제가 이것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자 주인이 나왔어요. 주인은 제게 맛을 보라고 한 봉지 뜯어서 주었어요. 시식으로 준 것이라 별 부담없이 받아서 입에 집어넣었어요. 몇 입 깨물자 다시 한 번 구입 충동이 마을을 덮치는 산사태처럼 혀에서 심장으로 전해졌어요. 너무 맛있었어요. 우리나라 말린 대추와 기본적인 맛은 같았지만 향과 맛이 몇 배 더 강했어요. 큰 것은 싱겁다고 하는데 이건 큰 것이 더 진했어요. 안에 박힌 호두는 이 대추향과 어우러져 와인색과 베이지색 같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요.
"이거 하나에 얼마에요?"
"이거는 1kg으로 팔아요."
여기도 역시나 1kg으로 팔고 있었어요. 1kg 구입하는 것은 무리였어요. 사실 딱 10알 구입하고 싶었거든요. 10개만 팔면 안 되냐고 물어보았더니 안 된다고 대답했어요. 여기에서도 어쩔 수 없이 호두가 들어있는 왕대추를 구입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