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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 남역은 제가 탄 기차의 종점. 사람들이 여기에서 우루루 다 내렸어요.


'어떻게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죄다 한족이냐?'


우루무치 기차역 플랫폼


그때 문득 우루무치에서 친구가 이야기해준 것이 생각났어요. 중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한족화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인구를 이쪽으로 이주시키고 있다고 했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천산산맥을 경계로 크게 남쪽 타림 분지와 북쪽 준가리아로 분류하는데, 원래 타림 분지에는 위구르인들이 많이 몰려 살았고, 준가리아에는 한족 및 회족 비율이 타림 분지보다 높았어요. 준가리아는 몽골족 일파인 준가르족이 살던 영토였지만 청나라 건륭제가 준가르족을 끝없는 학살로 멸종시킨 후, 튀르크 민족에 속하는 위구르인, 카자흐인 등이 이쪽으로 많이 넘어왔어요. 그렇다고 해서 준가리아에 준가르족만 살았던 것은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준가리아를 차지하기 위해 한족, 튀르크인, 몽골인들 및 그 외 여러 유목 민족이 각축을 벌였어요. 준가르족이 만주족에게 멸종당한 후에 이쪽은 위구르인을 중심으로 한 튀르크인들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땅이 되었어요. 이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전체가 중화인민공화국령이 된 이후, 중국 정부는 오늘날까지 계속 한족을 이쪽으로 이주시키고 있어요. 이로 인해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구중 약 40%가 한족이에요. 그리고 2000년 인구 조사 당시 우루무치 인구 가운데 75.3%가 한족, 12.79%가 위구르인이었어요.


즉,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거의 다 한족인 것은 당연한 것이었어요. 우루무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이면서, 동시에 이 지역 한족들의 중심 도시였으니까요.


"여기 역 엄청 크구나!"



역을 빠져나가는데 투르판 북역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기차역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여기 진짜로 살벌한데?'


우루무치 기차역 광장


기차역 건물에서 나와 광장을 보자마자 느낌이 확 왔어요. 순간 긴장되었어요. 여기가 한족들 사이에서 그렇게 위험하다고 소문난 우루무치구나! 설마 재수없게 내가 와 있는 동안 테러가 발생하지는 않겠지? 사진에는 전혀 나와 있지 않지만, 나오자마자 본 것은 살벌한 경비였어요. 말이 좋아 무경이지, 인민해방군이나 마찬가지인 군인들이 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었고, 한쪽에는 장갑차도 배치되어 있었어요. 그들이 들고 있는 총의 첫 발이 공포탄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면 바로 총을 쏘아버릴 듯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사진은 찍고 간다.


乌鲁木齐南站


무장경찰에게 그 어떤 오해도 받지 않도록 아예 몸을 틀어서 기차역 사진을 찍었어요.


중국 우루무치남역


"빨리 와! 숙소부터 가자."


친구가 재촉했어요.


'얘 왜 이렇게 재촉하지?'


오후 5시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구만. 길이 조금 막히기는 하겠다. 사람들 퇴근시간이라서. 친구는 스마트폰으로 우리가 예약한 숙소로 가는 버스를 검색하며 앞으로 걸어갔어요. 친구가 대체 왜 이렇게 서둘러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냥 오늘 하루 피곤해서 빨리 숙소에서 쉬고 싶어서 그런가보구나. 오늘 갑자기 많이 걸어서 좀 피곤하나보네. 시계를 보았어요. 오후 7시였어요.


'지금이 7시라고?'


말로만 듣던 '신장 시간'이었어요. 중국은 큰 나라. 게다가 가로로 길어요. 하지만 전국이 단일 시간대로, 베이징 표준시를 사용해요. 베이징은 중국에서 상당히 동쪽에 치우쳐져 있어요. 그러다보니 서쪽으로 갈 수록 태양의 움직임과 시간이 따로 놀게 되는데, 특히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및 티베트의 경우 중국 최서단이다보니 이 차이가 엄청나게 커요. 우루무치 정도면 비슷한 경도에 속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와 3시간 시차가 있는 방글라데시에요. 이 말은 시간과 태양의 일주운동이 누가 봐도 안 맞아떨어진다는 거에요. 이러다보니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공식 시간인 베이징 표준시 외에 자기들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신장 시간'을 써요. 시계를 보고 풍경을 보니 왜 그래야하나 완벽히 이해하게 되었어요.



마침 우리가 타야할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해 있었어요. 그리고 이 버스는 이미 만원이었어요.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이 줄을 예쁘게 설 리가 없었어요. 사람들과 엉켜서 올라타면서 버스 돈 넣는 통에 돈을 넣었어요. 버스 돈 넣는 통 위에 버스표가 있어서 친구 것까지 해서 2장 뜯어서 주머니에 집어넣었어요.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손잡이를 잡았어요. 기차역에서 보이던 사람들은 대부분 한족들이었지만, 버스 안 승객들은 희안하게 대부분 위구르인들이었어요.


'버스 안에서 창밖 사진이나 하나 찍어야겠다.'


기차역에서 살벌한 감시를 보며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어요. 버스에 서서 가고 있기는 하지만 날이 밝아서 버스가 정차했을 때 창밖 풍경을 찍을 수 있었어요.


점령군


팔복집 불고기!


여기도 한류가 퍼져 있구나! 솔직히 우루무치까지 퍼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아무리 중국에서 한류가 많이 퍼져 있다고 해도 우루무치는 중국의 변방. 우루무치가 중국의 대도시 중 하나라 해도 다른 도시들과 뚝 떨어져 있는 도시에요. 여기에서까지 한글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간판에서 재미있는 점은 한자로는 八福家 라고 적어놓고 한글로는 '팔복집'이라고 적어놓은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 간판 뒤에는 장갑차와 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들이 있었어요.


"우리 얼마나 가야 해?"

"거리상으로 먼 거리는 아닌데 길이 꽉 막혀서 50분 정도 걸린대."


친구가 스마트폰에서 어플을 하나 실행시켜서 보여주었어요. 우리가 가는 길은 전부 빨간색. 즉, 끔찍한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표시였어요. 실제로 버스는 앞으로 가는 것인지 주차를 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기어가고 있었어요. 배낭만 메고 있지 않다면 내려서 걸어가도 얼추 비슷하게 걸리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으니 필연적으로 따라온 푹푹 찌는 더위. 버스에서 안 내리고 버티는 이유는 딱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어요. 첫 번째는 배낭 메고 걷기 싫어서. 두 번째는 우루무치 길을 모르기 때문에 길 찾으며 걸어가면 평소 걸음걸이보다 훨씬 늦게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 만약 아는 동네에 배낭을 짊어매고 있지 않았다면 버스에서 뛰쳐내려버렸을 거에요. 버스는 영화에서 나오는 고대 노예들이 엄청난 바위 덩어리를 낑낑대며 끌고가는 것처럼 조금 움직였다 서고, 조금 움직였다 서는 것을 계속 반복중이었어요.


'무슨 대도시도 아닌데 차만 이렇게 더럽게 막혀대냐?'


우루무치가 대도시라 해도 이 지역에서 대도시인 것이지, 상하이급 대도시는 아니었어요.


오후 7시 14분. 어떤 정거장이 나타났어요.



제 시계로는 7시 14분. 버스 시계로는 7시 16분. 2분 차이라 크게 중요한 차이는 아니었어요. 중요한 것은 그 2분 차이가 아니었어요.


'설마 저 사람들 여기 다 타는 것은 아니겠지?'


제발! 제발!


지금 정류장에 정차하기 직전. 지금도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태인데 여기에 사람들이 더 타면 절망 그 자체.



타지 마! 제발 타지 마!


간절한 기원도 소용없이, 사람들은 그 좁은 버스 안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왔어요.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라면 저는 출구 너머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 혼잡함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어요. 의자 바로 옆에 서 있다는 것이 축복 그 자체였어요. 최소한 상반신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거든요. 버스 앞쪽은 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 지경이었어요.


우루무치 버스


결국 사람들이 다 타지 못하고 버스는 출발했어요.


'언제 도착하지?'



멍하니 버스 노선도를 보았어요. 이제 거의 다 왔나? 순간 좋아서 친구에게 우리 거의 다 온 거 아니냐고 물어보았어요. 친구는 노선도를 보더니 우리가 가는 방향과 반대로 표시중이라고 알려주었어요. 좋다 말았어요. 2 정거장 더 가면 될 줄 알았는데 아직 그보다 훨씬 많은 정거장이 남아 있었어요. 당연하게도, 이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탄 이후에도 역시나 길은 꽉 막혀 있었어요.



7시 55분. 드디어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어요.


"이제 호텔 가서 짐 풀고 저녁 먹고 좀 쉬자."


만원 버스를 탔더니 진이 다 빠져버리는 기분이었어요. 구경이고 뭐고 일단 가방부터 전부 내려놓고 앉아서 쉬고 싶을 뿐이었어요. 친구도 마찬가지였어요. 게다가 이제 오후 8시. 여기 대중교통이 언제 끊기는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른 시각은 아니었어요. 해가 저무려면 아직 시간이 더 많이 흘러야겠지만 시계가 알려주는 시각은 어쨌든 밤 8시였어요. 시계를 보면 이제 늦었으니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하늘을 보면 아직 밝으니 좀 더 놀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야말로 시간개념 자체가 엉망이 되어버린 상태. 정신이 6시와 8시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채로 예약한 호텔로 갔어요.


친구는 부킹닷컴 예약한 것을 리셉션 직원에게 보여주었어요. 둘이 무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저 직원 신입인가? 체크인할 때 할 거 별 거 없는데...'


친구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어요. 직원의 표정은 '너는 누구냐'는 표정. 리셉션에서 체크인 받을 때 할 거 별 거 없어요. 예약확인하고, 필요하면 신분증 받아서 복사하고, 부킹닷컴처럼 현장결제로 들어온 손님이면 돈 받고 나서 설명해줄 것이 있으면 설명해주고 방을 주면 끝이에요. 이미 예약을 하고 왔기 때문에 흥정을 할 것조차 없었어요. 오버부킹나서 방이 없는 것이라면 직원이 다른 숙소를 구해서 넘겨줄 것이었구요. 게다가 친구도 호텔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데에서 우왕좌왕할 친구는 아니었어요. 분명히 뭔가 상황 잘못 돌아가고 있었어요.


"야, 무슨 일이야? 왜 아직도 방 안 줘?"

"우리 방 예약 안 되었대. 자기들은 부킹닷컴에 숙소 올린 적이 없대!"

"무슨 소리야?"


기차에서 뭔가 그냥 이번에는 부킹닷컴으로 예약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예감이 적중했어요. 친구가 부킹닷컴에서 예약한 숙소는 우리가 도착해서 체크인을 시도한 그 숙소가 맞았어요. 그런데 직원은 우리들은 부킹닷컴에 올려놓은 적 자체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부킹닷컴에 이 숙소를 올려놓은 사람은 대체 누구야?


중국은 외국인 투숙 가능 숙소와 내국인 전용 숙소가 엄격히 분리되어 있어요. 중국 또한 관광객 그 누구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거주지 등록제도가 존재해요. 이 거주지 등록제도의 존재를 확실히 인식하게 될 때가 바로 중국에서 숙소 구할 때에요. 내국인 전용 숙소에서는 외국인을 절대 받아주지 않거든요. 간혹 몰래 받아주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웬만해서는 안 받아줘요. 몰래 받아주는 경우가 오히려 특수한 경우에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후기를 읽어보면 무슨 바이럴마케팅하는 것처럼 한결같이 거의 똑같은 숙소에서 머무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더 웃긴 것은 이 숙소가 내국인 전용 숙소가 아니라는 것. 외국인 투숙 가능 숙소까지는 맞았어요.


"그냥 다른 곳 찾자. 이러다가 진짜 아무 것도 못 하겠다."

"안 돼! 그러면 100위안 그냥 날아간단 말이야."

"부킹닷컴으로 예약했는데 돈이 왜 날아가? 예약할 때 너 카드 걸어놓으라고 했어?"

"어!"


하아...진짜 꼬이네...


부킹닷컴은 아고다, 익스피디아 (호텔스닷컴)와 달리 현장결제에요. 부킹닷컴으로 예약할 때 숙소에 따라 카드 번호를 입력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는 무단 예약취소 - 즉 노쇼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일정액수를 숙소 및 부킹닷컴에 변상시키기 위해서에요. 숙소측에서 예약 단계에서 카드 번호를 입력하게 할 지 설정할 수 있는데, 카드 번호를 입력하게 설정하면 손님이 무단 예약취소를 할 경우 일정 금액 변상을 받을 수 있어요. 대체로 1박 숙박요금을 지불하는 편이에요. 만약 카드 번호를 입력하도록 설정해놓지 않으면 노쇼가 발생했을 경우 그날 방만 팔지 못하고 날린 것이 되요.


하필이면 친구가 카드 번호까지 입력해놓은 상황. 어떻게든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해야만 했어요. 어물쩍 넘어가면 한 사람당 50위안씩 쓸 데 없는 지출을 해야 했어요. 50위안이면 밥이 5끼.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어요. 사실 이런 상황 자체가 아주 짝퉁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뿐이었어요. 몇 번을 확인했지만 친구가 예약한 숙소로 온 것이 맞았어요. 단지 이 숙소에서 우리들은 부킹닷컴 통해서 예약을 받지 않는데 무슨 소리냐고 해댈 뿐.


"부킹닷컴에 전화해봐. 어쨌든 우리는 맞게 온 거고, 이쪽에서 부킹닷컴에 등록 안한 것 또한 사실이라면 이건 부킹닷컴이 잘못한 거니까 자기들이 취소시켜주겠지."


이번에는 친구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상황. 진짜 꼬일대로 꼬인 상황이었어요. 친구 핸드폰은 아이폰. 제 핸드폰은 갤럭시3. 당장 인터넷으로 부킹닷컴 전화번호를 찾아보고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친구 핸드폰은 몇분 뒤 꺼질 상황. 그나마 다행이라면 직원이 핸드폰 충전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어요.


친구는 안에서 핸드폰을 잡고 씨름했고, 저는 친구 짐을 모두 들고 잠시 밖으로 나왔어요.


우루무치 저녁시간


밤 8시 30분. 아직도 훤했어요. 하늘을 보면 지금 급해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예약취소하고 다른 숙소를 찾아나서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시계를 보면 매우 급한 상황. 8시 30분이었어요. 다음날 일정을 몇 시에 시작할지 모르겠지만, 아침 10시에 일정을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12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아있을 뿐이었어요. 게다가 이 예약 문제는 빨리 해결해내지 못할 수록 우리에게 상당히 불리해지는 문제였어요.


친구가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밖으로 나왔어요.


"왜? 이번에는 또 무슨 문제야?"

"안에서 되는 게 없어. 와이파이도 안 되고 3G조차 안 잡혀."


이 건물은 속에 철판을 꾸겨넣었나? 밖으로 나오니 인터넷이 되었어요. 친구는 밖에서 무언가 검색하더니 다시 안으로 들어갔어요. 한숨을 쉬며 호텔 입구에 주저앉아서 물만 마셨어요. 오늘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취소가 제대로 되었다 치자. 이 시각에 숙소 구할 수 있을 건가? 이제 시계는 밤 9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어요. 외국인 투숙 가능 숙소를 찾는 것도 문제였고, 가격도 문제였어요.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어요. 짐을 전부 들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실례해요. 화장실 어디에요?"


직원은 딱 보아도 한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즈베크어로 말했어요.


"저는 위구르어 잘 몰라요. 카자흐어 알아요?"

"예. 화장실 어디에요?"


직원은 화장실을 빌려주었어요. 화장실에서 볼 일을 해결한 후, 직원과 대화를 나누어보려 시도했어요. 그러나 몇 마디 채 나누지 못하고 좌절했어요. 튀르크 언어들 공부를 너무 오랫동안 손놓고 있었어요. 카자흐어는 혼자 책을 보며 공부해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직접 카자흐어로 대화를 나누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1년 머무르며 공부했던 우즈베크어도 많이 잊어버리고 감을 잃어버렸는데 책으로만 독학으로 공부했던 카자흐어가 될 리가 없었어요.


친구 핸드폰이 어느 정도 충전되었고, 친구가 간신히 인터넷을 이용해 부킹닷컴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어요. 친구가 통화하더니 직원에게 통화시켜주었고, 다시 친구가 전화를 받더니 끊었어요.


"잘 되었어?"

"응. 취소되었대."


이제 2박 머무를 숙소를 찾아야할 차례. 친구가 예약한 곳은 더블룸 1박에 200위안이었어요. 2박이면 400위안. 감당이 되지 않는 액수라 밖으로 나왔어요.


"일단 아무데나 다 들어가보자. 운 좋으면 몰래 받아줄 수도 있잖아."


너무나 짝퉁스러운 일을 당했다가 겨우 살아났어요. 갑자기 용기가 생겼어요. 어차피 멀리 가기는 그른 상황. 이제 밤 9시도 넘었어요. 아직 훤했지만 시계는 9시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예약도 안 했고, 밤 9시 넘어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숙소를 찾는 손님. '호구님 어서오십시오'라는 소리 듣기 딱 좋은 사람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있다면 아고다, 익스피디아, 부킹닷컴 등의 OTA (online travel agency) 에서 숙소를 검색한 후, 직거래를 시도해서 저렴하게 들어가는 방법이 있어요. 문제는 여기가 중국이라는 사실. 느긋하게 친구의 스마트폰으로 검색만 하고 있을 수 없었어요. 우리나라 및 다른 나라였다면 느긋하게 검색만 해도 되었어요. 숙박업소에서 내국인, 외국인 가려받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까요. 문제는 여기가 중국이라는 것. 숙박업소에서 아예 내국인 전용, 외국인 투숙 가능으로 설정해놓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인 입장으로 보면 OTA에 쓸 데 없는 정보가 너무 많았어요. 가만히 자리에 죽치고 앉아서 이런 쓸 데 없는 정보를 일일이 걸러가며 숙소를 찾아볼 여유가 없었어요. 게다가 멀리 이동할 수도 없었구요. 당장 주변에 있는 곳으로 찾아보아야 했어요.


무턱대고 숙소가 보일 때마다 들어가보았어요. 당연히 다 쫓겨났어요. 전부 내국인 전용 숙소라서 외국인인 우리들은 숙박할 수 없다고 했어요.


"야, 공원 가자. 너 텐트 가져왔잖아! 그거 펼치고 자자. 충전은 내일 식당 가서 하든가 하고."


친구가 가져온 텐트를 보며 말했어요. 친구도 괜찮겠다고 동의했어요. 여기가 위험하든 안 위험하든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 없는 숙소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날이 진짜로 깜깜해지기 전에 공원 가서 텐트를 치는 것이 그나마 나은 선택이었어요. 밤새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길 위에 쭈그려 앉아 선잠을 잘 수는 없었어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누워서 자는 게 20배는 더 나았어요.


공원은 버스를 타고 온 방향을 거슬러 올라가야 있었어요. 마침 숙소가 하나 나타났어요. 친구와 같이 들어가보았어요. 또 쫓겨났어요.


그때 갑자기 기적이 일어났어요. 숙소 주인 아주머니께서 외국인 전용 숙소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알려주시며 그 숙소 이름을 종이에 적어주셨어요.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보았어요. 숙소 주소와 전화번호가 나왔어요. 그 숙소로 전화를 해보았어요.


"야! 방 있대! 그리고 아까 그 숙소보다 가격도 싸!"


방향을 180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어요. 더블룸 1박에 75위안. 게다가 외국인 투숙 가능. 노숙을 피하게 된 것 자체에 감사했어요. 다행히 체크인을 할 수 있었어요. 1위안 짜리는 1위안의 가치를 한다는 중국의 말처럼 딱 싼 게 비지떡이기는 했어요. 일단 엘리베이터가 없었어요. 깔끔함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안 좋아할 숙소였어요. 그렇게 크게 더럽지는 않았지만 낡고 허름했어요.


"너 괜찮냐?"

"뭐 이 정도 가지고."


친구는 제가 방을 보고 기겁할 줄 알았나봐요. 그러나 이것보다 훨씬 처참한 숙소에서도 머물러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열악한'이 아니라 '처참한'이에요. 화장실 물이 내려가지 않아서 쓰레기통에 물을 받아 변기에 쫘악 쏟아서 물을 내리는 것은 기본이고, 온수로 샤워하려는데 온수에서 전기가 찌릿찌릿 통한 적도 있어요. 벽 색깔과 조명을 기괴하게 해놓아서 어디에 눈을 두어야할지 정신차릴 수 없었던 방도 있었구요. 이 정도 수준이면 제 기준에서는 괜찮은 방이었어요. 한 사람당 1박에 37.5위안이면 이보다 더 열악해도 용서가 되었을 거구요. 1위안이 약 170~180원이고 10위안이 볶음밥 한 그릇 가격이에요.


체크인했을 때가 9시 30분. 둘 다 침대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었어요. 다음날 숙소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방을 옮겨야한다고 해서 짐을 제대로 풀 수도 없었어요.


"나가서 저녁 먹자."


밤 10시 반. 밖으로 나왔어요.


urumqi


이제 깜깜했어요. 예상했던 대로 거리에서는 꼬치 구이를 팔고 있었어요. 숙소 옆에서는 양꼬치 하나에 3위안이었어요.


"큰 길로 나가볼까?"



"아직도 식당이 영업중이네!"


정말 깜짝 놀랐어요. 단순히 술집 같은 것이 아니라 밥집이 영업중이었어요. 이제 시각은 밤 11시. 밤 11시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웬만한 도시들도 식당은 문을 닫은 시각이에요. 그런데 우루무치에서는 이 야심한 시각에 식당들이 활황이었어요. 사람들이 계속 식당 안으로 식사를 하러 들어갔어요. 야심한 시각에 먹을 것이라고는 오직 꼬치 구이 밖에 없던 우즈베키스탄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었어요.


"양꼬치 얼마에요?"

"5위안."


순간 고민되었어요. 5위안짜리 양꼬치와 3위안짜리 양꼬치. 호텔 옆에서 먹으면 3위안. 여기에서 먹으면 5위안. 5위안짜리가 아주 조금 더 크기는 했어요. 친구는 이 가게로 들어가자고 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계속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거든요.


여기 꽤 신기하다!


양꼬치 굽는 모습을 보니 우즈베키스탄과 많이 달랐어요. 양꼬치를 굽는데 그 위에 난을 올려놓아서 난도 같이 굽고 있었어요. 가끔씩 난에 양꼬치를 탁탁 털어서 난에 양고기 기름을 먹였어요. 여기에다 양꼬치에 뿌리는 양념가루를 난에도 뿌려주었어요. 이것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보지 못한 방식이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케밥을 구울 때 난을 같이 굽지 않거든요.


양꼬치 4개와 난 하나를 시킨 후 안으로 들어갔어요.


"뭐 더 시켜야하지 않을까?"


탁자를 보니 메뉴가 있었어요.


"이거 먹어보자!"



바로 위에 적힌 것은 위구르어로, '쿠슈카츠 틸리 수육에쉬' 라는 말이에요. 쿠슈카츠는 참새, 틸은 혓바닥, 수육아쉬는 수프. 물론 진짜 참새 혓바닥이 들어간 음식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만약 참새 혓바닥이 들어간 음식이라면 이런 곳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리가 없었으니까요. 참고로 쿠슈카츠 틸리 수육에쉬는 중국어로 面旗子라고 적혀 있었어요.


"여기에서 술 마셔도 될까? 양꼬치도 있는데 여기에서 마시면 딱이잖아."


친구가 이왕 이렇게 음식 시킨 것, 술도 같이 마시자고 했어요. 처음에는 친구 말에 동의했어요. 그때 옆에 적힌 말이 눈에 딱 들어왔어요.


- 식당내 음주금지.


"여기서 술 먹지 말란다."

"몰래 마시면 되지 않을건가?"

"안 돼. 그랬다가는 진짜 시비걸릴 수 있어."


메뉴판 사진을 찍으면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어요.




양꼬치가 나왔어요.



우즈베키스탄과 다르게 빵을 위에 덮어놓았어요.


위구르 양고기 케밥


이것이 바로 위구르 카밥과 우즈벡 카봅의 차이점.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저렇게 난에 케밥에서 나오는 양기름을 바르고 양념을 치지 않아요. 논을 같이 시키면 그냥 논을 줘요.



이것이 바로 쿠슈카츠 틸리 수육에쉬에요. 길고 작게 빚은 밀가루 건더기가 잔뜩 들어 있었어요.


식당에서 나오니 밤 11시 30분. 다시 숙소로 돌아갔어요.


"야, 아까 그 3위안짜리 케밥 먹어볼까? 내가 살께."

"너 먹어보고 싶었구나!"

"궁금하잖아. 2위안의 차이. 우수 맥주 하나 사서 먹고 가자."


호텔 옆 3위안짜리 케밥을 먹어보고 싶었어요. 친구는 제가 사준다고 하자 별 말 않고 먹겠다고 했어요. 가게에서 빨간색 우수 맥주를 구입한 후, 3위안짜리 양꼬치를 파는 식당으로 갔어요.


"양꼬치 2개 주세요."


위구르어로 주문했어요.



양꼬치가 구워질 때까지 양꼬치를 굽는 아저씨 및 다른 위구르인 아저씨들과 이야기했어요. 제가 위구르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상당히 놀라워했어요. 사실 저는 위구르어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모두 우즈베크어로 이야기했어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어찌어찌 대화가 되었어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이유는 모두 제게 있었어요. 위구르인 아저씨들은 제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들었지만, 저는 그 아저씨들의 위구르어를 그렇게 썩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냥 대충 이런 말 하는구나 하는 정도였어요. 우리 말로 비유하자면 '가다' 라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알겠는데, '간다' 인지 '갔다' 인지 '갔었다' 인지 '갈 거다' 인지 분간을 못 하고 있었어요.


안에서 뚱뚱한 멧돼지 같이 생긴 청년이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왔어요. 인상이 상당히 안 좋았어요.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와서 케밥 굽는 아저씨게에 소리치자 한 아저씨가 길가로 끌고가서 의자 위에 앉혔어요.


케밥이 나왔어요. 친구는 그때 양꼬치를 굽는 아저씨를 사진으로 찍었어요.


"너 왜 사진 찍어!"


멧돼지처럼 생긴 청년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친구에게 시비를 걸었어요. 모두가 놀랐고, 친구는 크게 당황했어요. 위구르인 아저씨들이 청년에게 몰려가더니 청년을 끌고 가서 강제로 의자에 앉혔어요. 케밥 굽는 아저씨가 난을 반으로 갈라서 그 속에 케밥 두 줄을 집어넣어서 멧돼지처럼 생긴 청년에게 주었어요. 청년은 진짜로 돼지가 여물 먹어대듯 빵을 우걱우걱 먹더니 케밥 굽는 아저씨에게 지페 한 장을 내었어요. 아저씨가 거스름돈을 주자 필요없다는 듯 꼬챙이에 꽂혀 있는 고기가 쌓여 있는 그릇 위로 내팽개쳤어요. 이것 때문에 또 위구르인 아저씨들과 청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아저씨들이 청년 바지주머니에 거스름돈을 쑤셔넣고는 청년을 쫓아보냈어요.


"쟤 위구르인 아니야. 위구르인은 저러지 않아. 쟤 카자흐인이야. 카자흐인들이 나빠."


청년을 쫓아보낸 후 위구르인 아저씨들이 제게 우르르 몰려와 말했어요.


'여기도 카자흐인 인상이 안 좋구나.'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 우즈베크인들은 카자흐인들을 미개하고 거친 사람들이라고 여겼어요. 카자흐스탄에서 카자흐인들에게 강도를 당하거나, 카자흐인들이 쉽게 시비를 건다는 말을 간간이 들었었어요. 카자흐인들을 그렇게 보는 것은 우즈베크인들만 그러는 줄 알았어요. 사실 중앙아시아 튀르크 민족 중 역사적으로 가장 문화가 발달한 민족은 우즈베크인이거든요. 카자흐인, 키르기스인들은 유목민이고, 꽤 많은 카자흐인들이 노예 사냥에서 잡혀서 아랍 세계로 팔려나갔어요. 투르크멘인들은 꽤 많은 책에서 대놓고 이들은 약탈이나 하면서 생활하던 민족이라 했구요. 그런데 위구르인들도 똑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말도 비슷한데 생각도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친구에게는 정말 운이 없는 하루였어요.


숙소로 돌아와 화장실로 들어가보니 물이 내려가지 않았어요. 역시 1위안짜리 물건은 1위안짜리 값어치를 하는 중국이었어요. 샤워를 하고 친구에게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후 쓰레기통에 물을 받아서 뒷처리를 하라고 한 후 핸드폰으로 와이파이를 접속했어요. 우루무치에서 일했던 친구에게 말을 걸었어요. 친구가 바로 답장을 해 주었어요.


"우루무치 볼 거 있어?"

"자연경관이지, 뭐. 중국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분위기는 완전 다른 나라."

"위구르인들 많아?"

"응. 그 동유럽 애들도 많이 보이지. 시간차도 약간 있어서 거기 토박이들은 우리 기준으로 아침을 한 10시~11시에 시작해고."

"중어 잘 통해?"

"응. 안 통하는 사람도 있긴 해."

"위구르 애들 성격 어때? 막 다혈질?"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친해진 사람이 없어서."


친구가 한 가지 조언을 해 주었어요.


"으슥한 데는 가지 마. 중국애들도 그쪽 애들은 겁나 위험하다고 피하니까."


응. 조금 전에 친구 시비걸릴 뻔 했다...친구가 시비걸릴 뻔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우루무치 시내 볼만해?"

"내가 갔을 당시는 한창 개발하고 있었으니 지금은 건물 좀 들어찼을 걸?"

"그래?"

"응. 내가 갔을 때는 좀 휑했어."

"위구르는 외모가 아예 다르지?"

"응. 중국인이 아니."

"우루무치에 맛있는 거 많아?"

"볶음 요리가 좀 많은 듯?"

"제일 맛있는 음식은 뭐?"

"다양하게는 못 먹어봤어. 그냥 대체적으로 다 먹을만 한데, 좀 느끼해."

"맛 거지같은 음식 뭐 있어? 절대 피해야할 거."

"그건 눈으로 보면 아니다 싶어."


친구와 이야기하다 잠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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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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