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17 중국 우루무치 타타르 모스크 乌鲁木齐市塔塔尔寺

좀좀이 2016. 8. 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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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지?"

"10시."


방에 창문이 있기는 했지만 창문 바로 앞이 옆 건물 벽이었어요. 8시쯤 한 번 깨어났지만 그때 친구가 자고 있어서 다시 잤어요. 친구는 9시쯤 깨어나서 제가 자는 것을 보고 다시 잤대요. 둘이 교대로 돌아가며 깨어나서 상대가 자는 것을 보고 다시 잠을 청하다보니 어느덧 아침 10시가 되어버렸어요. 잠을 깊게 푹 잘 잤어요. 방이 컴컴해 불을 켜야만 밝은 것 빼고는 만족스러웠어요.


씻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어요. 직원에게 열쇠를 반납하자 새로운 열쇠를 주었어요. 이번에는 5층. 한 층 더 높아졌어요. 짐을 놓고 밖으로 나왔어요.



길가에 우루무치시 지도가 보이자 일단 사진을 찍었어요.


urumqi map


"너 책 사야 하지?"


친구가 갑자기 물어보았어요.


"응. 위구르 교과서."

"그러면 서점 가자."


우루무치는 볼 것이 그렇게 많은 도시는 아니었어요. 국제 바자르와 홍산공원 정도가 볼 것이라고 할 수 있었어요. 사실 우루무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중심 도시'라는 상징성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그렇게까지 볼 것이 많은 도시는 아니거든요. 우루무치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카나스'라는 매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는 우루무치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버스 타고 갈까, 걸어갈까?"

"그냥 걸어가자. 어차피 오늘 시간 많잖아."


친구가 서점에 어떻게 갈지 제게 의견을 물어보자 그냥 걸어서 가자고 대답했어요. 일단 친구 말에 의하면 걸어서 못 갈 거리가 아니었어요. 걸어가면 길거리 풍경도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고, 버스비도 아낄 수 있었어요. 버스비야 1위안 정도 하겠지만, 그거라도 일단 아껴야 했어요. 쿠처를 가게 된 이상 천산신비대협곡을 가는 것은 확정이었는데, 천산신비대협곡까지 가는 교통비 및 입장료가 상당히 비쌌어요. 더욱이 다른 친구가 합류할 시안에서의 여행 경비를 생각하면 아낄 수 있는 부분에서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껴놓아야 했어요.


"아침 뭐 먹지?"

"글쎄...그냥 대충 먹자."


길을 걸어가는데 난을 파는 가게가 보였어요. 아침은 간단히 난에 음료수로 때우기로 하고 난을 하나 산 후, 가게로 들어갔어요.


'무엇을 마셔볼까나.'


위구르어가 적힌 음료수가 매우 많았어요.


'위구르어가 적힌 음료수를 마시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경험 아닐까?'


중국 여행 가는 사람은 많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을 가는 사람 자체가 많아요. 중국 식료품 또한 우리나라에 상당히 많은 종류가 들어와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 한족의 땅에서 생산된 것들이 들어와 있고, 중국 여행가는 사람 대부분 한족의 땅을 여행하고 와요. 그러다보니 위구르 지역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은 아직까지 접하기 어려워요. 위구르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을 접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uyghur juice


경험 삼아서 먹어본 데에 의의를 두기로 했어요. 포도주스 맛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있지는 않았어요. 이것을 마실 바에는 밀크티나 콜라를 사서 마시겠다고 다짐했어요. 콜라는 믿고 마실만한 음료이고, 밀크티는 눈이 번쩍 뜨이게 맛있었거든요. 나쁘지는 않았지만 음료수 구입해 마셔볼 기회를 이 음료수로 하나 더 날리고 싶지 않았어요.


'저 오디 먹을 수 있나?'


가로수 중에 오디 나무가 많았어요. 오디 나무에는 하얀 오디, 보라색 오디가 열려 있었어요. 중국하면 공해, 매연. 이 오디를 그냥 따먹어도 되는 건지 궁금해하며 걷는데 몇몇 위구르인들이 오디를 따서 먹는 것이 보였어요. 그제서야 오디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낮은 곳에는 오디가 하나도 없었고, 높은 곳에만 오디가 매달려 있었어요. 낮은 곳은 사람들이 다 따먹어버렸기 때문에 오디가 없었어요.


팔을 쭉 뻗어서 몇 개 남지 않은 오디를 땄어요. 입으로 후후 불어서 친구에게 한 알 주었어요.


"이거 뭐?"

"오디."

"먹어도 되는 거?"

"응. 몸에 좋은 거야."


살짝 풀맛이 나면서 단맛이 느껴졌어요.


'먹을만 하네.'


"이거 맛있다! 나 더 따줘."


친구가 오디를 더 따달라고 졸랐어요.


"야, 너가 따서 먹어."


친구에게 알아서 따서 먹으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혹시 더 따서 줄만한 것이 있나 살펴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낮은 곳은 사람들이 다 따먹어서 없었고, 껑충 뛰어도 손이 닿지 않는 곳에만 열매가 매달려 있었어요. 이게 무게가 좀 나가거나 딱딱한 것이 아니라 뛰어서 열매만 잡아뜯기 어려웠어요. 웬만하면 몇 알 더 따주겠는데 손에 닿게 생긴 것이 없었어요.


"나 저거 따줘."


친구는 계속 오디를 더 따달라고 보챘어요.


"저렇게 높은 건 나도 못 따."


손이 닿아야 따든 말든 하지. 껑충 뛰어서 팔을 쭉 뻗어도 잡히게 생기지 않은 가지에만 매달려 있으니 저도 답이 없었어요. 친구는 계속 칭얼대었어요. 그러다 있는 힘껏 뛰면 손으로 건드려볼만한 높이에 있는 가지에 오디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어요. 여기는 껑충 뛰지 않는 한 건드릴 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아직 손대지 않은 것 같았어요. 오디를 더 따달라고 보채는 친구에게 제 카메라를 들고 있으라고 한 후, 껑충 뛰어서 나뭇가지 끝을 잡았어요. 나뭇가지 끄트머리에 달려 있는 하얀 오디를 따서 친구에게 주었어요. 친구는 매우 좋아하면서 오디를 먹었어요.




여기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였지!


한적한 거리. 빗자루로 가게 앞을 쓸고, 물을 뿌리는 소리. 이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고 있었어요. 차도에는 차가 별로 없었어요. 가끔 달릴 때마다 얇은 계란막 같은 먼지가 하늘하늘 날아오르기는 했지만, 장막을 만들어낼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모두가 출근해 일을 시작하는 어정쩡한 아침의 큰 대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그 시간 속 그 느낌. 11시 반이 되어가는데 번잡함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여기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중심도시 우루무치. 일반적인 삶에는 신장 시각이 적용되고 있었어요. 11시 반은 이 사람들에게 9시 반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이것은 중국풍으로 나타낸 위구르인 그림이구나!





위구르어와 한자를 읽어보니 대충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어요. 중국 공산당이 위구르인들 대상으로 프로파간다 짓을 목적으로 세운 간판이었어요. '나는 당을 내 어머니처럼 여긴다', '중국 공산당이 없으면 새로운 중국은 없다'...그래서 장갑차를 동원하고 총을 들고 감시하는구나! 당을 어머니라 여기다니, 어머니가 자식을 참 많이 패고 차별도 많이 하나보군. 어머니가 욕심 많고 못된 뺑덕어멈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소련의 우즈베크인을 대상으로 한 선전물의 그림과 얼핏 보면 비슷해보이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었어요. 소련풍은 회화 느낌이었고, 중국풍은 목판화 느낌이었어요.


참고로 아래 사진은 우즈베키스탄 것이에요.



"여기는 왜 러시아어가 많이 보이지? 키르기즈랑 카자흐에서 이쪽으로 많이 오나?"



러시아어로 적혀 있는 간판이 많이 보였어요. 심지어는 큰 건물 위에 러시아어로 무언가 적혀 있었어요.



건물 위에는 러시아어 Мировая торговля-Жуйда 가 매달려 있었어요. 러시아어라는 것인지는 알겠는데 무슨 뜻인지는 몰랐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1년간 있으면서 러시아어는 공부를 안 했거든요. 우즈베크어만 알고 러시아어를 모르면 불편한 경우가 가끔 있었지만 끝까지 러시아어는 공부하지 않았어요. 우즈베키스탄 가기 전부터 알고 있던 러시아어 인사 Здравствуйте 의 발음만 좋아졌어요. 그래도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어를 본 것이 있어서 키릴 문자로 적힌 것을 보고 러시아어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는 분간할 수 있게 되었어요. Мировая 가 вая 로 끝났으니 이건 러시아어일 확률이 매우 높았어요. 이곳 간판을 우크라이나어나 벨로루시어로 적어놓았을 리는 없었구요.


restaurant in urumqi


시계를 보니 11시 40분. 이 식당은 이제 청소를 하고 있었어요.


'어제 밤 늦게까지 영업했나?'


전날 아주 야심한 시각에 성업중인 식당들 모습을 잊을 수 없었어요. 밤에 식당에서 열심히 먹는 문화는 의외로 쉽게 보기 어려운 문화에요. 서울 종로조차도 밤 11시가 되면 많이 한산해지고 문 닫은 가게들이 보여요. 지방으로 내려가면 말할 것도 없구요. 아무리 공식 시간 체계인 베이징 시간과 실생활용 시간 체계인 신장 시간 둘 다 사용하는 지역이라지만 그렇게 늦은 시각까지 영업하는 식당들 모습을 보고 지금껏 와보지 못한 새로운 곳에 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우루무치 만두 가게


"한국인이세요?"


위구르인이 만두를 찌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다시 길을 가려는데 위구르인 여자가 저와 친구에게 한국인이냐고 중국어로 물어보았어요.


"예. 저희 한국인이에요."

"반가워요!"


위구르인 여자는 자신이 근처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으며,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소개했어요.


"저 만두 가게 맛있어요."


우리가 방금 사진 찍은 가게에서 파는 만두가 맛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심카드 구입하고 올 걸 그랬나?'


위구르어는 한 번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우즈베크어와 비슷해서 보면 아는데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었어요. 비록 교재가 있기는 했지만 근성을 가지고 교재를 꾸준히 보기 힘들었어요. 위구르어 교과서가 있다면 그것을 읽어나가며 조금씩 공부했을 거에요. 그러나 아직 현재까지 교과서를 구하지 못했어요. 여행 오기 전 교과서가 있었다 하더라도 상당히 고생했을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위구르어는 배워본 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외국어를 공부할 때 물어보았을 때 대답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큰 도움이 되는 일. 게다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면 최소한 한국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 한국에 관심이 없는 친구보다 관심이 있는 친구가 훨씬 좋기 때문에 위구르어를 잘 아는 위구르인을 친구로 만들기 매우 좋은 기회였어요. 위챗 아이디를 교환하고 싶었지만 중국 심카드를 구입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상대를 등록할 길이 없었어요.


'다른 사람 또 만날 수 있겠지.'


친구는 위구르인의 말에 솔깃해서 만두를 먹고 가자고 했어요.


"지금 시간 애매하잖아. 이따 돌아올 때 저녁으로 먹든가. 지금 만두 먹으면 점심 못 먹어. 점심으로 먹을 거면 가구."


한 시간만 일찍 왔다면 아침 식사로 만두를 먹었을 거에요. 그러나 이제 12시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지금 만두를 먹으면 점심 먹기 상당히 애매해졌어요. 난을 다 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친구가 많이 잘 먹는 편도 아니었어요. 만두 크기 하나가 앙증맞게 작은 것이 아니라 큼직해서 가볍게 먹을 것은 딱 보아도 아니었구요. 친구도 점심을 포기하면서까지 먹을 생각은 없었는지 그냥 가자고 했어요.


"저거 위구르 과자점 아냐?"


길을 걸어가는데 과자점 하나가 나왔어요.


"저기 들어가보자. 위구르 과자면 내가 사줄께."


위구르 과자 중 특별한 것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친구에게 위구르 과자 맛보게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과자점 안으로 들어갔어요. 만두는 점심과 겹치는 바람에 못 먹었지만 과자 몇 개 정도는 그냥 먹어도 별 무리 없었어요. 상하이에서 저한테 이것저것 보여준다고 데리고 다닌 것도 고맙고, 앞으로도 중어 해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 다 처리해야 하니 뭐라도 하나 사주고 싶기도 했어요.


가게 안에는 위구르인 여자 점원이 책을 읽고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거 위구르 과자인가요?"

"예, 맞아요."


과자를 보니 우즈베키스탄에서 먹었던 것들과 거의 비슷했어요. 몇 개 골라서 계산을 하고 100위안 지폐를 내었어요.


"잔돈 있어요?"

"잔돈 없는데요."


직원은 매우 곤란해했어요. 문 연 지 얼마 안 되어서 거슬러줄 잔돈이 없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저도 방법이 없었던 것이, 과자값을 낼 만큼의 잔돈은 없었어요. 과자값을 내기 위해서는 100위안짜리 지폐를 내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방법도 없었어요. 점원이 가격을 할인해준다면 참 좋겠지만, 제가 갖고 있는 잔돈 전부와 과자 가격의 차이가 너무 커서 그런 것을 바랄 수도 없었어요.


"혹시 위챗 갖고 계세요?"


친구가 점원에게 중국어로 물어보았어요.


"예. 있어요."

"그러면 위챗으로 송금해주어도 되요?"

"예, 그러세요."


일단 친구가 위챗으로 송금해주는 방식으로 결제를 한 후, 제가 나중에 100위안을 깨서 잔돈을 만든 후 친구에게 돈을 주기로 했어요. 친구는 점원과 위챗 아이디를 교환한 후, 위챗으로 돈을 송금했어요. 점원이 친구와 위챗 아이디를 교환하는 것을 보고 점원에게 저도 점원을 위챗 친구로 등록한 후, 위구르어 공부할 때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보아도 되냐고 물어보았어요. 점원은 그러라고 하면서 자신의 폰을 제게 건넸어요. 제 위챗 아이디를 입력하고 검색 버튼을 눌렀어요.


"어? 왜 내 아이디가 검색이 안 되지?"


제 아이디로 검색한 결과가 아무 것도 뜨지 않았어요. 혹시 잘못 입력한 것 아닌가 확인했지만 제대로 입력했어요.


"내가 친구등록했으니까 나중에 너한테 알려줄께."


친구는 자기가 친구등록을 해놓았으니 나중에 제게 연결시켜주겠다고 했어요.


"이거 맛있다!"


친구는 좋아하며 과자를 먹었어요. 저는 그 과자가 푸석거려서 금방 목마르게 만드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개만 맛보았어요. 맛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먹었던 것과 거의 같았어요. 푸석거리고, 속에 견과류가 조금 들어가 있으며, 단맛이 강했어요. 우리나라 과자 중 이것과 비슷한 것은 아예 없었어요. 이런 푸석거리는 과자는 한국에서 그렇게 인기가 좋지 않거든요. 터키 전통 과자점에 가면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 시중에서 파는 과자 중에서는 없어요.


"저기 모스크 가보자."


신장 위구르 자치구 골목길


"여기서 우리 또 밥 얻어먹는 거 아니야?"

"설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위구르어 해봐."


그렇지 않아도 모스크에서는 위구르어로 이야기하고, 친구에게는 웬만하면 가만히 있으라고 할 생각이었어요. 위구르인과 한족 사이가 좋지 않고, 모스크는 이런 성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장소였기 때문이었어요. 일단 우즈베크어로 이야기해보고, 썩 반기는 눈치가 아닌 것 같으면 돌아나올 생각이었어요. 위구르인들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언제 문제가 어떻게해서 생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어요. 당장 전날 밤 친구가 어이없게 카자흐인에게 시비가 걸릴 뻔 했어요. 그리고 외국에서 중국인 반대 운동이 일어나거나 중국인에 대해 차별을 할 때, 한국인과 중국인 구분을 못해서 엉뚱한 한국인이 공격당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어요. 위구르어나 우즈베크어로 인사하고 모스크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는 것은 떡 하나 얻어먹지는 못할 지라도 안전을 위해서는 좋은 행동이었어요.


모스크 입구에 앉아계시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안에 들어가보아도 되냐고 여쭈어보았어요. 할아버지께서는 그러라고 대답하셨어요.


이 모스크의 이름은 직딜릭 자메시 Jigdilik jamesi 였어요.



위구르어 '직데' jigde 는 '대추'라는 뜻이에요. 이 모스크는 '대추나무밭 모스크' 쯤 되었어요.


대추나무밭 모스크


위구르인 모스크


Jigdilik jamesi, China


모스크를 한 번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어요.


"저 칼 무섭게 생겼는데?"


거리에서 수박을 자르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어요. 커다란 칼로 수박을 슥슥 잘라내는데 칼이 정말 무섭게 생겼어요. 저 칼이 수박을 자르는 칼인지 작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어요. 게다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위구르인들의 칼은 품질이 매우 뛰어나다고 했어요. 멀리서 보았는데도 칼이 상당히 예리하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일단 수박을 자르고 계시는 아저씨께 다가갔어요.


"안녕하세요."

"안녕."

"사진 찍어도 될까요?"

"응, 찍어."



"정말 감사합니다."


우즈베크어로 공손히 인사를 드렸어요. 친구도 제가 인사하는 것을 흉내내었어요. 뒤돌아서서 다시 큰 길로 나가려는 순간 누가 저를 불렀어요.


'뭐지? 왜 나를 부르지? 나는 분명히 허락 받고 사진 찍었는데?'


여기에서 저를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정육점 아저씨가 저에게 오라고 부르고 있었어요. 무시하고 가면 안 좋을 것 같아서 일단 정육점으로 갔어요. 아저씨는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나도 사진 찍어."


정육점 아저씨는 이슬람 도축 방법인 할랄 도축으로 양을 막 도축해 피 빼기 작업중이셨어요. 진짜로 양이 털을 얻기 위해 키우는 하얀 면양이었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도축된지 진짜로 얼마 안 되었는지 양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어요. 가축 목을 베어내는 장면은 직접 본 적이 없었어요. 직접 목격한 것이라면 도축이 끝난 양을 나무에 매달아놓고 가죽을 벗기는 장면부터였어요. 이렇게 갓 도축한 양의 목에 커다란 대야를 대고 피를 받고 있는 장면은 처음이었어요.


위구르 할랄 고기


"감사합니다."


아저씨 사진을 찍고 뒤돌아서서 나왔어요. 양 다리가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어요. 커다란 양의 묶여 있는 다리가 부르르 떨리는 모습은 닭 도축하는 장면을 볼 때의 느낌과는 차원이 아예 달랐어요. 친구 얼굴을 바라보았어요. 친구도 적잖이 놀랐는지 얼떨떨해하고 있었어요. 여기 와서 정말 제대로 위구르인들의 문화 구경한다. 적당히 위구르인들의 음식이나 맛보고 마을이나 구경할 줄 알았는데 도축 장면을 보게 되었어요. 잠시 충격이 있기는 했지만, 충격이 가시니 정말 운이 많이 따라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 진짜 면양 먹는구나!"

"저게 나중에 양꼬치 되는 거지?"

"응. 무슬림들은 피 먹으면 안 되어서 저렇게 피 빼고 있는 거야."

"그런데 요즘 할랄 때문에 시끄럽던데 그거 좀 알아?"

"할랄이 원래 대단한 게 아니라 더러운 거 먹지 말라는 거야. 지금이야 위생 관념도 발달하고 기술도 발달하고 하니까 괜찮지만, 동물의 피 엄청 더러운 거잖아. 기생충에 세균에...옛날에는 깨끗하게 만들 기술이 없으니까 더러운 거 아예 먹지 말라고 교리로 정해놓은 거라 보면 돼. 돼지고기랑 술, 동물의 피가 많이 알려져있기는 하지만, 그거 내용 보면 들판에서 뒹굴고 있는 동물 시체 같은 거 먹지 말라는 거. 대부분은 오늘날 봐도 더러운 거 먹지 말라는 내용이야."


할랄 푸드가 무슨 거창한 것쯤 된다는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지만, 그 내용을 보면 그렇게까지 특별할 것은 없어요. 한국인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돼지고기와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 여기에 선지와 순대 정도가 문제가 되요. 할랄 푸드가 거창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단순히 이슬람에 대한 무지 때문은 아니에요. 무슬림들이 할랄 푸드에 대해 할랄 푸드가 몸에 좋고 맛도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에요. 이쪽과 관련되어서 무슬림이 먹으면 안 된다고 규정한 하람을 보면 거의 다 우리가 보아도 '저 더러운 것을 도대체 왜 먹어?'라고 할 만한 것이에요.


드디어 신화서점 우루무치 지점이 나왔어요.



'이제 교과서 구입하는 건가?'


신화서점 우루무치 지점


서점 입구에는 보안검색대가 있었어요. 짐을 들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입구에 짐을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교과서 여기서 판매하나요?"

"2층으로 가세요."


2층으로 올라갔어요. 한자로 적힌 안내문을 보며 교과서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어요.



"이거 교사용 아니야?"


위구르어를 더듬거리며 읽어보니 초등학교 위구르어 과목 교과서 교사용 지도서였어요. 일단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위구르어 과목 교과서가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확인했어요. 문제는 이것밖에 없다는 것. 혹시 교과서 대신 볼 수 있나 책을 펼쳐보았어요. 지문이 다 나와 있지 않았어요. 제게 중요한 것은 교과서에 수록된 지문. 이것은 제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어요. 어떤 지문이 수록되어 있고, 어떻게 단계가 높아지는지, 그리고 어떤 삽화들이 실려 있는지 궁금했는데 교사용 지도서는 그 궁금증을 풀어주기에는 많이 부족했어요. 게다가 이것밖에 없었어요. 이것은 2학년 2학기 위구르어 교과서 교사용 지도서였어요. 나머지 학년 것은 아예 없었어요.


"실례합니다."

"예."

"위구르어 교과서 없나요?"

"여덟번째 달에 들어와요."


우즈베크어에서 8월은 avgust. 위구르인들은 8월을 '여덟번째 달'이라고 말했어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교과서가 8월에나 들어온다는 사실이었어요.


설마 인생의 숙제가 하나 더 생기는 건가?


아직까지도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어 과목 교과서를 다 모으지 못했어요. 그런데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위구르어 과목 교과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해버렸어요. 문제는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5월 31일. 이 여행이 끝나는 것은 6월 16일. 교과서가 서점에 들어오는 것은 8월. 교과서를 구하려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비행기 타고 다시 와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인터넷으로 살 수 있나요?"

"아니요."


고민이 깊어졌어요. 과연 카슈가르에서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우루무치에서는 구할 길이 없었어요. 그래도 소득은 있었어요. 교과서 이름이 '틸 에데비야트' 라는 것은 알아냈거든요. 위구르어 교과서를 인터넷으로 구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여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항상 '위구르어 교과서'로 찾았고, 검색결과는 영 시원찮았어요. 그 이유가 위구르 학교 국어책 이름이 '틸 - 에데비야트' - 즉 '말 - 문학' 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설령 교과서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이제 인터넷에서 교과서 구할 길이 생겼는지 정확히 검색은 해볼 수 있게 되었어요.


카슈가르에서 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며 밖으로 나왔어요.


"저 모스크 뭐지? 왜 저렇게 외관이 화려해?"


乌鲁木齐市塔塔尔寺


이곳에서 모스크를 보는 것은 유럽에서 성당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어차피 이곳은 이슬람 문화권이라 모스크를 보아야 했어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종교 시설이 현지 문화에서 갖는 위치는 썩 와닿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나 종교심이 깊은 지역에서는 종교 시설이 현지 문화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다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종교 시설에 가보는 것이 좋아요. 우리나라 절에 문화재가 많이 있고 전통미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유적이 종교 시설과 관련이 깊고, 문화재도 있어요. 더욱이 종교를 억압하는 공산당이 지배하고 무슬림이 비주류인 중국에서 이슬람과 무슬림의 종교 생활이 어떤 모습인지 관찰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어요.


이런 현지 문화를 알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모스크에 들어가야만 하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어요. 저나 친구나 어느 도시를 갈 지만 정해놓았지, 세부적인 여행 계획은 하나도 짜놓지 않았어요. 하루 일정에서 남는 것은 시간이었고, 없는 것은 돈이었어요. 친구는 정말 대책 없이 그냥 돌아다니면서 구경하자는 말만 해댈 뿐이었어요. 돈 내고 구경해야 하는 유적 관람 같은 것에 대해 관심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싫다는 의미였어요. 친구 말대로 했다가는 돈만 엄청 쓰고 길만 죽어라 걸을 것이 자명했어요. 하루 잠깐 만나는 거라면 둘이 찻집 들어가서 죽치고 앉아서 잡담이나 실컷 떠들다 나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 친구와 6월 15일까지 같이 여행을 해야 했어요. 그나마 카페, 찻집이 보이지도 않았어요. 어떻게든 일정을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가지고 쥐어짜서 만들어야 했고, 그러면 만만한 것이 종교 시설 방문이었어요.


원래 절, 성당, 모스크 가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 여행에서는 다른 친구를 위해 가는 시안, 마지막 남은 위안화를 다 떨어야하는 상하이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든 도시에서 절, 모스크, 성당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이었어요.


이 모스크는 타타르 모스크였어요.


우루무치 타타르 모스크


타타르 모스크는 타타르인들이 1897년 세운 모스크로, 3천 제곱미터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예배당 넓이는 800 제곱미터에요. 이 모스크에서는 수천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어요. 이슬람에서는 서로 어깨를 찰싹 붙이고 예배를 드려요. 그래서 눈으로 보며 어림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한 모스크에서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어요. 같은 인원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건물이라고 했을 때, 모스크 규모가 성당, 절 규모보다 훨씬 작아요.


여기에서 타타르인은 러시아 카잔에 많이 사는 그 타타르인 맞아요. 타타르인은 중국 56개 민족 중 하나에 들어가요. 인구는 약 5천명이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 북쪽 끄트머리에 가까운 이닝에 많이 산다고 해요.


안에 들어가보려는데 경비원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막았어요.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고 했어요.


"여기에서 사진만 찍을께요."


우즈베크어로 건물 안에 안 들어가고, 쇠창살 문 앞에서 건물 사진만 찍고 나가겠다고 말씀드리자 그러라고 했어요. 나중에 이 모스크에 대해 알아보니 우루무치에서 관광객들도 들어갈 수 있는 모스크라고 나와 있었어요. 들어가지 못하게 제지한 이유는 아무래도 예배 시각에 걸려서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길을 건너자 드디어 번잡하고 북적이는 거리가 등장했어요.


"어! 저거다!"



우루무치의 상징인 전망대가 있는 탑이 보였어요. 이제 점심을 먹을 때가 다가오고 있었어요.



오후 1시. 사람들이 점심을 먹는 모습이 보였어요.


"저 아이스크림 저렇게 놔둬도 되나?"



아주 원시적으로 생긴 아이스크림 덩어리가 아이스크림 기계 위에 턱 올라가 있었어요. 저거 저렇게 놔둬도 되나? 햇볕이 상당히 뜨거웠어요. 아무리 건조기후라서 그늘은 시원하다지만 기온 자체가 높았어요. 우루무치에서 5월 31일 대낮 더위는 한국의 6월 30일 기온 정도는 될 거였어요. 아이스크림이 제 아무리 그늘 아래에 숨어있어 보았자 햇볕이 저 정도는 우습게 녹일 수 있을 정도로 세게 내리쬐고 있었어요.


"저거 여우 가죽 아니야?"



드디어 눈이 제대로 즐거워졌어요. 친구는 계속 사진을 찍어대었어요.


"우리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먹고 가자."


아까 길가에서 본 아이스크림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큰 차도가 바로 옆이었거든요. 차도에 차가 매연을 마구 뿜어내는데, 그 차도 바로 옆에 나와 있는 아이스크림 덩어리의 조각을 먹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이스크림에 매연이 양념되어 있을 것이 뻔했거든요. 그 길가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매연 알갱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가게를 찾고 있었어요. 마침 차도에서 떨어진 시장 입구에 아이스크림 파는 가게가 보이자 거기로 갔어요.


"얼마에요?"

"2콰이."


중국 화폐 단위는 위안. 그러나 위안보다 '콰이'라는 말을 훨씬 많이 말하고 있었어요.


"2개 주세요."


아이스크림을 받아서 맛을 보았어요.


진짜 ice cream 이다!


진한 우유맛. 우리나라에서 파는 모든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맛있었어요. 이 아이스크림 앞에서는 우리나라의 아이스크림이 짝퉁이 되어버렸어요. 이렇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은 정말 보기 힘들었어요. '아이스크림'이 왜 아이스크림인지 교육시켜주는 맛이었어요. 적당한 단맛. 그리고 진한 우유맛.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한 고소하고 진한 우유로 만든 진짜 크림맛이 풍부하게 느껴졌어요.


위구르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어떻게 아이스크림을 만드는지 구경했어요. 뱅글뱅글 돌아가는 차가운 통에 커다란 나무 막대기를 넣고 기다리자 나무 막대기에 아이스크림이 덩어리져서 달라붙었어요. 그러면 그 막대기를 꺼내 대야에 아이스크림을 긁어내었어요. 아주 옛날에 저런 방법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지 않았을까? 딱 우유와 설탕을 넣고 차갑게 크림을 만들어내는 장면이었어요.


"주스도 하나 마시자."


주스를 한 잔씩 시켰어요. 가격은 1위안이었어요.


"어우...이거 왜 이렇게 맛없냐?"


친구가 너무 맛없어해서 친구가 고른 주스를 맛보았어요. 정말 끔찍하게 맛없었어요. 이렇게 맛없게 만들기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어요. 다행히 제가 고른 주스는 마실 만한 맛이었어요. 친구는 결국 주스를 다 마시지 못했어요.


"나 저것 좀 볼께."


옥팔찌


친구는 팔찌를 보더니 갑자기 두 눈을 반짝이며 구경하기 시작했어요.


"야, 그거 팔찌잖아. 갑자기 왜?"

"나 이런 거 좋아하잖아. 여기 옥이 유명하다니까 괜찮은 거 있으면 하나 사려구."


처음에는 친구가 핸드폰 고리인줄 알고 자세히 보는 줄 알았어요. 친구는 전자제품을 정말로 좋아해요. 그래서 자기 핸드폰을 장식할 무언가를 발견해서 그렇게 유심히 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친구가 팔찌도 좋아해서 혹시 괜찮은 팔찌가 있나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것이었어요. 친구가 관심있어하는 것이 나오자 기뻤어요. 일정이라고 할 것이 실상 아예 없는 상황에서 친구가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것이 나왔으니 그거 나올 때마다 자세히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거든요. 전자제품 매장에 가자고 하면 친구가 아주 신나하겠지만, 전자제품은 우루무치에서 구경할 것이 아니었어요. 그런 건 말 그대로 상하이, 베이징 같은 초대규모 도시에서 구경하는 것이죠.



위구르 치킨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음식


시장에서 파는 음식을 구경하다가 양고기 카밥을 구워서 파는 가게가 보이자 또 먹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겨났어요.


"우리 저거 먹을까?"

"양꼬치?"

"응. 여기 카밥이 유명하다는데 열심히 먹어야지."


진짜 양꼬치


가격은 5위안. 각각 하나씩 구입해서 먹었어요.


"이거 예술이다!"


위대한 위구르인의 양꼬치. 육즙이 참외처럼 줄줄 흘러나왔어요. 케밥 굽는 것도 기술이라고 하던데 진짜로 기술 맞았어요. 이렇게 속까지 잘 익히면서 육즙 듬뿍 머금게 굽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미디움 웰던' 으로 구운 카밥이었어요. 냄새도 잘 잡아서 양고기 특유의 악취도 없었어요. 육질이 부드러워서 부드럽게 씹히고 목구멍으로 훌러덩 넘어가 버렸어요. 이것은 전날 먹었던 것보다 1.5배 더 맛있었어요.


"여기도 옥수수 구워서 파는구나."



옥수수를 하나 사서 먹어볼까 하다가 저것은 왠지 실망을 안겨줄 것 같아서 그냥 지나쳤어요.




"그런데 우리 지금 따바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따바자 여기서 먼가?"



따바자 大巴扎 는 저와 친구가 가려고 하는 시장의 중국식 이름이었어요. 뜻은 '큰 바자르'. 위구르어로 어떻게 가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큰' 을 뭐라고 말해야할지 몰랐어요. 우즈베크어로 katta를 쓰는지, 다른 말을 쓰는지 몰랐어요. 일단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katta bazar'라고 말했더니 못 알아들었어요. 친구가 따바자가 어디냐고 물어보자 아주 멋진 대답을 듣게 되었어요.


"여기가 따바자야."


그래서 여기가 따바자였구나!


저와 친구 둘 다 '따바자'는 커다란 탑과 광장, 모스크가 있는 곳 및 그 주변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은 따바자에서 유명한 장소였고, 그 주변 상당히 넓은 범위가 전부 그랜드 바자르였어요. 위구르어로 정식 명칭은 '신장 켈크아라 총 바즈르' 였구요. 중국어로 정식 명칭이 新疆国际大巴扎 이지만 간단히 '따바자'라고 하는 것처럼, 위구르어로도 간단히 '총 바자르'라고 했어요.


길은 건너서 어떻게 가야 하나 방향을 살펴보았어요. 제주도에서 한라산 보며 방향 찾는 것처럼 여기에서는 커다란 탑을 보며 방향을 잡으면 되었어요. 자동차로 운전해서 가는 것이라면 이렇게 가는 것이 틀릴 수도 있어요. 일방통행으로 뺑 돌아가게 만들어놓은 곳이라면 안 맞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하지만 저와 친구 모두 두 발로 걸어서 이동하고 있었어요. 방향만 맞게 가면 어쨌든 갈 수 있었어요.



이제 드디어 오늘 그나마 있던 일정 두 개 중 하나인 신장 국제 대바자르를 제대로 구경할 순간이 찾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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