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야, 너 사진찍고 싶다고 했던 포도밭이다!"
포도밭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담장이 포도밭을 둘러싸고 있었어요. 그러나 밖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친구가 투르판에 가서 하자고 했던 것 중 하나가 기차역에서 투르판까지 걸어가며 포도밭에서 사진을 찍자는 것. 드넓은 포도밭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것은 엄연한 포도밭. 규모가 작아도 포도밭은 포도밭이니 여기 사진을 찍으면 친구가 투르판에서 하고 싶다고 한 것을 하는 셈이었어요.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 이것은 구운 고기 냄새다.
양꼬치를 굽는 가게가 보였어요. 이 지역에서 분명히 발에 채이도록 많이 보여야할 것이 양꼬치인데 계속 양꼬치 굽는 것을 보지 못해 의아해하던 참이었어요.
"우리 양꼬치 먹고 갈까?"
"왜? 배고파?"
"우리 지금까지 아까 모스크에서 밥 얻어먹은 게 전부잖아. 우루무치 도착해서 저녁 먹을 때까지 시간 엄청 남았어."
양꼬치를 굽고 있는 아저씨께 다가가 여쭈어보았어요.
"지금 양꼬치 먹을 수 있나요?"
"응, 안으로 들어가. 몇 개?"
친구가 제게 물어보았어요.
"몇 개 먹으면 될까?"
"한 사람당 2개는 먹어야지. 이거 먹고 이따 우루무치에서 저녁 먹을 때까지 버텨야하는데."
친구가 양꼬치 4개를 주문한 후, 제게 또 물어보았어요.
"너 라쟈오 먹냐?"
"그게 뭔데? 식초 아니지?"
"식초 아냐."
"그러면 먹어. 식초만 아니면 돼."
식초는 정말 싫어해요. 진짜 쳐다보기도 싫어요. 제게 식초는 '맛이 없다, 먹기 힘들다' 수준이 아니라 '역겹다' 수준이에요. 신 맛 자체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식초 냄새 자체를 끔찍하게 싫어해요. 우리나라 식초도 아주 싫어하는데, 중국 식초는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제게는 혐오물질 그 자체였어요. 중국 식초의 퀘퀘하면서 빙초산 같기도 한 냄새를 맡으면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렸어요. 그래서 오죽하면 친구에게 중국 식초 냄새가 '썩은 빙초산 냄새' 같아서 싫다고 툭하면 말하고 있었어요. 라쟈오 辣椒 는 중국식 고춧가루에요. 이런 것은 식초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 먹을 수 있는 것이었어요.
양꼬치 4개를 주문했어요. 아저씨는 우리에게 식당 안에 들어가서 앉아있으라고 했어요. 식당 안으로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큰 식당이었어요.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20분이었어요. 무언가 상당히 애매한 시각이었어요. 베이징 시각으로 1시 20분이니 베이징 시각으로 보면 점심때가 지난 시각. 그러나 신장 시각으로 보면 11시 20분이니 아직 점심 먹을 때가 아닌 시각. 상당히 애매한 시각이었지만 몇몇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탁자를 보니 메뉴판이 붙어 있었어요.
"어디에서 왔어요?"
옆에 앉아 있던 위구르 청년이 중국어로 말을 걸어왔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우즈베크어로 대답했어요. 그러자 위구르 청년이 위구르어로 무언가 이야기했어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잘 못 알아듣는 것을 보더니 중국어를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친구가 중국어를 안다고 대답했어요. 이때부터 위구르인 청년은 친구와 중국어로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친구 말에 의하면 이 청년은 한국을 좋아하고, 우리가 그 청년이 처음으로 직접 본 한국인이었다고 했어요.
'여기는 그래도 동쪽이라 중국어가 잘 통하는 건가? 아니면 이제 중국어가 널리 퍼진 걸까?'
예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여행을 했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면 한결같이 등장하는 내용이 있었어요. 이쪽에서는 중국어가 상당히 잘 안 통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현재까지 중국어는 잘 통하고 있었어요. 친구는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중국어로 하고 있었어요. 친구가 이쪽 현지인들과 중국어로 이야기할 때 특별히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어요.
"양꼬치 왜 안 나오지?"
"그거 꽤 기다려야 돼."
친구는 양꼬치가 안 나오자 왜 안 나오냐며 조금씩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이것은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었어요. 중국 한족 애들 먹는 땅콩만한 고기 부스러기를 꽂아서 굽는 양꼬치가 아니었거든요. 이쪽 양꼬치는 한 입 크기로 자른 양고기를 꼬치에 꽂아 굽는 것이라 굽는 데에 시간이 걸렸어요. 친구가 주문 잊어버린 것 아니냐고 걱정한 이유는 한족이 먹는 고기 부스러기 같은 양꼬치가 나오는데 걸리는 시각을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아직 나올 때 아니라고 알려주었어요.
10분 정도 지난 후 양꼬치가 나왔어요. 이 정도면 준수하게 시간이 걸린 것이었어요.
"오! 맛있겠다!"
친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어요. 콩알만한 양고기 부스러기를 구운 것이 아니라 진짜 고기 먹는 맛이 나는 크기고 자른 고기가 꽂힌 양꼬치였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종종 먹었던 그 양꼬치와 거의 똑같았어요. 중국식 양꼬치에 비하면 아주 큼직한 고기라 해도 되지만, 그런 표현까지 쓰는 건 중국식 허풍이라고 느껴졌어요. 이 지역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즈베키스탄에는 진짜로 아기 주먹만한 고기를 꽂아서 굽는 양꼬치도 있거든요. 거기서는 그렇게 진짜 큼직한 고기를 꽂아서 굽는 케밥을 '카프카스식 케밥'이라고 불렀어요.
"이것이 그 맛있다던 위구르 양꼬치구나!"
친구가 한 입 먹더니 얼굴이 매우 밝아졌어요. 저도 한 입 먹어보았어요.
"이거 맛있다!"
위구르어와 우즈베크어가 다른 것처럼 양꼬치도 둘이 달랐어요.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였어요. 양고기의 크기와 양고기를 꽂은 꼬챙이는 똑같았어요. 그러나 맛이 묘하게 달랐어요. 아래 사진은 우즈베키스탄의 양꼬치에요.
바로 위의 사진에서 비교 대상은 가장 위와 가운데 있는 것이에요. 맨 아래 있는 것은 다른 종류의 케밥이구요. 위구르식 양꼬치는 양념으로 고운 가루를 많이 뿌렸어요. 그에 비해 우즈벡식 양꼬치는 양념 가루가 더 거칠었고, 지라 (중국어로는 쯔란)를 통째로 뿌렸어요. 우즈베크식 케밥이 위구르식 케밥보다 양념 맛이 강했어요. 위구르식 케밥은 전체적으로 우즈베크식 케밥보다 맛이 순한 편이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간장 양념 불고기와 고추장 양념 불고기처럼 맛이 확실하게 다른 것까지는 아니었어요. 한족들이 먹는 양꼬치와는 맛이 확실히 다르지만, 위구르식 양꼬치와 우즈벡식 양꼬치의 차이는 진간장과 국간장 정도였어요. 기본적인 맛이 다르기는 한데 묘하게 다른 편이다보니 요리사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차이였어요. 진간장으로 미역국 못 끓이는 것은 아닌 것처럼요.
참고로 한국에 위구르 식당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위구르식 양꼬치가 궁금하면 우즈베키스탄 식당 가서 양고기 샤슬릭 드셔보면 되요. 그것보다 양념 맛이 덜하고, 쯔란 알갱이가 안 보인다고 상상하시면 되요. 맛은 거의 똑같아요. 그러나 중국식 양꼬치와 이쪽 양꼬치는 맛이 진짜로 달라요. 중국식 양꼬치 막대기 하나를 통째로 입에 집어넣는다고 같은 맛 나는 게 아니에요.
양고기 케밥에서 위구르와 우즈벡의 차이를 느끼자 약간 흥분되었어요.
저는 친구에게 돈을 주고 먼저 밖으로 나왔고, 친구는 계산대로 계산하러 갔어요. 잠시 후 친구가 짜증난 표정으로 나왔어요.
"아까 우리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이 케밥 하나에 3위안이랬거든. 그러면 우리가 먹은 게 4개이고, 음료수 두 개 마셨으니까 22위안이잖아? 그런데 양꼬치 하나에 5위안이라고 사기치려는 거야. 그래서 여기 가격 3위안인 거 다 알고 있다고 하면서 22위안 주고 나왔어."
"잘했어."
식당 맞은편에 꽤 괜찮아보이는 건물이 보였어요.
"저기 한 번 가볼까?"
호텔이라고 위에 큼지막하게 달려 있었어요.
"가자."
내부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을 줄 알았는데 별 것 없었어요. 바로 뒤돌아서서 나왔어요. 다시 길을 걸었어요. 오후 2시 4분. 드디어 셰르키 총 메스치드로 돌아왔어요.
'저기에 미나렛도 있었구나!'
아까 지나갈 때는 그냥 모스크 건물이 독특하다는 것만 보고 갔어요. 지금 걸어간 방향은 아까와 반대 방향. 아까의 반대 방향에서 보니 이 모스크 안에는 미나렛도 있었어요. 맨 윗쪽을 보니 원래 더 높았는데 무너진 것 아닌가 싶었어요. 두께를 보니 원래 아주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위에서 떨어지면 죽을 정도의 높이는 되었을 것 같았어요. 투르판의 유명한 유적 중 하나인 소공탑은 못 보았지만, 어쨌든 오래된 미나렛 하나는 볼 수 있었어요.
이 모스크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있었어요.
이 모스크의 정식 명칭은 투르판 총 메스치드 吐鲁番東大寺 에요. '총'은 '크다'라는 의미에요. 투르판에서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문화 유적이라고 위에 적혀 있는 것 같았어요. 만약 이것이 국가 단위로 보호하는 문화 유적이었다면 분명히 입장료를 받으려 들었을 거에요. 다행히 이 모스크에 들어가기 위해 내야 하는 입장료는 없었어요. 입장료가 있었다면 아마 저 혼자 들어갔을 거에요. 무료였기 때문에 친구도 같이 들어갔어요.
모스크에 들어가자마자 안에 있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정중히 인사를 드렸어요.
그래, 이런 모스크가 보고 싶었어!
이 모스크는 중국 한족 전통 건물로 지어진 모스크에요. 모스크 건물은 한족 전통 건축물이고, 그 외에는 일반적인 모스크와 같은 모습이었어요. 이렇게 한족 전통 양식 건물 형태로 지어진 모스크는 정말 보기 어려워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돔 지붕이 있는 모스크는 많이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 이태원에 있는 모스크도 돔 지붕이 있는 모스크에요. 돔 모양, 미나렛 모양, 내부 구조 및 장식이 지역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이런 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모스크가 그 모스크 같을 수 있어요. 한옥 디자인으로 지어진 성당 찾기 어려운 것처럼 이렇게 어느 정도 정형화된 모스크 양식에서 벗어난 모스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게다가 현지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모스크는 더 찾기 어렵구요.
벽 한 켠에 갱지 비슷한 색깔의 종이 위에 조잡하게 인쇄해서 만든 벽보가 있었어요. 그 위에는 누가 일부러 하얀 대형 스티커를 붙여놓았는데, 스티커가 거의 다 찢어져 있었어요.
각 항목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잘 찍어오고 싶었지만 그러고 있으면 분명히 여기 사람들이 저를 안 좋게 볼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던 것 두 개만 사진으로 찍었어요.
이 그림은 왜 여기 있는지 이해가 어려웠어요. 딱 보자마자 불교를 다루고 있는 그림이었어요. 불교 감시라면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아니라 티베트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어요. 티베트는 시짱 자치구 西藏自治区 이고, 여기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新疆维吾尔自治区 에요. 가끔 시짱과 신장을 착각하기도 하는데, 아예 다른 지역이에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아래쪽에 시짱 자치구가 있는데, 지도를 펴놓고 보면 알 수 있지만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중국 서부의 북쪽, 시짱 자치구가 중국 서부의 남쪽이고, 둘 다 어마어마하게 커요.
이것은 중국 당국의 검열을 받지 않고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종교 관련 영상을 보거나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에요.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은 실제로 이런 것이 암암리에 유포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알카에다, IS 관련 기사를 보면 가끔 중국인들도 이런 단체에 가담했다는 기사가 있는데, 아마 그 중국인은 위구르인 아니면 회족일 거에요. 어쨌든 이런 것을 접하는 위구르인을 아주 사악하게 그려놓았어요.
예전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도 이랬을까?
문득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 상황이 궁금해졌어요. 제가 우즈베키스탄에 간 것은 2012년. 소련이 해체되고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한 것은 1991년 12월 8일이에요. 정확히는 1991년 12월 8일에 독립 선언을 했고, 소련이 1991년 12월 26일에 붕괴했어요. 제가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때는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한지 약 20년이 지난 후였어요. 소련이 종교를 탄압하고 우즈베키스탄을 착취했다고 하는데, 그 흔적을 그렇게 많이 찾아볼 수는 없었어요. 20년이나 지나버린 후였으니까요.
"내부 볼 수 있을까요?"
관리자로 보이는 분께 우즈베크어로 물어보았어요. 그러나 이분은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셨어요. 그러자 친구가 중국어로 내부를 볼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따라오라고 하시더니 모스크 내부로 인도하셨어요. 이 아저씨는 흰색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회족들이 주로 흰색 모자를 쓴대요. 이 모스크로 오는 사람들 모습이 참 동양적으로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 대부분이 회족이었을 거에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에서 위구르어로 적힌 것은 보이지 않았어요. 사진에서 보이는 것은 모두 아랍어에요. 아랍어나 위구르어나 비슷한 문자를 쓰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언어이고, 위구르어에서만 사용하는 글자가 몇 개 더 있어요. 이쪽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것으로 보이지만요. 아랍어는 단모음을 표기하지 않고, 위구르어는 모든 모음을 표기하기 때문에 단어 하나의 길이는 위구르어가 훨씬 길어요. 예를 들어서 '학교' 라는 단어를 쓸 때 아랍어는 mktb 이라고 적지만, 위구르어는 mektep 이라고 적는 식이에요.
모스크 건물에서 나와 건물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어요.
이 모스크 측면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밖에서 모스크 옆쪽으로 가보았어요.
"너 무슨 책 산다고 하지 않았어?"
"어. 이 지역 학교에서 사용하는 위구르어 교과서랑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그런데 설마 연금술사 위구르어판이 있겠어."
"그럼 서점 한 번 가보자."
친구가 먼저 서점에 가보자고 했어요. 친구는 스마트폰으로 서점 위치를 확인하고는 앞장서서 가기 시작했어요.
시장을 지나가자 신화서점이 나왔어요.
"위구르어 교과서 있나요?"
아저씨는 글자책을 찾아주셨어요. 글자책도 교과서이기는 했지만, 글자책은 인터넷으로 이미 구했어요. 제가 원하는 것은 글자책이 아니라 그 다음 단계인 '국어 교과서'였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는 위구르어 교과서가 있다는 말이 있었어요.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위구르어 교과서' 라고 말하자 아저씨는 글자책만 있다고 하셨어요.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어요. 결국 위구르인 여학생과 친구가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더니 그런 교과서는 없다고 친구가 말해주었어요.
"나 힘들어."
친구가 힘들다고 말했어요.
"그러면 저기 앉아서 쉬고 있어. 나 책 좀 볼께."
서점 안에는 의자가 있었어요. 친구에게 의자에 앉아서 쉬라고 했어요. 서점에는 깨끗한 의자가 있었지만, 밖에서는 쉴 곳이 없었어요. 아직 3시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벌써 기차역에 갈 수도 없었어요. 그나마 쉴 만한 곳이라면 이 서점 외에는 마땅히 없었어요. 길을 걸으며 혹시 찻집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찻집이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식당 들어가서 차만 시키기도 그랬구요. 친구가 의자에 앉아 제 가방을 친구 앞에 풀어놓고 제 가방을 보고 있으라고 하고나서 서점을 둘러보았어요.
서점에는 위구르어로 된 책이 여러 종류 있었어요.
'위구르어로 된 위구르어 문법책과 사전이나 살까?'
그러나 등에 메는 가방 밖에 없었기 때문에 책을 무턱대고 많이 살 수도 없었어요. 게다가 만약 다른 도시에서 교과서를 구하게 된다면 책이 더욱 많아질 것이었어요. 교과서는 총 12권. 책이 12권이면 일단 가방에 집어넣는 것이 문제였고, 가방에 집어넣은 후에는 그것을 메고 돌아다니는 것이 또 문제였어요. 아직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어요. 가방을 옆으로 메지 않고 등에 메었기 때문에 허리에 무리가 덜 가기는 했지만, 오래 서서 걸으면 허리가 쑤셨어요. 더욱이 일정 중 카슈가르 첫 날, 그리고 쿠처에서는 하루 종일 가방을 메고 돌아다녀야 했어요. 책 욕심이 나기는 했지만 무턱대고 벌써부터 많이 구입할 수는 없었어요. 어차피 교과서를 못 구했기 때문에 우루무치에서 서점을 또 가야 했구요.
'음식 책이나 사자.'
이렇게 책 세 권을 구입했어요. 저는 여행 다니면서 그 나라의 전통 음식, 전래동화, 그리고 그 나라의 국어교과서를 수집해요. 일단 위구르의 전통 음식 책은 구입했어요.
"아! 이 사람들은 오쉬를 '폴로'라고 하는구나!"
우즈베키스탄의 기름밥인 오쉬. 우즈베키스탄 여행기 대부분 이 오쉬 Osh 를 '플로브' Plov 라고 적어요. 플로브는 러시아어에요. 타지크어로도 오쉬는 오쉬 ош 라고 해요. 우즈베키스탄 음식 오쉬를 플로브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탕수육을 꿔바로우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에요. 오쉬를 플로브라고 많이 쓰는 이유는 그쪽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러시아어로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에요. 위구르의 기름밥도 우즈베키스탄의 기름밥 오쉬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어요. 만드는 법도 비슷하고 맛도 비슷하고 위구르어와 우즈베크어는 비슷한 언어이니 당연히 여기도 '오쉬'라고 말할 거라 짐작했어요. 그러나 이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어요. 위구르어로 기름밥은 폴로 Polo 였어요. '오쉬'라고 할 때 여기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어요. Osh 와 Polo 라는 발음 사이에는 비슷하다고 볼 만한 건덕지가 전혀 없었거든요. 위구르어에도 아쉬 ash 라는 말이 있기는 있어요. 이 말의 뜻은 '식사, 요리' 라는 뜻이에요. 사전을 보면 기름밥이라는 뜻도 있기는 한데, 이렇게는 잘 안 쓰는 것 같았어요.
책을 구입하고 서점에서 나왔어요.
"이제 기차역 가서 좀 쉬자."
친구가 피곤하니 기차역 가서 쉬자고 했어요. 시내를 조금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딱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지는 않았어요. 애초에 투르판은 친구가 상하이에서 우루무치로 바로 가는 것은 지나치게 장시간 기차이동을 해야 한다고 집어넣은 도시였어요. 그리고 이 도시를 돌아다녀본 결과 딱 제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정도였어요. 비록 입장료를 내야 하는 유적은 단 한 개도 안 들어가보았지만, 여기에서 더 머물러야 한다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중국 전통 건물 모양의 셰르키 총 메스치드가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어요. 인터넷으로 유적 사진을 보며 가볼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투르판을 걸어서 돌아다녀보니 유적에 간다고 해서 생각이 바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거라고 단정짓게 되었어요. 게다가 이것이 위구르 지역 마지막 일정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이것은 위구르 지역 일정의 시작이었어요. 지금 못 본 것은 우루무치나 카슈가르, 쿠처에서 볼 수 있었어요. 벌써부터 무리하게 강행군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런데 너는 여기 말 알고 나는 중국어 하니까 우리 무적 아냐?"
"아, 그렇네?"
밖에 나와서 버스 정거장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친구가 갑자기 우리가 이 지역 여행다니기 위한 최적의 조합 아니냐고 말했어요. 아직 투르판만 돌아다닌 것이었지만 진짜 그럴 듯 했어요. 일단 투르판에서 중국어는 잘 통했어요. 친구 혼자 다녀도 큰 무리는 없어보였어요. 하지만 현지어를 해서 이점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었어요. 일단 현지어를 했기 때문에 밥을 공짜로 얻어먹었거든요.
아이들 하교 시간이 되었는지 갑자기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많이 보였어요.
"버스 정거장 여기 맞지?"
친구가 바이두 지도로 찾은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어요. 무언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히 아침에 버스 기사에게 물어보았을 때는 내린 곳에서 버스를 타야 기차역으로 간다고 버스 기사가 알려주었거든요. 친구가 지도를 보며 찾은 버스 정거장은 아침에 내린 곳에서 대각선으로 길 건너 맞은편이었어요. 버스 기사가 그 노선 오늘 처음 운행해보는 것도 아닐텐데...U턴해서 이쪽으로 올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일단 기다려보았어요.
"야! 버스 지나간다!"
정거장에 앉아 있는데 202번 버스가 휙 지나갔어요. 버스 정거장 바로 앞을 지나갔다면 시간 맞추려고 일부러 지나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버스 정거장 바로 앞이 아닌 2차선으로 지나가 버렸어요. 이것은 우리가 분명히 잘못된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기차역 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하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위구르어로 기차역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우즈베크어처럼 vokzal 을 사용하는지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지 몰랐어요. 기차가 우즈베크어로는 poezd인데 위구르어로도 같은지 몰랐어요. 나중에야 위구르어로 기차가 poyiz, 기차역은 beket 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허무하게 버스를 한 대 보내고 길을 건너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탔어요. 투르판 북역으로 돌아오니 오후 4시 40분이었어요. 친구는 도착하자마자 표를 구입하러 매표소로 갔어요. 잠시 후. 친구가 흥분해서 밖으로 나왔어요.
"야, 우리 기차역 잘못 왔다!"
여행 계획 단계에서 친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투르판에서 우루무치까지 기차표는 23.5위안이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둘 다 투르판에서 우루무치까지 기차표 가격이 23.5위안으로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한 가지 놓치고 있던 것이 있었어요. 투르판에는 기차역이 2개 있어요. 하나는 그냥 투르판역이고, 다른 하나는 투르판 북역이에요. 투르판 북역은 시내에서 약 8km 떨어져 있지만, 투르판역은 시내에서 40km 떨어진 곳에 있어요. 투르판에서 우루무치까지 23.5위안에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투르판 북역이 아니라 40km 떨어진 투르판역으로 가야 했어요. 아침에 기차에서 내린 역이자 지금 도착한 기차역은 투르판 북역. 여기에서 우루무치로 가는 기차 요금은 49위안.
"우리 투르판역으로 갈까?"
2배 넘는 가격 차이. 분명 고민이 되는 일이기는 했어요.
"그냥 여기서 타자. 어차피 거기 가려면 택시 타고 가야 하는데 택시비가 그만큼은 나오겠다."
투르판역이 투르판 북역에서 32km 떨어진 곳인지 48km 떨어진 곳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30km 정도를 택시 타고 가야했어요. 투르판 시내로 다시 들어가서 거기에서 투르판역을 가는 버스를 찾아 타고 간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투르판 북역에서 투르판역까지 가는 버스 노선을 알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30km 넘게 가야 하는 것은 맞았으니까요. 게다가 기차 시간은 투르판역에서 타나 투르판 북역에서 타나 비슷했어요.
왔으면 그냥 타세요.
벽에 붙어 있는 안내 표지판 캐릭터 둘이 우리를 보며 웃는 것처럼 보였어요. 친구는 기차 요금이 2배가 되었다고 기분이 매우 상했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40km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어요. 이제 퇴근시간까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시내로 들어가는 시간이 아침때처럼 걸릴 거라는 보장도 없었어요. 친구와 제가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합치면 약 50위안. 거리가 거리인 만큼 충분히 택시비로 나올 법한 금액이었어요.
친구가 매표소로 기차표를 구입하러 간 사이에 기차역 입구를 바라보았어요. 어떤 중국인들이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고, 그 중국인들에게 역무원이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했어요.
'좀 높은 사람인가?'
친구가 기차표 두 장을 들고와 한 장을 제게 주었어요. 기차표를 들고 기차역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역무원이 나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뭐지? 중국이 이럴 나라가 아닌데?'
제가 기차역 입구로 가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역무원이 몸에 띠를 두르더니 제게도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했어요.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비록 중국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이런 나라에 서비스 정신 따위가 존재할 리가 없었어요. 사회주의 국가 또는 사회주의였던 국가에서는 손님을 위한다는 서비스 개념이 정말 없어요. 특히 공무원들은 더욱 그래요. 중국도 공무원들의 관료제라면 악명이 높은 나라. 물론 개개인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기차역 들어가는 손님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이런 건 존재할 수가 없어요.
'얘네들 뭐지? 오늘 뭐 잘못 먹었나? 갑자기 왜 이래?'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니 저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어요. 앞뒤로 가방을 메고 있었기 때문에 같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할 수 없었어요.
역무원이 허리를 굽혀 제게 인사를 하는 기괴한 경험을 한 후, 보안검색을 받았어요. 짐을 엑스레이 검사대 위에 올려놓고 몸수색을 받았어요. 별 문제없이 통과해 역 안으로 진입했는데, 직원이 갑자기 친구를 불렀어요.
'일단 피해 있자.'
친구가 보안검색에서 잡히는 것을 보고 재빨리 역 안으로 들어갔어요. 괜히 친구 옆에서 알짱거려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었어요. 제가 중국어를 유창히 잘 하고 중국통이라 친구를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저는 중국어도 못 하고 중국에 대해 잘 몰랐어요. 이 상황에서 괜히 친구 옆에서 알짱거리다 저한테까지 뭐라고 하면 일만 커질 뿐이었어요. 친구는 중국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일했고, 중국어도 잘 했기 때문에 이럴 때 친구에게 짐만 되는 저는 자리를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었어요.
잠시 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친구가 제 옆으로 왔어요.
"아 진짜 짜증나네!"
"무슨 일이었는데?"
"맥가이버칼 빼앗겼어. 그리고 서류에 이름 쓴다고 하는데 멍청해서 여권에 적힌 거 그대로 베끼면 되는 것을 가지고 내 이름 하나 똑바로 못 적는 거야. 알파벳 하나 똑바로 못 적어서 계속 잡혀있었어."
기차에서 만났던 우루무치 사는 한족 애들이 우루무치는 칼이 유명한데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 그 칼을 들고올 수 없다고 이야기해주었었어요. 그때는 조그만 과도 수준의 칼도 못 들고 타게 할까 생각했어요. 침대칸에 과일 들고 타서 칼로 깎아먹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상하이역에서 기차를 탈 때 맥가이버칼은 아무 문제가 없었구요. 친구는 맥가이버칼을 압수당한 것도 짜증나는데 자기 이름 하나 영어로 똑바로 못 적어서 사람 피곤하게 만들었다고 화가 나 있었어요.
'여기 진짜 감시 철저하구나.'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차역을 한 바퀴 둘러보았어요.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은 대부분 한족이었어요. 혹시 가게에서 투루판 기념품을 파나 가게를 돌아다녀보았지만 엽서나 마그네틱을 파는 곳은 단 한 곳도 보이지 않았어요. 기차역에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그 큰 역이 더욱 휑해보였어요. 기차역 내부 사진을 제대로 찍고 싶었지만 보안검색대가 너무 잘 보여서 괜히 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오후 5시 45분. 드디어 탑승구가 열렸어요. 친구와 탑승구를 통과해 플랫폼으로 올라갔어요.
"야, 이건 또 뭐냐?"
"진짜 뭐지? 이런 건 내가 중국 살면서 처음 본다."
탑승구를 통과해 플랫폼에 도착하면 자기가 탈 객차가 설 자리로 미리 가 있기 마련이에요. 기차는 길기 때문에 이것은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에요. 당연히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기차표를 보며 자신이 탈 객차가 정차할 곳으로 걸어가려 했어요. 여기까지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어요. 진짜 이상한 것은 바로 역무원들의 행동이었어요.
"여기 줄 서! 얌전히 여기 있어!"
무슨 악을 쓰듯 소리를 치고 사람들에게 호통치면서 우루무치행 기차를 타기 위해 올라온 모든 승객들을 한 곳에 몰아 줄을 세우고 있었어요.
'무슨 단체동원 되어서 어디 가는 건가?'
신기하게 바라보며 제가 탈 객차가 서는 곳으로 가려는데 역무원이 저와 친구를 보고 다른 중국인들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소리치며 줄을 서라고 외쳤어요.
"중국 원래 이러냐?"
"아냐. 나도 이런 건 정말 처음 봐. 중국이 이렇게 줄을 잘 세울 리가 없잖아?"
그때 역무원이 외쳤어요.
"기차가 들어오면 모두 3분 안에 탑승하도록!"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참고로 역무원이 말한 것은 전부 친구가 제게 설명해준 것이에요. 역무원은 기차가 곧 역으로 들어올 건데, 3분 안에 탑승을 반드시 마쳐야 한다고 승객들에게 주의를 주었어요. 3분이면 정말 짧은 시간. 더욱이 이 중국인들은 짐을 많이 갖고 타기 때문에 3분에 다 타기는 솔직히 어려워요. 그 이전에 기차는 길어요. 빨리 태우려면 승객들의 표검사를 하고 정확한 객차 정차 지점에 미리 세워놓는 것이 중요한데, 이건 그런 거 알 바 아니고 승객들을 일단 한 곳에 다 모아놓았어요.
"얘네들 오늘 왜 이러지?"
어리둥절해하는 친구. 오른쪽을 바라보았어요.
'아하! 오늘 역에 높은 사람 와서 이 난리 피우는 거구나!'
아까 친구가 매표소 안으로 들어갔을 때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던 그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을 보고 역무원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 모든 승객이 한 곳에 모여 있는데 그 사람 및 그 사람의 일행만 다른 곳에 서 있었어요. 다른 역무원들은 그 사람 및 일행을 깍듯이 대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 일행의 편의를 위해 이렇게 사람들을 다 몰아놓은 것인지, 아니면 이 역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 사람 때문에 모든 승객을 한 곳에 몰아넣고 줄을 세워놓는 아주 희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기차가 들어왔어요.
사람들이 열심히 달려갔어요. 저와 친구도 달려야 했어요. 뛰면서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계속 웃음이 나왔어요. 3분 안에 다 태우고 싶으면 진작에 객차 확인해서 그 앞에 세우면 될 것을 왜 한 곳에 다 모아놓은 거야? 역무원이 하도 윽박지르고 소리쳐대어서 사람들이 모두 최대한 빨리 타기 위해 달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기차는 길고 사람들은 짐이 많았어요.
"올라타! 올라타!"
역무원과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기차 안으로 무조건 우겨넣었어요. 진짜 장대 들고 휘두르며 가축을 앞으로 몰아넣는 꼴이었어요. 짐이 많다보니 객차 내부 복도는 서로 엉켜 있는데 승무원과 역무원은 일단 안으로 들어가라고 계속 소리쳤어요. 승객이 역무원과 승무원에게 뭐라고 항의하면 바로 호통을 치며 당장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어요. 이 사람들이 정당한 요금을 지불하고 탑승하는 승객인지, 짐짝처럼 실려서 끌려가는 죄수들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어요.
당연히 객차 내부는 아수라장. 짐도 엉키고 사람도 엉키고, 한쪽에서는 계속 사람들이 올라타고 있었어요.
기차가 역에 도착한지 정확히 3분 후. 기차 문이 닫혔어요. 창밖으로 아주 뿌듯해하고 만족해하는 역무원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어요.
"야, 이거 뭐냐?"
"몰라. 진짜 웃기네."
어쨌든 역에 있는 사람을 다 우겨넣었으니 되었다는 건가. 임무 성공했다고 뿌듯해하는 역무원들. 기차가 출발했지만 기차 내부는 여전히 아수라장. 어찌어찌 기차 내부가 정리되어 가는 듯 했어요.
"나 이제 숙소 예약한다."
"이번에는 부킹닷컴으로 해봐."
"왜?"
"부킹닷컴은 후불제라서 돈 바로 안 나가거든."
친구가 아고다로 우루무치 숙소를 예약한다고 하자 이번에는 부킹닷컴으로 예약하라고 했어요. 중국은 내국인 전용 숙소가 많기 때문에 예약을 잘못 하면 예약하고 숙소에 못 들어갈 수 있거든요. 그래서 후불제인 부킹닷컴으로 예약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더욱이 당일 예약이다보니 한 번 예약하면 취소할 수도 없었어요. 친구는 다시 숙소를 검색하더니 1박에 100위안인 숙소를 찾아서 예약했어요.
오후 6시 55분. 드디어 제가 탄 기점이 란저우인 D2701 열차의 종점인 우루무치 남역에 도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