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14 중국 투르판 카레즈 민속원

좀좀이 2016. 7. 2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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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가기 싫어하는 눈치인 친구를 데리고 뒷편으로 넘어가는 길로 갔어요. 뒷편으로 넘어가자 뒷편이 바로 제대로 된 이 모스크의 입구였어요. 입구 옆에는 건물 하나가 있었어요. 예배당은 아니었어요. 건물 앞에서 요리사 복장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고, 할머니들이 그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종교 시설이라고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입구 뿐이었어요.


'여기 원래 식당인가?'



아무리 보아도 모스크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모스크였지만 지금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건물일 수도 있었어요. 종교 탄압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종교 시설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 뒷편이 보수공사중인 이유는 여기를 식당으로 개조하기 위해서인가? 이 또한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어요. 여기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사람들 앞을 지나쳐 문으로 나가야했어요. 문으로 나가면 바로 큰 길이었어요.


'인사나 드리고 나가야겠다.'


여기가 식당이라면 전혀 엉뚱한 뒷문으로 들어온 것이었어요. 잘못 들어온 것이니 인사드리고 조용히 나가면 될 것 같았어요.


"안녕하세요."


요리사에게 우즈베키스탄에서 하던 대로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살짝 굽혀서 인사했어요.


"들어와요!"

"예?"


인사를 드리자 요리사가 갑자기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아, 식당이라서 밥 먹고 가라고 하는 건가 보구나.'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어요. 안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아무리 보아도 식당인 것 같았어요. 식당에서 사람 잡는 것이야 흔히 있는 일이고, 이 요리사도 그래서 우리를 잡으려 한다고 생각했어요. 밖에 계시던 할머니들이 안으로 들어갔어요. 요리사는 계속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했어요. 그냥 가려는데 계속 끈질기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자 요리사에게 말했어요.


"저희 돈 없어요."


'식당이니 돈 없다고 하면 놔주겠지.'


"괜찮아요. 들어와요!"

"돈 없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요리사는 돈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괜찮다고 하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며 저를 안으로 잡아끌고 들어갔어요. 요리사가 저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자 안에서 밥을 먹고 있던 사람 모두가 저를 쳐다보았어요. 모든 시선을 다 받자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일단 다시 한 번 우즈베크인들이 인사하는 것처럼 예의를 갖추어서 인사를 드렸어요. 요리사는 빈 자리에 저와 친구를 데려갔어요.


"저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야?"

"저랑 마주쳤는데, 제대로 인사를 하더라구요. 인사를 했으니 식사를 주어야죠."


인사를 했기 때문에 밥을 주어야한다?


인사를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구나!


인사를 원래 안 하는 편이 아니고, 여행 가면 인사를 잘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인사성이 나쁘지는 않지만, 여행중 인사를 잘 하려고 하는 것은 인사성과는 조금 다른 별개의 문제에요. 여행중 인사 잘 해서 나쁠 것은 없어요. 인사도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해주는 수단 중 하나거든요. 요리사에게 정중히 인사를 드린 이유는 음식점에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정문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엉뚱한 뒷문으로 들어갔다 마주친 상황이라 생각해서 인사를 드린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인사 때문에 요리사는 제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것이었어요.


요리사는 거리를 걸으며 먹고 싶어했던 오쉬가 담긴 접시를 제 앞에 놓았어요.


'이거 진짜 공짜겠지?'


요리사는 망설이지 말고 먹으라고 했어요.


'돈 내라고 하면 나중에 내지, 뭐. 어차피 한 번은 먹을 거였는데.'


숟가락을 들어 밥을 뜨는 순간 모든 번뇌가 사라졌어요. 어차피 이 오쉬는 먹을 생각이었어요. 20위안이라는 것이 비싸서 안 먹었을 뿐이었어요. 10위안에 파는 가게가 보이면 바로 한 그릇 사서 먹을 계획이었어요. 나중에 10위안짜리 오쉬가 보여서 사먹든, 지금 여기서 먹고 돈을 내든 결국 그게 그거였어요. 단지 이따 먹을 것을 지금 당겨서 먹는다는 것 정도의 차이였어요. 일단 분위기를 보니 공짜로 식사를 제공하는 것 같기는 했어요. 정 유료라고 하면 돈을 내면 그만이었어요.


이거 맛 괜찮네?


상당히 수수한 오쉬였어요. 노란 당근, 빨간 당근, 그리고 쌀. 매우 기름졌고, 단맛이나 향신료 냄새는 별로 없었어요. 오쉬에서 단맛을 책임지는 재료는 당근이에요. 만드는 방법을 보면 노란 당근을 엄청나게 넣는데, 단순히 비타민 섭취하려고 넣는 것이 아니에요. 이 볶음밥 맛의 핵심이 바로 당근에 있기 때문이에요. 당근의 단맛이 이 밥의 기본적인 맛을 형성해요. 그러나 당근의 단맛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맛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건포도를 넣기도 해요. 여기에는 건포도가 들어가 있지는 않았어요. 당근의 은은한 단맛과 기름맛이 어우러져 살짝 느끼하면서 밥만 먹어도 심심하지 않은 맛이었어요.


오쉬를 열심히 퍼먹는데 수박을 가져다 주셨어요. 그리고 앞에 놓인 간식도 먹으라고 하셨어요. 일단 모두가 돌아가며 저와 친구를 구경하듯 바라보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건물 안이 약간 어두워서 찍어봐야 흔들 릴 것이 뻔하기도 했구요. 밥을 다 먹고 수박을 먹었어요. 수박 맛은 괜찮았어요. 우리나라 수박과 비슷한 맛이었어요. 수박까지 다 먹자 요리사가 제게 말을 걸었어요.


"어디에서 왔어요?"


중국어로 물어보았어요.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중국어를 아는 친구 대신 제가 대답했어요.


"저희는 한국에서 왔어요."

"어? 위구르어 알아요?"

"위구르어는 잘 몰라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즈베크어를 1년간 공부했었어요."


요리사의 위구르어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그냥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였어요. 어쨌든 우즈베크어와 위구르어는 비슷한 말이거든요.


"여기 언제 왔어요?"

"오늘 왔어요. 저녁에 우루루치 가요."


갑자기 요리사가 사람들에게 소리쳤어요.


"이 사람 한국에서 왔는데, 우리 말 알아요!"


앞에 있는 과자를 좀 먹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요리사 아저씨의 말에 모든 시선이 저에게 쏠렸어요.


"안녕하세요."


갑자기 확 몰린 시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앞쪽에 한 번, 뒷쪽에 한 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어요. 모두가 계속 저를 주시하고 있었어요. 제가 위구르어를 한 마디라도 더 말해보기를 원하는 눈치였어요. 문제는 무엇을 말해야할지 떠오르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분위기는 '너 위구르어 해봐' 이런 분위기인데, 이 상황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생각나는 것이 전혀 없었어요. 대학교 입학 후 서울에서 살며 무수히 많이 겪어본 상황. 차라리 대답을 해보라고 시키면 좋은데 무턱대고 '너 말 해봐' 하는 그 상황. 마땅히 할 말이 없었어요. 또 '이거 공짜 맞죠?' 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고개를 잠깐 뒤로 돌려보았어요. 어차피 제 뒤에 있는 식탁에 앉은 사람들도 저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뒤를 돌아본다고 해서 결례는 아니었어요. 진짜 360도 사방에서 저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 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어요. 제 오른쪽 뒤에 있는 벽에 아랍 글자로 뭔가 적혀 있었어요. 아랍 문자라면 뭐든 간에 일단 읽을 수 있어! 이게 아랍어든 위구르어든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쨌든 소리내서 읽으면 그것으로 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 있었어요. 한국인을 본 것 자체가 신기할텐데, 아랍어를 읽는 한국인이든 위구르어를 읽는 한국인이든 엄청 신기해보일 테니까요.


"이거 위구르어인가요?"

"예. 읽을 수 있어요?"

"음..."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의 눈이 둥그래졌어요. '진짜 위구르어 알아' 라고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어요. 빠르고 능숙하게 잘 읽을 수는 없었어요. 아직 위구르어 읽는 것이 적응이 되지 않았고, 글에 장식으로 그려넣은 무늬들도 있어서 빨리 읽을 수 없었어요. 몇 개 모음을 틀리게 읽기는 했지만 일단 소리내서 다 읽을 수 있었어요. 제가 읽으면 요리사 아저씨가 자신이 한 번 읽어주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아무리 우즈베크어를 1년간 공부했다고 하지만 우즈베크어를 아예 손도 대지 않은지 1년도 넘었어요. 당연히 예전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던 때처럼 우즈베크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을 리가 없었어요. 우즈베크어로 대화해도 버벅거리는 게 정상인 상태인데 이 사람들은 우즈베크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이 사람들은 위구르어로 말하고 있었어요. 이 사람들의 말 전부를 완벽히 잘 알아듣는 게 아니라, 힘겹게 알아듣는 수준이었어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상태가 아니었어요. 밑천 드러나기 전에 빨리 환상만 남기고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었어요.


"이 음식들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일들이 항상 당신들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우즈베크어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오! 너 아까 뭐라고 한 거? 길게 말하던데."

"그냥 음식 주셔서 고맙고, 항상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어."

"와, 진짜 멋있다!"


친구가 감탄했어요. 주변에 혹시 기부함이 있나 살펴보았어요. 밥을 얻어먹었으니 5위안 정도 기부하고 갈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아쉽게도 기부함은 보이지 않았어요.


위구르어를 들은 소감은 딱 세 가지였어요. 첫 번째는 이 사람들 말이 빠르다는 것. 우즈베크인들의 우즈베크어보다 빨랐어요. 두 번째는 북한말 듣는 것 같다는 것. 억양이 우즈베크어와 달랐어요. TV에 가끔 나오는 북한 일반인들이 예쁘게 말하려고 할 때 쓰는 그 말투 같았어요. 그래서 위구르어를 듣는 것 자체가 매우 재미있었어요. 이 억양이 중국의 지배를 받아서 그렇게 된 건지, 원래 그런 것인지도 궁금해졌구요. 세 번째는 이 사람들이 자꾸 과거로 말한다는 것이었어요. 대체 이 사람들이 왜 자꾸 현재로 말해야 할 것을 과거로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문맥상 현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정말 이상했어요. 이 이유는 나중에 카슈가르 가서야 알게 되었어요.


다시 큰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투르판 초등학교


초등학교 앞을 지나 또 쭉 걸어갔어요.


mosque in Turpan


모스크가 또 나왔어요. 이 모스크의 이름은 투르판 셰르키 메스지드, 중국어로는 吐鲁番東大寺 였어요.



안으로 들어가보려고 문 앞으로 갔더니 문이 잠겨 있었어요. 문틈으로 모스크 내부를 쳐다보았어요.


"야, 여기 모스크 되게 특이해!"


문틈으로 본 모스크 모습은 정말로 특이했어요. 중국에서 기대했던 그 모스크 모습이었어요. 안에 사람이 있나 문 틈을 통해 안을 살펴보았어요. 안에는 사람이 없었어요. 정말 안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이런 모스크를 구경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모스크 문이 왜 잠겨있는지 이해가 되지도 않았구요.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들에서 웬만한 모스크는 밤 늦은 시각이 아닌 이상 항상 열려 있었어요. 이렇게 모스크가 문이 잠겨 있는 것은 보통 사용하지 않는 모스크라는 의미였어요. 마침 모스크 옆에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어요.


"모스크 몇 시에 열어요?"

"2시에 열어요."


시계를 보았어요. 12시 15분. 앞으로 1시간 45분 후 이 문이 열릴 것이었어요. 적당히 걸어다니다 여기로 돌아오면 대충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친구와 2시에 이 모스크로 돌아오기로 하고 다시 앞으로 쭉 걸어갔어요.


위구르 여인


위구르 여인이 길거리 의자에 앉아 자수를 놓고 있었어요.


"모스크 또 있네?"


吐鲁番清真寺


이 모스크의 이름은 찾지 못했어요. 이 모스크 또한 밖에서 볼 때 매우 아름다웠어요. 어차피 시간이 남아돌고 갈 곳은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여기나 들어가서 시간을 때워볼까 했어요. 그러나 이 모스크 역시 문이 잠겨 있었어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 모스크 역시 오후 2시에 문을 연다고 알려주었어요. 결론은 모스크 내부를 보고 싶다면 어느 모스크든 간에 2시 정오 예배때 와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모스크 옆에는 가게가 있었어요.


"우리 뭐라도 하나 사마실까?"


슬슬 더웠어요. 시원한 것 하나 마시고 싶었어요. 친구와 가게로 들어갔어요. 음료수가 들어 있는 냉장고를 보았어요.


'여기는 음료수가 상하이랑 완전 다르구나!'


일단 병과 캔 모두 위구르어로 적혀 있었어요. 콜라조차 위구르어로 적혀 있었어요. 상하이 가게들에서 보았던 음료수는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정체불명의 음료수도 보였어요. 딱 보자마자 '이것은 문방구 앞에서 파는 불량식품 음료수'라는 생각이 드는 색소 가득 들은 음료수가 눈에 확확 들어왔어요. 친구는 왕라오지를 마시고 싶다며 찾아보았지만 왕라오지는 당연히 없었어요. 저는 이것을 골랐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콜라


잠잠콜라!


중동지역에서 생산하는 자체 브랜드 콜라 중 가장 유명한 콜라에요. 위구르어로 zam zam 을 쓰다보니 원래 zam zam 과는 묘하게 달라졌어요. 이 중국 짝퉁스러움이 느껴지는 디자인! 설명을 보니 이것은 중국에서 생산하는 콜라였어요. 순간 흥분되었어요. 이건 대체 얼마나 짝퉁스러울까? 사실 자체 브랜드 콜라는 무엇을 먹어도 맛이 어느 정도 이상하기는 해요. 우리 입맛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에 길들여져 있고, 이 두 콜라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보니까요.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딱 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 콜라는 정말 짝퉁같다!


콜라가 아니라 콜라맛 사탕을 빨아먹는 맛이었어요. 콜라맛 사탕맛이라도 만들어내었으니 성공이라고 보아야 하나?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서 다 마셔버렸어요.


'다음부터 콜라는 반드시 코카콜라나 펩시콜라로 사야지.'


굳게 다짐하며 또 걷기 시작했어요.


투루판 이슬람


길 건너편에 큰 모스크가 하나 또 보였어요. 이것은 투르판 쉬말리 메스지드, 중국어로는 吐鲁番北大寺 였어요. 투르판 쉬말리 메스지드도 역시나 문이 닫힌 상태. 그래서 앞으로 정처없이 계속 걸어갔어요.


이번에는 우체국이 나왔어요.


post office in Turpan


"혹시 사진 엽서 파나 보게 한 번 들어가보자."


우체국 안으로 들어갔어요. 우체국 규모는 매우 작았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우체국보다는 우편물 취급소 정도 되는 크기였어요. 무뚝뚝한 직원이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어요. 혹시 투르판과 관련된 엽서나 우표가 있는지 우체국 내부를 살펴보았어요. 특별히 투루판과 관련된 것이 보이지는 않았어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직원 얼굴을 보니 여기에서 무언가를 기대할 것은 없어 보였어요.


'사진엽서를 팔면 여기에서 내 집으로 엽서 한 통 부칠텐데.'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온 엽서라면 그것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사진엽서가 없으니 엽서를 쓰려 해도 쓸 엽서가 없었어요. 일반 우편 엽서가 아니라 사진 엽서에 글을 쓰고 우표를 붙여서 부치고 싶었거든요. 지금까지의 길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기념품을 파는 가게를 단 한 곳도 보지 못했어요. 수박을 기념품으로 사서 갈 수는 없었어요. 마땅히 선물로 사갈 것을 하나도 보지 못했어요.


'관광지가 아니라 기념품 파는 곳이 아예 없나보다.'


투루판에서 관광지는 거의 모두 시 외곽에 흩어져 있었어요. 이 지역 사람들이 관광 기념품을 구입할 리는 없을 거에요. 관광지 가면 기념품 파는 곳이 분명히 있겠지. 여기는 단지 평범한 마을이라 아무 것도 없는 것일 거야. 이렇게 생각하니 기차역에서 지금까지 오며 기념품 파는 곳을 단 한 곳도 보지 못한 것이 납득이 갔어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투르판에서 유적 같은 곳을 갈 일이 없었어요. 아까 그 셰르키 메스지드에서 기념품을 팔 리는 없었어요. 오늘 일정 가운데 기념품을 팔 만한 곳이라고는 딱 하나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기차역이었어요.


'기차역 가면 무언가 팔고 있겠지.'



그리고 모스크가 또 나왔어요.



'이쪽에 시장 있나?'


갑자기 나름 북적이는 번화한 거리가 시작되었어요.




길 건너편에 무언가 그럴싸한 문이 하나 보였어요.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서 카메라로 찍은 후 확대해서 글자를 읽어보았어요.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6글자 중 맨 앞과 맨 뒤를 제외한 儿井民俗 뿐이었어요.


'얼정 민속? 이거 혹시 카레즈인가?'


카레즈를 중국어로는 칸얼징 坎儿井 kǎnrjǐng 이라고 해요. 儿井民俗 에서 맨 앞글자 발음은 얼. 혀에 사탕 올려놓고 발음하듯 얼얼얼얼 발음하는 중국어를 '얼화'라고 하는데 그 소리가 바로 儿 소리에요. 그 다음 井 는 우물 정. '정'이니 대충 '징'과 비슷한 소리였어요. 앞의 두 글자를 제 지식을 가지고 읽어보니 '얼정'이었는데 칸얼징에서 '얼징'과 매우 비슷했어요.


'설마 카레즈까지 걸어온 거야?'



위구르 전통빵 난을 파는 가게를 지나 칸얼징 민속원 坎儿井民俗园 이라고 적힌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어요.


위구르인 이슬람


"여기 모스크 또 있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이슬람


길을 걸어가는데 빵을 구울 때 사용하는 화덕이 보였어요.


위구르 문화권 화덕


"저것이 이 지역의 화덕이야. 저기에서 빵 구워."


친구에게 설명을 해 주었어요. 타슈켄트에서는 흔히 보기 어렵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슈켄트를 벗어나면 어렵잖게 볼 수 있는 화덕이었어요. 저런 구조의 화덕은 우즈베키스탄 뿐만 아니라 다른 튀르크 국가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었어요. 저 화덕에서 주로 빵을 굽지만, 고기를 굽는 경우도 있어요. 화덕 위에는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었어요. 참고로 위구르어로 화덕은 '토누르'이고, 우즈베크어로 화덕은 '탄드르'에요.


'이왕 온 김에 카레즈나 구경해볼까?'



안 들어가!


카레즈 민속원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40위안을 내야 했어요. 지하 수로 및 그와 관련된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가격은 40위안. 표지판을 보니 40위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추가로 40위안을 더 내야 하는 것 같았어요. 만약 이 생각이 맞다면 총합 80위안. 안에 들어가서 특별히 볼 게 있나 싶었어요. 카레즈는 지하 관개수로라 이 지역 사람들에게 의미가 큰 것이기는 했어요. 그러나 투르판에 대해서는 애초에 별 흥미가 없었고, 40위안 주고 볼 가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마구 들었어요. 40위안이면 위구르 음식 4종류를 먹어볼 수 있는 돈이었어요.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 유적에 들어갈지, 아니면 40위안으로 이것저것 사먹어볼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요. 저의 선택은 무조건 후자였거든요.


"여기 입장료 40위안이란다. 너 들어갈래?"


그래도 친구의 의사를 물어보기는 해야 했어요. 저야 우즈베키스탄에서 질리게 보았던 것, 우즈베키스탄에서 발에 채이도록 많던 것이라 생각하며 지나칠 수 있지만, 친구는 이 모든 것이 처음이었거든요. 40위안 내고 안으로 들어갈 의사가 전혀 없기는 했지만, 만약 친구가 40위안 내고 안으로 들아가보고 싶다고 한다면 같이 돈 내고 들어갈 생각이었어요.


"아니, 안 들어가."

"그러면 가자."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너 중국어 하잖아. 저기 매표소에 물어봐. 이 나라도 우즈벡처럼 화장실 안 빌려주냐?"

"아니, 그렇지는 않아."


친구가 매표소에 중국어로 화장실 좀 이용할 수 있냐고 물어보더니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여기는 화장실 잘 빌려주는구나.'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고약한 점은 바로 화장실을 안 빌려준다는 것이었어요. 길거리에서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신호가 오면 참 문제였어요. 공공화장실을 찾든가 식당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화장실을 빌려주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거든요. 유료 공공화장실이라도 도처에 널려 있으면 그냥 공짜로 화장실 안 빌려준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유료 공공화장실이 여기저기 있는 것도 아닌데 화장실은 진짜로 빌려서 사용하기 어려웠어요.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도 화장실을 안 빌려주지는 않는데 유독 우즈베키스탄만 그랬어요. 친구가 별 문제없이 화장실로 가는 것을 보며 이 지역을 여행하며 화장실 때문에 고생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투르판 카레즈 민속원


친구가 돌아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서 보이는 건물을 카메라로 찍었어요. 저기 들어가는 데에 내야 하는 비용이 40위안이었어요.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것은 전혀 없었어요. 만약 그런 게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친구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든 어디에서 만나자고 하든 한 후, 혼자 들어갔을 거에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진을 대충 한 장 찍고 뒤돌아설 수 있었어요.



정말 시기 잘못 맞추어 온 건가?



길 양쪽 옆에 기둥을 박고 길 위로 지붕처럼 이어서 얼핏 보면 거대한 행사용 천막 같은 구조물이 있었어요. 이것은 포도 덩쿨이 타고 올라가도록 만들어놓은 것이었어요. 예전에 이쪽을 여행한 사람들이 남긴 사진을 보면 지붕까지 포도 덩쿨이 덮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이제 지나간 이야기. 포도 덩쿨을 잘라내어서 철제 틀이 아주 시원하게 잘 보였어요. 나무 자체를 뽑아낸 것은 아니니 언젠가는 다시 저 철 구조물 위를 모두 포도 덩쿨이 덮을 거에요. 그러나 제가 저 구조물을 통과하는 동안 포도 덩쿨이 만화에서 나오는 식물 괴물처럼 마구 자라 위를 덮는 일은 절대 발생할 리가 없었어요.


투루판 포도나무


게다가 아직 철이 아니라 포도가 이제 열리기 시작하고 있었어요. 씨알 굵고 탐스러운 포도가 아니라, 뼈다귀처럼 앙상한 포도 가지에 초록색 비비탄 같은 작은 알갱이들이 달려 있었어요.


왔던 길을 되돌아나와 이번에는 길 맞은편에 있는 시장으로 가보았어요.



들어가자마자 깔깔한 먼지가 느껴졌어요. 이 시장은 의류 시장이었어요. 밖에서 보았을 때는 무언가 재미있는 볼거리가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 안으로 들어가보니 그렇게 특별히 보거나 사진 찍을 것이 없었어요. 너무나 한적하고 먼지만 많았어요.


"이제 돌아가자. 모스크 보고 기차 타고 가야지."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저기서 무슨 요리하는데?"



어떻게 요리하나 구경하러 요리사에게 다가갔어요.



거리에서는 멜론도 팔고 있었어요.



그리고 무언가 분위기를 내려고 포도잎 장식으로 꾸민 노천 식당도 보였어요.



"이제 돌아가자. 2시에 모스크 보기로 했잖아."


친구가 어서 돌아가자고 재촉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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