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새벽, 길가에 앉아서

봄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 - 05 중량천 의정부시 구간 걷기

좀좀이 2016. 6. 9.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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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시에 진입하고나서 계속 걸어갔어요.


"하천에 저 철은 왜 박아놓았지?"





알고 보니 저것은 유사시 북한군의 전차를 막기 위해 설치한 장애물이래요. 저런 시설을 중량천에서 볼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어요. 그 전까지 중량천이라 하면 그저 의정부와 서울을 흐르는 큰 하천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처음 서울 와보는 사람에게 '이거 한강 아닌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하천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어요. 그런데 중량천은 시발점에 군부대가 들어서 있었고, 의정부와 양주 경계 근처에는 이렇게 유사시를 대비한 시설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드디어 의정부시 표지판이 나타났어요.



이제 풍경도 점점 더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의 이미지와 가까워지기 시작했어요. 중량천 길은 이제 제대로 된 산책로.



그리고 오른쪽 아래에 보이다시피 중량천 의정부 구간은 중량천을 넘어갈 수 있는 다리가 여러 개 있어요. 산책로를 걸으며 양편으로 왔다갔다 할 수 있어요. 서울처럼 중량천을 건너기 위해 산책로에서 나가야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계속 걸어가자 철교가 나왔어요.




이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철교. 의정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정부 역사에서 미군은 상당히 중요한 존재였어요. 제가 의정부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에는 가능쪽에 미군부대가 있고, 의정부역 근처 미군부대는 모두 빠져나간 후였는데, 아직까지도 미군부대터를 약간은 찾아볼 수 있을 정도에요. 주말이 되면 의정부역에서 미군을 볼 수도 있고, 아주 가끔 조깅하는 미군과 마주치기도 해요.


왜 대학교 다닐 때 의정부를 가볼 생각을 단 한 번도 못 했을까?


아직도 이 부분은 약간 후회가 되요.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의정부였는데, 그저 도 경계를 넘어야한다는 부담 때문에 상당히 먼 곳이라 여겨서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어요. 의정부에 간 일이 몇 번 있기는 했어요. 그 모두가 자다가 종점으로 의정부 간 것이었고, 전철만 갈아타고 바로 돌아와버렸어요. 만약 그때 전철역에서 빠져나와 의정부를 조금이라도 보고 돌아갔다면 지금 의정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훨씬 더 많았을 거에요.



위 사진은 가능동이에요.



낚시 금지.


중량천을 보면 가끔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여요. 여기에서 뭐가 잡히기는 하나 궁금한데 간혹 있더라구요.




"이제 다 와간다!"


낯익은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제가 중량천 갈 때 항상 시작점이자 종점으로 삼는 곳이 나왔어요. 이곳을 정확히 어디라고 설명하기는 애매해요. 저는 그냥 편의상 '의정부역'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의정부역에서 가깝지는 않아요. 중앙시장 뒷편이라고 하는 게 보다 정확할 거에요.


"일단 밥이나 먹어야겠다."


오후 6시 10분. 중량천에서 빠져나와 김밥천국으로 갔어요.


"여기 돈까스랑 김밥 두 줄 주세요."


돈까스와 김밥을 먹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그냥 확 다 걸어서 끝내?


양주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생각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어요. 이제부터는 아는 구간. 의정부에서 중량천을 따라가다 청계천으로 빠져서 그것을 끝까지 걸었을 때 얼추 7시간 정도 걸렸어요. 그런데 청계천도 짧은 하천이 아니었고, 중량천과 청계천의 합류지점에서 한강까지의 거리는 청계천에 비할 바가 아니었어요.


풍경을 볼 필요도 없었어요. 사진을 찍을 필요도 없었어요. 이미 한 번 다 갔던 길. 그냥 열심히 걷기만 하면 되었어요. 신호등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고, 오르막 및 내리막이 있는 길도 아니었어요. 빨리 걸으려면 상당히 빨리 걸을 수 있는 길이었어요. 왜냐하면 산책로를 계속 걸어가는 것이니까요.


'별로 걸은 것 같지도 않은데 확 걸어버려?'


이 생각을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원래 계획은 저녁 먹고 전철타고 한양대앞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걸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전철 요금이 그순간 너무 아깝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허투루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게다가 양주시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쉽다보니 더 걷고 싶다는 욕구도 매우 컸어요. 쉬는 날 전철타고 짜증나게 사람들에게 치이며 서서 가고 환승해서 갈 바에는 그냥 걸어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어요.


예, 이건 말 그대로 미친 생각이었어요. 절대 하면 안 되는 생각이었어요.


저녁을 후다닥 먹고 다시 중량천으로 돌아왔어요.




저녁 6시 42분.


이때 나는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아직 잘못을 되돌릴 기회는 많이 있었어요. 최후의 최악의 선택까지는 아직 여유가 많이 남아 있었고, 되돌릴 수 있는 터닝포인트도 많이 남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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