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여러 감정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어요.
중량천을 깔끔하게 완주하는 것에 도전한다는 흥분.
예전에 두 번이나 걸었던 긴 구간을 또 걸어야한다는 지루함.
전철 끊기기 전까지 어떻게든 끝내야한다는 무거움.
이론상으로만 알 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구간을 무사히 잘 넘길 수 있을까 걱정.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머리에 담은 상태로 열심히 걷기 시작했어요.
18시 56분. 발곡역 도착.
19시 38분, 서울 - 의정부 경계 도착.
19시 42분. 계획대로 다리를 건넜어요.
여기까지는 계산한 대로였어요.
왜 이렇게 다리가 계속 무거워지지?
계속 빠르게 걸어가야 했는데 점점 걷는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어요. 다리가 아팠어요.
'고작 10km 조금 넘게 걸었는데 왜 이러지?'
그냥 길을 10km 조금 넘게 걸은 것도 아니고 아주 잘 되어 있는 산책로 10km 걸은 것. 조금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리가 너무 무겁게 느껴질 정도를 걸은 것 또한 아니었어요. 일반 거리 10km 라면 상당히 걸은 것이 맞지만, 이건 잘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를 걷는 것이었으니까요. 아직 창동도 오지 못했는데 피로한 정도가 예전 창동까지 걸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힘들었어요.
'요즘 운동을 하나도 안 해서 그런가?'
나중에야 알게 되었어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때 실제 걸은 거리를 크게 착각하며 걷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계산이 틀리기 시작했어요. 아마 의정부 들어오면서부터 거리 계산이 틀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 착각이 그냥 1~2km 정도면 큰 문제가 안 되는데, 10km 였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20km 넘게 걷고 있는데 이것을 10km 조금 넘게 걸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계속 걷다 보면 몸이 풀리겠지. 아까 밥 먹은 게 소화가 잘 안 되어서 그런가보다.'
이때 20km 넘게 걸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전혀 다른 선택을 했을 거에요. 아무리 산책로라 해도 20km 넘게 걸으면 힘들어요. 만약 이때 이미 20km 넘게 걸어서 지친 것을 알았다면 망설임 없이 전철을 타고 한양대로 이동했을 거에요. 그러나 10km 조금 넘게 걸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철을 타고 빠르게 이동할 게 아니라 계속 걸어가보자는 선택을 해버리고 말았어요.
중량천 외대 지점까지 오니 진짜 힘들었어요.
'내가 몸이 진짜 안 좋아졌나보다. 앞으로는 산책 좀 하면서 살아야겠어.'
외대 지점에서 지하철 타고 갈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그렇지만 서서 고민하지 않고 걸으며 고민했어요. 어떻게 할까 계속 망설이며 걷다보니 외대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올라가야 하는 다리를 지나가버렸어요. 이제 남은 선택지는 오직 하나. 그냥 걷는 것이었어요. 시간도 이제 지하철을 타고 한양대로 가기에는 너무 애매한 시각이었어요.
"산책로가 왜 벌써 끊기지?"
건너편 산책로는 아직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제가 걷고 있는 쪽은 산책로가 끝나서 밖으로 빠져나가게 되어 있었어요.
중량천과 비슷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산책로가 있어서 그 산책로를 따라 계속 걸어갔어요. 차도 너머로 보이는 중량천을 보며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방향을 잡으며 걸었어요.
나무에 걸려 있는 방패연. 나무가 설날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어요. 3월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어요. 저 연을 보니 중학교때 국어책에 실려 있던 수필이 생각났어요.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내용이 매우 재미있어서 좋아했던 수필이었는데, 그 수필 중 겨울에만 연을 날리고, 마지막에는 연을 태워서 날려보낸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렇게 연을 태워 날려보내는 것이 대보름인가 그랬어요.
드디어 보이는 중량천과 청계천 합류 지점. 이때 시각이 밤 11시 14분이었어요. 더 이상 빼도박도 못하고 걸어서 끝을 보아야 하는 상황. 이제 그만두나 다 걸으나 집에 돌아가는 것 자체가 문제였거든요.
중량천과 청계천 합류 지점을 보니 여러 기억이 떠올랐어요. 중량천은 제게 항상 난제 한 가지씩 던져주었던 하천이에요. 처음에는 중량천 산책로로 내려가는 길을 못 찾아서 몇 번 헤메게 만들고, 또 몇 번은 바로 저 지점에서 건너가는 방법을 못 찾아서 몇 번 헤매게 만들었어요. 이제 모든 문제는 다 풀었어요. 정신 잘 차리고 살곶이다리로 가서 건너가기만 하면 되었어요.
산책로에서 지하통로로 들어가서 지하통로를 따라가니 살곶이 다리가 나왔어요.
살곶이 다리를 건너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살곶이다리에서 중량천의 한강 합류지점까지 10분이면 충분히 걸어갈 줄 알았어요. 그러나 여기 역시 짧은 구간은 아니었어요. 10분이 넘어가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이러다 지하철 막차도 놓쳐버리는 것 아니야?'
밤 11시 46분.
다 왔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바로 한강이었어요.
서울에서 중량천을 처음 본 그날부터 막연히 한 번은 중량천을 다 걸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강까지 걸어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구요. 언젠가 다 걸어봐야지, 다 걸어봐야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해왔던 중량천 완주. 결국 끝을 보게 되었어요.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다 걸을 수 있었어요.
참고로 이 지도는 외대까지의 거리에요. 나중에 제가 어디에서부터 걸은 거리에 대해 착각했는지 찾아보기 위해 네이버 지도를 이용해 거리를 재어보았던 기록이에요. 분명히 외대 이전 어느 순간부터 계산이 크게 틀어져 버렸어요. 25.9km 를 걸었다고 나오는데 저 지점에서 저는 16km 쯤 걸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