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새벽, 길가에 앉아서

봄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 - 07 한강에서 의정부까지 걸어가기

좀좀이 2016. 6. 15.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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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떻하지?


중량천을 다 걸은 것까지는 좋았어요. 문제는 집에 돌아갈 방법이었어요. 적당히 먼 거리라면 택시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었어요. 그러나 제가 사는 곳은 의정부. 택시요금을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선택지를 아무리 떠올려보았지만 선택지라고는 오직 2개 밖에 없었어요.


1. PC방에 가서 밤을 샌다.

2. 다시 걸어서 돌아간다.


둘 다 최악인데?


만약 여름이었다면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을 거에요. 적당히 중량천 벤치에 앉아서 쉬다가 첫 차가 열리면 그때 첫 차 타고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사실 이 선택지가 그럭저럭 쓸만한 선택지이기는 한데...이때는 3월이었어요. 그렇게 있으면 얼어죽을 것 같았어요.


PC방 가서 밤을 새는 것과 걸어서 돌아가는 것.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PC방에 가면 일단 돈이 들어. 원래 하던 게임이 없기 때문에 PC방에서 할 것도 없어. 그렇다고 편히 누워서 자는 것도 아니고 의자에 기대서 자야 해. 잠을 잔 것 같지도 않게 자고 집에 와서 또 쓰러져 자야 하는 것은 덤. 몸은 몸대로 힘들고 잠은 잠대로 못 자.


PC방에서 밤을 보내본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PC방에서 밤을 보내고 집에 들어가기는 정말 싫었어요. PC방 가서 하는 게임이 있다면 몰라도, 그것도 아니니 진짜 추위를 피해 첫 차가 다니는 시각까지 버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이렇게 하기에는 돈이 너무 아까웠어요.



PC방 가서 밤을 지새우기 vs 걸어서 되돌아가기


이미 머리 속에서 답이 나와 있었어요. 'PC방 가서 밤을 지새우기'가 'PC방 가서 돈 버리며 밤을 지새우기'로 바뀌어 있었으니까요. 이쪽이 1호선도 아니다보니 첫차를 타고 간다 해도 의정부까지 가려면 시간이 엄청 걸릴 것이었어요. 그래서 PC방 가서 밤을 보내고 첫차 타고 귀가하는 것이 더욱 돈낭비로 보였어요.


"돌아가자."



의자에 잠시 앉아서 다른 선택지가 없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어요. 여기에서 다시 청계천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도 있기는 했어요. 청계천은 동대문을 지나가니 거기에서 심야버스를 이용해 의정부로 돌아갈 수도 있었고, 청계천 시작점이 시청역과 가까우니 청계천 시작점으로 간 후, 근처 카페에서 시간 좀 보내다 첫 차가 개시되면 그때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어요.


꼭 그렇게 해야 할까?


말이 좋아 청계천에서 동대문까지고, 청계천 완주지, 이것도 무시할 거리는 아니었어요. 게다가 의정부로 가까워지는 길도 아니었구요. 단지 지하철 1호선 쪽으로 가기 때문에 가까워지는 것 같은 효과가 발생하는 것 뿐인데, 어차피 지하철 첫 차가 열릴 때까지 시간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어요.


그냥 걷자.


선택지 중 돈을 안 쓰는 방법은 어쨌든 걷는 것 뿐이었어요.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보아도 마땅히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어요. 창동 즈음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었어요.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거기에서 빨리 근처 1호선 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고 이동해야 했어요. 그 순간을 놓쳐버렸을 때, 걸어서 의정부까지 가야하는 결말이 확정되어 버렸던 것이었어요.


다행히 날이 전혀 따뜻하지 않은 3월초 밤이었어요. 밖에 나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다리가 알아서 냉찜질이 되었기 때문에 다리에 알이 박혀서 못 걷는 상태는 아니었어요. 확실히 쉴 때마다 다리의 피로는 여름에 비해 빠르게 풀렸어요. 대신 쉴 때마다 상반신은 열이 식어서 오들오들 떨어야 했지만요.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어요.


이 차가운 것은 뭐지?



내 볼에 느껴지는 이 차가운 것은 무엇일까?



눈 내린다!



전혀 반가운 상황이 아니었어요. 날이 따스해서 걷기 좋은 날씨라 생각하기만 했지, 밤에 눈이 내릴 거라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낮에 맑았기 때문에 밤에 눈이 올 거라는 것을 아예 생각도 못 했거든요. 일기예보도 보지 않고 나왔는데, 이런 상황이 발생했어요.


"잠깐 후면 그치겠지."


살곶이 다리를 다시 건너가기도 귀찮아서 원래 가던 방향을 계속 유지하면서 갔어요. 이 귀찮음 덕분에 쓸 데 없이 또 많이 걸어야 했어요. 청계천을 건너기 위해 청계천을 타고 올라가서 다리를 건너야 했거든요. 청계천을 건널 때 다리가 아팠지만, 이제 아는 길을 빠르게 걸어가면 된다는 생각에 힘이 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어요.


이미 상당히 많은 거리를 걸은 상태였어요. 이제는 10km 덜 계산하고 있다고 해도 먼 거리를 걸었다는 것을 계산할 수 있었어요. 선택지가 없어서 걷기는 하는데, 눈까지 내려서 더 최악의 상황이 되었어요. 다행히 눈이 금방 멎기는 했지만, 벤치가 젖어버려서 벤치에 앉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거든요. 서서 쉬거나 쭈그려 앉아서 쉬어야만 했어요. 다른 날보다 피로가 더 빠르게 쌓이는 상황이었어요.


사진을 찍을 정신도 없었어요. 이미 한 번 걸었던 길이다보니 사진을 찍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핸드폰 배터리도 거의 다 떨어져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어요. 카메라를 꺼낼 힘도 없었구요. 그냥 계속 걸었어요.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한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상황이라면 이때 자전거를 타고 중량천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춥고 졸려서 졸면서 걸었어요. 어떻게 걸었는지 전부 다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 이유는 중간중간 자면서 걸었기 때문이에요. 잠깐 눈 감고 졸면서 걷다가 눈 떠서 걷는 방향 확인하고, 다시 눈 감고 졸면서 걷다가 눈 떠서 걷는 방향 확인하고 그랬어요.


눈이 또 내려!


잠깐 오고 끝나는 눈인줄 알았는데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장마비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어요.


게다가 설상가상. 진짜 눈 내리는 상황에서 설상가상. 이때 창동 즈음에서는 중량천 산책로가 공사중이어서 창동 즈음에서 산책로를 빠져 나가야 했어요. 산책로를 빠져나가서 눈 맞으며 일반 길로 한참 걸어가다가 다시 산책로로 들어갔어요. 외투와 머리카락은 눈 때문에 축축하게 젖었고, 손은 얼어 있었어요. 그러나 멈출 수도 없었어요. 이 상황에서 선택할 선택지는 오직 하나 - 걸어가는 것 뿐이었거든요.


"다시는 중량천 걷나 봐라."


눈을 맞으며 계속 걸었어요. 어디 기어들어가서 첫 차가 올 때까지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을텐데, 그런 건 없었어요.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했기 때문에 근처에 뭐가 있는지, 버스 노선이 어떻게 되는지 검색할 수도 없었어요. 이제는 다른 선택지가 무엇이 있나 찾아볼 수조차 없었어요. 중량천은 어떻게 되는지 알지만, 그 주변은 하나도 몰랐거든요. 그나마 아는 동네가 외대였는데, 거기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쳐 버렸어요. 사실 이때 이문동으로 가도 마땅히 선택할 선택지는 없었지만요. PC방에서 밤새는 것을 선택하지 않은 대가는 상당히 컸어요.



조금 내리고 끝날 줄 알았던 눈은 이렇게 쌓일 정도로 내렸어요. 이 사진은 잠시 눈이 그쳤을 때 찍은 사진이에요. 이후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예전에 걸었을 때에는 그래도 힘들면 앉아서 쉴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때는 달랐어요. 눈이 계속 내리다 보니 벤치에 앉아서 쉬는 사치는 고사하고, 쭈그려 앉아 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어요.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데도 미친 듯이 걸어야만 했어요.


의정부에 들어서자 드디어 눈이 그쳤어요. 그때 저는 이미 모든 것이 파괴된 상태. 정신도, 육체도 붕괴된 상태였어요. 진짜 어디고 일단 드러눕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못 드러누운 이유는 너무 추웠고, 눈 때문에 주변이 전부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발곡역!"


새벽 6시 5분. 발곡역이 보였어요.



걸어서 집까지 완주? 그딴 것은 개나 주라고 해. 지금 춥고 다리 아파서 진짜로 쓰러질 것 같아.


한 걸음 내딛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었지만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선택지가 없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발곡역이 눈 앞에서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달랐어요. 이미 아주 한참 전부터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을 엄청나게 후회하고 있었어요. 그냥 얌전히 의정부역에서 지하철 타고 한양대 가서 걷기 시작했으면 바로 이 시각 따스한 방바닥에 드러누워 편히 잘 자고 있었을 것이에요. 그때 그 선택을 하지 못함으로써 손과 얼굴은 꽁꽁 얼어버렸고, 옷과 머리는 흠뻑 젖어버렸어요. 다리는 찢어지게 아팠어요. 근육을 결대로 잡아찢어대는 고통이 느껴졌어요. 발에는 물집이 잡혀서 걸을 때마다 쓰렸어요.


만약 이 순간, 저 천국의 문 같은 발곡역을 지나친다면 지옥의 끝을 볼 수도 있을 거야.


발곡역을 지나쳐버린다면, 또 한참 걸어가야 했어요. 이 다리와 발 상태로라면 아마 아침 7시나 되어야 집에 도착할 것 같았어요. 발곡역을 지나서 의정부 청과시장까지 걸어가야 했고, 거기에서 의정부역까지 걸어가야 했고, 거기에서 또 집까지 걸어가야 했거든요. 이게 2km 가 넘는 길이었어요. 평소 같으면 별 부담없이 걸어갈 거리였지만 이때는 아니었어요. 깻묵을 쥐어짜서 참기름 뽑아내는 것처럼 마지막 힘 한 방울까지 쥐어짜고 있었거든요. 걸은 거리도 거리였지만, 문제는 중간에 제대로 앉아서 쉬지도 못했다는 것이었어요.


휘청거리며 발곡역으로 들어갔어요. 들어가자마자 자판기에서 레쓰비 핫초코를 뽑아먹었어요. 이게 그렇게 맛있는 것인지 처음 알았어요. 캔 속에 혓바닥을 집어넣어서 그 한방울까지 싹싹 핥아먹고 싶었어요. 세상에 이렇게 따스하고 맛있는 것이 있나 감동했어요.


경전철을 타고 의정부역으로 가서 집까지 걸어갔어요. 이게 길을 걷는 것인지 런닝머신 위를 걷고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어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바로 쓰러져버렸어요.



그날 걸은 거리는 61km. 집에서 쓰러질 때까지 50km 를 걸었다고 생각했고, 잠에서 깨어나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걸었는지 지도로 재어보니 그제서야 60km 넘게 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때서야 왜 창동 가기도 전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깨달았어요. 아마 의정부에서 서울 넘어갈 때부터 제 계산은 어그러졌던 것 같아요. 제가 20km 걸었다고 생각했을 때 실제 걸은 거리는 30km 였고, 마지막 발곡역까지 오며 50km 를 걸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60km가 넘은 상태였어요.


이 일이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어요.


이날 걸은 이야기를 별 생각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어요. 그러자 제 이미지는 상당히 나빠졌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자기가 들은 것 가운데 자기가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만 기억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말해주지 않으면 과정이 어떻게 된 건지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해 버려요.


제 이미지가 7박 35일 여행 때문에 상당히 안 좋다는 것을 이때 알게 되었어요. 숙소에서 오직 7일만 자고, 나머지는 전부 버스나 기차에서 자서 힘들기는 했는데, 당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요. 이 여행은 치밀하게 준비하고 떠난 여행이 아니었어요. 발칸유럽과 중부유럽의 역사, 문화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어떻게 숙소를 구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어느 정도였냐하면 게스트하우스라는 것은 아예 몰랐고, 잠은 무조건 호텔에서 자야 하는 것인줄 알았어요. 이 당시 제가 여행 다닌 국가 중 한인민박이 있는 곳은 프라하 뿐이었구요. 파리의 경우, 이때 불법 한인민박들이 대거 단속에 걸려 한인민박을 찾지 못했던 악재도 따랐어요. 호텔에서 잠을 자려고 하니 여행 경비가 미친듯이 폭증했고,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간이동으로 숙박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배낭여행 갈 준비는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배낭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 급히 떠나버렸는데, 하필 당시 여행 정보가 정말 부족했던 지역으로 떠났기 때문에 여행 정보를 구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그 외 여행들도 제가 갈 때에는 여행 정보가 부족한 곳이 태반이었어요. 힘들게 다니고 싶어서 다닌 것이 아니라 힘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덜 힘들게 다닌 것이었어요.


그냥 귀찮아서 이런 이야기는 생략하고 7박 35일 여행 다녀왔다고만 하니 제 이미지는 상당히 안 좋아졌어요. 그래도 사실 별 문제 없었던 것이 대부분은 어쨌든 돈 아끼려고 그렇게 다녔구나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돈 아끼려고 고생한 것도 맞는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 중 두 명이 문제였어요.


주변사람들에게 이날 일을 이야기할 때 분명히 PC방에서 밤을 샐 수는 없고, 집은 의정부라서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했다고 말했어요. 대부분은 그냥 한 번 놀라고 넘어갔지만 이 둘은 문제로 만들었어요.


한 명은 어울려 노는 사람들 중 하나였는데, 자꾸 장난으로 제가 많이 걷자고 한다고 말을 했어요.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하며 넘겼는데,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조건 엉뚱한 데로 끌고 가서 사람들 많이 걷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자꾸 덧씌우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이때 걸은 것을 근거로 가져왔어요. 이게 한 두 번이 아니라 자꾸 그러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꾸 이상한 사람 만들려고 하는 것에 화가 나서 직접 그만하라고 했어요. 제가 화를 낸 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상한 이미지 씌우려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무턱대고 고생하는 것을 즐기고 다른 사람도 끌여들어 같이 고생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찍혀 있었어요.


또 다른 한 명은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원래 생각이 짧은 사람이기는 했어요. 고향에 내려갔다 온다고 하니 자기 기준에 고향 가는 것도 여행이니 여행 가서 부럽겠다고 하는 등 생각이 깊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이 사람은 이때 PC방에서 밤 새기 싫은데 그 외에는 방법이 없어서 60km 걸었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제가 무조건 극한으로 일을 시킬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원래 생각이 짧은 사람이라는 것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지만 내가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과 남에게 지시할 것을 선택하는 것의 차이조차 구분 못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이로 인해 일하면서 상당히 불쾌한 일을 여러 번 겪었어요.


이 두 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 많이 걸었던 이야기는 그냥 웃고 넘어갈 이야기가 아니라 상당히 오랫동안 제게 불쾌한 일을 가져다주는 원인이 되었어요. 덕분에 교훈을 얻었어요.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말로 이야기할 때는 이유를 세뇌시키든지 아예 이야기하지 않든가 해야지, 안 그러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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