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이 모두 타자 보트가 출발했어요.
모터 보트는 강 위를 시원하게 달리고 있었어요. 조금 지나지 않아 부레옥잠 뭉텅이가 앞을 가로막았어요.
'이거 피해갈 건가?'
보트는 부레옥잠 뭉텅이를 정면돌파했어요. 물이 바바박 튀었고, 보트 안으로 부레옥잠 이파리가 살짝 들어왔다 순식간에 빠져나갔어요.
"완전 밀림 대탐험같아!"
여기는 사실 밀림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어요. 양 옆으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어요. 밀림 분위기와는 전혀 거리가 먼 곳. 그런데 보트가 부레옥잠 뭉텅이를 쫙 가르고 나가자 지금 여기가 열대 밀림 아닌가 하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월남전 영화에 나오는 베트콩들의 침투 장면 같은 느낌이었어요. 베트남에서 했던 투어에서 탔던 보트는 사람이 손으로 저어서 가는 보트였어요. 그래서 매우 조용하고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어요. 여기는 모터 보트. 베트남에서 탔던 보트보다 훨씬 거칠었어요. 소음도 크고, 앞에 부유물이 나오면 피해가는 게 아니라 정면 돌파였어요. 그러다보니 배 위로 물이 튀어 들어오기도 했어요.
멀리 큰 절 하나가 보였어요.
모터 보트는 선착장으로 접근해 갔어요.
"여기가 왓 파난 청이구나!"
배에서 내리자 여기가 바로 왓 파난 청 Wat Phanan Choeng วัดพนัญเชิง 이라고 알려주었고, 관람시간은 20분이라고 말했어요.
입구로 가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바로 이 배 모형이었어요.
왓 파난 청은 1324년 아유타야에서 거주하던 송나라 난민들이 건립한 절이에요. 물론 이때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그냥 섬 밖에 있는 절을 볼 수 있는 투어가 있다고 해서 신청한 것이었고, 그 절 세 개가 숙소에서 준 지도에 중요한 절처럼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간 것이었어요. 다음날 섬 바깥까지 전부 자전거로 돌기는 힘들 것 같고 시간도 애매해서 신청한 투어였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였어요.
"이거 분위기가 야왈랏 분위기인데?"
제가 방콕에서 머무르고 있던 숙소가 바로 방콕 차이나타운인 야왈랏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었어요.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왕궁을 갈 때 보았던 그 느낌, 그리고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보았던 그 느낌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아주 태국적인 것을 기대하고 왔는데 차이나타운에서 보일 법한 절이 나오자 뭔가 당황스러웠어요. 지금 왓 파난 청에 간다면 저 절이 1324년 아유타야에 거주하던 송나라 난민들이 지은 절이라는 사실을 아니까 가서 볼 때 '태국에서의 중국인 화교 역사가 매우 길다는 것을 보여주는 절이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때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아유타야에도 차이나타운이 있는 줄 알았어요.
이곳은 대체 무엇인가...
친구가 이곳 출신인데다 이곳에 가면 제 환상 속의 태국다운 것을 많이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왔는데 처음 제대로 본 것은 바로 화교 사원. 부처님이 날씬하신 것이 태국 부처님이 맞았어요. 이 점을 제외하면 중국 남부 어느 이름모를 절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일단 절을 다 둘러보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어요.
"진짜 크다!"
평범한 중국식 절이라 생각하고 휙휙 둘러보다 갑자기 거대한 불상과 마주치니 그 충격이 1.3배였어요. 인상적일 것이 별 거 없을 거라 생각했고, 그것과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다가 갑자기 일단 규모로 압도하는 것이 쾅 나오니 두 눈이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어요. 삐까뻔쩍 거대한 불상이 주는 위압감이 확 전달되었어요.
'이 불상을 보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었구나!'
이 불상은 1334년에 세워진 루앙 포 토 Luang Pho Tho หลวงพ่อโต 라는 불상이에요. 태국 화교들은 이 불상을 삼 파우 콩 Sam Pao Kong ซำเปากง이 불상의 높이는 19미터이며, 전체가 금은 아니고 도금된 불상이에요. 아무리 도금이라 하더라도 19미터 거대 불상을 도금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금이 필요하지요. 루앙 포 토는 선원들의 수호자로 여겨지며, 1767년 버마인들이 아유타야를 파괴할 때 눈에서 배꼽으로 눈물이 흘렀다는 전설이 있어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내부를 보고 절을 드린 후 밖으로 나왔어요.
코끼리를 신성하게 여기는 나라답게 사원 안에 코끼리상이 있었어요.
"요일별 불상이다!"
전날 요일별 불상을 직접 보았지만, 여기서 다시 보니 또 신기하고 너무 좋았어요. 게다가 이번에는 비록 예쁘게 찍을 수는 없었지만 사진 한 장에 요일별 불상 8종류를 다 담을 수 있었어요.
오후 5시. 배가 다시 출발했어요.
배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무슨 요새처럼 생긴 건물이 보였어요.
'이제 저 절을 가는 건가?'
다음에 갈 곳은 왓 풋타이 사완. 깨끗하고 잘 정돈된 절이 나오자 왠지 저기에서 내릴 것 같았어요.
'저 절은 태국 절처럼 생겼네.'
"어? 그냥 지나치네?"
이 절에 가까워지면서 속력을 조금 줄였던 보트는 다시 속력을 내서 달리기 시작했어요. 저건 그냥 지나치는 절이었어요.
강 위를 시원하게 달리는 보트 안에 앉아 있으니 덥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기에서 사람들 진짜 살겠지?'
분명하 사람이 사는 집인데 '사람이 살지 않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수상가옥을 직접 본 느낌은 '저거 관광객들 보여주려고 만든 것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억측이었어요. '저렇게 집을 높게 지었다가 바닥에 구멍나면 어떻하지?', '저렇게 얇고 가느다랗고 긴 나무들로 저 집 무게가 잘 지탱될까?' 라는 쓸 데 없는 걱정이 들었어요. 홍수가 나서 물살이 거칠어진다면 저 집들이 떠내려가기야 하겠지만, 그런 경우가 별로 없으니 사람들이 저렇게 집을 짓고 사는 것이겠지요.
"여기 모스크가 왜 있지?"
갑자기 등장한 모스크. 여기는 아유타야. 방콕 천도 이전 태국의 수도. 여기는 태국 남부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방콕보다 북쪽에 위치한 곳. 태국 남부로 갈 수록 무슬림이 많이 거주해요. 만약 제가 남쪽으로 가고 있는데 모스크가 나왔다면 그러려니 했을 거에요. 그런데 지금 저는 방콕보다 북쪽으로 왔고, 이쪽은 무슬림이 있을 것 같게 생긴 곳이 아니었어요. 온통 절과 절터인 곳인데다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곳은 특별히 도심이라 부를만한 곳도 아니었거든요.
'태국 전체에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건가?'
태국 남부가 태국 정부와 무슬림 사이의 갈등으로 위험하다는 것은 익히 여러 차례 읽고 들은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 생각했어요. 방콕이면 태국 중부는 되는 곳이니 방콕부터 그 윗쪽까지는 무슬림 볼 일이 정말 없겠다 생각했어요. 무슬림 주민이 없다고 모스크가 없다는 것은 아니에요. 외국인 무슬림들을 위해 모스크가 존재할 수는 있으니까요. 과연 여기가 무슬림들까지 몰려올 정도로 발달된 곳인가? 아유타야역에서 숙소까지 걸어가며 본 풍경, 그리고 숙소에서 주변을 돌아다니며 본 풍경, 왓 파난 청까지 보트를 타고 가며 본 풍경을 종합해보았을 때 아니었어요.
배에서 내려 모스크에 한 번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보트는 앞으로 쭉 달려갔어요.
오후 5시 12분. 드디어 두 번째 목적지인 왓 풋타이 사완이 보이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