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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 많은 언어가 존재해요. 서로 비슷한 언어들도 있지만, 아예 다른 언어들도 존재하지요.


중요한 것은 언어의 구분은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거에요. 어디까지나 언중이 같은 언어라고 주장하는지, 다른 언어라고 주장하는지에 따라 언어의 구분이 결정되요. 멀리 갈 것 없이 제주도 방언은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 사용할 경우 의사소통에 문제를 일으키지만, 그냥 한국어의 한 방언으로 취급하고 있지요. '어느 정도 달라야 다른 언어로 본다'는 절대적 기준은 없어요.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비슷한 언어 둘이 있을 때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상대 언어에 맞추어주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같은 언어라고 착각해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거에요. 이런 경우 상황을 잘 모르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진짜로 둘을 실상 같은 언어라고 잘못 판단하게 되어 버려요.


예를 들어서 터키어와 아제르바이잔어의 관계가 있어요. 둘은 비슷한 언어에요. 하지만 같은 언어는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터키인과 아제르바이잔인이 대화할 때, 터키 문화를 쉽게 접하는 아제르바이잔인들이 터키인에 맞추어서 터키어로 대화를 해요. 터키인들 중에는 터키어와 아제르바이잔어가 똑같아서 서로 자기말 해도 잘 통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구요. 더 나아가 카자흐어, 키르기스어, 우즈베크어, 투르크멘어, 아제리어 모두 터키어와 비슷해서 서로 잘 통한다고 주장하는 터키인들도 의외로 꽤 많은 편이고, 이들의 말만 듣고 일방적으로 튀르크 언어들은 하나만 알면 나머지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외국인들도 여럿 있어요. 하지만 터키어와 가장 가까운 아제르바이잔어를 사용하는 아제리인들에게 터키인들이 아제르바이잔어를 잘 알아듣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요. 자기들이 터키어를 사용해서 터키인들이 알아듣는 것이지, 자신들이 아제르바이잔어로 이야기하면 터키인들이 잘 못 알아듣는다고 말해요.


사실, 언어 사용에 있어서 비슷하다 하더라도 언어사용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상당히 많아요. 대표적인 예가 같은 단어를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어떤 단어가 있는데, 한 사람은 사전에 나오는 1번 뜻으로, 한 사람은 사전에 나오는 가장 마지막 20번째 뜻으로 사용한다면 의사소통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해요. 터키인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아제르바이잔어를 보면 터키어 사전에 뜻이 있기는 있는 경우도 많아요. 문제는 그 뜻이 사전을 보면 1번 뜻이 아니라 진짜 맨 뒷부분에 있는 뜻이라는 것이지요. 사전에 나와 있는 의미 뿐만이 아니라, 언어습관 역시 의사소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해요. 사전에는 있지만 정말 거의 쓰지 않는 의미, 그리고 거의 쓰지 않는 문법만 골라서 사용한다면 의사소통에 있어서 매우 큰 장애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이런 경우를 들 수 있어요.


A : 너희 할아버지 어디에서 살고 계셔?

B : 가셨어.

A : 응? 어디로?

B : 어디 가시다니?


위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일까요? 문제의 원인은 B가 사용한 '가다'를 '죽다' 의 의미로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실제 사전을 찾아보면 '가다' 에는 '(완곡하게) 사람이 죽다' 라는 의미가 나와 있어요. 둘 다 표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의미를 어떤 것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실제 의사소통에서는 사전에 나오는 뜻도 중요하지만, 언어습관도 매우 중요해요.


태국어와 라오어의 설명을 보면 '라오어는 태국어의 한 방언이다', '태국어와 라오어는 비슷하다. 서로 잘 알아듣는다' 등의 말이 많이 보여요. 라오어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매우 적기는 하지만, 라오어와 관련된 글을 보면 매우 높은 확률로 접할 수 있는 말이에요.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태국인은 라오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요. 마치 위에서 터키인과 아제르바이잔인의 상황처럼, 태국 문화를 많이 접하는 라오스인들이 태국인에게 태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을 뿐이지요. 터키-아제르바이잔의 관계보다 이쪽은 더욱 심한 것이, 라오어로 된 인쇄물도 별로 없다 보니 라오스인들이 학습을 위해 태국어로 된 책을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이쪽 관계도 위에서 언급한 터키어-아제르바이잔어 관계와 마찬가지로, 라오어를 모르면서 태국어나 라오어나 똑같다고 주장하는 태국인들이 은근히 있어요. 그리고 라오스인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태국어와 비슷하기도 하고 많이 접해서 태국어를 할 수는 있지만 태국어와 라오어는 다르다. 태국인들은 라오어 잘 못 알아듣는다'고 대답해요.


아직 태국어, 라오어 초짜이기 때문에 깊은 비교까지는 못하고, 간단한 비교만 하도록 할께요.


1. 문자


먼저 자음 비교에요. 왼쪽은 태국어, 오른쪽은 라오어에요.


(출처 : http://www.omniglot.com/)



둘 중 하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크게 다르게 생겼다고 느끼지는 않을 거에요.



이렇게 보면 대충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거에요. 역시나 왼쪽은 태국어 글자, 오른쪽은 라오어 글자에요.


실제 태국어 폰트를 보면 라오어 문자와 비슷하게 생긴 폰트가 있어요. 폰트명은 Toomtam 이에요.


(출처 : http://www.thai-language.com/)



저 역시 태국 가서 이 폰트를 처음 보았을 때 태국인들이 라오어 문자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줄 알았어요.


단, 모음 표기 방법은 태국어와 라오어가 다르답니다. 기본적인 형태는 자음처럼 비슷하게 생겼어요. 아니, 자음보다 훨씬 비슷하게 생겼어요. 하지만 라오어는 받침이 있냐 없냐에 따라 모음 표기 형태가 달라진다는 특징이 있어요.


2. 어휘


라오어와 태국어는 문자로 표기했을 때 70% 이상 비슷하다고 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문자로 표기했을 때'에요.


3. 성조


태국어와 라오어는 성조 언어에요. 성조에 따라 의미가 변하지요.


태국어, 라오어 모두 같은 타이카다이어족 Tai-Kadai languages 에 속해요. 두 언어 모두 타이카다이어족 타이어파 남서타이어 그룹에 속해요. 남서타이어군에서 태국어는 Chiang Saen 어파, 라오어는 Lao-Phutai 어파에 속해요. 이 정도면 분명 서로 상당히 가까운 언어이기는 해요.


문제는 성조 체계에요. 태국어, 라오어 모두 유형성조와 무형성조가 있어요. 무형성조는 아무 성조 부호 표시가 없을 때, 자음 분류와 모음의 길이, 종자음의 종류에 따라 성조가 결정되는 것을 말해요. 유형성조는 성조 부호가 있을 때 - 즉 특별히 성조를 따로 규정한 경우라고 볼 수 있어요.


태국어, 라오어 모두 기본적으로 모든 자음을 고자음, 중자음, 저자음 - 이렇게 세 종류로 분류해요. 그리고 이 분류가 성조의 기본이 되지요.


태국어는 5성조 체계에요.



라오어 성조는 혼돈 그 자체에요. 라오어는 규범화가 덜 된 언어이다보니 대체로 비엔티엔 발음을 표준으로 잡고는 있지만, 교재마다 성조가 제각각으로 나와요. 일단 6성조라고 하기는 하는데, 어떤 교재는 5성조, 어떤 자료는 7성조라고 해요. 라오어 학습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맞부닥치게 되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성조' 문제이지요. 책이고 교재고 전부 제각각이니까요. 게다가 얼마나 규범화가 덜 되었는지 성조 설명을 보면 마이엑 (바로 위 태국 성조에서 맨 위에 표를 보면 '엑'이라고 써 있는 것이 바로 성조부호 마이엑이 붙었을 때의 성조)을 1성으로 잡고 있는 설명도 못 보았어요. 참고로 마이엑에서 '엑'은 '1' 을 의미해요. 즉 1성은 마이엑이 붙었을 때의 성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어쨌든 여러 교재에 나와 있고, 비엔티엔 사람들이 맞다고 알려준 라오어 성조는 다음과 같아요.



라오어 성조 체계는 태국어 성조 체계보다는 단순한 편이에요. 라오어를 5성조 체계로 볼 지 6성조 체계로 볼 지 말이 많은 이유는 중자음의 평장음시 성조 때문이에요. 중자음의 평장음 (태국어의 장모음에 생음) 성조가 저평성으로 되어 있기는 한데, 이게 고자음의 평장음처럼 저상승성 (저음에서 상승) 으로 발음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에요. 대표적인 예가 라오어 인사 '싸바이디'에요. '싸바이디'에서 '바이'와 '디'는 모두 중자음 평장음인데 들어보면 '바이'는 중자음 평장음 성조처럼 저평성, '디'는 고자음 평장음 성조처럼 저상승성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물론 '바이', '디' 모두 중자음 평장음 성조로 저평성으로 발음하는 것도 들어보기는 했지만, 이 경우는 진짜 여행 중 TV에서 딱 한 번 들어보았을 뿐이에요.


그리고 위의 표에서 저자음 단모음 성조를 고음보다는 낮고 중간음보다는 높은 중고음성으로 보면 7성조가 되요.


(출처 : http://www.seasite.niu.edu/lao/laolanguage/lao_language_fp.htm)


분명 5성조론 항목인데 실제 세어보면 7성조에요. Low - DS 의 'High Mid'가 경우에 따라 고음이 되기도 하고 중간음이 된다고 해도 이건 7성조.


참파삭 방언의 성조를 보면 8성조론까지 나와요.



(출처 : http://www.seasite.niu.edu/lao/laolanguage/lao_language_fp.htm)


이쯤 되면 이제 라오어 성조는 될 대로 되라 외치며 책을 던지게 되지요. '태국어랑 라오어랑 비슷하고 라오스에서 태국어 잘 통한다던데 그냥 태국어나 공부할까?'라는 생각도 마구마구 들구요.


어쨌든 제가 기준으로 잡고 있는 성조는 위에 손으로 그려놓은 것, 그리고 아래 표에요.



(출처 : http://www.seasite.niu.edu/lao/laolanguage/lao_language_fp.htm)


혼란스러운 라오어 성조 체계에서 이게 그나마 가장 보편적이었거든요. 라오인들이 알려준 성조도 이와 비슷했고, 이 표에 나와 있는 대로 라오어를 읽으면 어쨌든 알아는 듣더라구요.


다시 태국어와 라오어 성조 비교로 돌아가면, 성조 부분에서 둘은 꽤 중요한 차이를 보여요.



왼쪽 태국어, 오른쪽 라오어 성조표를 참고로 단모음일 때의 성조를 비교해보면 (태국어에서는 단, 단사) 라오어와 태국어는 단모음일 때 성조가 완벽히 반대에요. 태국어는 단모음일 때 고자음, 중자음은 평성, 저자음은 고상승성인데 비해, 라오어에서는 반대로 단모음일 때 고자음, 중장음은 고성 (고상승성), 저자음일 때 중성 (평성)이에요.


그리고 장모음으로 끝나거나 장모음에 생음 받침일 때, (사음은 k, p, t, 생음은 나머지 받침 소리들) 태국어는 중자음과 저자음의 성조가 같지만, 라오어는 중자음과 고자음의 성조가 같아요. (라오어 5성조론에서는 중자음의 평장음 무형성조는 고자음의 평장음 무형성조와 같다고 봅니다)


태국어로 '아니다' 를 뜻하는 ไม่ (마이, 2성) 의 똑같은 소리는 라오어에서 '나무'랍니다. 태국어로 나무는 ไม้ (마이, 3성) 이고, 이것과 똑같은 소리는 라오어에서 '의존하다'라는 뜻이에요.


성조가 단순한 억양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의미 변별 자질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호의사소통을 충분히 저해할 요소로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태국어와 라오어를 비슷한 - 실상 거의 통하는 언어로 보게 된 걸까요?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싼어'라는 언어에 대해 약간 알아야할 필요가 있어요.


이싼어는 태국 동부와 북부에서 사용되는 언어에요. 사용화자는 2100만명이라고 해요. 이싼어는 라오어의 방언 정도 되는 언어로, 태국어보다 라오어에 훨씬 가까운 언어에요.


재미있는 것은 라오어를 사용하는 화자는 약 3백만이라는 점이에요. 이싼어를 라오어의 방언으로 본다면 라오어 사용화자는 졸지에 2000만이 넘고, 이들 중 대부분이 라오스가 아니라 태국에 있는 셈이 되요. 정말 아제르바이잔어의 현황과 비슷한 모습이지요. 아제르바이잔어도 아제르바이잔 국민보다 이란에서 아제르바이잔어를 사용하는 아제르바이잔인이 훨씬 - 몇 배 많거든요.


라오어는 규범화가 아직 덜 되어 있는 편이라고 위에서 언급했어요. 제대로 된 규범화 작업은 공산 혁명이 일어난 후라고 볼 수 있어요. 그 전에는 정확한 표기법조차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해요. 문맹률도 엄청나게 높았구요. 태국어와 라오어가 다른 말이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있기는 했지만, 이싼어와 라오어가 다른 말이라는 개념은 등장한지 오래되지 않았어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오늘날 '이싼어'를 '이싼어'라고 부르지 않고 '라오어'라고 불렀다고 해요.


1871년, 태국에서는 학교에서 라오어 사용을 금지시켰고, 1933년부터 강력한 태국화 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하면서 이싼어는 태국 정부에 의해 '동북부 태국어 방언'으로 재명명되었어요.


이싼어와 라오어가 갈라지게 된 분기점은 1893년과 1904년에 프랑스와 시암왕국 사이에 체결된 협정으로 라오스가 프랑스령이 되었을 때부터에요. 이때부터 라오어는 불어의 영향을 받게 되었어요.


1960년대에 들어서 태국 정부는 타이화 정책의 일환으로 동북부 이싼 지역에 타이 국민성의 기준으로 설정된 중부 태국 문화를 보급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에는 표준 타이어의 보급, 그리고 이싼어의 태국 문자로의 표기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또한, 이 시기부터 라오스의 공산주의자들이 태국 이싼 지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어요. 이와 더불어 이 시기에 미국의 지원을 통해 태국 정부는 태국 북동부 이싼 지역 개발 사업에 착수했구요.


1975년 라오스가 공산화되자 태국은 거센 공산주의 세력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고, 한편 이싼인들이 방콕으로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며 이싼어에도 많은 태국어 어휘가 유입되기 시작했어요.


언어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싼어는 라오어의 방언이에요. 그러나 태국 정부에서는 이싼어를 태국어 이싼 방언, 또는 태국어 동북부 방언으로 취급하고 있지요. 이러다 보니 '이싼어는 태국어의 방언, 이싼어는 라오어의 방언, 그러므로 태국어와 라오어는 실상 같음' 이라는 삼단논법이 성립해버리는 것이에요. 하지만 실제로는 태국어와 라오어는 다른 언어가 맞답니다.


비슷한 어휘가 많기는 하지만 성조 체계 자체도 다르고, 서로 쉽게 잘 통하는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관계상 가까운 언어이기 때문에 비슷한 부분도 상당히 많은 것 또한 사실이지요. 더욱이 라오어는 아직 안드로이드에서 제대로 지원이 되지 않다 보니 라오인들이 모바일 웹환경에서는 라오어 표기를 태국어 문자를 차용해 사용하는데, 이렇게 보면 더욱 비슷하게 보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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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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