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36 태국 아유타야 야시장

좀좀이 2015. 12. 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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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으로 돌아오니 처음 타고 왔던 뚝뚝 기사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보트 기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드린 후, 뚝뚝에 올라탔어요. 태국인 커플은 선착장에 올 때 다른 뚝뚝을 타고 왔지만 돌아갈 때에는 제가 탄 뚝뚝과 같은 뚝뚝을 탔어요. 뚝뚝 기사는 태국인 커플에게 어느 숙소에 머무르고 있는지 물어본 후, 태국인 커플을 먼저 데려다준 후 제가 머무르고 있는 숙소로 가겠다고 했어요.


숙소로 돌아오니 진짜 밤이었어요. 숙소 주변에는 저녁을 먹을 식당이 보이지 않았어요.


"아까 야시장 가서 저녁 먹으라고 했었지!"


아까 숙소에서 알려준 야시장을 향해 걸어갔어요. 밤이라 모기가 더 많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어요. 걸어가는 동안 팔을 스치고 지나간 모기가 여러 마리였어요. 다행히 모기에게 뜯기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진짜 야시장이 이 방향 맞을까?'


숙소에서 알려준 아유타야 야시장은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 않았어요. 일단 숙소 주인이 있다고 알려준 방향으로 걸어가기는 했지만 야시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분명히 숙소에서 가깝다고 알려주었는데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는 아니었어요. 그러나 야시장을 구경해보고 싶기도 했고, 야시장이 아니면 태국까지 와서 편의점에서 저녁을 때워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단 주인 아주머니께서 알려준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어요.


"야시장이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지만 먼 거리도 아닌 그냥 걸어갈 만한 거리에 진짜 야시장이 있었어요.



아유타야 야시장


입구에서부터 제대로 된 곳을 찾아왔다는 느낌이 딱 왔어요. 그래요. 제가 기대했던 야시장은 이런 모습이었어요.


"이거 뭐 파는 거지?"


태국 곤충 튀김


말로만 들었던 곤충 튀김들이었어요. 우리나라 반찬 가게에서 멸치, 새우 볶음 파는 것처럼 여기에서는 곤충을 팔고 있었어요. 메뚜기야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보고서 '저렇게 메뚜기를 튀겨 파는구나' 생각했는데, 애벌레 튀김은 직접 보니 난이도가 꽤 있을 것 같았어요. 사실 메뚜기가 다리도 더 많고 날개까지 달려 있어서 거부감이 더 들어야 하기는 하는데, '애벌레를 튀겨먹었다'는 말을 한국에서 많이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접근 난이도에서는 애벌레가 훨씬 더 높아 보였어요.


"메뚜기는 도전해볼까?"


'메뚜기 정도라면 도전해보아도 큰 무리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누군가 메뚜기를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았을 때마다 '그거 그냥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직접 살아있는 메뚜기를 잡고 '이것을 먹을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질 때마다 대답은 '아니오'였어요. 벌레를 먹는 것은 말 그대로 첫 경험. 왜 이럴 때 또 연가시가 생각나는 거지? 설마 저 속에 연가시도 같이 튀겨져 있는 것은 아니겠지? 쓸 데 없는 생각만 계속 들었어요. 도전을 하고는 싶은데 도전하지 말아야할 상상들이 마구 떠올랐어요.


일단 메뚜기 튀김은 보류하고 다른 것은 무엇이 있는지부터 보기로 했어요.



"치킨이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믿고 먹을 수 있는 닭고기 튀김. 닭다리 튀김은 40바트였어요. 출출해서 일단 닭다리 튀김을 하나 구입했어요. 닭다리 튀김을 구입하니 무슨 소스도 같이 주었어요. 어디에서 먹냐고 물어보자 야시장 입구쪽에 있는 탁자에 앉아서 먹으라고 알려주었어요. 탁자로 가서 앉고 닭다리를 꺼내었어요. 소스는 꺼내지 않았어요. 아무리 믿고 먹는 닭고기 튀김이라지만 소스를 찍는 순간 왠지 뒤통수를 후려치는 닭다리 튀김이 될 것 같았거든요.


"역시 믿고 먹는 치킨!"


시장 통닭 맛이었어요. 특별하다고 할 것이 전혀 없는 맛이었어요.


치킨을 먹었으니 이제 과일을 먹을 차례. 역시나 만만한 수박을 사먹었어요. 가격은 20바트. 역시 수박은 수박이었어요. 별 특징 없는 딱 수박맛이 나는 수박이었어요.


일단 평범한 것들로 배를 적당히 채운 후, 대망의 메뚜기 튀김을 구입했어요. 애벌레는 아무리 보아도 흙맛이 날 것 같아서 그나마 무난해보이는 메뚜기를 가지고 곤충 먹기에 도전하기로 했어요.


"다리는 까끌거리니까 다리는 떼고 먹어도 돼."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왠지 속에 연가시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 메뚜기가 튀겨질 정도의 온도라면 연가시고 세균이고 다 튀겨졌을 거야.


"내가 바로 좀좀이다!"


어?


이거 뭔가 친숙한 맛인데?


진짜 우퉤퉤퉤 뱉어버릴 맛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러나 예상과 전혀 다른 맛이었어요. 너무나 친숙한 맛. 간장에 볶은 건새우맛과 비슷했어요. 차이점이라면 건새우에서 나는 특유의 해산물 비린내가 전혀 없다는 점. 솔직히 엄청나게 맛없기를 약간 바랬어요. 그래야 사람들 웃길 소재 하나 나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건 아니었어요. 이건 생긴 것만 곤충이지 지극히 평범한 맛이었어요. 그냥 난생 처음 '메뚜기'라는 것을 먹어보았다는 것, 그리고 이제 내 몸 속에 벌레 쪼가리에서 나온 단백질이 저의 육체 어딘가에 박힐 것이라는 것 뿐이었어요. 보다 웃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애벌레 튀김에 도전해야 했어요. 그렇지만 돈을 그렇게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주머니께서 메뚜기를 꽤 많이 퍼주셔서 그 자리에서 다 먹을 수가 없었어요. 남은 메뚜기는 다음날 아침 식사로 먹기로 결정. 메뚜기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night market in ayutthaya


태국식 꼬치구이.



람부탄도 팔고 있었어요.


태국 음식



태국 꼬치


"여기는 정말 현지인들이 와서 밥 먹는 야시장이구나!"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거의 전부 태국인이었어요. 게다가 이 태국인들 역시 관광객 옷차림인 태국인은 거의 없고 누가 봐도 현지 주민의 옷차림이었어요. 이 사람들이 와서 이런 저런 음식을 사먹고, 포장해서 돌아가고 있었어요. 거리에서 들리는 말은 온통 태국어. 영어로 저를 부르는 소리는 거의 없었어요. 태국인과 태국어가 살아숨쉬는 공간이었어요.



"이거 완전 찹쌀떡인데?"


겉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나라 찹쌀떡이었어요. 순간 이것을 사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일단 참아야 했어요. 배는 한정되어 있고, 초장부터 감성에 몸을 맡기다보면 시장 절반도 못 가서 돈은 돈대로 쓰고, 배는 꽉 차버릴테니까요. 일단 시장을 둘러보며 식사로 먹을 것을 찾아서 먹고, 시장에 무엇이 있나 잘 살펴본 후 정말 도전해보고 싶거나 맛있어 보이는 것을 사 먹어야 했어요.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수납공간이 한정되어 있어서요. 다음날 일정이 별 거 없다면 설사를 하든 토를 하든 일단 배터지게 먹고 잔뜩 싸서 돌아갔겠지만, 다음날 일정은 너무 중요했어요. 다음날 아유타야를 제대로 구경할 예정이었거든요.








"대체 무엇을 먹어야 하지?"


음식들 하나하나 모두 매우 맛있게 생겼어요. 야시장에서 팔고 있는 모든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팔고 있는 양을 보니 제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딱 한 종류. 다음날 일정을 생각하면 일단 밥을 먹어야 했어요.









"밥이다!"



태국 친구가 태국의 망고 밥인 카오 녀우 마무앙은 지금 이 시기에 파는 곳이 없을 거라고 말했어요. 친구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때 - 6월 9일까지 거리에서 노란 망고를 보지 못했거든요. 망고를 팔고 있는 가게들이 있기는 했는데, 그 망고들은 전부 과일이 아니라 야채라고 보아야할 것들이었어요. 단 맛이라고는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 소금을 찍어먹는 망고 뿐이었어요. 그런데 이 시장에서는 카우 니야우 마무앙 ข้าวเหนียวมะม่วง 을 팔고 있는 곳이 있었어요.


그러나 여기에서 제 눈길을 끈 것은 닭고기와 계란 지단 채썬 것을 올린 밥이었어요. 카우 니야우 마무앙은 달콤한 밥으로, 밥보다는 간식에 가깝다는 말을 들었어요. 게다가 이것은 친구가 먹겠다고 했고, 제가 원하는 것은 디저트에 가까운 밥이 아니라 바로 식사로 먹을 밥이었어요. 그래서 닭고기와 계란 지단 채썬 것을 올린 밥을 구입했어요. 가격은 30바트였어요.


이 밥을 파는 가게 근처에 식탁이 주욱 배치된 곳이 있어서 거기로 가서 자리를 잡고 먹기 시작했어요.


"아, 매워!"


위의 사진에서 제가 구입한 것은 오른쪽에 있는 것이었어요. 가운데에 있는 것이 바로 카우 니야우 마무앙이구요. 라임향을 상당히 싫어하기 때문에 라임은 버리고 한 입 떠먹었어요. 한 입 먹을 때까지 이 밥이 매울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겉보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매울 구석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러나 밥 위에 올라가 있는 것과 밥을 같이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매운 맛이 확 올라왔어요.


"이거 왜 맵지?"


밥을 숟가락으로 헤쳐가며 대체 왜 매운가 원인을 찾아보았어요. 원인은 금방 밝혀졌어요. 밥 위에 올라가 있는 것 속에 쥐똥고추가 섞여 있었어요. 쥐똥고추를 작게 썰어서 섞어놓았기 때문에 매운 맛이 확 올라온 것이었어요. 맛은 있는데 쥐똥고추가 씹힐 때마다 혀가 얼얼해졌어요. 매운 것을 못 먹는 것은 아닌데다, 일일이 다 골라내기 귀찮아서 그냥 매운대로 먹었어요. 다 먹으니 혀가 진짜로 얼얼했어요. 고수 향기가 한국보다 동남아가 독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베트남에서도 느꼈던 것이고 이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한국에서 먹는 쥐똥고추보다 동남아시아에서 먹는 쥐똥고추가 훨씬 지독하게 매운 것은 사실이었어요.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시장 구경을 했어요.




이것은 치앙마이에서 유명하다는 돼지껍질 튀김이었어요. 어떤 맛일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치앙마이에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냥 보기만 하고 지나쳤어요.







night market in Thailand


밥을 먹고 마지막으로 사먹은 것은 바로 25바트 주고 사먹은 파인애플 주스였어요. 얼음, 파인애플, 시럽만 넣고 믹서기로 갈아서 만든 진짜 파인애플 주스였어요. 25바트면 바트화를 아무리 고평가해주더라도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 채 안 하는 금액. 한국에서 이 파인애플 주스를 사마시려면 몇천원이 필요했어요. 게다가 맛이 없는 것도 아니었어요. 맛도 가격도 모두 한국에서 먹는 진짜 파인애플 주스보다 훨씬 뛰어났어요.


"후아람퐁역 근처에서 먹었던 것들은 여기 음식에 비하면 완전 쓰레기네."


아유타야 야시장에서 먹은 모든 것들이 너무나 맛있었어요. 똑같은 길거리 음식이니 비교를 해도 될 거에요. 심지어는 길거리 음식 뿐만 아니라 과일조차도 아유타야에서 먹은 것이 후아람퐁역 근처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었어요. 그냥 애초에 비교대상이 아니었어요. 태국에서 머무른지 3일째. 아유타야에 와서야 드디어 제 입에서 진심이 가득 담긴 '맛있다'는 말이 나왔어요.


그런데 아유타야 와서 야시장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사먹으면서도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어요.


대체 왜 태국인들은 설익은 과일을 소금에 찍어먹는 것일까?


태국 사람들은 설익은 과일을 소금에 찍어먹는다는 점이었어요. 토마토, 오이를 그렇게 먹는다면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는 토마토를 과일이라고 생각해서 설탕을 쳐서 먹지만, 토마토를 채소라고 생각하는 문화권에서는 토마토에 설탕을 쳐서 그냥 먹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해요. 이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차이에요. 그렇지만 설익은 과일을 소금에 찍어먹는 것은 이해가 어려웠어요. 솔직히 왜 소금에 찍어먹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물어보지 못했어요. 설마 망고는 이 나라에서 과일이 아니라 채소로 분류되는 건가? 왜 설익은 과일 - 특히 망고를 소금에 찍어먹는지 정말 궁금했어요.


그리고 분명 태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운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사과가 지지리 맛없었어요. 태국 사과보다 우리나라에서 푸석푸석해진 사과가 훨씬 달고 맛있었어요. 태국 사과는 매우 시고 단맛은 극히 적었어요. 열대지방이니 모든 과일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달콤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확실히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달콤한 과일도 있고, 달콤하지 않은 과일도 있으며, 사과는 우리나라보다 덜 달고 더 시다는 것을 여기 와서야 알게 되었어요.


꽈르릉!


멀리서 천둥과 번개가 쳤어요.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어요.


"이거 스콜 내릴 분위기인데? 어서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우산을 안 들고 나왔는데,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으로 보아 오늘밤 또 스콜이 무섭게 퍼부을 모양이었어요. 스콜이 마른 하늘에서 갑자기 쏴아아 퍼붓는 것이 아니라 '툭툭툭...투두둑...투다다다...쏴아아' 쏟아지기 때문에 이제 돌아가면 비를 맞는다 해도 빗방울 몇 방울 맞고 끝나는 수준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인들도 스콜이 내릴 것을 알고 슬슬 장사를 접고 있었어요.


"하아..."


깊은 아쉬움에서 나오는 한숨. 이것은 스콜 때문에 내쉰 한숨이 아니었어요.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숙소를 향해 걸어갔어요.


nightview in ayutthaya


아유타야 야경



가이드북에는 아유타야 주요 유적지에 조명을 해 놓아서 밤에 다양한 빛으로 빛나는 유적을 볼 수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그러나 조명을 잘 해 놓은 곳이라고는 왓 랏차 부라나와 왓 마하탓 뿐이었어요. 나머지는 특별히 조명을 설치해놓은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조명이었어요. 그나마도 칙칙한 어둠을 쫓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특별히 야경을 기대하고 볼 곳은 전혀 아니었어요.


바람이 부니 덥지는 않았어요.


'아까 돌아본 곳이나 한 번 더 돌아볼까?'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개들이 엄청나게 많이 보였어요. 개에게 덤비는 것도 멍청한 짓이지만, 개에게 겁먹은 것을 보이는 것도 좋지 않은 태도라 덤덤한 척 하며 쭉 걸어갔어요.


"으르르릉...멍멍멍!"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보다 풀밭을 가로질러가는 것이 빠른 길이라 풀밭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개가 짖어대기 시작했어요. 개를 무시하고 풀밭을 계속 가로질러 가려고 하자 개가 일어나 제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개의 두 눈을 응시하며 걸음만 풀밭 바깥쪽으로 향했어요. 제가 풀밭에서 나가자 개는 다시 조용히 자기가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갔어요.








눅눅한 어둠 속의 아유타야. 이 아유타야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개들이었어요. 사람이 없는 절은 개들이 차지하고 있었어요. 절에 들어가 구경 좀 하려고 하면 개들이 짖고 쫓아와서 방법이 없었어요. 여기 개들은 자기 구역이 확실히 있어보였어요. 자기 구역을 침범하면 짖고 물 것처럼 쫓아와 난리를 피우는데, 희안하게 구역에서 얌전히 벗어나면 또 가만히 있었어요. 재미있는 것은 입에 재갈이 물려져 있는 개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주둥이에 재갈이 물려 있는 개는 분명히 사람 손을 타는 개라는 이야기에요. 안 그러면 주둥이에 재갈이 채워져 있어서 입을 벌릴 수가 없는데 당연히 굶어 죽지요.


아유타야의 밤을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개 때문에 도저히 구경할 수 없었어요. 태국에서 이런 떠돌이 개 문제가 나름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는데, 아유타야의 밤거리를 걸어보니 그게 사실이었어요. 이런 개가 한 마리만 있어도 이 개가 광견병을 옮기는 개인지 아닌지 분간할 방법이 없어서 위험한데, 이건 떼거지로 있었기 때문에 더욱 위험했어요. 달려드는 개 한 마리도 위험하지만, 이건 달려들 때 떼로 몰려와서 달려드니까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부터 했어요. 방콕에서 출발할 때 1번, 숙소 도착해서 1번, 주변 잠깐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와서 1번, 보트 투어하고 돌아와서 1번, 그리고 야시장 돌아와서 1번. 하루에 샤워만 5번 한 날이었어요. 그리고 잠시 후. 샤워를 마치고 나와 에어컨 앞에 앉아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계속 더워서 땀이 났어요. 하루 종일 달구어진 방은 에어컨 바람으로 쉽게 식지 않았거든요. 결국 또 샤워를 했어요. 이렇게 하루 6번 샤워했어요.


"아...여기 왜 1박만 한다고 했지? 여행 일정 지금 바꿀 수도 없고..."


아유타야에서의 첫날. 모든 것이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이것이 바로 제가 원하고 상상하던 태국이었어요. 방콕 또한 현실 속 태국의 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지만, 머리 속 환상과 눈 앞의 현실의 엄청난 부조화에서 오는 실망감을 참을 수 없었어요. 방콕에서는 그저 실망의 연속이었어요. 치앙마이 기차표를 구입한 것이 너무 후회되었어요. 그에 비해 아유타야는 제 머리 속 태국에 대한 환상과 눈 앞의 현실이 크게 일치하는 곳이었어요.


태국 여행을 계획할 때, 아유타야 출신 태국 친구가 아유타야는 하루면 충분하다고 말했어요. 그 말을 믿고 아유타야는 1박이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유타야를 다녀온 사람들 글을 보니 아유타야는 볼 것도 별로 없고, 자전거 타고 당일치기로 휙 보고 떠날 수 있는 곳 같았어요.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었어요. 물론 유적지에 관심이 없다면 가능하겠지만, 하나하나 살펴보고 싶다면 그보다는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아유타야 출신 태국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 그녀가 '아유타야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보다 길게 일정을 잡아야 했어요. 현지인이 보는 데에 필요한 시간과 여행자가 보는 데에 필요한 시간은 전혀 달라요. 사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더 길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현지인에게 큰 중요성을 갖는 장소와 여행자가 큰 감명을 받는 장소는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대체로 넓은 범위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 여행자가 둘러보는 데에 필요한 시간은 현지인이 둘러보는 데에 필요한 시간보다 길어요. 왜냐하면 여행자는 길도 찾아야 하고, 사진도 찍고 이것저것 구경하고 감상도 하다보니 시간이 더 많이 걸리거든요. 보통 성인이 걸어갈 때 한 시간에 4~5km 간다고 해요. 그러나 모르는 곳을 찾아 걸어갈 때에는 절대 저 속도가 못 나와요. 그것과 비슷한 이치에요. 도보로 이동한다고 했을 때, 여행중에는 한 시간에 약 2km 정도 걸어가요. 주변 구경을 하지 않고 오로지 길만 찾아간다고 해도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면 한 시간에 4~5km 걷기 매우 힘들어요.


당일치기로 자전거 타고 다니며 대충 훑어보고 가는 여행객도 많이서 당연히 하루에 다 될 줄 알았어요. 이것은 착각이었어요. 당일치기로 다녀오려고 하면 할 수야 있어요. 문제는 이렇게 가면 섬 바깥 주요 사원들을 볼 시간이 없을 뿐더러, 야시장은 아예 갈 수가 없어요. 제가 타고 온 기차가 연착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렇게 큰 변수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렇게 만만하게 볼 코딱지만한 작은 섬은 아니었거든요.


"방콕 돌아가기 싫다."


방콕으로 돌아가야만 했어요. 아직 친구를 만나지도 못했어요. 좋든 싫든 방콕에서 머물러야만 했어요. 아유타야에 오니 칸짜나부리를 꼭 가야하나 싶었어요. 원래는 칸짜나부리를 갈 계획이었지만, 여기 와서 하루 둘러보고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결국 방법은 하나. 방콕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도시를 찾아 최대한 많이 다녀오는 것이었어요. 그러면 비록 잠은 방콕에서 자지만 방콕에서 머무르며 보내야하는 시간은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이었어요. 방콕에서 체류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가이드북을 다시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펫차부리와 피마이.


방콕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이 두 곳이 가장 적절했어요. 사실 피마이를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게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설령 다녀올 수 있다 하더라도 너무 빠듯한 일정이라면 다녀오고 싶지 않았어요. 허리가 아픈 것도 있었고, 더위도 문제였어요. 하루에 샤워를 6번 했다는 것은 그냥 웃고 지나칠 것은 아니었어요. 아직 제가 이곳 더위에 적응을 하나도 못 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무난한 것은 펫차부리. 여기는 볼 게 많고 돌아다니기 쉬울지, 그리고 당일치기로 다녀와도 잘 보고 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더욱이 아유타야의 분위기를 느껴보니 수코타이도 다녀오고 싶어졌어요. 수코타이 역시 태국의 수도였던 곳 중 하나. 수코타이는 정말 나중을 기약해야 하는 곳이었어요. 치앙마이행 기차표 때문에 여기는 정말 답이 없었거든요.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고, 방콕에서나 치앙마이에서나 다녀오기엔 거리가 먼 곳이거든요. 방법이라면 치앙마이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수코타이로 내려간 후 다시 또 치앙마이로 올라가는 것이었는데, 치앙마이 일정이 그렇게 긴 것이 아니다보니 그럴 수가 없었어요.


너무 대책없이 왔더니 자꾸만 이렇게 일정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일정을 바꿀 수 없어서 답도 없는 고민만 계속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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