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24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좀좀이 2012. 2. 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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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도 나름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곳이었어요. 최소 3일은 필요한 곳이었어요. 도시가 깔끔하고 예쁜데 절대 작은 도시가 아니에요. Rough Guide to Europe 에는 주요 도시 지도가 나와요. 이 지도에서 축적을 보면 큰 도시인지 작은 도시인지 바로 알 수 있어요. 빈은 축적이 500m였어요. 이 정도면 매우 큰 도시. 물론 파리보다는 작아요. 파리는 축적이 1km. 볼 것도 많고 도시도 매우 커요. 유럽을 지켜주고 유럽 대륙을 한때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였어요.


우리의 빈에서의 일정은 총 4일. 3일째에는 무엇을 할까 고민했어요.


"누나, 여기에서 브라티슬라바 오래 걸려요?"

"거기? 버스로 2시간이에요. 여기서 금방 가요."


브라티슬라바나 갔다 올까?

빈에서 시간을 보내려면 못 보낼 것도 없었지만 어딘가 다른 곳을 하나 더 다녀오고 싶었어요. 그때 마침 떠오른 것이 브라티슬라바였어요. 브라티슬라바는 슬로바키아의 수도. 빈에서 2시간이면 가고 버스도 자주 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있다고 했어요. 브라티슬라바 다녀오면 우리 이번 여행에서 1개국 더 가는 거잖아!


아직 클림트의 그림을 보지 못한 친구. 그러나 친구도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브라티슬라바를 다녀온 다음날에 클림트 그림을 보러 가면 되니까요.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를 다녀온 것처럼 빈에서는 브라티슬라바를 다녀오면 되는구나!


밤새 눈이 내려 많이 쌓였어요. 그리고 오늘은 일요일. 일요일 여행은 참 안 좋아요. 하지만 오늘 아니면 브라티슬라바를 다녀올 날이 없어서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가기로 했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브라티슬라바가 유로존이라는 것. 환전할 필요가 없어서 그나마 마음이 놓였어요.


이번에는 일행이 한 명 늘어났어요. 민박집에서 만난 아는 동생.


버스를 타고 브라티슬라바로 갔어요. 버스는 눈 깜짝할 사이에 국경을 넘어 슬로바키아로 들어갔어요. 주변 풍경은 전부 눈. 뭐 보이는 것이 없었어요. 슬로바키아와 왔다는 것이 실감난 것은 간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어요. 말이 독일어에서 슬로바키아어로 바뀌었어요. 슬로바키아어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슬라브어족에 속하고 체코어와 거의 똑같은데 서로 다른 언어라고 해서 그냥 다른 언어가 되었다는 것 정도였어요. 체코어는 몰랐지만 일단 알파벳을 보니 독일어는 확실히 아니었어요.


버스가 다리 아래에 정차했어요.

'설마 이게 브라티슬라바 버스 정류장이겠어? 브라티슬라바 버스 터미널은 더 가야 할거야.'

버스가 브라티슬라바 도착 예상시간보다 10분 전에 어떤 다리 아래에 섰어요. 설마 브라티슬라바에는 국제버스터미널도 없고 이런 작은 매표소가 국제버스터미널 역할을 하려구...지금 내리면 잘못 내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게 맞았어요. 정말 처음부터 좌절스러운 상황. 버스는 신나게 달리더니 다음 정류장인 브라티슬라바 국제공항에 정차했어요.

"이거 뭐야!"

셋 다 당황했어요. 셋 다 '설마 아까 그 다리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맞았어요. 도시가 정말 너무 작아서 졸지에 브라티슬라바 국제공항에 와 버렸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여기는 유로존. 버스표를 구입해 다시 시내로 돌아갔어요.


버스를 타고 우리가 간 곳은 브라티슬라바 기차역. 기차역에서 걸어 내려왔어요.



도시가 정말 코딱지만큼 작다는 것은 확인되었어요.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전부 무뚝뚝하고 불친절했어요. 길을 물어보면 '아이 돈트 노우 잉글리시'하고 가 버렸어요.



이건 뭔지 모르겠어요.


지도를 보며 찾아가려는데 길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친구가 자신이 길을 찾겠다고 앞장섰어요. 저와 동생은 뒤에서 떠들며 친구 뒤를 쫓아갔어요.



눈이 쌓여서 황량한 건가...일요일이라 황량한 건가...유럽의 일요일은 몰타에서 많이 경험했어요. 정말 거리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여기는 일국의 수도 아니야?



아무나 잡고 길을 물어보고 싶은데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문을 연 가게도 보이지 않았어요.

"이건 좀 심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사람도 없고 문을 연 가게도 없었어요. 그리고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더욱 쓸쓸해 보였어요.



이건 뭐...버려진 도시라고 해도 믿겠어요.


"야, 길 맞게 찾아왔다!"

친구가 소리쳤어요.



"이게 대통령궁이라구?"

지금 농담하는 거지?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사람들 때문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친구가 아주 평범해보이는 건물을 보며 대통령궁이라고 하자 어이가 없었어요. 지금 서로 기분 썩 좋지 않은 거 알면서 장난할 기분이 나냐? 가뜩이나 길도 못 찾고 이렇게 눈 속을 헤매고 있는데?


대통령궁 맞아...


대통령궁 맞았어요. 친구 말이 맞았어요. 정말 이때 친구의 능력에 감탄했어요. 눈 때문에 뭐가 뭔지 분간도 안 되는데 지도 한 장 가지고 길을 찾아내다니...도시도 코딱지만한데 대통령궁은 정말 볼품없었어요.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이 이거보다는 100배 더 대통령궁처럼 생겼어요.



멀리 보이는 브라티슬라바 성.



이것은 브라티슬라바에서 나름 유명한 거리로 들어가는 입구.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이렇게 생겼어요.



이것도 유명한 거라고 하는데 다행히 눈이 녹은 건지 치워져 있는 건지 하여간 눈이 없어서 볼 수 있었어요.



정말 쓸쓸하고 별 볼 일 없는 도시.



저 대포는 장식으로 가져다 놓은 거겠지? 그런데 눈이 잔뜩 쌓여 있어서 정말 버려진 대포 같았어요. 고철 장수 아저씨가 그냥 들고 가라고 내놓은 고철 같았어요.



눈이 없었다면 그냥 작고 예쁘장한 도시라고 봐줄 수도 있었겠지만...이건 체스키 크룸로프 때랑 차원이 달랐어요. 눈이 하도 많이 쌓여 있어서 제대로 볼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나마 이쪽으로 오니 사람들이 조금 보였어요. 거리에 사람들이 보인다는 것이 이렇게 반가울 수는 없었어요.


브라티슬라바에서 나름 관광을 키워보려는 움직임이 보이기는 했어요. 아기자기한 도시를 아기자기하게 꾸미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보였어요.



이런 식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는데...문제는...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으니까 눈이 많이 오니 다 파뭍혀 버렸잖아!


따스한 날에 왔다면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꾸며놓은 도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지금은 폭설이 내린 후. 모든 게 눈 속에 파묻혀 버렸어요. 이게 눈이 녹아 보이는 땅인지 일부러 저렇게 만든 것인지도 분간이 잘 안 되었어요. 대포도 마찬가지였어요. 따스한 날 왔다면 대포를 보며 나름 괜찮게 꾸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눈이 하도 많이 쌓여서 이게 집에서 내놓은 고철 뭉치인지 관광객을 위해 전시해 놓은 대포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어요.



이건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들어가보니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정말 크게 실망했어요. 이것은 눈이 높아진 것과 전혀 상관없이 진짜로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실망한 것이었어요. 몰타의 작은 성당도 이것보다는 화려해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교회 내부.




그나마 크리스마스 장식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교회 안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이렇게 미친 존재감을 갖는 것은 여기서 처음 보았어요. 이 교회는 진짜 1년 내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 놓아야 할 듯 했어요. 몰타는 고사하고 우리나라 동네 성당보다도 볼 게 없는 내부였어요.



교회에서 나와 다른 각도에서 교회 사진을 찍은 후 쇼핑센터로 갔어요. 비록 본 것은 눈이 7할이었지만 그래도 왔으니 기념으로 뭐라도 하나 사 가고 화장실도 이용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문 닫았어요...



이 다리 아래에 버스 터미널 비슷한 것이 있어요. 매표소가 문을 안 열었어요. 빈에서 왕복 버스표를 사온 것이 천만다행이었어요.



눈 때문에 운치 있는 것은 브라티슬라바 성밖에 없었어요. 저기는 안 갔어요.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어요.


어둠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어요.



버스에 올라탔어요. 차표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만약 눈이 안 쌓이고 평일이었다면 꽤 괜찮았을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것은 그저 가정일 뿐이에요. 제가 본 건 그냥 눈밭. 사람 하나 없는 버려진 도시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황량한 눈 쌓인 도시. 빈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만 했어요. 당일치기로 볼 정도는 되었고, 1개국을 더 갔다온다는 의미도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빈에서 4일 있으면서 사흘은 빈을 보고 하루는 브라티슬라바를 다녀오는 것은 참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는 브라티슬라바에서 본 것 중 7할이 눈이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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