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25 오스트리아 빈

좀좀이 2012. 2. 5.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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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마지막 날. 밤에 베니스행 기차를 타야 했어요. 친구는 오늘 미술관을 돌아다니기로 했고, 저는 마땅한 계획이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간 후에도 예진 누나와 잡담하며 놀았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이야기가 바로 첼로. 예진 누나가 오스트리아에 처음 오게 된 이유는 첼로 유학이었대요. 그러면서 '첼로'에 대한 고정관념 중 하나 - 많은 사람들이 '첼로' 하면 한쪽 어깨에 첼로를 맨 가냘픈 소녀를 상상하는데...


그딴 거 없다!


첼로가 한쪽 어깨에 맬 수 있는 만만한 악기가 아니라고 했어요. 생각해보니 기타를 한쪽 어깨에 메고 다니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첼로가 크다보니 비가 오면 첼로하는 사람들은 자기는 비 쫄딱 맞으면서 첼로한테 우산 씌워주는 건 당연한 거고, 택시탈 때 참 문제라고 했어요. 첼로를 가지고 택시에 타려면 택시기사분들이 꼭 첼로는 트렁크에 실으려고 하시는데 첼로가 트렁크에 잘 안 들어간다고 했어요.


"그래도 첼로는 어떻게 하면 트렁크에 들어가기라도 하죠. 콘트라베이스는 트렁크에 절대 안 들어가요. 그런데 택시기사분들이 꼭 트렁크에 넣으시려고 해요."


그리고 오스트리아도 유로를 도입하면서 물가가 아주 폭등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오스트리아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고, 독일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물가가 폭등했다고 했어요. 그러면 대체 유로를 도입해서 물가가 저렴해진 나라는 대체 어디지? 오직 프랑스? 이 당시 프랑스에서 담배 한 값은 8유로, 몰타는 4유로였어요. 그래서 프랑스 애들이 담배 싸다고 좋아했었어요.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도 유로 도입해서 물가가 뛰어 살기 힘들어졌다고 하니 그렇다면 대체 유로 도입해서 좋아진 나라는 어디지?


우리를 많이 도와주신 예진 누나께 너무 고마워서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마땅히 드릴 게 없었어요. 드릴만한 것이라면 빈에서 브라티슬라바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코스 개발 아이디어 정도?


'아...맞다!'


지갑을 꺼내 돈을 드렸어요.

"이거 뭐에요?"

처음에는 돈을 더 드리려는 줄 알고 안 받으시려고 하시다가 유로가 아닌 뭔가 이상한 지폐임을 보시고는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셨어요.

"그거 헝가리 200포린트 지폐에요. 이제 안 쓰는 지폐인데 이 녀석한테 거슬러 주더라구요. 혹시 여기 오시는 분들 중 헝가리 가시겠다는 분 계시면 보여주시고 절대 이 지폐는 받지 말라고 알려주세요. 이 지폐 지금 헝가리에서 아예 사용 못해요."

"고마워요!"


민박집을 나와 친구와 헤어졌어요. 친구는 미술관을 보러 갔어요. 저는 클림트 그림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볼 생각이었어요.

'오스트리아 왔는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나 보고 갈까...'



여기도 눈이 많이 쌓였어요.



크리스마스의 흔적. 도로는 잘 치워져 있었어요.



하천을 따라 걷다 보니 시장에 도착했어요.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없었어요. 확실히 우리가 많이 서구화되어서 그런가 봐요. 아랍의 시장과 달리 유럽의 시장은 발칸 유럽이든 중부 유럽이든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인상적인 곳은 보이지 않았어요. 이 시장에서 흥미로운 점이라면 과자, 초콜렛이 매우 다양했다는 것이었어요. 군것질 거리는 많았지만 반드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친구와 같이 갔다면 아마 조금 샀을 거에요. 하지만 지금은 저 혼자. 조금만 사도 혼자 먹기에는 분명 벅찬 양일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냥 보기만 했어요.



무슨 박물관.



아저씨 춥다고 지금 담요 뒤집어 쓰신 거에요? 그래도 눈을 뒤집어쓰시면 안 되죠!



지도를 친구에게 주고 나왔어요. 어차피 지도 보며 길 찾는 것은 잘 못해서 친구에게 지도보면서 잘 다니라고 했어요. 저는 분명히 설명을 잘 듣고 나왔는데 박물관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냥 가지 말까?'


꼭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어요. 단지 시간 때울 겸, 오스트리아에 왔으니까 겸사겸사 볼 생각이었지 반드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보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거야 언젠가 한국에 오지 않을까?'


박물관 유물이야 우리나라에 올 가능성도 있었어요. 하지만 건물과 풍경은...그리고 이 독일어는 한국에 올 수 없는 것들.


'차라리 건물과 거리나 신나게 보자.'


이것은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 언제 다시 비엔나에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거리를 걸으며 경치나 실컷 감상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냥 걸었어요.



하얀 쿠션이 찢어진 벤치. 그런데 하얀 쿠션 위에 앉고 싶지는 않았어요. 조금 앉고 싶었지만 벤치마다 눈이 수북히 쌓여 있어서 앉을 곳이 없었어요.



완전 하얀 벌판. 정말 여행 끝까지 눈이 쫓아다니네요.



멀리 보이는 비엔나 시청. 저렇게 보인다고 절대 가깝지 않아요.



교회가 있길래 들어가 보았어요.






"이거 정말 아름다운데!"

외관은 슈테판 성당이 아름다웠지만 오히려 작은 교회들이 내부는 더 화려했어요. 역시 작아서 화려함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인가? 추위나 좀 피하고 좀 앉아서 쉬다 갈 생각으로 들어간 교회였는데 정말 아름다웠어요. 깔끔하고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내부. 이것은 쇤부른 궁전에서 느꼈던 그 느낌이었어요.


교회에서 몸을 녹이고 앉아서 쉬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어요.



"예쁘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크리스마스 장식물은 아직 거리에 남아 있었어요.



"역시 가톨릭 국가에서의 크리스마스는 뭔가 다르구나!"


한국에서는 정말 보기 어려운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크리스마스 장식물들. 가게에 진열된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을 하나하나 구경했어요.


"이건 진짜 사고 싶다!"



가격을 보았어요.


"저거 다 해서 22.8유로?"

당장 사려고 가게로 들어가려다가 뭔가 이상해서 가격표를 보았어요. 여기는 분명히 유로존이에요. 당시 환율은 1유로가 1700원 정도였어요. 우리나라 돈으로는 약 4만원. 우리나라에서라면 좀 저렴한 정도. 작은 천사 인형 19개와 성모마리아 인형까지 다 해서 4만원이면 우리나라에서도 저렴한 가격이에요. 그런데 여기는 유럽. 유로존의 유럽에서 1유로의 가치는 잘 쳐주면 한국에서의 1000원 정도였어요. 22.8유로면 얼추 2만원의 가치. 이건 말도 안 되는 가격.


그래서 가격표를 자세히 살펴 보았어요.

"그럼 그렇지..."

작은 천사 인형 하나가 22.8유로. 당장 성모마리아 인형 주변에 보이는 작은 천사 인형만 해도 19개이니 계산해보면 얼추 433유로. 433 유로면 한국돈으로 약 74만원...이건 무리야...이건 정말 안 되요. 지름신 100마리가 들러붙어도 이건 정말 아니었어요.


너무 마음에 드는 것을 봐서 다른 기념품은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처없이 추운 비엔나 거리를 걷기 시작했어요.



방향을 잃어버린 발걸음.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가기는? 여기로 왔지.



뭔가 상당히 큰 건물. 무엇인지 알 수 없었어요.



주변에는 이런 건물이 있었어요. 길을 건너 엄청나게 큰 알 수 없는 건물을 향해 걸어갔어요.



공사중인 정면 옆의 작은 문.



정면이 공사중이라 들어가도 되는지 안 되는지 몰라 조용히 들어갔어요.



"왜 이렇게 훌륭한 성당이 있다는 것을 몰랐지?"

슈테판 성당보다 훨씬 아름답고 으리으리해 보였어요. 왜 이걸 몰랐지? 이 정도로 으리으리한 건물이라면 분명 잘 알려져 있었을텐데?



이것은 바로!!!!!


이번 여행에서 바투스 성당 가서 친구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었어요!


저는 서양에서 왜 스테인드 글라스를 하는지 잘 몰랐어요. 그냥 유리창 장식하려고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바투스 성당 가서 그들이 왜 스테인드 글라스를 했는지 깨달았어요. 빛이 알록달록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면서 벽을 영롱한 색으로 바꾸어요. 삭막하고 칙칙한 벽은 빛을 받아 화려하고 오묘한 색이 되요. 바로 이 장면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친구는 옆에 없었어요.





이건 정말 훌륭해!


비엔나에서 본 성당 중 가장 만족스러웠어요.



보고서 할 말을 잃게 만든 예수님. 역시 우리나라 방송은 많이 건전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에는 이런 피투성이를 TV로 본다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여기는 Museum of the Votive Church (Votivkirche, http://www.votivkirche.at/, 위키 - http://en.wikipedia.org/wiki/Votivkirche)래요. 저도 지금 여행기 쓰면서 여기가 매우 유명하고 중요한 성당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이걸 쓰기 전까지만 해도 뭔가 알려지지 않은 으리으리한 교회라 참 미스테리라고 생각했어요.



연주하는 석상들.



이 석상들은 이 성당을 보며 찬양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냥 우연일까요?




교회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어요.




시청의 야경




민박집에 돌아가야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가야할 곳이 있었어요.



여기의 야경을 꼭 찍고 싶었어요. 이 사진 찍느라 엄청 고생했어요. 삼각대도 없어서 가로등에 대고 찍는데 자꾸 차가 지나가고, 아니면 흔들리고 해서 다시 찍기를 몇 차례. 카메라 배터리가 다 떨어지고 손이 곱아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을 때에야 겨우 한 장 건졌어요.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왔어요. 친구는 이미 와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예진 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비엔나 역에 갔어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조각 피자 하나씩 사 먹고 바로 기차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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