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07 알바니아 지로카스트라

좀좀이 2012. 1. 2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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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치트 모스크를 지나 조금 걷자 제카테 저택이 나왔어요.

"저기 들어갈까?"

"글쎄?"

짐을 들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제카테 저택에 들어갈까 망설여졌어요. 그러나 크게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음을 금방 깨닫게 되었어요.


입구가 잠겨 있어.


혹시 다른 문이 있나 둘러 보았지만 다른 문은 보이지 않았어요. 분명 정문이었어요.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안에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가자."



멀리 보이는 교회의 종탑. 제카테 저택을 지나 걷다 보니 공산 알바니아의 흔적을 또 찾을 수 있었어요.



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공산 알바니아의 흔적. 여담이지만 공산 알바니아는 유고슬라비아와도 사이가 안 좋았고, 소련과도 사이가 안 좋았고, 중국 (중공)과도 사이가 안 좋았어요. 진짜로 철저한 고립 국가였어요. 줄다리기가 아니라 진짜로 사이가 안 좋았던 나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결국 우리가 밥을 먹었던 그 거리로 돌아왔어요.



지로카스트라 여행이 거의 끝나갈 때가 되어서야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어요.

"이제 슬슬 돌아가야지."

"어디로 갈 건데?"

"티라나로 돌아가야지. 티라나로 돌아가서 못 본 곳 조금 더 보고 프리슈티나로 나가자."


몰타에서 어학원 선생님의 남편이 세르비아 남성이라 이번 겨울에 세르비아에 다녀오신다고 하셨어요. 제가 코소보 프리슈티나에 간다고 하자 선생님께서는 이번 겨울에는 프리슈티나가 특히 위험할테니 웬만하면 가지 말라고 말리셨어요. 이 해 겨울, 세르비아에서 일방적으로 코소보와의 국경을 개방해 버려서 세르비아인들이 코소보로 대거 내려갈텐데 코소보의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들은 사이가 매우 안 좋기 때문에 특히 위험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코소보 프리슈티나에 대해 큰 부담이나 걱정은 없었어요. 프리슈티나도 정말 다 돌아다녀 보았고, 돈은 유로를 쓰는데다 세르비아를 거치지 않고 코소보에 들어간 기록이 여권에 남아 있어도 세르비아 입국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지난 여행에서 직접 체험했거든요. 오히려 문제라면 코소보 프리슈티나에서 정말 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마을을 다 둘러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려가서 시내쪽을 가보기로 했어요.



시내로 가는 길에 또 발견한 공산 알바니아의 흔적.



이것은 뭔지 모르겠어요. 아마 유명한 사람이겠죠.


시내는 볼 것이 없어서 그냥 돌아다니는데 전날 내렸던 주유소까지 와 버렸어요. 주유소 옆에 큰 버스가 여러 대 서 있었고 창문에는 '아테네'라고 적혀 있었어요. 일단 티라나행 버스표를 구입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요.


"야, 우리 그냥 아테네 가자."

"아네테?"

"그래. 그냥 아테네 가자."

친구가 적극적으로 아테네로 가자고 했어요.

"티라나에서 내가 못 본 거 있어?"

"아니. 너 거의 다 봤어."

친구에게 보여주지 못한 거라고는 타바케 다리와 무슨 큰 호수 정도. 그런데 호수야 그다지 보여줄 필요성을 못 느꼈고, 타바케 다리는 그게 정말 유명한 다리인지 잘 모르겠어요. 사진으로 보면 멋있게 나와 있는데 실제 갔을 때에는 그냥 평범한 돌다리에 하천은 말라붙어 있었고, 쓰레기만 버려져 있었어요. 신경쓰지 않고 보면 그냥 지나쳐가는 장소.


"그러면 그냥 아테네로 가자."


친구말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어차피 알바니아에서 더 돌아다닐 것도 아니었고, 알바니아에서 나오는 것도 문제였어요. 티라나에서 바로 이스탄불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버스는 찾지 못했어요. 더욱이 프리슈티나와 스코페를 꼭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솔직히 아테네로 가면 저도 좋았어요. 아테네는 저도 못 가본 곳인데다 아테네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방법은 알바니아에서 이스탄불까지 가는 방법보다 더 쉽고 많고 편했어요. 기차로도 갈 수 있고, 버스로도 갈 수 있었어요. 아테네의 어디에 가야 이스탄불행 버스나 기차를 탈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아테네로 가는 것이 티라나로 가는 것보다 훨씬 편한 일정이라는 것.


아테네행 버스 티켓을 샀어요.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환전을 너무 많이 했어!


원래 계획에 맞추어 환전했어요. 하루에 둘이서 100유로면 숙박비 및 교통비까지 포함해도 충분했기 때문에 3일 일정에 맞추어 300 유로 환전했어요. 더욱이 각자 쓸 돈을 약간 환전했어요. 3일 일정에 맞추어 환전했는데 바로 나가기로 했기 때문에 돈이 꽤 많이 남아 버렸어요. 저는 그래도 이것저것 구입한 게 조금이라도 있어서 괜찮았지만 친구는 돈 쓴 게 아예 없다시피 해서 2500레크나 남아버렸어요. 이 돈이 얼마나 많이 남은 것이냐 하면...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현지 담배는 140레크, 말보로가 200레크였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부치는 엽서는 50레크, 이탈리아로 보내는 엽서는 40레크였어요. 2500레크면 여기에서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어요.


이것을 전부 재환전해?


그러나 수수료가 아까웠어요. 더욱이 지로카스트라는 티라나보다 환율도 좋지 않았고, 환전소도 많이 보이지 않았어요. 아니, 은행 자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더욱이 시간도 늦어서 슬슬 어둠이 하늘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어요.


"에라, 모르겠다!"


닥치고 슈퍼마켓에 들어갔어요. 이제부터 우리는


광란의 쇼핑


국경심사에서 잡힐 수 있는 과일을 제외하고 먹는 것을 마구 샀어요.

"이 과자 맛있어 보인다."

"사!"

"물도 사야겠지?"

"당연하지!"

"저녁은 빵 먹을까?"

"빵도 사!"

그리스는 유로존. 물가가 매우 비싼 동네. 그리스도 어차피 물은 사 마셔야 해요. 그래서 물도 잔뜩 사고 먹을 것도 잔뜩 샀어요. 몰타에서 가격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여기에서 다 풀었어요. 몰타는 원래 물가가 상당히 쌌지만 유로를 도입하며 물가가 엄청나게 폭등했어요. 그래서 분명 매우 물가가 저렴하다고 듣고 몰타에 갔는데 슈퍼마켓 갈 때마다 가격 때문에 스트레스 받기 일쑤였어요. 더욱이 이때는 1유로가 1700원 하던 시절. 사오는 것은 없는데 장만 보면 한국돈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거금을 쓰던 시절이라 마음껏 장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그 소원이 알바니아에서 이루어졌어요. 재환전하느니 차라리 장이나 보고 물건이나 잔뜩 사자고 슈퍼마켓에 가서 과자고 빵이고 물이고 음료수고 신나게 잔뜩 샀어요.


버스 시간까지 꽤 남아서 다시 마을로 올라가기로 했어요.



"으잉? 저거 뭐지?"

나무에 새들이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새 치고는 확실히 컸어요.

"저거 닭 아냐?"

자세히 보았어요. 분명 닭이었어요. 닭이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쉬고 있는 모습. 대체 누구네 닭이길래 나무 위로 올라갔지? 저 닭들 잡으려면 꽤나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가 은행에서 남은 돈을 환전한 후, 마지막으로 지로카스트라 모스크를 보고 가기로 했어요.



마을에 하나 있던 기념품점이 문을 열었길래 남은 알바니아 레크화를 다 쓰기 위해 들어갔어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살 만한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고르고 골라서 선물을 몇 개 구입했어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한국이요."

"한국이요?"

"예."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기념품 가게 주인 아주머니께서 매우 놀라셨어요. 이 아주머니께서는 영어를 하실 줄 아셨어요.

"여기에 온 한국인 당신들이 처음이에요."

아...우리가 지로카스트라를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이구나...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하여간 들어서 좋은 소리였어요.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기 위해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마을의 밤거리. 거리에는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어요.



간혹 차가 지나다닐 뿐이었어요.



계속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문을 연 가게 한 곳을 발견했어요. 우리나라 구멍가게 크기였는데 이 동네에서는 그냥 평범한 가게 크기였어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가게를 지키고 있던 아가씨가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았어요. 이 아가씨 역시 영어를 할 줄 알았어요.

"한국이요."

"그래요? 한국 사람 처음 봐요."


이 아가씨는 대학생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이 마을 주민들 모두 우리를 보고 매우 신기해 했대요. 갑자기 왠 외국인 - 그것도 황인종 2명이 이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자 모두 우리에 대해 궁금해했대요. 하루 종일 우리를 보고 모두가 신기해하고 우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정작 말을 건 사람은 없었어요. 그 이유는 궁금하기는 했지만 모두 알바니아어 외의 다른 언어를 몰랐기 때문이었대요. 우리는 전혀 몰랐는데 하루 종일 우리는 이 도시에서 나름 '인기인'이었대요.


가게에서 남은 레크화로 생수를 구입하고 다시 길을 내려갔어요.



밤거리를 홀로 지키고 있는 공산 알바니아의 흔적.



지로카스트라의 민가.


가게 아가씨의 말을 듣고난 후부터 뭔가 크게 아쉬웠어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여기에서 보다 더 재미있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 제가 알바니아어를 능숙히 구사하지 않는 한 느낄 수 없는 재미. 단지 하루 더 머문다고 해결되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지로카스트라를 충분히 돌아다녔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벼웠어요. 친구와 저는 주유소 옆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버스 탑승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 있었어요.


"커피 한 잔 마실래?"

"아니."

그래서 혼자 커피를 마셨어요. 공금은 광란의 쇼핑으로 다 써 버렸고, 친구는 자기 용돈으로 쓸 레크화를 모두 유로로 재환전했어요. 남아있는 레크화는 모두 저의 용돈. 커피를 마시고 남은 레크화로 과자를 샀어요. 그러자 동전 몇 개 남았어요.


시간이 되자 버스 터미널 앞에 아테네행 버스가 왔어요. 아테네행 버스에 올라탔어요. 이제 다시 고통스러운 유로존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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