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05 알바니아 지로카스트라

좀좀이 2012. 1. 2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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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카스트라 관광 참고 사이트 : http://www.gjirokastra.org/


드디어 출발한 버스. 나름 빨리 달리는 것 같았지만 여기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알바니아. 모든 일정이 망했어요. 중간에 휴게소를 들려서 간단히 밥을 사먹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어요.


정말 정신없이 잤어요. 모두가 쿨쿨 잠을 자고 있었어요. 창밖에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 뿐. 그렇게 얼마나 잤는지 몰라요. 친구가 뒷사람과 이야기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아...망할...왜 비는 내리는 거야!"


잠이 덜 깨서 졸린데 갑자기 짜증이 버럭 밀려왔어요.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넘었어요. 알바니아에서 밤 11시면 모두가 잠잘 시간. 이 시각에 비를 맞으며 여관을 찾아 돌아다닐 생각 하니 한숨만 나왔어요.


"이 아주머니께서 자기 친척집에 우리 둘이 20유로 내면 재워주신다는데?"


그 아주머니께서는 티라나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모처럼 고향에 내려오신 거라고 하셨어요. 이건 믿거나 말거나. 중요한 것은 친척집에서 하룻밤 신세지는데 둘이 합쳐 20유로.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어요. 어둠과 비 뿐이었어요. 졸려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재빨리 굴려보았어요. 일단 이 시각과 이 날씨 속에서 여관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일 자체가 매우 힘든 일. 더욱이 두 명이 20유로라면 썩 나쁜 조건도 아니었어요.


"그냥 거기 가자."

저 역시 지로카스트라는 처음. 지로카스트라에 볼 것이 뭐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아는데 빗속을 걷고 싶지는 않았어요. 가격도 한 사람당 10유로면 나쁘지 않은 조건. 원화로 계산한다면 매우 나쁜 조건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는 유럽. 자정 다 되어서 두 명이서 20유로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의 방을 구할 자신이 없었어요.


버스가 드디어 지로카스트라에 도착했어요. 이미 날이 바뀌었어요. 2009년 12월 22일. 아주머니와 함께 택시를 탔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전화로 뭐라고 쉴 새 없이 말씀하셨어요. 택시는 매우 급한 오르막을 기어올라가 어느 골목에 들어가 섰어요.

"따라오세요."

좁은 오르막길로 들어가 조금 걷자 아주머니께서 어느 집 벨을 누르셨어요. 꽤 뚱뚱하신 할머니께서 문을 여셨어요. 우리를 보더니 들어오라고 했어요. 20유로를 드리자 우리를 2층 방에 데려가셨어요. 여기서 자라는 것 같았어요. 화장실과 세면대는 1층에 있었어요. 아주머니께서 가시고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응접실에 앉았어요.


서로 정말 매우 어색했어요.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했어요.


우리는 알바니아어를 모르고 할머니는 알바니아어만 아셨어요.


할머니께서는 사과를 깎아주시고 라키 술 한 잔씩 권하셨어요. 라키 술 한 잔을 마셨어요. 술기운이 확 올라왔어요. 술을 잘 못 마시는데 라키는 정말로 독했어요. 과일을 먹으며 뭔가 대화를 해야 했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하니 대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어요. 제가 아랍어를 조금 안다고 하자 갑자기 응접실 구석에 있는 책상 서랍에서 무슨 복사본을 꺼내서 제게 건네셨어요.

"이건 아랍어가 아니잖아!"

확실한 것은 아랍어가 아니었어요. 예상컨데 오스만어였어요. 많은 알바니아인들이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서 성공했어요. 그래서 마지막까지 오스만 제국에 남아있으려고 했으나 상황을 파악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오스만 튀르크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나라에요. 글자는 아랍 문자 같은데 아랍어에 없는 글자도 있고 아무리 봐도 아랍어는 절대 아니었어요. 비록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그 문서는 오스만어였을 거에요. 발칸 반도에 남아있는 꼬불꼬불한 아랍 글자 비슷한 것 중 상당수가 오스만어. 터키어를 안다면 어떻게든 읽어보았겠지만 터키어는 몰랐기 때문에 읽을 방법이 없었어요.


라키 두 잔과 사과 몇 조각 먹고 방으로 올라갔어요.

"너 어느 쪽에서 잘래?"

아무래도 저보다 체력이 약한 친구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친구에게 침대를 고르라고 했어요.

"내가 안쪽 침대에서 잘게."

그래서 저는 창가쪽 침대에서 자기로 했어요. 간단히 씻고 침대 속에 들어갔어요.


아까 왜 술을 준 지 이해가 되는구나!


매우 두꺼운 커튼. 커튼 너머로 가로등 빛이 반사되어 부서지는 돌길이 보였어요. 거리에 있는 것은 오직 가로등 불빛과 고요함 뿐. 이불을 덮었어요. 우리나라 예전 솜이불처럼 매우 두껍고 무거운 이불이었어요. 알바니아 현지인 집을 체험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너무 추워서 방을 살펴보았어요. 난방 시설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불 속은 완전 얼음장이었어요. 이불 속 냉기가 옷을 뚫고 들어왔어요.

"술 먹고 덥혀진 몸으로 자체 난방 하라는 것이었구나..."

두꺼운 커튼 사이로 창밖의 차가운 공기가 계속 제게 '안녕'하고 인사했어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으면 당장 이불 무게 때문에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고개를 내밀면 차가운 공기가 반갑게 저를 보며 '안녕'하고 인사했어요. 이불 속 몸이라도 따뜻하면 어떻게 자겠는데 이불 속도 냉기가 가득해서 춥기는 매한가지였어요.


한 시간 동안 추워서 잠을 자지 못했어요. 몸을 새우처럼 움츠리고 벌벌 떨었어요. 한 시간이 지나서야 제 몸의 열로 이불 속이 데워졌고, 그제서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어요.


다음날 아침.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어요.



이제부터 여행 시작!

"너 어제 잘 잤어?"

집에서 나와 친구에게 물어보았어요.

"응. 잘만 하던데?"

"좋겠다. 나는 어제 1시간동안 벌벌 떨다 내 체온으로 이불 덮혀서 잤다."



아무리 텅 빈 캐리어라고 해도 심하게 덜덜 떨리니 팔이 슬슬 아프기 시작했어요. 여기도 산타클로스 장식이 있었어요. 앞에 보이는 돌을 쌓아 만든 지붕이 바로 지로카스트라의 상징.


오르막길을 계속 기어올라가다보니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었어요. 일단 정보를 얻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을 구경하다가 지로카스트라 안내 책자가 있어서 한 권 구입했어요. 책 가격은 2유로였어요. 2유로에 작은 안내 책자 1권? 이건 거저였어요. 그래서 바로 구입을 했는데 직원이 선물이라고 1유로짜리 지로카스트라 지도를 주었어요. 지로카스트라는 지금 복원중이라고 했어요. 알바니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기는 하나 알바니아가 워낙 가난한 나라인데다 아직 관광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라서 복원이 지지부진하다고 했어요.


오르막길을 계속 기어올라가다보니 지로카스트라 성에 도착했어요.



지로카스트라 성에서 바라본 지로카스트라.



멀리 보이는 설산. 우측 가운데에 보이는 탑은 알바니아 공산당이 세운 거에요. 지로카스트라 여행에서는 한 가지 보물찾기가 있었어요. 그것은 공산당의 흔적을 찾아내기. 공산 알바니아 시절 공산당이 세운 기념물이 아직도 몇 개 남아 있는데, 이것도 지로카스트라 관광에서 볼 거리 중 하나에요. 이것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도 지로카스트라 관광의 재미.



지로카스트라 성. 버려진 성채에 가까워요.



지로카스트라의 거리.



눈에 시달린 우리에게 매우 산뜻해 보였던 지로카스트라. 그러나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멎었다 해서 분위기가 밝지만은 않았어요.



성으로 기어올라가자! 캐리어를 끌고 오르막을 또 기어올라갔어요. 캐리어를 구입할 때 일단 튼튼하게 생긴 것으로 골랐는데 이것 하나만은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던 거 같았어요. 여행을 다니며 캐리어를 끌기 좋은 길을 다닌 적이 많지 않아요. 거의 다 캐리어 끌고 다니기 매우 나쁜 길이었어요. 그래서 바닥의 천이 조금 찢어지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아무리 험하게 끌고 다녀도 문제가 없었어요.



성의 내부는 박물관. 그러나 알바니아어로만 설명이 적혀 있어서 제대로 알 수는 없었어요. 박물관이라고는 하는데 여기 역시 박물관보다는 폐허에 가까웠어요. 안에 진열된 것은 알바니아 파르티잔이 이탈리아 파시스트와 전쟁을 벌였을 때 사용했던 대포들이었어요.



누구의 동상인지 정확히는 몰라요. 어쨌든 파르티잔의 동상.



성 정상에서 내려다본 지로카스트라.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보는 것보다 내려다 보는 것이 훨씬 아름다운 지로카스트라. 돌을 쌓아 만든 지붕은 아무리 봐도 매력적이었어요.



그냥 방치되어 있는 오래된 대포들.



그래도 생각보다는 나름 괜찮게 보존되어 있었어요.



시계탑이 하나 보였어요. 시간은 맞지 않았어요.



아직까지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 친구랑 성을 훑어보며 시계탑 쪽으로 걸어가는데 아무도 없는 성에서 인기척이 들렸어요.

"누구지?"

우리를 구경하는 알바니아인들. 우리보다 한참 어려보였어요. 아마 중학생쯤 되는 것 같았어요.

"너희들 여기에서 사니?"

"예."

"어디 가니?"

"학교요."

서로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손을 흔들고 헤어졌어요. 서로 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어요. 우리가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다 알바니아어는 정말 몰라서 긴 이야기를 하기엔 역부족이었어요.



"저건 뭐지?"

무슨 무대가 있었어요. 왜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언제 세운 건지도 모르겠어요.



성 꼭대기에 있는 우물. 물을 길어 마실 수 있다면 딱 한 모금만 맛보고 싶었지만 물을 길어 마실 방법이 없었어요. 우물이 생각보다는 꽤 깊어 보였어요.


성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멀리 학교가 보였어요.



학생들이 등교하는 것 같았어요. 몇 시인데 이제 등교하지?


성을 다 둘러본 후 다시 마을로 내려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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