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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버스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게 골아떨어졌어요. 저는 그리스 문자를 열심히 외우기 시작했어요.


"알페, 베타, 감마..."

하지만 그리스 문자는 정말 쉽지 않았어요. 대소 문자 구분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알파 같은 것 몇 개 빼면 모양도 낯설었어요. 글자 모양이 라틴 알파벳과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도 있었지만 발음까지 라틴 알파벳과 같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글자 모양이 이상하게 제 신경을 박박 긁었어요. 뭔가 둥글둥글하면서도 뾰족뾰족한 게 있고 흘려쓴 듯 한 느낌이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어요.

"외워야 해!"

말은 모르지만 글자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어요. 최소한 글자는 읽어야 표지판이라도 읽으며 돌아다니니까요. 글자를 겨우 다 외웠을 때, 버스가 국경에 도착했어요.


"일어나!"

친구를 깨우고 버스에서 내렸어요. 알바니아가 EU국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모두 내려서 출국 심사와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어요. 우리는 한국인이라 역시나 별 것 없었어요. 그러나 알바니아인들의 그리스 입국 심사는 생각보다 길었어요.


"나 그리스 문자 다 외웠다."

"오~잘했어."

제가 그리스 문자를 다 외웠다고 하자 친구가 좋아했어요. 버스는 그리스로 들어오자마자 휴게소에 들렸어요. 우리는 간단히 요기를 하기 위해 휴게소에 들어가 기로스 한 개를 샀어요. 기로스를 받아들고 가게 점원에게 말했어요.

"에프하리스토!"

가게 점원이 제 말을 듣고 매우 좋아했어요.

"야, 뭐라고 말한 거?"

"그리스어로 고맙다고 했지."

"그리스어로 고맙다가 뭔데?"

"에프하리스토."


기로스를 다 먹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는 어느 도시로 들어갔어요. 이 버스도 여러 도시를 거쳐서 아테네로 가는 듯 했어요. 어둠과 정적만 흐르는 거리. 버스 안도 어둠과 정적만 흐르고 있었어요. 거리의 간판을 더듬더듬 읽어 보았어요. 읽을 수 있었어요.

"나 아직 안 죽었어!"

이렇게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된 이유는 바로 생존본능. 최소한 글자라도 알아야 어떻게든 된다는 것을 몸은 기억하고 있었어요. 거리 간판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드디어 두 눈을 감았어요.


아주 이른 새벽. 버스가 드디어 아테네에 도착했어요. 우리가 도착한 곳에는 알바니아행 버스를 운행하는 버스 회사가 매우 많았어요. 도시를 보니 알바니아 주요 도시 전부 가는 듯 했어요.


일단 전철을 타고 시내로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문제 발생. 그리스 글자까지 외우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었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어요.


그리스어는 너무 달라!


다른 유럽 언어들은 글자만 읽을 줄 알면 표지판 보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요. 서로 비슷한 단어가 많기 때문에 글자만 읽으면 아주 단편적인 정보는 획득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리스어는 그렇지 않았어요. 정말 예측이 불가능했어요. 읽기는 읽는데 무슨 뜻인지 당최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즉, 글자만 안다고 될 일이 아니었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관광국가라서 영어를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지하철 타는 것조차 물어 물어 탔어요. 그야말로 고생의 시작.



중심가에 도착했을 때, 동이 트기 시작했어요.



아침으로 친구와 샌드위치를 사 먹었어요. 여기는 유로존이라 공금을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샌드위치를 먹고 앉아서 느긋하게 쉬었어요. 일단 잠이 덜 깨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여기도 소매치기 많기로 악명 높은 곳. 그래서 샌드위치를 먹고 교대로 졸았어요.


실컷 쉬고 졸다가 주위를 설렁설렁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왠지 아테네스러운 거리.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었어요.



빵 파는 아저씨. 터키에서는 '시미트'라고 부르는데 그리스어로는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깨를 잔뜩 붙여놓아서 매우 맛있게 생겼어요. 그래서 하나 샀어요.

"이거 왜 이렇게 질겨?"

매우 고소하고 맛있을 줄 알았는데 기대와 달리 매우 밍밍한 맛이었어요. 그냥 바게트 씹는 맛. 질기기는 엄청 질겨서 물어뜯는 앞니가 빠질 것 같았어요. 손으로 뜯어 먹으려고 해도 쉽게 뜯기지 않는 매우 질긴 빵이었어요.


아테네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은 딱 두 개 있었어요.


1. 이스탄불행 표 구입

2. 파르테논 신전 보기


아테네는 원래 일정에 없었어요. 여기는 지로카스트라에서 아테네행 버스가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오기로 결정한 곳이었어요. 한때 대항해시대2에 미쳐 있던 저와 친구에게 아테네를 방문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 아테네에서 이스탄불로 바로 간다면 대항해시대2에서 질리도록 했던 이스탄불 융단 - 아테네 미술품 교역로를 가는 거에요.


하지만 아테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리스의 수도', 그리고 '파르테논 신전' 뿐이었어요.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이스탄불행 표를 구입하고 파르테논 신전을 보는 것이었어요. 여행 가이드를 보니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아테네에 있는 유적 중 관람료를 지불해야 하는 유적 가운데 5개를 볼 수 있는 티켓을 12유로에 구입할 수 있다고 했어요. 파르테논 신전은 당연히 관람료를 받는 유적이었어요.



새벽에 매우 화려했던 트리를 직접 가서 본 후



전철을 타고 기차역이 있는 라리시스 (Larissis)로 갔어요.


"이스탄불행 기차 매진이에요."

"예?"

"이스탄불행 기차 매진이에요!"


기차표 매진?!


망했어요. 기차로 편하게 이스탄불로 가려고 했는데 기차표가 매진이랬어요. 이런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바로 오늘이 2009년 12월 23일...크리스마스 성수기였기 때문이었어요. 아테네-테살로니카 구간이 전부 매진되어 버려서 아테네-이스탄불 역시 갈 방법이 없었어요.


인포메이션 센터에 물어보니 아테네를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불가리아 소피아로 가는 것이었어요. 이것마저도 오후 4시에 판매 시작이라고 했어요. 미리 팔고 그런 것 없다고 했어요. 불가리아 소피아행 기차표를 구입하고 싶으면 오후 4시에 다시 오라고 했어요.


"아놔...망했네. 버스 알아봐야겠다."

친구는 기차로 이스탄불에 가고 싶어했어요. 이유는 버스가 너무 불편했기 때문. 그러나 기차표가 매진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스탄불행 버스표를 구하기 위해 역 주변을 돌아다녔으나...파는 곳이 없었어요.


기차역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둘이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대학교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한 외국인 청년이 다가왔어요.

"같이 버스 터미널로 가 볼래요?"

"버스 터미널이요?"

"거기라면 표가 있을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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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그리스로군요. 인근 섬들은 안 돌아보셨어요? 그리스하면 산토리니,
    미코노스등이 자동으로 떠올라서 섬은 꼭 봐야할 것 같던데요.ㅎㅎ

    2012.01.30 16: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겨울에 섬 보기는 ㅎㅎ;;
      섬으로 가는 방법도 잘 몰랐던데다 겨울에는 배가 매우 불규칙하게 뜬다고 하더라구요. 더욱이 베니스에서 경악할 정도로 추위에 고생해서요 ㅋㅋ 몰타는 추워봐야 우리나라 10월말~11월 초였답니다.

      2012.02.01 12:41 신고 [ ADDR : EDIT/ DEL ]
  2. 알 수 없는 사용자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되면 황당해지는데
    외국에서 그런다면 더 난감할것 같으네요~^^
    행복한 한주 되세요~^^

    2012.01.30 16:25 [ ADDR : EDIT/ DEL : REPLY ]
    • 말도 잘 안 통하는데다 물가가 비싼 곳이어서 참 당황스러웠어요^^;;;;;

      울릉갈매기님,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2012.02.01 12:41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