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억을 되짚어 (2014)

기억을 되짚어 07 - 통영시 해저터널, 충렬사, 빼떼기죽, 우짜

좀좀이 2014. 10. 1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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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터널로 바로 가는 길도 있었지만 친구의 추억을 들으며 조금 멀리 돌아가기로 했어요.



친구의 옛날 통영 살 때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동네 골목을 걸어보는 것도 좋았어요.


"우리 점심 뭐 먹지?"


동피랑에서 친구와 점심은 해저터널을 갔다 와서 먹기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나 그때 무엇을 먹을지는 정하지 않았어요.


"빼떼기죽이 뭐?"

"아, 빼떼기죽!"


친구 말로는 빼떼기죽이란 말린 고구마에 팥을 넣고 삶아 만든 죽이라고 했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종종 만들어주셨는데, 그때는 그것이 정말 먹기 싫었다고 했어요. 가난하던 시절에 만들어먹던 음식이고, 자기는 차갑게해서 먹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해주었어요.


"근데 이름이 뭔가 웃기다. 빼떼기죽."

"응, 빼떼기죽."

"점심 빼떼기죽 먹을까?"

"응."


'빼떼기죽'이라는 말은 뭔가 웃겼어요. 별로 웃길 것도 없는 것인데 이 말만 떠올리면 그냥 둘 다 깔깔 웃었어요.


"빼떼기죽."

"빼떼기죽."


둘 다 심심하면 '빼떼기죽'을 외치며 해저터널을 향해 걸어갔어요.



"여기 완전 변했네?"


친구는 어렸을 때 사촌들과 여기로 종종 놀러 왔었다고 말해주었어요. 그리고 그때와 달리 지금은 정비를 잘 해 놓은 것이라고 알려주었어요.



"여기 어렸을 때에는 위에서 물도 뚝뚝 떨어지고 그랬어."

"터널 속에서 놀았던 거야?"

"터널 속에서 놀았다기 보다는 터널 넘어가서 바닷가 가서 놀곤 했지."


통영시 해저 터널은 통영시 당동과 미수2동을 이어주는 터널이에요. 미륵도와 육지를 이어주는 길이지요. 지금은 관광지로도 알려져 있지만 친구가 어릴 때에는 그냥 사람들 다니는 지하도였대요. 터널 길이는 461m.



"여기에서 대한독립만세라도 외쳐야하는 거 아니야? 어제 광복절이었잖아."


1932년 1년 4개월에 걸쳐 건립된 동양최초의 해저터널인 이 터널은 일제강점기때 일본이 물자 수송을 위해 만든 터널. 만약 이날이 광복절이었다면 진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을 거에요. 하지만 오늘은 광복절 다음날인 8월 16일 일요일.




터널 안에는 터널의 역사를 알려주는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여기는 지금도 일반인들이 바다를 건너다니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어요. 길이가 461미터라 걸어서 건너가볼 만 했어요. 딱 적당히 재미있는 길이였어요.




이것은 터널의 미륵도쪽 부분이에요.


"이제 어디 가지?"

"충렬사 갈까? 여기 한산대첩축제도 하는데."


친구에게 이제 어디를 가냐고 물어보니 충렬사를 가자고 했어요. 한산도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했어요. 저녁 7시 진주 출발 서울행 버스를 예매했기 때문에 늦어도 6시에는 진주에 도착해야 했어요. 돌아다니며 보니 통영 시내 거리는 차로 꽉 막혀있었어요. 교통체증이 워낙 심하고, 교통체증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없었어요. 중앙동쪽은 어떤지 몰랐지만, 만약 강구안쪽에서 버스를 탄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을 각오해야 했어요. 게다가 여기는 통영. 창원이나 진주에서 낮에 놀러오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었으므로, 그 사람들하고 겹치면 이래저래 골치아파질 수 있었어요. 진주 가는 버스가 매진되어 버린다든가, 버스에 타기는 했는데 차가 너무 많이 막혀서 진주까지 한참 걸릴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어요. 그래서 충렬사 보고 강구안 돌아가서 점심 먹고 진주로 가자고 했어요.


살이 탄다.


저는 한국에 있는데 피부색깔은 혼자 세계여행 떠난 상태. 제주도 다녀왔을 때에는 태국 정도까지 갔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듯 싶었는데 진주에서 바싹 타고, 여기서도 또 타고 있었어요. 이제 제 피부색깔은 인도 남부 거의 다 온 듯 싶었어요. 손바닥은 정말로 하얀데 얼굴과 손, 팔은 커피색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친구도 저도 슬슬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걸었어요.






충렬사를 보고 나왔어요. 해저터널에서 충렬사를 구경하고 나오기까지 인상적인 일이라면 이순신 장군님 영정 앞에 분향을 드리고 주머니에 있던 100원짜리 6개를 기부함에 집어넣은 것이었어요. 그 외에는 둘 다 그냥 땀 뻘뻘 흘리며 걷고, 구경하고 사진찍고 '빼떼기죽'을 외치며 깔깔 웃었어요.


충렬사 입구에서 보았을 때 길 건너 대각선 오른쪽에도 작은 유적이 있었어요.



통영 명정. 표지판을 보니 1670년에 판 우물인데, 하나만 팠을 때에는 더러운 물이 나오고 곧 말라버려서 하나를 더 팠더니 두 우물 다 맑은 물이 풍부하게 나왔다고 했어요.




"빼떼기죽 먹으러 가자!"


이로써 통영 구경을 끝냈어요. 구경할 곳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그것들 전부 보려면 하루는 더 필요했어요.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그것도 좋았어요. 그래야 다음에 또 올테니까. 누군가 통영 가자고 할 때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나설 수 있을테니까. 이제 남은 것은 빼떼기죽.


"야, 우짜는 뭐?"

"우짜? 그거 우동에 짜장 섞어놓은 거."


우짜도 먹고 싶어졌어요. 우동에 짜장을 섞어놓은 것은 대체 무슨 맛이 날지 궁금했어요. 이렇게 파는 곳은 서울에서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먹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어요.


"너희 어머니께 너가 빼떼기죽 사먹는다고 하면 뭐라고 하실까?"

"뭐 먹을 게 없어서 그런 걸 사먹냐고 뭐라고 하실껄?"


서로 이런 저런 잡담을 하며 식당으로 들어갔어요.


"혹시 빼떼기죽 차가운 거 있어요?"

"그건 없고, 식은 것은 있어요."


일단 자리에 앉아서 친구와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어요.


"우짜 하나랑 빼떼기죽 하나 시킬까?"

"너 우짜 먹게?"

"아니, 그냥 가운데에 2개 놓고 같이 먹자. 너 간염 걸렸냐?"

"아니."

"그럼 상관없겠네."


둘 다 맛보고 싶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우짜와 빼떼기죽을 시켜서 가운데에 놓고 같이 먹자고 했어요. 우짜 하나와 빼떼기죽 하나를 시키자 아주머니께서는 접시 하나씩 따로 주셨어요.


이것이 빼떼기죽



이거 너무 친숙한 맛이야!


어렸을 때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팔던 불량식품중 갈색에 긴 막대기 비슷한 것이 있었어요. 겉은 쫄깃한 젤리 비슷한 것이었고, 속에는 갈색 탁하고 걸쭉한 액체가 들어 있었는데 딱 그맛이었어요. 고소하면서 달콤한 맛. 너무 익숙했던 맛이라 계속 퍼먹게 되었어요.


이것이 우짜



이거 맛이 참 희안하네.


우동에 짜장을 올려놓아서 둘을 섞어 먹는 음식인데 칼칼한 짜장 국물이 일품이었어요. 친구 말로는 자기가 어렸을 때에도 우짜가 있어서 사촌들과 가끔 사먹기도 했다고 말했어요.


식당 벽에 걸려 있는 설명을 보니 통영 욕지도에서 고구마를 껍질을 벗겨 떼기처럼 빚어 말린 것을 고구마 빼떼기라고 하고, 이 고구마 빼떼기와 팥, 강낭콩, 조, 찹쌀을 넣고 2시간 넘게 저어가며 끓인 죽을 빼떼기죽이라고 한대요. 우짜는 예전에 장이 서는 날 장에 나온 사람들이 우동도 먹고 싶어하고 짜장면도 먹고 싶어해서 우동도 먹고 짜장도 먹으라고 우동 위에 짜장을 한 국자 얹어주던 것이 우짜의 시초라고 했어요.


둘 다 매우 맛있었어요.


"이제 통영에서 먹어야할 것은 다 먹은 건가?"


발걸음이 가벼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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