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억을 되짚어 (2014)

기억을 되짚어 05 - 통영시 강구안, 꿀빵

좀좀이 2014. 9. 2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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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일어나! 다 왔어."


친구가 흔들어서 깨웠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너무나 평범한 아파트들. 통영도 나름 '시'이니까. 시에 아파트가 없는 게 더 이상한 것이겠지.


잠을 깨야 하는데 잠이 깨어지지 않았어요. 어쨌든 버스에서 내려서 친구를 졸졸 따라 걷기 시작했어요. 이때 양쪽 중지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신발 디자인이 제 발과 맞지 않아서 쉽게 물집이 잡히곤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물집이 잡혔어요. 크게 잡힌 것은 아니라 그럭저럭 참고 걸을만 했지만 물집이 안 잡힌 상태보다는 당연히 걷기 부자연스러웠어요.


"와...여기 원래 다 논밭이었는데 싹 바뀌었다!"


친구 말로는 예전에는 시외버스터미널만 덜렁 있고 그 주변은 싹 다 논밭이었대요. 그러나 지금 걸으며 주변을 보니 여기는 그냥 평범한 아파트촌. 사진을 찍고 말고 할 것도 없고 왠지 연동3차지구 그대로 뜯어다 붙여놓은 거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 여행을 다니다보면 아파트촌을 어쩜 그렇게 복사하기-붙여넣기 수준으로 똑같이 만드는지 신기해요.


"너 왜 이리 못 걸어?"

"잠이 진짜 안 깬다."


제가 자꾸 휘청휘청 어기적어기적 걷자 친구가 걱정스러운지 물어보았어요. 진짜로 잠이 하나도 깨지 않아서 정신이 없었고, 드는 생각이라고는 양쪽 중지발가락에 잡힌 물집이 신경쓰인다는 것 뿐이었어요.


"나 음료수 좀 사서 마시고 올께."

"응. 어여 다녀와. 나는 별로 생각이 없다."


버스에서 대체 얼마나 잘 잤는지 온몸이 긴장이 되지 않았어요. 근육들이 전부 부서진 묵덩어리처럼 흐물흐물해져서 제각각 따로 노는 기분이었어요. 잠을 깨기 위해서는 카페인 음료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았어요. 편의점에 들어가서 시원한 캔음료 하나 사서 마시려고 찬찬히 살펴보는데


핫식스 1+1!


이거 사면 나도 먹고 친구도 먹겠다.


계산을 하는데 점원이 표준어로 이야기했어요. 통영은 사투리 심하게 안 쓰나? 경상도 사람들 어지간해서는 자기 억양 못 버리는데...일단 계산을 하고 나와서 친구에게 핫식스 하나를 건네주고 저는 그 자리에서 캔을 한 번에 싹 비웠어요.


이제 정신이 조금 돌아온다.


동네가 너무 바뀌어서 친구가 길을 헷갈려하기 시작했어요. 마침 복덕방 아주머니께서 복덕방에서 나와 계셨어요.


"아주머니, 중앙동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

"중앙동은 버스 타고 가야 해요."

"여기서 걸어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나요? 고개 하나 넘으면 금방인데요."

"중앙동요? 거기 걸어서 가려면 30-40분 걸려요. 그냥 버스 타고 가요."


이 친구, 능수능란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어!


이 친구 고향이 통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였어요. 친구가 고등학교때 가끔 경상도 사투리를 들려준 적이 있기는 했는데, 이 친구의 어머니께서 통영분이시라 그냥 조금 할 줄 아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여행 계획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친구가 서울 출신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행 계획하면서 이 친구가 원래 통영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때 서울로 이사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얘가 경상도 사투리 들려줄 때마다 몇 마디 경상도 사투리 흉내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말하는 것을 보니 진짜로 잘 구사하고 있었어요.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대로 버스를 탔어요. 통영도 티머니 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버스에 탈 때 이미 버스 안은 만원이었는데 사람들이 계속 꾸역꾸역 타서 정말로 꽉 차 버렸어요. 나중에는 더 이상 태울 자리 없다고 정거장에 손님이 있는데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아파트촌을 벗어나자마자 바다가 나오고 논밭이 나왔어요.


"어? 뭐지? 지금 시외로 나가는 건가?"


신식 아파트촌에서 바로 시골이 튀어나오자 뭔가 당황스러웠어요. 그리고 조금 더 가자 허름한 시내가 나왔어요. 시내 모습이 딱 구제주같은 모습이었어요.


"내리자. 어차피 여기서부터 항구로 걸어가면서 슬슬 구경하면 돼."


버스 안이 하도 미어터져서 중앙동에 다다르자마자 버스에서 내리기로 했어요.


'여기는 내릴 때 버스카드를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출구에도 버스 카드 찍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어요. 서울에서는 내릴 때 버스 카드를 안 찍고 내리면 벌금 옴팡 물고, 제주도에서는 내릴 때 버스 카드를 아예 찍을 필요가 없어요. 티머니는 공용으로 사용되지만 내릴 때 반드시 찍어야 하는지 안 찍어도 되는지 안 찍어야 하는지는 동네마다 달라요.


"여기 내릴 때 교통카드 찍어야 하나요?"

"예...?"


버스 출구에 있는 사람들께 여쭈어보자 전부 어리둥절해했어요. 그러다 한 청년이 환승할 거라면 찍고, 환승하지 않을 거라면 안 찍어도 된다고 해서 버스카드를 안 찍고 내렸어요.


구제주처럼 낡았지만 번화한 거리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또 평범한 동네가 나왔어요.


"이거 뭐야?"


아파트촌-시골-번화가-오래된 동네...풍경이 확확 바뀌었어요.


"야...여기는 변한 거 하나도 없네!"


친구가 옛날 생각이 난다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갔어요. 친구는 길을 다 알고 있는 듯 거침없이 쭉쭉 걸어갔고, 저는 친구 옆에서 친구를 따라갔어요.



"이거 뭐야!"


왜적을 무찌르는 조선군 조형물이었는데 정말 너무 한국적이었어요. 이 조형물의 압권은 바로 조선군의 표정. 진지함 0%에 '어이, 아저씨, 뭐하세요?'라고 노상방뇨중인 취객을 발견한 경찰의 얼굴이었어요. 그에 비해 일본군의 표정은 정말 진지했어요. 조형물 자체도 매우 한국적인데 이런 표정의 차이 때문에 보자마자 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계속 친구를 따라 걸어가는데 번화가가 또 나왔어요. 최신식 고층 건물로 이루어진 번화가는 아니었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어요. 일단 숙소를 잡아야했기 때문에 서호시장쪽으로 향했어요. 서호시장으로 가는 길에 친구는 계속 예전 자기가 통영 살 때의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서호시장 거의 다 왔을 때 폭죽 소리가 들렸어요.


"여기 지금 한산대첩축제 한다!"


한산대첩축제는 통영에서 하는 크고 유명한 축제. 일단 한산대첩축제는 방을 잡고 구경하기로 한 후, 서호시장으로 갔어요. 서호시장을 간단히 구경한 후, 식혜를 구입하며 친구가 아주머니께 야시장 아직도 하고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야시장은 지금도 하며, 이미 시작했을 거라고 대답해주셨어요.


성수기였지만 숙소는 생각보다 쉽게 잘 잡았어요. 엘리베이터 없는 4층 방을 4만원 부르는 곳이 있었는데, 35000원으로 깎아서 들어갔어요. 성수기에 4만원이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 뿐이었지, 방 자체는 매우 깔끔하고 좋았어요.


"우리 30분만 쉬다가 나가자."

"그래. 그러면 네가 내일 돌아갈 버스표 예매해. 여관비는 일단 내가 다 내었으니 버스비 부족한 것은 내가 현금으로 주면 되잖아. 나는 일단 샤워 좀 할께."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있는데 친구가 갑자기 큰 소리로 불렀어요.


"왜?"

"야!"

"왜?"

"안들려! 나와서 이야기해!"


친구가 다급히 불러서 빨리 씻고 나왔어요.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잡아당겼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어요.


"문 열어봐!"

"너는 왜 쓸 데 없이 문 잠그고 갔냐?"


친구가 문을 열어주었어요. 문은 잠겨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밖에서 안으로 문을 밀어야 하는데 생각없이 계속 잡아당기고 있었어요.


"무슨 일인데?"

"야, 내일 표 없다!"

"응?!!!!!"


통영-서울 전부 매진이었어요. 남아있는 가장 빠른 시각은 밤 11시 30분에 있는 심야 버스 뿐. 이것으로 갈 수 있기는 한데 문제는...


나 다음날 출근.


차라리 오전에 일하라 나간다면 괜찮았어요. 11시 30분이니 3~4시에 도착할 것이고, 두어 시간 버티다가 전철타고 의정부 돌아가서 샤워하고 일하러 가면 되니까요. 그런데 하필이면 월요일부터는 오후 출근. 아예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가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이 역시 썩 내키는 방법은 아니었어요. 월요일 아침에 올라가면 숙박비가 추가로 또 들어가는데다, 의정부 가는 데에 한 시간은 넘게 걸리고, 어정쩡한 시간에 도착해서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을 보내다 일하러 가야 하거든요. 친구도 월요일 점심때 면접을 보아야 한다고 했어요.


이렇게 된 이상 진주로 간다


진주-서울을 찾아보니 이쪽은 표가 많이 남아 있었어요. 당일 변경하면 수수료를 물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일단 진주-서울이라도 잡으라고 했어요. 통영에서 진주는 1시간 10분 정도. 친구는 이미 구경 다 하고 떠났던 진주를 다시 가야 한다고 매우 못마땅해했지만 이것 외에는 방법이 아예 없었어요. 수도권 지하철이 들어가는 도시들 다 알아보았지만 전부 싹 다 매진이었어요. 진주-서울조차 못 잡는다면 이때는 진짜로 통영에 갇혀버리고, 월요일 아침에 올라가는 수 밖에 없었어요.


진주-서울을 예약한 후, 친구는 피곤하니 30분만 쉬다가 나가자고 했어요. 친구는 바닥에 펼쳐진 요 위에서 누워서 금방 잠이 들었고, 저는 핸드폰을 충전하며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어요.


"야, 일어나!"


친구가 바닥에 누워서 저를 불러서 잠에서 깨어났어요. 일어나서 핸드폰을 보았어요. 10시 46분.


"나가자."

"뭘 나가. 지금 10시 46분인데...너무 늦었어. 그냥 오늘 일찍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나가자."


불을 끄고 다시 드러누웠어요.


다음날 아침. 너무나 기분좋게 잘 자고 일어났어요. 씻고 짐을 챙긴 후 밖으로 나왔어요.


"어제 너 일찍 자서 밖에 못 나갔잖아. 어제 너 일찍 자서 심심해서 혼났다. 잠 안 와서 3시 반에야 잤어."

"무슨 소리야? 어제 내가 불 껐을 때가 10시 46분이었는데."


10시 45분도 아니었고, 10시 47분도 아니었고, 정확히 10시 46분이었어요. 그 시간만큼은 정확히 기억났어요. 둘이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전날 밤, 저녁도 먹지 않고 숙소에 들어와서 친구가 먼저 잠들었고, 저는 친구가 말한 30분보다는 전에 잠이 들었어요. 자다가 잠에서 깨어난 친구가 저를 불렀을 때가 10시 46분이었고, 그때 저는 너무 늦어서 나가봐야 할 게 없을 거라고 불 끄고 일찍 자라고 했어요. 친구는 그때 다시 잠깐 잠들었다가 곧 깨어나서 잠이 안 와 3시 반까지 혼자 놀다가 겨우 잠들었어요.


"아침 뭐 먹지?"

"글쎄...일단 항구로 가자."


친구와 강구안으로 갔어요. 강구안에는 길을 따라 꿀빵 파는 가게가 많았어요.


이것이 통영 꿀빵이구나!


꿀빵 파는 가게들은 시식할 수 있도록 꿀빵을 작게 잘라서 앞에 내놓고 있었어요.


꿀빵을 가위로 잘라?


진주 꿀빵은 포크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표면이 단단했어요. 그런데 통영 꿀빵은 가위로 쉽게 잘라지고 있었어요. 시식으로 나와 있는 꿀빵을 먹어보았어요.


이건 진주 꿀빵과 완전히 다른 거다!


일단 통영 꿀빵이 진주 꿀빵과 완벽히 다르다는 것은 알았어요. 하지만 일단 아침을 먼저 먹어야 했어요. 친구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강구안을 따라 걸었어요. 바닷가에 왔으니 해물탕을 먹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 통영은 멍게가 유명하다고 하니 멍게비빔밥을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 결국은 멍게 비빔밥을 먹기로 했어요.


"여기요, 멍게 비빔밥 두 개 주세요!"

"예."

"멍게 좀 많이 올려주세요!"

"아이구, 멍게 많이 올리면 짜서 못 먹어요. 딱 주는 대로 먹어요."

"아...그러면 주변에 살짝 더 올려주세요!"


친구가 멍게 비빔밥에 멍게를 조금 더 올려달라고 하자 아주머니께서 멍게를 많이 올리면 짜서 먹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친구는 그래도 멍게를 조금이라도 더 먹고 싶었는지 아주 조금이라도 더 올려달라고 했어요.



매우 간단한 구성이었어요.



깊다...


김, 참기름, 멍게의 조화. 바다의 맛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아주머니 말씀대로 멍게를 많이 넣었다가는 짜서 먹을 수가 없게 생겼어요. 멍게 비빔밥에는 멍게를 딱 적당량 넣는 것이 관건.


"지금은 멍게가 제철이 아니라서 맛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제철일때 얼려놓았다가 써요."


쎄다!!!!!


당당하게 왜 냉동 멍게를 썼는지 밝히시는 아주머니. 멍게 제철은 봄이에요. 8월은 제철과 아주 거리가 먼 시기.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어요. 그리고 떳떳히 냉동을 썼다고 말해서 더욱 좋았어요.


멍게 비빔밥을 먹고 친구와 꿀빵을 사러 돌아다녔어요.



통영은 한산대첩축제 때문에 임진왜란 관련 조형물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어요.





꿀빵 가게들은 직접 꿀빵을 만들고 있었어요.



꿀빵을 구입한 후 중앙시장으로 갔어요.



아직은 관광객들이 많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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