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04 알바니아 티라나

좀좀이 2012. 1. 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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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티라나 마더 테레사 공항에 착륙했어요. 테레사 공항은 처음 와보는 곳. 티라나에 2번 갔는데, 전부 육로로 가서 육로로 나왔어요. 제가 이용한 경로는 버스로 그리스 테살로니카, 마케도니아 스코페, 코소보 프리슈티나에서 티라나로 오고 가는 경로였어요. 비행기로 알바니아 티라나에 간 것은 처음이었어요.


공항 자체는 크지 않았어요. 입국 심사대 옆이 환승 심사대였는데 환승 심사대로 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환승 심사대를 통과할 때에는 신발도 벗어야 했어요. 우리는 입국 심사대. 입국 심사는 별 것 없었어요. 그냥 여권을 스윽 훑어보더니 여권 맨 뒷장에 도장을 쾅 찍어주었어요.

"Welcome to Albania."

"Thank you."

입국 심사대에서는 긴 말이나 현지어 안 하는 것이 상책. 괜히 주절주절 말하거나 현지어 했다가 피곤해지는 수가 있어요. 친구도 별 일 없이 통과했어요. 참고로 친구는 희안하게 비행기 탈 때마다 철저한 보안검색을 당해요. 왜인지는 몰라요. 맨날 짐 다 뜯어보아요. 몰타에서 베니스 갈 때도 마찬가지였고, 베니스에서 티라나 갈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는 친구 가방에 전선이 많아서 그런가 하고 가방에서 전선을 다 빼서 외투에 쑤셔넣고 보안검색대에 가방과 외투를 올렸는데 역시나 가방을 다 풀어보라고 했어요. 그런 친구도 별 탈 없이 잘 넘어갔어요.


입국심사대에서 나오자마자 공항 안에 있는 은행에서 돈을 조금 환전했어요. 일단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공항 도착 게이트를 나선 후 은행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은행이 문을 열었을지도 미지수였어요. 게다가 예전 요르단에 비행기 타고 갔다가 '공항 안은 보나마나 환율 후려칠 테니 나가서 환전해야지' 했다가 호되게 고생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직 영업중인 은행이 보이자 환전부터 했어요. 참고로 알바니아의 화폐 단위는 레크 (Lek). 유로를 조금만 환전했는데도 고액권의 레크가 들어오자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여행을 시작했지만 정작 여행 준비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믿는 것은 오직 저의 기억 뿐. 프라하까지는 제가 가봤던 곳이기 때문에 특별히 정보가 없더라도 무난한 여행을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테레사 공항에서 티라나 시내까지 가는 방법. 테레사 공항은 처음 와보는 곳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시내까지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티라나는 일단 시내만 가면 되요. 스칸데르베그 광장만 가면 모든 것이 끝나요.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스칸데르베그 광장까지 가느냐였어요.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택시기사들이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일단은 무시. 버스가 있으면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버스는 없었어요. 택시기사들은 한결같이 티라나 시내까지 20유로를 불렀어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기로 했어요. 이제 흥정의 문제. 그러나 택시기사들은 한결같이 20유로를 불렀어요.

"야, 아까 15유로 부른 택시 기사 있던데?"

"어디?"

"저기 있네!"

저에게도 택시 기사들이 달라붙었고 친구에게도 택시 기사들이 달라 붙었어요. 그런데 친구에게 달라붙은 택시 기사 중 한 명이 15유로를 불렀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기사에게 갔어요.

"티라나, 15유로?"

"15유로."

"10유로!"

"노, 노. 15유로!"

흥정 실패. 하지만 모든 택시 기사들이 한결같이 20유로 부르는 상황에서 15유로라면 그다지 나쁜 가격은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예상컨데 어차피 20유로 부르는 택시 기사하고 흥정해서 잘 깎아봐야 15유로. 그래서 그냥 15유로 내기로 했어요.

"따라와."

택시 기사는 우리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어요. 택시 기사가 차를 세운 곳은 공항 입구가 아니라 공항 입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공항 주차장이었어요. 이걸 보고 눈치챘어요. 아...이 사람은 택시 기사가 아니구나. 자기 차 끌고 손님 잡아서 태워주는 일 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기 때문에 공항 입구에 차를 대고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영업하는 것이었어요. 대신 가격은 다른 택시 기사들보다는 저렴하구요. 5유로 차이면 알바니아에서 상당히 큰 차이에요. 하루에 100달러 환전하면 두 명이서 푸지게 먹고 코소보 프리슈티나행 버스 티켓 2장 구입하고 놀고 먹어도 결국 돈이 남아서 환전해요. 이것은 경험상 아는 것. 이런 동네에서 5유로면 매우 큰 차이에요.


택시를 타고 가는데 아저씨가 넌지시 물어보았어요.

"호텔 하나 소개시켜줄까? 1박 20유로."

1박 20유로? 나쁘지는 않은 가격. 예전 티라나 '미친 방' 호텔에서 잘 때도 20유로 냈어요. 친구에게 어떻게 할 지 물어보았어요.

"일단 가볼까?"

"가서 나쁘면 나와버리지."

호텔 위치는 스칸데르베그 광장 근처라고 했어요. 스칸데르베그 광장 주변 길은 다 알아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나와버리면 되요.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제가 예전에 잤던 그 '미친 방' 호텔에 가면 되요.


그래서 택시 기사가 소개해준 호텔로 갔어요. 추가 요금은 없었어요. 스칸데르베그 광장에 도착해서 티라나 은행 옆길로 차를 돌리더니 조금 으슥한 아파트 골목으로 들어갔어요. 그렇게 해서 호텔 도착.

"1박 얼마에요?"

"25유로."

택시 기사의 정보보다는 가격이 비쌌어요. 그래봐야 5유로 차이. 위치가 조금 으슥한 곳에 있기는 했지만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었어요. 친구와 저는 모두 남자. 남자 2명이 같이 돌아다니면 크게 걱정할 것까지는 없어요. 친구에게 방을 보고 오라고 했어요. 친구도 여행을 다녀보았기 때문에 방을 확인하고 왔어요.

"여기 방 괜찮아. 온수도 잘 나오구."

더욱이 조식 제공. 제가 예전에 잤던 호텔에서는 큰 길가에 있는 대신 조식을 제공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여기는 거기보다 5유로 비싼 대신 조식 제공. 방도 좋다고 하니 그냥 여기서 하룻밤 머무르기로 했어요.


방에 들어갔어요.

"와...완전 좋아!"

정말 호텔 다운 호텔이었어요.

"잠깐 밖에 나갔다 오자."

그냥 바로 잠을 자자니 뭔가 아쉬웠어요. 그래서 조금 밖에 돌아다니다 들어오자고 했어요.


스칸데르베그 광장에서부터 티라나 대학교까지 주욱 걸어 올라갔어요.



티라나 대학교 왼쪽 구석에는 테레사 수녀 동상이 있어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테레사 수녀 동상. 그런데 손에 든 것은 뭐지?



이런 짓 해 놓는 것은...여기도 마찬가지네요. 담배와 술잔 들고 있는 테레사 수녀. 둘이 어이 없어서 웃기만 했어요.


나름 연말이라고 거리를 꾸며놓았어요.



한적한 티라나의 거리. 바뀐 것은 별로 없어 보였어요. 날씨가 별로 춥지는 않았지만 둘 다 피곤해서 일단 호텔로 돌아왔어요. 호텔에 돌아와 양말을 빨아 널어놓고 MTV를 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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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 마음에 드는데?"

수첩을 펴고 가수와 제목을 적었어요. 가수는 Rosela Gjylbegu와 Eliza Hoxha였고, 제목은 rruga e zemres 였어요.

"이게 이번 여행의 주제곡이다!"

빨래도 하고 노래 한 곡도 건진 매우 보람찬 밤이라고 생각하며 불 끄고 자리에 누웠어요.


다음날. 눈을 뜨니 이미 아침 식사 시간은 끝났어요.

"아침 시간 놓쳤네."

"밖에 나가서 사먹자."

일단 스칸데르베그 광장으로 향했어요. 가는 길에 시장이 있어서 시장 구경 좀 하고 환전을 했어요. 확실히 공항보다 환율이 좋았어요. 이때 환율은 1유로가 약 136 레크였어요.



우중충한 티라나. 여기도 지중해성 기후. 스칸데르베그 광장은 공사중이었어요.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스칸데르베그 광장에 작은 놀이동산이 생겼다는 것이었어요.


스칸데르베그 광장에 있는 서점에서 기념품을 사려고 했지만 마땅히 살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목적지인 지로카스트라로 가기로 했어요. 하지만 티라나에서 어디로 가야 지로카스트라행 버스를 타지? 이게 제일 큰 문제. 코소보 프리슈티나 가는 버스를 타는 곳과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지로카스트라 가는 버스를 타는 곳은 저도 잘 몰랐어요. 일단 되는 대로 경찰에게 영어로 물어보았어요.


영어가 통해!


스칸데르베그 광장의 변화만큼 놀라운 것은 영어가 통한다는 점! 지난번 알바니아에 왔을 때만 해도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어요. 그때 알바니아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서 도저히 버스 정거장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경찰 아저씨가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어요. 경찰 아저씨께서는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라고 하셨어요.


스칸데르베그 광장에서부터 티라나 대학교까지 다시 걸었다 돌아왔어요. 나머지 구역은 그다지 자세히 볼 필요도 없는데다 어차피 티라나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어요. 지로카스트라 갔다가 티라나로 돌아와서 티라나 구경하고 코소보 프리슈티나를 가서 잠깐 보고 마케도니아 스코페로 가서 잠깐 본 후 이스탄불로 넘어가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티라나에서 많이 머물 필요가 없었어요. 티라나 관광의 시작이자 끝은 결국 스칸데르베그 광장. 이거 하나 봤으면 되었어요.



이것이 티라나 시외버스터미널. 터미널 다운 건물도 없고 무슨 허름한 버스 종점처럼 생긴 것이 시외버스터미널이었어요. 참고로 여기는 알바니아 국내 이동 버스만 다녀요. 국제선은 스칸데르베그 광장에서 헤매야 되요. 그때나 지금이나 알바니아는 들어가는 것도 힘들지만 나오는 것은 더 힘든 나라. 그래도 영어가 많이 통해서 예전보다는 훨씬 쉽게 나올 수 있게 되었어요. 이것은 아마 미국의 영향 때문일 거에요. 미국이 알바니아 편을 많이 들어주고, 알바니아가 나토에 가입하면서 여기는 엄청난 친미국가가 되었어요. 결정적으로 알바니아인들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코소보 문제와 나토 가입 문제에서 확실하게 알바니아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 그래서 알바니아인들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매우 좋아해요. 얼마나 좋아하냐하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알바니아 방문했을 때 모든 알바니아인들이 열광적으로 환영해 주어서 감동먹고 예정에도 없던 환영 인파와의 단체 악수까지 해주었겠어요. 이때 등장한 것이 '시계 소매치기 당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루머. 물론 소매치기 당한 것이 아니라 부시 전 대통령이 악수하다가 시계를 풀어 주머니에 집어넣은 것이었지만요.


우리가 타고 가기로 한 버스는 오후 2시 출발 버스. 티라나에서 지로카스트라로 가는 버스는 1000 레크였어요.


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매우 불안한 소리. 기사가 내려서 뭐라고 뭐라고 하고 정비사가 연장을 가지고 왔어요. 그렇게 정거장에서 한 시간. 오후 3시.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어요.


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버스는 터미널에서 벗어나 1km 채 못 가서 거리에 멈추어 섰어요. 기사는 어딘가에 막 전화하고 밖에서 담배를 마구 태우기 시작했어요.



창 밖의 거리. 이때가 오후 4시. 또 정비사가 와서 뭔가 손을 대고 돌아갔어요. 버스는 또 달렸어요.


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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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덜덜덜덜 부르르릉 부르르릉 피시시식

또 1km 미터를 채 못 가서 버스가 멈추었어요.


"아, 망할 버스! 더럽게 안 가네!"

친구가 화가 났어요. 버스는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지로카스트라행 버스는 오후 2시와 오후 6시에 차가 있었어요. 얼추 3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여기 버스가 3시간에 갈 리는 없으니까 아마 4시간.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이미 도착해야 했어요. 도착해서 숙소 잡고 대충 둘러보며 저녁 먹을 식당 찾을 때인데 아직도 버스는 티라나의 어느 동네.


생각해보니 점심을 아주 대충 먹었어요. 그래서 버스에서 나와 가게를 찾았어요. 그러나 주변에 가게가 없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뛰어다녔어요. 케밥은 왠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간단히 과자와 콜라를 사왔어요. 버스 안에서 둘이서 열심히 처묵처묵 먹어대기 시작했어요. 과자와 콜라를 다 먹었지만 버스는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옆으로 지나가는 6시 지로카스트라행 버스. 이제는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날 지경. 버스가 예정 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하는 것하고 이렇게 아예 출발도 안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에요. 더 열받게 만드는 것은 6시 지로카스트라행 버스가 우리 버스 옆을 지나갔다는 것. 아무리 티라나가 볼 것 없는 도시라고 해도 4시간은 충분히 즐겁게 보낼 수 있어요. 카페 가서 커피 마시고 거리에서 아이스크림과 피자 사먹으면서 적당히 시간 보내기엔 딱 좋은 도시에요. 이유는 환상적으로 저렴한 물가. 그런데 버스에서 죽치고 앉아만 있어야 했어요.


정비사가 또 왔어요. 그리고 한참 후. 정비사가 떠났고, 우리가 탄 버스도 드디어 출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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