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버스에 올라타자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관광객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어요.
"타이완이 요즘 이상기후라서 밤에 비가 자주 내려요. 요새 계속 그랬는데 오늘은 모처럼 맑아요. 그러니 오늘 101 타워를 보는 게 어떻겠어요?"
어차피 오늘 남은 일정은 라오허제 야시장 하나 뿐이었어요. 관광객들 모두 좋다고 했고, 버스는 101 타워를 향해 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기억이 흐릿해요. 밥을 먹고 나니 잠이 밀려왔거든요. 이것은 저 뿐만이 아니었어요. 버스에 탑승한 여행객들 모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어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김포 공항까지 아침 8시 반 집결이었거든요. 그렇다고 비행기에서 푹 잘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구요. 여기서 한 가지 깨달았어요. 대만 여행 갈 때 비행기가 너무 아침에 있으면 그날 저녁 일정은 매우 피곤해진다는 사실을요. 한국에서 대만까지 비행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유럽 같은 곳을 가는 것을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에요. 유럽 같은 곳을 가는 것이라면 비행기에서 잠이 오는 것이 축복이겠지만, 대만은 잠을 자고 말고 할 시간이 마땅찮아요. 기내식이 제대로 나온다면 더더욱 그렇게 되지요. '우왕, 비행기 뜬다!' 하다가 기내식 나오기 시작하고, 기내식 다 먹고 자려고 하면 곧 착륙이니까요. 결정적으로,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던 사람이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새벽 4시까지 노는 것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자정까지 노는 것은 깨어 있는 시간은 같지만 피로도에서는 차이가 커요. 그 이유는 전날 잠을 잔 시간이 몇 시간이냐가 다르기 때문이죠.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타이페이도 교통체증이 심하다고 말씀해주신 것. 그 외에는 계속 꾸벅꾸벅 졸았어요. 어떻게든 안 자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가뜩이나 버스 안은 따스해서 더욱 잠들게 만들고 있었어요.
"여러분, 일어나세요! 101타워 다 왔어요."
잠이 덜 깨어서 얼떨떨한 상태로 버스에서 나왔어요. 나오자마자 느낀 것은...
"어우, 추워!"
낮에 비해 기온이 떨어진 것도 있었고, 어쨌든 겨울이다보니 자다가 일어나서 춥게 느끼는 것도 있었어요. 이번에 머리에 드는 생각이라고는 그저 '너무 춥다'라는 생각 뿐이었어요. 그래서 101타워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어요. 101타워를 세운 이유 중 하나는 타이완 경제가 오랫동안 침체되다보니 크게 부흥하라고 해요. 돌이켜보면 타이완 물가가 한국보다 조금 저렴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 사람들의 월급을 생각하면 타이페이 물가는 가히 살인적이에요.
전망대로 올라가는 표를 끊은 후, 가이드 아주머니와 함께 그 유명한 101타워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이 엘리베이터는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35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문이 닫히는 시간과 문이 열리는 시간까지 포함된 것이라고 알려주셨어요. 엘리베이터를 타니 진짜 비행기를 탄 것처럼 귀가 먹먹했어요. 하지만 그 외에는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전망대에는 엘리베이터 모형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이 101타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어요.
바로 이 캐릭터! 너무 귀여워! 보자마자 사진을 같이 찍고 싶다는 생각을 만들게 하는 이 귀여운 캐릭터!
이 캐릭터는 이 101타워가 무너지지 않고 균형을 잡게 하기 위해 사용한 추를 가지고 만든 캐릭터에요. 이 건물이 균형을 잡게 하는 추는 이렇게 생겼답니다.
이 거대한 추를 가지고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를 만든 것이지요.
이렇게 추의 역할을 설명하는 영상도 있었어요. 이 사진 역시 영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이 캐릭터가 귀여워서 찍은 것이에요.
나중에 돌아와서 대만에 대해 잘 아는 동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직접 대만의 이것 저것을 인터넷을 뒤져 알아본 결과를 놓고 보면, 이런 캐릭터가 생긴 것은 놀랄 일 까지는 아니었어요. 대만은 일본의 문화적 영향을 매우 크게 받은 나라이고, 일본은 이런 캐릭터는 잘 만들어내는 나라이니 그런 것을 놓고 생각한다면 신기한 결과는 아니지요. 이것을 보며 개인적으로 참 못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캐릭터 돌하루방이 생각났어요. 어떻게 된 것이 인상 박박 쓰고 있는 원래 돌하루방보다 더 정이 안 가게 만들 수 있지? 가끔 외국 친구들에게 돌하루방 선물해주려고 할 때마다 원래 돌하루방은 보이지 않고 온통 짜증나게 생긴 캐릭터 돌하루방만 팔고 있어서 더욱 그랬을 수도 있어요.
내부를 구경하다 옥상으로 올라가보았어요.
저 위가 바로 꼭대기. 그러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어요.
"여긴 바람도 세고 정말 춥네!"
밖을 잘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바람은 세게 불어서 더욱 춥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안으로 들어갔어요.
내부 구경을 마친 후, 다시 버스로 올라탔어요. 다른 사람들은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저는 잠에서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찍어봐야 다 알아보지도 못하게 흔들려서 나올텐데...'라고 생각하며 사진을 전혀 찍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후회되고 한심한 생각. ISO를 높이면 충분히 찍을 수 있었거든요. 정말 깜깜한 밤도 아니고, 카메라가 손떨림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메라도 아니었기 때문에 ISO만 쫙 높여주면 충분히 밤에 돌아다닐 때에도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는데 그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어요.
"이제 라오허제 야시장으로 갈 거에요."
버스에 모두 올라타자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오늘 마지막 목적지이자 제가 가장 기대하고 있던 라오허제 야시장을 갈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깜깜한 밤.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어요. 무언가 크게 인상적이랄 것까지는 없었고, 그나마도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버스에서 졸기 시작했어요. 가이드 아주머니 말씀대로 라오허제 야시장에 가까워질수록 차가 밀리기 시작했어요.
'야시장 가면 이것저것 사먹고 신나게 놀아야지!'
이번 대만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던 야시장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어요. 야시장에 가까워질수록 잠도 몰려왔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어요. 확실히 전날 너무 일찍 일어난데다, 비행기에서 제대로 잠도 못 잤기 때문에 잠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항상 비행기에서 푹 잘 수 있는 곳만 갔다왔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잠 좀 자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대만은 비행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대만 여행을 잘 하기 위해서는 전날 푹 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치기는 했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일.
드디어 라오허제 야시장에 도착했어요.
가장 먼저 간 곳은 도교 사원.
도교 사원 안에서는 정말로 중국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향을 태우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점을 치는 방법을 설명해주셨는데, 기억에 나는 것이라고는 마음에 드는 점괘가 나올 때까지 계속 점을 친다는 것. 그리고 점을 친 후 결과를 뽑는데, 이것을 해석해주는 코너가 따로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 외에는 당연히 기억나는 것이 없어요. 잠이 덜 깨기도 했고, 여행기를 쓸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듣기만 했거든요.
가이드 아주머니 옆에서 라오허제 야시장으로 가려는 순간.
"어이쿠!"
골목에서 달려나오는 오토바이가 제동을 걸지 않고 휙 지나갔어요. 정말 반 보 차이로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오토바이에 치이실 뻔 했어요. 순간 이게 뭔가 놀랐고, 잠이 확 깨었어요.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예. 대만에서는 오토바이 정말 조심해야 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지난 11월에 오토바이에 치인 적이 있다고 하셨고, 오토바이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대만의 오토바이 문화만큼은 좋지 않다고 했어요. 오토바이를 우리나라보다 거칠게 몰기 때문에 사고가 잘 나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은 별로 걱정할 것이 없지만, 오토바이 만큼은 확실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어요. 물론 이 역시 사고날 뻔 한 것을 직접 보고, 나중에 돌아와서야 알게 된 일.
라오허제 야시장은 길이 두 개 있고, 가운데, 양쪽 끝에 상점들이 몰려 있었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일단 들어갈 때에는 같이 들어가며 설명해주시고, 돌아나올 때에는 각자 알아서 정해진 시간까지 나오라고 하셨어요. 야시장 입구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먹는 후추빵 파는 가게가 있었어요. 길 자체는 좁았고, 사람들이 무지 많았어요. 크리스마스 명동 거리처럼 사람들에 쓸려 다니는 것이었어요. 거친 물줄기를 맞으며 상류로 올라가려는 연어처럼 쓸려가다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설명하실 때 잠깐 서서 설명 듣고, 다시 쓸려가는 것의 계속이었어요. 물론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면 충분히 찍을 수 있었겠지만, 그냥 어둡고 귀찮다는 생각에 사진을 하나도 안 찍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가장 후회되는 일. 흔들리든 뭐하든 일단 사진은 많이 찍어놓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지금 이렇게 여행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느끼고 있어요. 타이완의 명물인 뒤집혀도 버튼만 누르면 다시 멀쩡하게 접히는 우산이라든지, 여러 음식과 간식들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사진으로 담아온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어요.
일단 시장 한쪽 끝까지 간 후 자유시간을 받았어요.
'아까 보아놓았던 가게 가서 이것저것 사 먹어야지.'
한 마리 송사리는 거친 상류를 거슬러 올라갈 용기기 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날 사람들이 미어터졌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 하지만 금요일 밤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못할 일은 아니었어요. 게다가 사람 자체가 적다 해도 라오허제 야시장은 길이 좁기 때문에 훨씬 미어터지는 것이 당연한 일.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보니 도저히 되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듯 했어요. 사람 셋이 일렬로 서면 길이 꽉 차게 생겼는데, 사람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어요. 시장 안은 양쪽 길이 자연스럽게 일방통행으로 되어 버렸어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무수히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을 뚫으며 역주행하는 것.
'그래도 가운데를 지나갈 수 있겠지.'
그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사람들 가는 대로 나가는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가운데에 있는 상점들을 마음대로 넘나들수 있게 되어 있지도 않았어요. 결국 처음 보아놓았던 가게들은 갈 방법이 실상 없었어요.
설상가상으로 현지화가 전혀 없으신 어머니께서는 취두부 냄새와 많은 인파에 시장 밖으로 후다닥 나가버리셨고, 누나는 후추빵을 먹어보겠다고 후다닥 나가버렸어요. 남은 것은 아버지와 저. 역시나 아버지께서도 현지화가 없으셨고, 잠깐이라도 구경 좀 하려고 하면 아버지께서는 자의적으로 가신 것인지 쓸려가신 것인지 저 멀리 가 계셨어요. 결국은 나가는 수 밖에 없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장만 둘러보고 나가려니 뭔가 억울했어요.
솔직히 한국이라면 별 문제될 것은 없었어요. 그냥 인파가 많기는 해도 그렇다고 다 쓸어가버릴 정도로 뒤에서 밀어대는 것까지는 아니었거든요. 가게에 찰싹 붙으면 사람들이 스치고 지나가기는 했지만 치이지는 않았어요. 문제는...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뭔 말을 할 수가 없네?
간판이 상인 옆에 있다면 가리키면서 달라고 하면 되는데, 간판은 상인 앞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즉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상인이 뭘 가리키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는 구조. 한자를 보면 대충은 알 수 있었어요. 한자로 '망과'라고 써놓으면 망고이겠지요. 이런 식으로 대충 때려맞출 수는 있는데, 문제는 이것을 이 사람들이 뭐라고 읽는 지는 단 하나도 몰랐어요. 지금이라면 한자를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써보이며 주문했겠지만, 이때는 '좀좀이님의 대가리가 정지했습니다' 상태. 게다가 우물쭈물하면 아버지께서는 저 멀리 가 계시고...하여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다 생과일 주스를 파는 가게를 보았어요. 이거라면 그냥 무난하게 아버지와 저 모두 먹을 만 할 것이고, 주문하는 것도 그냥 앞에 진열되어 있는 거 손가락으로 가르키면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 형이 일본어는 잘 통한다고 했었지?'
일단 아버지를 부른 후, 주스를 주문하려는데...
이 사람들 영어도 모르고 일본어도 몰라. 처음에는 영어로 이것 하나랑 저거 하나 달라고 했는데 못 알아듣는 가게 주인. 일본어 아냐고 물어보니까 "까?" 하고서 되묻는 가게 주인. 그냥 '이거 한 개랑 저거 한 개 주세요' 하면 되는 것인데 왜 말이 전혀 안 통해! 결국 어떻게 어떻게 손짓해서 주문을 하기는 했어요. 아버지는 오렌지 주스를 드시고, 저는 사탕수수즙을 마셨어요. 고생해서 구입한 사탕수수즙이었지만, 결과는 꽝. 정말 맛이 없었어요. 웬만한 건 정말 맛있다고 먹는데 이건 맛이 없었어요.
하늘에서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말도 안 통하고 사람은 계속 밀어대는 상황. 노점상에 들어가서 뭔가 하나 사먹고 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애초에 모두가 저녁을 푸지게 먹어서 시장에서 무언가 특별히 사먹고 싶어하는 눈치도 아니었어요.
결국 시장에서 나왔어요. 그러나 그냥 가려니 억울해서 입구에 있는 주스 가게에서 망고 주스를 사서 마셨어요. 시장통 안에서 한 번 당했더니 이번에는 어떻게 주문을 할 수 있었어요. 그냥 '망고'를 외치며 손가락 한 개를 펼쳐보이니 어렵지 않게 주문할 수 있었어요.
망고 주스를 쪽쪽 빨아마신 후, 잠깐 편의점에 들어가서 편의점을 구경했어요. 그냥 우리나라 편의점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편의점에서 파는 음식 냄새 때문에 우리나라의 편의점 안에서 나는 냄새와는 달랐지만요.
비가 내렸기 때문에 빨리 버스에 올라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