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시간을 뒤섞어 (2014)

시간을 뒤섞어 - 03 대만 가는 길

좀좀이 2014. 3. 3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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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찰구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려니 매우 어색했어요.


솔직히 이 모든 상황 전체가 매우 어색했어요. 이렇게 이른 시간에 김포공항에 온 적도 없었고, 김포공항에 오는 목적은 항상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서였어요. 그래서 5호선 방화행 지하철에서 나온 후 국내선 청사로 가는 왼쪽으로 갔어요. 외국에 나갈 때에는 항상 인천공항으로 갔구요. 단 한 번도 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 올 때는 항상 다른 사람이 외국 나가는 것을 배웅해주러 온 것이었어요. 제가 외국을 가기 위해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를 가는 것은 처음. 그리고 이렇게 이른 시각에 김포공항에 오는 것도 처음.


인천공항이 생기기 전, 우리나라 최대의 국제공항은 당연히 김포국제공항이었어요. 그러나 인천공항이 생긴 후, 인천공항은 국제선 전용, 김포공항은 국내선 전용 공항으로 거의 확실히 갈렸어요. 한동안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는 빈둥빈둥 텅 비다시피해서 놀려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몇몇 국제선을 김포공항에 유치하겠다고 나섰고, 인천공항에서는 이제야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김포공항에서 국제선을 다시 운영하면 누가 인천공항으로 오겠냐며 크게 반발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김포공항의 접근성은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보아도 제일 뛰어나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 여러 공항들을 다녀보았지만, 접근성이 뛰어난 공항은 단연코 김포공항과 제주공항이에요.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를 놀리는 것도 문제이고, 그렇다고 김포공항에 국제선을 주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포공항을 이용하고 인천공항을 이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니 그것도 문제. 그래서 김포공항에는 김포공항급의 외국 공항들과 연결되는 국제선들이 들어갔어요. 대표적 공항이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이고, 타이완 타이베이 쑹산 공항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어요. 옛날 국내선 청사는 이제 없어졌고, 국제선 청사 중 크고 좋은 청사는 국내선 청사가 되었고, 작은 청사는 국제선 청사가 되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 마지막날 제주도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김포공항은 비행기가 북적이는 공항이었어요. 수학여행 일정이 짧아 하루라도 더 일정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창밖을 보았어요. 그날따라 비행기 이륙이 밀려서 탑승 후 한참동안 비행기는 뜨지 않고 있었어요.


'우즈베키스탄 비행기네?'


창밖에 보이는 비행기는 우즈베키스탄 비행기. 이것이 저와 우즈베키스탄의 첫 만남이었어요. 사회과부도에서만 보던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의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했어요. 그때는 제가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1년 동안 머무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죠. 그때 그 우즈베키스탄 비행기를 보며 제주도 가는 비행기 대신 저 비행기를 타고 있다면 얼마나 신나고 좋을까 생각했었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후, 그 상상은 현실이 되었지요.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로 가서 2층으로 올라가자 누군가 저를 불렀어요. 누가 불렀나 주변을 둘러보니 부모님이셨어요. 잠시 후, 누나가 가족들 대표로 여행사 직원과 미팅을 한 후 돌아와서 비행기표를 나누어주었고, 캐리어를 수하물로 부친 후 밥을 먹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른 아침에 온 것도 있었고, 김포공항 국제선은 국내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어요. 식당들이 있었지만 문을 연 곳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빵집에서 가볍게 빵을 사먹는 것으로 식사를 때웠어요. 참고로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도 식당들이 있기는 한데, 으슥한 곳에 있어서 얼핏 보면 식당이 정말 없어보인답니다. 물론 제가 갔을 때에는 이른 시간이라 식당들이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어요.


오전 11시 비행기였는데, 혹시나 안에 볼 것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일찍 탑승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출국심사대는 정말로 한가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공항 자체가 한산했어요. 항상 사람들로 북적대는 인천국제공항,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 제주국제공항에 비하면 여기는 완전 파리 날리는 수준.


'그래도 국제선 청사인데 면세점은 볼 만하지 않을까?'





응? 뭐지?


그래도 국제선 청사인데 그럭저럭 잘 꾸며놓지 않았을까?






이건 너무하잖아!


그래도 나름 국제공항의 국제선 청사인데 이렇게 휑할 줄은 몰랐어요. 인천공항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일년에 적어도 한 번은 이용하는 제주공항과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와 비교했을 뿐인데도 이건 너무 심할 정도로 휑했어요. 국제선 청사라면 우리나라의 얼굴. 그런데 이렇게 정말 아무 것도 없어도 되는 거야? 그래도 최소한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 제주공항 정도는 될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이 정도 크기라면 안에서 나름 돌아다니는 재미도 있기 때문에 굳이 일찍 들어온 것이었어요. 하지만 기대는 무참히 깨졌고, 정말 할 것이 없었어요.


결국 여자 피겨 스케이트 재방송을 보았어요. 본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정말 재미있게 또 보았어요. 그거 외에는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사진이라도 찍고 싶은데 사진 찍을 것조차 없었어요.


오전 10시 30분.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어요.





구경만 하던 국제선 청사에 있는 비행기에 제가 직접 올라탔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비행시간은 약 2시간 반. 하지만 타이완은 우리와 한 시간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타이완에 도착할 때 현지 시각은 오후 1시 채 되지 않은 시각일 거였어요. 일단 비행기 안에 2시간 반만 머물러 있으면 된다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솔직히 김포에서 제주 가는 비행기조차도 매우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밤을 샌 것이나 진배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2시간 정도 푹 자고 일어나면 딱이겠다고 계산하고 있었거든요.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핸드폰의 유심을 빼었어요. 어차피 일정 자체도 짧고, 설령 일정이 길다 해도 로밍은 절대 안 하기 때문에 괜히 심을 꼽아놓을 필요가 없었어요. 전원을 끄고 유심을 가볍게 '짤깍' 소리가 나게 눌렀다 떼자 유심이 튀어나왔어요. 그 상태로 그냥 두고 커버를 덮었어요. 전원을 켜보니 유심이 없다고 나오고 있었어요. 어차피 대만 가서 유심 사서 끼울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로밍을 아예 차단했어요.


날씨는 참 좋았지만 정말 지루했어요. 이유는 간단했어요. 비행기는 바다 위를 날아가고 있었거든요. 비행기에서 아래가 잘 보이는 이렇게 맑은 날에 육지 위를 날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항공 사진도 찍고 다양한 모습들을 구경할 수 있어요. 디카를 망원경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구경하며 갈 수 있어요. 하지만 대만은 섬나라. 그리고 우리나라와 대만 사이에 있는 육지는 아무 것도 없어요. 비행기는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를 날고 있었고, 아래를 내려봐보아야 보이는 것은 그저 푸른 바다 뿐. 창밖을 바라보다 기내식 받아먹고 바로 잠을 청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옆에 앉아 계신 부모님께서 계속 저를 깨우신 것도 아닌데 잠이 자꾸 깨었어요. 깊게 푹 자고 싶은데 깊게 자지 못하고 졸다 깨다 졸다 깨다를 반복했어요. 졸음이 가시고 피로가 풀려야 하는데 오히려 졸음이 더욱 오고 피로가 계속 쌓이고 있었어요. 비행기가 불편하거나, 이렇게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잘 못 청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그날따라 잠이 깊게 들지 않았을 뿐이었어요. 이렇게 꾸벅꾸벅 졸 수록 눈은 뻑뻑해지고 목은 말라가고 있었어요.


"아버지, 어머니, 대만이에요!"


졸다가 창밖을 보니 드디어 육지가 나타났어요.





다른 여행이었다면 사진을 열심히 찍었을 것이에요. 하지만 이번에는 여행기를 쓸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아니, 아예 여행기를 안 쓸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창밖 사진은 딱 한 장만 찍었어요. 조금이라도 귀찮은 짓은 단 하나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비행기가 쑹산 공항에 착륙했어요. 비행기가 대만 영토에 들어와 공항에 착륙할 때까지 창밖 풍경을 보고 난 소감은...매우 혼란스러웠어요. 어떻게 보면 서울 같은데 어떻게 보면 제주시 같았어요. 이 나라가 재미있을지 어쩔지 아직 잘 몰랐지만, 첫 인상은 매우 익숙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비행기에서 내려서 입국심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잠시 화장실을 들렸어요. 그리고 목이 말라서 물을 마셨어요. 타이완 달러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화장실 옆에 음수대가 있었어요. 음수대에서 공짜로 물을 마시니 나리타 공항에서 10엔이 없어 갈증에 몸을 비틀던 그때가 생각났어요. 10엔에 몸부림치던 그때가 떠오르자 공항에서 마실 물을 공짜로 제공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대만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아졌어요.


별 문제 없이 모두가 입국심사를 통과했어요.


"어머니, 드디어 대만 도착하셨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입국심사 통과 못하면 바로 쫓겨나거든요. 입국심사를 통과해야 드디어 도착했다고 할 수 있어요."


해외여행이 처음이신 어머니께 이렇게 외국여행 시작된 것을 축하드린다고 말씀드렸어요.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와 가이드 아주머니와 만났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는 환전은 호텔 로비에서 하면 되기는 하는데, 오늘 일정이 야시장까지 들린 후 호텔에 들어가는 일정이기 때문에 야시장에서 쓸 돈만 조금 공항에서 미리 환전하라고 하셨어요.


"뭐지?"





연예인인 듯 했어요. 어떤 젊은 여자가 게이트에서 빠져나왔고, 그 여자를 향해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게이트 앞쪽에서 사진을 일단 찍고, 환전소 옆으로 이동해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 여자가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가서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기 때문에 얼굴은 보았지만 사진을 직접 찍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환전소 옆 구석에서 그 여자를 둘러싸고 사진 찍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제가 먼저 환전을 해 오자 누나가 제게 자기 돈도 환전해 오라고 시켰어요. 그래서 다시 환전 창구로 가서 환전을 해 왔어요. 공항 환전소의 특징이라면 우리나라 원화도 환전할 수 있다는 것.


드디어 모든 일행이 모였고, 가이드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에서 빠져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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