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새벽, 길가에 앉아서

시간을 거슬러 - 06 과거에서 돌아오기

좀좀이 2014. 2. 1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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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롯데리아였던가, 맥도날드였던가?"





아마존 안경 자리가 패스트푸드 점이었다. 탐라영재관을 기준으로 양 옆에 맥도날드와 롯데리아가 있었는데, 하나는 아마존 안경 위치에 있었다. 학교에서 8교시가 끝난 후 조금만 지체해도 기숙사 저녁 시간이 끝나버렸기 때문에 햄버거를 종종 사먹었었다. 그리고 특히 맥도날드 햄버거나 롯데리아 데리버거가 할인 행사 하면 이틀에 한 번은 그것 두 개 사서 하루 식사를 때우곤 했었다. 나중에 맥도날드에서 빅맥, 롯데리아에서 빅립이 나오자 그거 두 개도 꽤 자주 사먹었었다. 그런데 이제 빅립 버거는 사라져버렸고, 빅맥은 왠지 예전에 비해 작아졌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그래도 왔는데 영재관 앞은 갔다가 가야지."





"이래야 영재관이지!"


마구 그리는 그림에서 무언가 이상하게 그림을 그리게 만든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매우 길었던 통학 거리. 그리고 하나는 기숙사의 통금시간이었다.


자정부터 새벽까지 기숙사는 모든 출입구를 잠그어버렸다. 점호는 딱 한 번, 밤 11시에 있었고, 12시까지 들어올 수 있었고, 12시부터는 들어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 통금시간과 관련해 이런 저런 일이 있었다.


먼저 외박을 하려면 외박계를 미리 쓰고 나가야 하는데 이게 계획대로 착착 진행될 리가 없었다. 학교에서 갑자기 술을 먹기 시작한다든가, 무슨 모임이 생기든가 해서 외박계를 안 쓰고 나왔는데 외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그런데 전화로 급히 외박을 해야 한다고 하면 웬만해서는 혼나기만 하고 무단외박 처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 생각해낸 방법이 하나 있었다.


당시에는 들어오고 나갈 때 사감실 앞에 있는 명패를 돌려야 했다. 초록색이면 들어와 있는 것이고, 노란색이면 나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점호는 그렇게 빡빡하지 않았다. 꼭 점호때 깨어 있어서 점호를 받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자고 있으면 사감이 알아서 자고 있는 것을 체크하고 갔다. 이렇게 일석 점호가 널널해서 룸메이트끼리 도와서 한 가지 방법을 통해 무단 외박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먼저 사감실에 사람이 없을 때 무단외박할 룸메의 명패를 들어왔다고 초록색으로 돌린다. 그리고 점호 시간이 되면 화장실에 불을 켜고 문을 닫는다. 사감이 들어와서 다른 한 명이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지금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있다고 둘러댄다. 샤워실에서 물소리가 나므로 이러면 있는 것으로 처리가 되었다. 무단 외박 벌점이 상당히 셌기 때문에 이 방법을 간간이 이용하고는 했다.


문을 모두 걸어잠그다보니 통금시간이 되면 흡연이 문제였다. 웬만해서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는데 실내 흡연만큼은 그런 것이 없었다. 보통 자판기가 있는 구석에서 숨어서 태우고는 했는데, 이것을 사감도 당연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야심한 시각이 아닌 이상 여기에서 담배를 태우면 잘 걸리고는 했다. 통금시간에 담배를 태우려면 지하 식당을 통과해 주차장 입구로 가서 태우든가 아니면 옥상에 가서 태워야 했다. 당연히 이렇게 하려면 귀찮으니 화장실에서 태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쨌든 방에서 담배를 태우면 냄새가 남기 때문에 그대로 사감이 들어오면 벌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방에서 태울 경우, 점호 시간이 되면 화장실과 문 입구에 방향제를 뿌려놓곤 했다. 방향제가 없을 때에는 헤어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러면 또 어물쩍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내가 살 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1층에 우리은행 ATM 이 생겼다는 것. 옆에 있는 편의점도 그대로 있었다.





이 다이소도 원래 패스트푸드점이 있었던 자리였다. 그래서 진짜로 이때 롯데리아 가서 빅맥 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맥도날드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빅맥 달라고 했는데 직원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그때 내가 주로 먹던 햄버거는 맥도날드는 빅맥, 롯데리아는 빅립 - 즉 한 글자 차이였다. 왜 멍한 표정을 짓는지 어이없어하며 '그 큰 햄버거 있잖아요, 빅맥이요' 라고 말했더니 직원이 '여기 롯데리아인데요...' 라고 말했었지. 그래서 '아...빅맥 말고 빅립이요...' 라고 당황해하며 주문했었었다.


"이제 돌아가야지."


작은 것 몇 개 변한 것 제외하고 이 길만큼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이른 새벽이라 아무 것도 없지만, 예전에 이 거리에서 파는 짜장면을 야식으로 먹으러 나오기도 했었고, 아침에 나와서 '언제 학교까지 가나' 한숨 쉬기도 했었다.


그러고보면 저 기숙사에서 살 때 정말 아무렇게나 도화지에 색칠하고 있었구나. 기숙사 안에서도 이런 저런 일이 있었고, 서울에 적응해가며 이런 저런 일도 있었다. '그때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대체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은 대부분 저 기숙사에서 살 때 일어났다. 어떻게 차근차근 정리하려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 그런 기억들의 무더기가 만들어진 시기가 바로 이곳에서 살 때였으니까.





예전 125번을 타던 버스정거장으로 갔다.


맞은편 버스 정거장에서는 김포 공항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버스가 서는 정거장이 있다.





"저 정거장 보며 '이 기숙사는 고향 가기만 편해' 라고 친구랑 툴툴대었었지."


실제로 기숙사에서 고향 집 가는 시간과 기숙사에서 학교 가는 시간이 엇비슷했다. 이 무슨 해괴한 현실이란 말인가. 거리로만 따져보면 내 고향은 여기에서 까마득히 먼 곳인데 실제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니! 기숙사 자체에 불만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시설도 좋고, 밥도 맛있고, 식당 아주머니들 인심도 좋았다. 인사만 잘 하면 후식으로 나오는 야구르트, 과일을 몇 개 방으로 들고 올라가서 먹을 수도 있었고, 사감 할아버지도 꽤 좋으신 분이었다. 외박 문제는 위의 방법을 써서 어물쩍 넘기기도 하고, 시험기간이 있는 달에는 대놓고 시험 공부 때문에 외박한다고 무제한 외박을 해버리기도 했다. 문제는 바로 통학시간. 신촌 쪽 학교를 제외하고 모두가 가장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교통이었다.


1002번 버스를 타고 마포까지 간 후, 마포에서 261번으로 갈아타고, 청량리에서 120번으로 갈아타고, 미아삼거리에서 106번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내내 버스 밖 풍경들이 머리 속 먼지 수북히 쌓인 기억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들어서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익숙한 풍경인데 전혀 익숙하지가 않아. 이 기억도 어제 기억 같고, 저 기억도 어제 기억 같고, 모든 것이 겹쳐서 보였다. 그리고 버스를 갈아탈 때마다 겹쳐지는 모습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내 방에 들어왔을 때 겹쳐보이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여행이랄 것도 없는 나만의 여행이 끝났다. 시간을 거슬러가며 나의 머리속 깊은 곳을 향해 떠난 여행이었다. 그저 혼자 미소 짓게 만들고 혼자에게만 보이는 풍경을 보아가며 가는 길이었다. 다니는 내내 모든 것이 겹쳐 보이는 묘한 길 위에서 그 겹쳐 보이는 풍경을 손으로 만져보고 있었다. '왜 그때 그랬을까' 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기억들을 펼쳐볼 때마다 그냥 웃음만 나왔다. 왜 그때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정말 아무 것도 몰라서 그냥 해본 것들이었으니까. 애초에 아무 것도 모르고 계획을 세워서 해본 것도 아니었으니 성공과 실패를 따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 기억들과 마주하는 길이기에 너무나 평범한 길을, 이미 알고 여러 번 가본 길을 여행이라고 느끼고 가끔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것일 것이겠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토요일도, 일요일도 하루종일 잠만 잤다. 이런 저런 꿈을 꾸었는데 대학교 1,2학년 시절 꿈은 하나도 꾸지 않았다.


그리고 월요일.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머리 한 쪽에 예전 생각들이 떠올라 있는 상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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