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새벽, 길가에 앉아서

봄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 - 02 지하철 1호선 덕계역

좀좀이 2016. 5. 1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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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량천 상류를 가기 위해서는 먼저 1호선 덕계역 2번 출구로 나가서 73번 버스를 타고 MLA 어학원에서 내려야 했어요. 여기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바로 중량천 상류 중 갈 수 있는 곳 마지막 부분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어요. 천주교 청량리 묘지를 넘어가는 길을 통해 군사시설을 우회해 더 올라가 중량천 발원지 계곡을 가볼 수도 있었지만 거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것을 걸어, 말아?"


한쪽 끝은 8.8km, 한쪽 끝은 3km. 둘이 합치면 약 12km. 이 정도면 진짜 걷는 것 같지도 않은 거리. 사람들은 이 '12km'만 보고 꽤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엄연한 '일반 도로'에서의 이야기에요. 중량천은 산책로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12km 는 쉽고 빠르게 갈 수 있어요. 매연 먹고, 신호등에 흐름 끊김당하고, 사람들에게 치이고 이것저것 피해서 걸어야하는 일반 도로와는 전혀 다르지요.


문제는 가운데에 제가 이미 걸어버린 구간. 전철 타고 덕계역 가서 의정부 중앙시장까지 걸어온 후 거기서 전철을 타고 한양대역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걸어서 끝내는 방법이 있기는 했어요. 이렇게 하면 일단 전구간 다 걸어보는 것은 되요.


그렇게 하면 재미 하나도 없을 것 같아.


일단 한양대역은 2호선. 의정부역에서 가려면 환승 두 번 해서 가야하는 곳. 여기서 흥이 다 깨져버리는 데에다 한강은 전혀 신기할 것이 없는 곳. 한강은 이미 자전거를 타고 서울 안에 있는 구간은 거의 다 가보았어요. 결국 예전에 보았던 곳을 또 보러 가야한다는 것이었으니 전혀 신나지 않았어요. 윗쪽 8.8km 구간만 있었다면 그래도 언제든 나섰을 텐데, 아래쪽 3km는 정말 '찌끄래기'라고 불러도 되는 구간이었어요.


그동안 아래쪽 3km 구간을 못 걷고 방치해놓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흥미가 전혀 생기지 않는 찌끄래기 구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중량천과 청계천 합류 지점 근처에서 길을 건너가는 법을 못 찾았기 때문이었어요. 중량천 걸을 때 은근 고약한 점이 아예 하천 산책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맞은편으로 건너가는 길이 거의 없다는 것이에요. 게다가 서울쪽에서는 중량천 산책로 진입로도 많지 않아요. 이 두 가지에 여러 번 당해보았지요. 게다가 중량천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갈 때 서쪽 산책로를 타고 중량천과 청계천 합류 지점까지 가 버리면 청계천을 타고 꽤 걸어서 청계천을 넘고 다시 중량천으로 가야만 중량천 하류 한강 합류지점까지 갈 수 있었어요. 이렇게 하천을 건너자고 걸어야하는 거리가 700m 조금 넘어요. 평소라면 그냥 귀찮은 정도겠지만 만약 20km 넘게 걸어와서 쓸 데 없이 700m를 덤으로 걸어야한다면 분명 짜증 제대로 나는 거리에요.


지도만 보며 어찌할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는 2014년 3월 8일.


그날,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창문을 열었는데 따스한 봄바람이 두 볼을 어루어만져주고 있었어요. 가만히 집에 있을 수 없었어요. 앉아서 책을 보려는데 계속 엉덩이가 들썩거렸어요. 봄바람의 유혹은 끊임없이 계속되었어요. 창문을 닫아놓았는데 방은 봄볕 때문에 따스해지고 있었어요. 나가고 싶었어요.


"그래, 중량천 확 다 걸어버리자!"


다시 네이버 지도를 접속했어요. 그리고 길을 숙지하기 시작했어요. 하천만 따라 걸어가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해서는 중량천을 완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중량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산책로가 끊겨버리거든요. 여기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방법이 두 가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청계천을 타고 한참 올라가서 청계천을 건너간 후 다시 중량천으로 내려가서 중량천을 끝까지 가는 방법이었어요. 두 번째는 의정부에서 서울 넘어갈 때 다리가 하나 있는데, 여기에서 중량천을 건너서 쭉 가다가 한양대 앞에 있는 살곶이 다리에서 다시 중량천을 건너가는 것이었어요.



바로 이 청계천이 중량천으로 합류하는 지점이 난코스. 지도상으로는 장안교를 건너면 될 것 같지만, 장안교를 건너기 위해서는 청계천 밖으로 아예 확 나와야 해요. 그냥 계단 몇 개 올라가서 장안교로 올라가 건너는 거라면 별 것 아닌데, 장안교를 건너기 위해서는 그 이전 훨씬 앞서서 중량천을 빠져나와서 엉뚱한 길로 걸어야한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이미 의정부에서 중량천을 타고 청계천으로 가서 청계천을 타고 청계천 시작점인 고둥 모양 조각이 있는 곳까지 걸어본 적이 있었어요. 중량천을 완주하고 싶다면 최소한 갈 때만큼은 의정부와 서울 경계 즈음에 있는 다리에서 맞은편으로 건너가서 걸어가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이거 걷는 거 장난 아닌데...


이게 무시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어요. 예전에 걸었을 때와 달리 정말 위쪽 - 양주시에서부터 걸어내려와 의정부를 종단하고, 다시 서울의 한강까지 타고 내려가는 길이었거든요.


계속 망설이다보니 어느덧 오후 3시.


"가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옷을 걸쳐입고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그까짓거, 시간 걸려봐야 얼마나 걸리겠어? 10시 반쯤이면 한강 도착하겠지."


그날. 나는 절대 그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한강에 도착한 후, 응봉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올 것이었다. 분명 그럴 것이었다.


봄바람 맞으며 지하철역으로 갔어요. 지하철역에 도착하자마자 전철이 와서 전철을 타고 덕계역으로 갔어요.



2014년 3월 8일 오후 4시 8분. 이때 아무 것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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