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새벽, 길가에 앉아서

시간을 거슬러 - 04 발산역

좀좀이 2014. 2. 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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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출발했다. 당산역을 거쳐 발산역으로 가는 동안 어두워서 창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당산역에서 내릴 때면 짜증 엄청 많이 났었는데...'


지하철 지하 구간은 지금도 답답해서 싫어한다. 그리고 그때는 더더욱 싫어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은 가끔 타는 지하철이다. 게다가 의정부에서 회기까지는 일단 지상구간이라 그렇게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때는 발산에서 종로3가, 종로3가에서 다시 청량리까지 계속 지하 구간으로 가야 했다. 게다가 1교시가 있는 날은 가뜩이나 졸린데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지옥철을 타야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공익 요원이 사람을 밀어서 집어넣을 때도 가끔 있었다.


어두컴컴한 창밖과 밝은 버스 안. 유리창에 내 얼굴이 비쳤고,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가던 그때가 유리창에 떠올랐다.


발산역에서 5호선을 탔다. 운이 좋으면 바로 앉아서 갈 수도 있지만, 대체로 서서 가야 했다. 우장산, 화곡을 지나며 지하철 안은 터질 것 같이 되었다. 앉아서 갈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까치산역과 영등포구청역이었다. 까치산에서 앉아갈 수 있다면 그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다. 까치산에서 못 앉으면 계속 쏟아져들어오는 사람들 사이에 점점 더 몸이 압축되어 갔다. 그렇게 목동 단지를 지나고, 영등포구청역에서도 못 앉으면 과감히 신길역에서 내려 1호선으로 갈아타버렸다. 하지만 서서 졸다가 신길역까지도 지나쳐버리면 어쩔 수 없이 종로3가로 가야 했다.


종로3가역. 처음 대학교를 다닐 때 항상 이용하던 역이었다. 신길역에서 환승하기 시작한 것은 지하철 노선에 대해 대충 파악한 이후의 일이었다. 처음 등교하던 날. 5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는데 에스컬레이터 높이에 경악했다.


'그때 만약 숭실대입구역을 갔다면 어땠을까?'


종로3가에서 5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이건 우리나라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제일 긴 에스컬레이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며 벽에 걸려 있는 거대한 광고판을 보며 저것은 대체 어떻게 달았고, 청소는 어떻게 하며, 광고는 어떻게 바꿀지 매우 궁금해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환승표지판을 따라 걸어가는데 갈수록 후줄근한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1호선 승강장에 도착했다.


파바바바박


"우왁...시발...!"


1호선 전철이 들어오는데 불꽃이 퍼버벙 튀겼다. 순간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이거 고장난 거 아냐? 이거 진짜 타도 되는 거야? 이런 망할...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전철에 올라탔다. 그래서 나도 일단 따라서 올라탔다. 전철은 멀쩡하게 잘 달렸고, 나는 내가 내려야하는 역에 내렸다.


당시에 종로3가역에는 무빙워크가 없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열심히 걸었다. 집에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종로3가 역에 와야 '아...이제야 학교 가는구나', '아...이제야 집에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라는 생각이 항상 들던 곳이 바로 종로3가역이었다. 당연히 이 역이 아주 싫을 수 밖에 없었다.


5호선에서 졸다가 종로3가를 지나쳐버리면 왕십리에서 내려야 했다. 여기는 국철 구간이라 전철이 많지 않아서 일부러 왕십리로 가는 날은 없었다. 왕십리까지 가게 되면 정말 피곤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당산역. 아침에 늦잠을 자면 학교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 125번 버스를 타고 당산역에서 내려서 2호선을 탄 후, 시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는 것이었다. 빨리 가기는 했지만 갑갑한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 것 때문에 싫어했다. 30분만 더 일찍 집에서 나왔다면 몸은 피곤할지언정 갑갑한 지하철을 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기는 125번 버스로 영등포 가서 48번 버스로 갈아타고 학교 가기에 맞추어서 일어나는데, 30분간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서 신경 바짝 세워서 잠들었다 깨다를 반복하다 일어나면 당산역으로 가야 했다. 30분간 푹 잔 것도 아니고 계속 신경 쓰여서 자가 깨서 시계 보고 자다 깨서 시계보다를 반복하다 일어나는 것이다보니 30분 더 누웠다고 뭔가 특별히 더 개운한 것도 없었다. 그렇게 30분 더 자서 개운한 것보다 당산역부터 전철 타고 가느라 피로가 쌓이는 게 더 컸다.


버스는 어느덧 발산역에 도착했다.





"하아...발산역이다."


이제부터 진짜 시간을 거슬러 가기 시작했다.


일단 집까지 가는데 버스 카드 잔액이 혹시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산역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변한 것이 없구나.


이 휑한 모습. 사람들이 많아도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 않는 이곳. 아침에도 저녁에도 여기를 걸을 때에는 항상 피곤했다. 학교를 갈 때에는 '아...이제부터 또 지하철에 낑겨서 한참 버텨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집에 갈 때는 '아...이제부터 한참 걸어야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만 해도 '정액권' 이라는 것이 있었다. 1만원 짜리와 2만원 짜리가 있었는데, 둘 다 색깔은 주황색이었다. 이 정액권의 묘미는 바로 마지막 한 번은 무제한이라는 것. 예를 들어 정액권에 잔액이 100원 남았을 경우, 이걸 가지고 인천을 가든, 의정부 북부를 가든 추가요금을 낼 일이 없었다. 잔액을 100원에 맞추고, 최대한 멀리 갈 때 이용하면 꽤 많은 이득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2만원권보다는 당연히 1만원권이 교통비를 아끼기에 유리했다. 1만원권이든 2만원권이든 어쨌든 똑같이 마지막 한 번은 요금 제한 없이 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1만원권을 사면 귀찮게 수시로 계속 정액권을 사야 한다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지금은 교통카드를 이용하기 때문에 매표소가 문을 닫았지만, 예전에는 오른편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타곤 했었다.


보통은 학교를 가기 위해 전철을 타고, 학교에서 돌아오기 위해 전철을 타야 했기 때문에 항상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개찰구가 반대였지만 가끔 같을 때가 있었다. 5호선 환승해서 자리에 앉아 졸다가 깜빡 잠이 들어서 방화까지 가버렸을 때는 학교 갈 때 들어간 개찰구와 학교에서 돌아올 때 나오는 개찰구가 같았다. 발산역을 자다 지나쳐버리면 그냥 계속 잤다. 당시 만들어놓기만 하고 열리지 않은 마곡역을 지날 때에는 왠지 으스스하다는 생각도 했고, 갑자기 저기서 귀신이 튀어나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방화역에 도착하면 불이 꺼진 지하철 안에서 그냥 잤다. 그러면 지하철은 방화역 끝쪽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상일동 또는 마천행으로 바뀌어서 출발했고, 이때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있다가 발산역 오면 내리곤 했었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있는 귀가길에는 5호선 환승해서 졸리면 아예 푹 자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멈추어 설 때가 되었는데..."


방화역까지 온 전철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철이 점점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조금 깊게 들어가나?"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광명을 보았다. 깜깜한 어둠 속을 달리던 전철이 지상으로 나오며 전철 안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뭐지? 5호선 이쪽 방향에는 지상구간 없는데?"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신나게 달리던 지하철이 간 곳은 방화 차고지. 어리둥절해하며 내린 나를 보고 직원이 순간 깜짝 놀라더니 마침 방화역쪽으로 가는 직원이 있어서 그 차에 태워서 나를 방화역까지 데려다주었다. 당연히 방화 차고지에서 나올 때 표를 개찰구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요금을 물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매일 질리도록 보고 지나가야만 했던 발산역. 툭하면 은행가서 돈 찾아온 후 정액권을 사곤 했던 매표소. 일년에 두 번 집에 내려가기 위해 방화행 5호선에 올라탈 때마다 매우 어색해서 내가 맞게 가는 건가 하곤 했었지. 그러고보니 김포공항도, 제주공항도 예전과는 많이 변했다.


그때 항상 그랬던 것처럼 3번 출구로 나갔다.





이 계단을 다 올라간 후 일단 주머니에 있는 담배갑을 쥐고 마을 버스가 오나 보고는 했었다. 마을버스가 서 있으면 마을 버스를 타고 그냥 집에 들어갈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담배 한 대 태우고 그냥 걸어서 집에 갔다. 우산 가져가지 않았는데 비가 내리는 날에는 이 계단부터 정말 재수없다고 투덜대며 후다닥 뛰어나와 건물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마을 버스를 기다렸었다. 비 맞으며 집에 돌아가는 것은 정말 싫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때 비 맞으며 집에 걸어가는 건 그냥 그 길에 비를 맞는 게 싫을 뿐,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혼자 나와서 살기 시작하며 비를 맞으며 집에 간다는 것이 싫은 것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비를 맞으며 집에 갈 때마다 빨래할 것 늘어났다고 짜증이 솟구쳤다. 빨래해야 한다는 것이 주는 짜증이 비 맞는 것에 대한 짜증마저 덮어버렸다. 그래서 이 계단을 오를 때 비가 내리면 '옷 젖는 거 싫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아우...빨래 할 거 늘었네.' 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걸어가야 하는 거리가 짧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걸어오는 도중에 비가 내리면 정말 낭패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열심히 날이 조금만 궂어 보이면 우산을 챙기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중에 비가 내리면 그냥 젖은 채로 집에 들어가면 되는 일이었지만, 학교 가는 길에 쫄딱 젖어버리면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지금 비가 내린다면 발산역 안으로 돌아가 전철을 타고 의정부로 돌아갔겠지만 다행히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이제 슬슬 가양 4단지로 걸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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