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한국 먹거리

삼육두유 메론 두유

좀좀이 2013. 9. 3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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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친한 형을 잠깐 만나고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음료수를 하나 살까?'


매일 커피만 타서 마시니 다른 게 먹고 싶었어요. 그래서 집 아래 마트에 들어갔어요.


알로에 주스를 살까 식혜를 살까 잠깐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식혜가 더 나을 거 같아서 식혜를 꺼내었어요.


"응? 이건 뭐지?"


식혜를 들고 계산대로 가려는데 순간 눈에 확 들어온 게 있었어요.




"살다살다 별 걸 다 보네."


이건 맛이 좀처럼 상상이 안 되었어요. 검은깨 두유까지는 보았을 때 '뭐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지' 했는데 이건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 게다가 멜론? 멜론향 첨가인가? 멜론은 우리나라에서 비싼 과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우리나라로 멜론을 수출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그 멜론도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렇게 수입된 멜론이 마트에 돌아다니는 건 본 적도 없구요.


맛이 궁금하기 이전에 별 희안한 게 다 나왔다는 생각에 하나 집어왔어요. 가격은 800원.


"참...별 걸 다 만드네."


멜론 두유...대체 무슨 맛이 난다는 거지? 이건 워낙 희안한 거라 생각해서 사온 것이었기 때문에 평소 하지도 않는 성분 표시를 보는 짓까지 했어요.



왠지 '쓸 데 없이 고퀄리티' 라고 외치고 싶어!


성분 표시를 보는데 딱 떠오르는 말은 오직 하나. 쓸 데 없이 고퀄리티. 두유는 수입 제품으로 만들었는데 멜론 농축액 3%는 국산이었어요.


국산 멜론 엄청 비싸잖아!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양구에서 멜론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거기에서는 얼마 할 지 모르겠지만, 제가 사는 곳에서는 아무리 멜론이 저렴해도 한 통 4000원. 보통 6000원이에요.


이런 제품이 등장할 수 있는 이유야 알고 있어요. 그 이유는 바로 비상품 과실인 '파치' 때문. 일정 기준을 충족시킨 과일만 시장으로 나오고, 이 기준 (생김새, 크기 등등)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과일을 '파치' 라고 하는데 파치는 버리든가 주변 사람들끼리 나누어 먹어요. 이 파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바로 제주도 감귤. 파치를 헐값에 마구 팔다가 감귤 농업 자체가 망할 뻔 했거든요. 하지만 파치가 반드시 맛이 없는 건 아니고, 이렇게 생산되는 파치의 양도 많기 때문에 이것들로 이런 제품들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주 감귤 주스, 제주 한라봉 주스도 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들. 제대로 된 상품 과일을 가지고 만든다면 한라봉 주스는 한 통에 기본 몇 만원 하겠죠.


하지만 이렇게 대충 앎에도 불구하고, 국산 멜론 과즙이 3% 들어가 있다는 것을 보니 '쓸 데 없이 고퀄리티'라는 말이 머리 속에서 딱 떠올랐어요. 여기 들어간 멜론 과즙은 우즈베키스탄제 일 줄 알았거든요. 멜론도 수박 못지 않게 엄청난 물덩어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제 머리 속에서 멜론은 외국 과일. 아무리 양구에서 멜론이 나온다 해도 아직까지 제게 멜론이란 비싸고 먼 과일.


맛이 너무 궁금해서 옷도 안 갈아입고 바로 마셔보았어요.


이거 맛있어!!!


진짜 메로나 맛이었어요. 맛은 메로나 맛이었는데 그보다 맛이 훨씬 진한 맛. 두유의 맛과 향은 없었고, 메로나 농축액을 마시는 기분이었어요. 이걸 마시고 식혜를 마셔보았더니 밍숭밍숭한 설탕물이었어요. 향은 하나도 안 느껴지고 맛도 그냥 아주 조금 설탕을 탄 맹물맛.


바로 집 아래 마트로 달려가서 13개를 사서 냉장고에 쟁여놓았어요. 이게 다음에 또 들어올 거라는 기약은 없으니까요.


이건 정말 맛있네요. 그보다 깜짝 놀라게 한 만큼 맛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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