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새벽, 길가에 앉아서

깊은 밤의 노래 - 02 중량천을 따라 의정부에서 서울 들어가기

좀좀이 2013. 9. 2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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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km 쯤이야!"


산길 30km면 이건 하루에 끝내는 게 불가능해요. 산길은 산을 잘 타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충 1시간에 1km 잡으면 맞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은 그냥 주구장창 평지를 걷는 것.


제 예상 시간은 8시간 정도였어요. 보통 한 시간에 4km 걷는다고 하는데, 제 경험상 잘 모르는 길은 한 시간에 3km, 익숙한 길은 4km 정도 가요. 이 길은 거의 모르는 길이니 한 시간에 3km 가야 한다고 잡아야겠지만, 방향을 찾아야할 이유도 없고, 흐름을 끊는 신호등, 차도도 없었어요. 게다가 산책로를 걷는 거라서 다른 행인 때문에 속도를 못 낼 일도 없었구요. 즉, 일반적인 길보다는 훨씬 빠르게 갈 수 있기는 한데, 거리가 거리인 만큼 나중에 속도가 팍팍 떨어질 걸 감안해서 8시간 정도면 되겠다 싶었어요.


"어? 한강 안 거치잖아!"


중량천에 들어와 위치 확인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 다르게 중량천과 청계전이 만나는 지점이 있었어요. 청계천이 중량천에 합쳐져서 중량천이 한강으로 흘러가는 것이었어요. 이 전까지는 중량천을 끝까지 걸은 후, 한강을 조금 걸어서 청계천으로 걸어야한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일단 제가 예상한 거리보다는 확실히 줄었지만, 어쨌든 30km 가 넘는 길인 것은 마찬가지였어요.


걷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의정부에서 중량천을 거쳐 청계천으로 들어가 청계광장까지 걸을 거라고 하자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어요. 그게 가능하냐는 사람부터 도대체 그 거리를 왜 걷냐는 사람까지 다양했어요. 하지만 '그거 별 거 아니에요. 당연히 걸을 수 있죠' 이런 사람은 없었어요. 저도 동생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의정부에서 청계광장까지 가는 방법은 1호선 따라가다가 동대문에서 청계천 타는 것 외에는 없을 거라 생각했구요.


너라면 왠지 할 거 같기는 하다.


한결같이 이런 반응이었어요.




"벌써 발곡역이잖아!"


뭐 벌써 시시하게 발곡역이야. 이때 시각 23시 10분. 중량천에서 걷기 시작한 게 23시 정각 즈음이었기 때문에 얼추 10분만에 도착했어요. 이때는 정확한 거리를 하나도 모르고 그냥 걸었기 때문에 매우 멀 거라 생각했던 의정부 경전철 발곡역이 벌써 나오자 이 길이 그저 가소롭고 우스워 보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랍니다. 집에 돌아와서 네이버 지도로 거리를 측정해보니 고작 1km 조금 넘는 거리였거든요. 속도가 매우 빨랐던 이유는 당연하지만, 저기는 전용 산책로이거든요. 원래 걸음이 빠른데다 걸음을 멈추어야할 일도 없어서 그냥 쭉 갔어요.




그리고 다시 약 10분 후. 의정부 소각장이 나왔어요. 네이버 지도에서는 의정부 자원회수시설이라고 나오는 곳이죠. 그리고 그 옆에는 의정부 스포츠센터가 있어요.


이 구간은 이번에 처음 걷는 게 아니었어요. 예전에 동생과 저희 집 근처에서 술 한 잔 하고 집에 돌려보낼 때 여기를 걸었었거든요. 그래서 대충 어디까지 왔는지를 아는 것은 아니고, 그때 얼마나 느긋하게 걸었나 혼자 느꼈어요.


멈추는 것이라고는 오직 사진 찍을 때. 그 외에는 쉬지 않고 걸었어요.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는 계속 걷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어요.


"내가 아무리 안 걸었어도 설마 이 정도에 벌써 쉬겠어."


의정부에서 중량천-청계천을 통해 청계광장까지 걸어가는 것을 망설여왔던 이유 중 하나는 제 걷는 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홍대에서 일산 호수공원까지 걸어가면서 엄청나게 힘들다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발의 굳은 살은 거의 다 없어져 버렸구요. 2010년부터 오래 걷는 것을 거의 안 했고, 그나마 조금씩 걷던 것도 작년 우즈베키스탄 가면서부터는 그나마조차 안 걸었어요. 이러고도 예전처럼 잘 걷기를 바란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에 벌써 지쳐서 헥헥댈 정도는 아니었어요. 한 시간도 못 걸어서 힘들어 주저앉을 정도라면 체력 문제가 아니라 건강 문제이니까요.




"이제 그럭저럭 온 거 같은데?"


저 건물은 전에 동생이랑 걸을 때 매우 인상깊게 본 건물이었어요. 아무리 보아도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를 돌아다닐 때 본 건물과 비슷하게 생긴 모습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생긴 건물이 왜 여기에 세워지고 있나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제 임의대로 저 곳을 '아슈하바트'라고 붙였어요. 막연히 걷는 것보다 어느 정도 왔는지 분간하려구요.


"사진 계속 흔들리잖아!"


폰카로는 너무 어두워서 도저히 찍을 수가 없어서 기껏 끌고 나온 큰 카메라를 꺼냈는데 이것도 계속 흔들렸어요.


"ISO 높여야겠다."


하지만 ISO를 올려보아도 사진은 계속 흔들렸어요. 어지간히 올려서는 소용 없었어요. 결국 ISO 3200 으로 올렸어요.


"어차피 오늘 사진 잘 찍으러 나온 것도 아닌데."


사람들에게 아직 의정부를 못 벗어났다고 카톡을 보냈어요. 걸은 지 어느덧 한 시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의정부 안이었어요. 사람들은 그러면 의정부가 작을 줄 알았냐고 말했어요.


'이거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걸리는 거 아니야?'


전체 거리를 놓고 보았을 때 의정부시 구간은 그야말로 시작 구간. 엄밀히 말하자면 기승전결 가운데 발단이 아니라 본 내용 시작 전에 있는 머릿말에 해당하는 구간이었어요. 길이로는 5km 조금 넘는 구간.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어요. 이러다 진짜 한 시간에 3km 되어서 10시간 걸리는 거 아니야?


눈 앞에서 전철이 지나갔어요. 어쨌든 열심히 걸은 것은 사실. 이제야 알았지만 이 전철이 지나간 것을 보앗을 때가 23시 53분이었는데, 이때 서울에 거의 다 와 있는 상태였어요.


핸드폰 지도로 현재 위치를 확인하며 가고 있었는데 아주 정확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서울과 의정부 경계 즈음에 오자 서울에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 매우 궁금해졌어요. 일단 핸드폰으로 확인해보았을 때에는 서울에 아직 들어오지 못했다고 나오고 있었어요.




"저것이 서울인가!"


앞에 건물들의 불빛이 번쩍이고 있었어요. 높은 아파트도 다시 보이고 있었어요.




"나 이미 서울 들어와 있잖아!"


지도에서 계속 의정부라고 나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위치가 확 변하면서 서울에 있다고 나왔어요.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아무래도 GPS 기능을 꺼서 그런 것 같았어요. GPS 가 배터리를 마구 먹어대어서 항상 꺼버리고 있거든요.


아마 9월 18일 0시 정각 즈음해서 서울에 진입한 듯 싶었어요.


=====


p.s.

폰카로 찍은 사진이라고 지하철 지나가는 것을 찍은 사진을 원본 남기지 않고 원본 자체를 가지고 크기 조절 했는데 실수로 크기를 큰 변 60으로 입력하는 바람에 날려버렸어요. 이 블로그에 사진 올릴 때에는 큰 변 600으로 크기 조절 하는데 600 입력했다고 생각하고 엔터 눌렀는데 60이었어요...사실 그 지점이 진짜 서울-의정부 경계인데 한순간의 실수로 그 장면을 날려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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