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한국 먹거리

오랜만에 먹은 빵집 햄버거

좀좀이 2013. 4. 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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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햄버거를 처음 먹었던 때는 무지 어렸을 때였다. 빵집에 가면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 무슨 야채과 고기덩어리 튀긴 것 비슷한 것이 들어 있는 빵이 있었는데, 그거 냄새가 참 좋았다. 항상 어머니께 사달라고 졸랐지만 어머니께서는 사주시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있는 빵집에 갔는데 어머니께서 드디어 그 빵을 사주셨다. 집에 돌아와 그 빵을 먹는데 맛있었다. 문제는 어린 내가 혼자 다 먹기에는 너무 많았던 것. 어렸을 때 밥 한 공기 다 비우는 것도 버거워했는데 그 커다란 빵을 혼자 다 먹기는 무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빅맥 크기 정도 되지 않았나 싶다. 하여간 점심때부터 먹기 시작한 빵은 맛은 있었지만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결국 그날 저녁 먹을 때가 되어서야 다 먹었다. 당연히 그날 저녁은 먹지 않았다. 저녁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정말 신났던 기억도 아직까지 생생하다. 어렸을 때부터 '제발 한 끼 좀 굶었으면 좋겠다'고 바랬기 때문이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한동안 햄버거는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맛은 좋아서 또 먹고 싶기는 한데, 그 양이 감당이 되지 않는 양이었다. 이게 실상 두 끼 분인데 그것을 혼자 한 끼에 다 해치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그 빵집 햄버거를 다시 먹게 된 것은 시간이 어느 정도 더 흐른 후였다. 어느 날 부터인가 학교에 행사가 있으면 학급임원들의 학부모님들께서 빵집에서 햄버거를 사오셔서 아이들에게 돌리셨다. 그때 받은 햄버거는 그 빵집 햄버거보다 크기가 작았다. 오늘날로 치면 어린이세트의 햄버거 크기 정도였다. 그 정도는 그래도 무리없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먹는 양이 늘어나면서 드디어 밥 한 공기를 무리 없이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빵집 햄버거를 혼자 한 끼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많아서 먹으면 배가 너무 부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사먹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들어서였다. 처음 롯데리아 간 것이 고2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전에도 당연히 있었지만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굳이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먹는 데에 쓸 돈이 있으면 모아서 읽고 싶은 책을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머니께서 종종 시장가신 김에 햄버거를 사오셨기 때문에 굳이 내 돈 들여서 먹어야할 이유도 없었다.


햄버거를 본격적으로 먹어대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들어가서부터였다. 내가 살던 곳 양 옆에 맥도날드와 롯데리아가 있었는데, 할인행사 하는 햄버거 두 개 사서 후딱 먹어치우면 그날은 굳이 다른 것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돈도 절약하고 먹는 데에 시간도 안 빼앗겨서 행사하는 햄버거만 골라서 열심히 사먹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사먹기 시작하면서 빵집 햄버거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일단 행사용 햄버거보다 비쌌기 때문에 그걸 사서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빵집 햄버거를 안 먹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냥 어렸을 때에는 빵집에서 햄버거를 사먹곤 했었다는 기억만 어쩌다 가끔 떠오를 때가 있었다.




모처럼...몇 년 만에 빵집 햄버거를 사먹었다. 원래 햄버거를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니라, 점심을 먹으려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중국집을 찾지 못했다.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은데 중국집이 보이지 않아서 돌아다니다 겨우 하나 찾았는데, 하필 짬뽕 전문점이라고 짜장면이 없었다.


'꿩 대신 닭이다.'


더 돌아다니기도 싫고 해서 그냥 짬뽕 곱빼기를 시켰다. 큰 그릇에 짬뽕이 나왔는데 실제 양은 집에서 라면 두 개 끓여먹는 정도의 양 밖에 되지 않는 듯 했다. 분명 짬뽕 곱빼기면 혼자 먹기 조금 버거운 양이어야 정상인데 왜 이렇게 적지? 다 먹고 툴툴대며 돌아다니는데 마침 어느 한 빵집에서 햄버거를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크기도 예전에 먹었던 것보다 작아서 딱 이거 하나 먹으면 배가 찰 거 같았다. 그래서 사먹었다.


예전처럼 속이 푸짐한 햄버거는 아니었지만, 피클과 양배추 마요네즈 무침, 패티 한 장이 들어간 햄버거였다. 어렸을 때 먹었던 그 빵집 햄버거가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맛은 이것도 가지고 있었다.


항상 떠올리기만 했던 오래된 기억을 다시 먹어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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