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고향에 벚꽃이 피었다고 한다

좀좀이 2013. 3. 2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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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문자가 와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원래는 월요일에 안부 전화를 걸 생각이었는데, 월요일부터 계속 일이 있었다. 이래저래 사람들을 만날 일도 있었고, 고민하고 결정을 내릴 것도 있고, 할 지 말 지 확실히 해야할 것들도 있어서 이런 것 좀 정리하고 집에 전화하려고 하다보니 집에서 먼저 문자가 왔다.


"잘 지내니?"

"예."


전화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동네 벚꽃 벌써 폈어."

"예? 아니, 일 없이 왜 벌써 폈대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벚꽃이 필 시기는 아니었다. 벚꽃이 필 시기가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벚꽃이 벌써 필 리가 없잖아. 게다가 여기는 꽃샘추위라 추운데. 아직은 봄인지 겨울인지 애매한 풍경인데.


그러고보니 고향에서 벚꽃을 본 지 꽤 오래되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고향 풍경이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마치 매일 먹는 쌀밥이 익숙해서 먹기는 하는데 특별히 맛있다고 생각히지는 않는 것처럼. 그래서 내 고향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면 대화하기 참 어렵다. 공감이 잘 안 되니 느낌과 느낌을 주고 받는 대화가 잘 될 리가 없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내가 고향이 왜 아름다운지 배우게 된다. 아...그래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거구나...아...그렇게 느낄 수도 있구나...그런다고 고향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건 아니다. 외국인이 쌀밥 맛있다고 극찬한다고 해서 갑자기 쌀밥이 맛있게 느껴질 리는 없는 것처럼 지금도 내게 고향이란 편안한 곳이지, 특별히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내게 고향이란 딱 '쌀밥' 같은 곳이다. 먹으면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하는데 굳이 쌀밥을 안 먹는다고 해서 괴로운 것도 아니고, 질은 밥은 싫어하고 보리차에 찬밥 말아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찌되었든 못 먹을 정도만 아니면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그런데 예외적으로 고향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일 년에 딱 한 번 있었다.


벚꽃이 필 때.


벚꽃이 필 때 만큼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그 절정은 바로 벚꽃이 질 때. 바람이 불면 분홍빛 꽃비가 후두둑 떨어져 땅을 벚꽃색으로 물들였다. 학교 가기 위해 집에서 나올 때 길바닥에 벚꽃이 곱게 쌓여있으면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바닥에 깔린 벚꽃이 영원히 그 빛깔 그대로 보존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몽환적인 세계가 끝나면 다시 단조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단조로운 한 해 속에서 벚꽃 만큼 나를 강하게 유혹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보리가 익고, 모기가 날아오고, 단풍이 들고, 찬 바람이 옷 속으로 들어오는 동안 가슴이 떨리고 몽롱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은 없었다. 그저 지난해에도 있었고, 그 전에도, 그보다도 전에도 반복되던 단조로움일 뿐이었다. 단조로움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음해 벚꽃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고향의 벚꽃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여의도 벚꽃을 처음 보았을 때였다. 하도 유명하길래 제대로 벚꽃 구경하겠다고 갔는데 벚꽃 색깔이 하앴다. 아름답기는 했다. 그러나 나를 확 유혹하는 그런 것이 없었다. 하얀 벚꽃을 보니 머리 속이 복잡했다. 싱거운 음식을 먹은 것처럼 무언가 이상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왜 몽환적인 세계가 열리지 않는 것일까.


그때부터 벚꽃이 필 때만 되면 고향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벚꽃이 질 때가 지나가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자연스럽게 사그러들었다. 그리고 또 다음해 벚꽃이 필 때가 되면 고향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고향에는 몽환적인 세계를 열어주는 아름다운 벚꽃이 있으니까.




이게 가장 최근에 본 고향의 벚꽃이다. 이게 5년 전이다. 모처럼 여유가 생겨 고향에서 시간을 보내다 벚꽃이 피는 것을 보았다. 얼마만에 보는 고향의 벚꽃이란 말인가!


어머니로부터 동네 벚꽃이 벌써 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처럼 고향의 벚꽃 사진을 다시 보았다. 저 사진을 찍을 때에는 지금의 내 모습은 생각도 못 했다. '설마'라는 가정 속에서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저 사진을 찍으며 했던 생각 중 정확히 맞은 생각은 오직 하나 뿐. 이번에 보고 한동안 또 오랫동안 직접 보지는 못할 거야.


고향의 벚꽃이 벌써 피었다면 올해는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의 벚꽃을 떠올리게 될까? 꽃샘추위라 추우니 벚꽃이 피었을 거라는 상상이 전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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