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선 철도역 묵호항역 구내 제주도 돌하르방 유래 - 석탄의 길 3부 11

좀좀이 2023. 4. 2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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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평해변이 끝나자 굴다리가 나왔어요.

 

 

여기는 강원도 동해시 부곡동 부곡돌담마을 해안숲공원이 있는 곳이었어요. 강원도 동해시 부곡동 부곡돌담마을 해안숲공원의 유래가 새겨진 석비가 있었어요.

 

 

 

석비 내용은 다음과 같았어요.

 

돌담마을 해안숲 복원지역

 

1932년까지 해안숲이 있던 곳으로 철도와 항만등의 건설로 그 자리에 주택등이 지어지게 되면서 해안숲은 사라지고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지역이라 수해와 풍해로 인한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는 지역이였으며 특히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피해가 가장 심각하여 상습 재난지역으로 지정 건물과 시설을 철거하고 주민을 이주시켜 공한지가 발생된 이곳에 부곡동주민자치위원회, 동해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강릉생명의숲에서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해안숲의 중요성과 가치를 전파하기 위하여 훼손된 해안숲을 복원하였습니다.

 

2008년 11월

부곡동 주민자치위원회

 

강원도 동해시 부곡동 부곡돌담마을 해안숲공원이 있던 자리도 조그맣게 마을이 있던 자리였었던 것으로 추정되었어요. 2002년 태풍 루사때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동해시에서 주민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건물을 철거한 후 조성한 공원이었어요.

 

 

토끼굴로 들어갔어요. 토끼굴을 지나 향로봉길을 따라 묵호항역으로 갈 계획이었어요. 만약 이 여행이 진짜로 운탄고도1330 9길을 제 마음대로 뜯어고쳐서 완벽한 석탄의 길 루트를 만드는 거였다면 애초에 이날 한섬해변으로 가면 안 되었어요.

 

만약 제대로 운탄고도1330 9길을 뜯어고쳐서 제 마음대로 운탄고도 엔딩을 만드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38번 국도 타고 동해시로 넘어온 후 동해역으로 갈 게 아니라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시 안쪽으로 걸어가야 했어요. 7번 국도를 따라서 동해불가마사우나, 북평고등학교 사이로 쭉 올라가면 동해생활체육공원이 나와요. 동해생활체육공원에서 7번 국도 동해대로를 따라가면 동해시 종합버스터미널이 나와요. 동해시 종합버스터미널에서 7번 국도 따라서 계속 걸어가다가 근로복지공단 동해병원이 나오면 계속 직진하며 발한로를 따라가요. 이러면 부곡삼거리가 나오고, 부곡삼거리에서 계속 발한로를 따라가다가 묵호성당이 나오면 묵호성당 옆 지리1길로 들어가서 지리골길로 가요. 지리골길에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철로가 나오고, 철로를 지나가면 동해시도시재생지원센터가 나와요. 여기에서 게구석마을, 산제골마을, 논골마을로 쭐쭐 넘어가며 걷다가 묵호항으로 내려와요. 묵호항이 길 북쪽 끝 지점이에요.

 

 

묵호항에서는 해파랑길 33코스를 따라 걷다가 봉오동 버스정류장에서 DB메탈 동부사택으로 내려가서 동부사택을 지나 DB메탈 동해공장으로 간 후, 굴다리를 지나 동해역으로 간 후, 동해역에서 동해항으로 가요. 동해항에서 다시 해파랑길 33코스를 따라 쭐쭐쭐 내려가서 나릿골 감성마을과 삼척항으로 가요. 삼척항에서 오십천을 따라 삼척장미공원으로 간 후, 삼척장미공원에서 삼척 버스터미널로 코스를 끝내요.

 

이렇게 하면 운탄고도1330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인 한국 현대 산업화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석탄 산업의 흥망성쇠를 모두 순차적으로 보며 걷는 길이 나와요. 동해시 지역 발전에 강원도 남부 탄전지대 석탄도 연관이 꽤 있거든요. 이렇게 동해시를 묵호까지 올라갔다가 삼척으로 내려와서 끝내게 한다면 복선도 완벽히 다 회수하는 길이 되요. 삼척 버스터미널에서 길을 끝내면 강원도 영동선 철도들이 어째서 폐역이 되었는지까지 완벽히 설명되요. 일본이 어째서 삼척탄전 개발에 박차를 가했는지도 이해되고, 삼척탄전에서 생산된 석탄들이 어떻게 운반되고 사용되었는지 깔끔히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완벽하게 길 안 겹치고 걷는 길을 만들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되는지만 확인하면 되었고, 이 계획에서 안 가본 해안가 길을 걸으며 여행하고 싶었어요. 완벽한 길을 만들려면 거리도 매우 꼼꼼히 계산하며 여행 경로를 짜야 했지만 그것까지 하면서 다닐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저 혼자만의 엔딩이라면 왔던 길 다시 걸어간다고 해도 상관없었어요. 제게 길이 겹치는 것 여부는 별로 안 중요했어요. 제게 중요한 것은 서사가 제대로 마무리되는 길이었어요.

 

 

 

 

 

 

 

토끼굴에는 초등학생들이 그린 벽화로 만든 타일이 붙어 있었어요. 디테일이 살아 있는 벽화가 있었어요. 동해시를 그린 그림에 무려 스마트폰 매장도 그려져 있었어요.

 

굴다리를 통과했어요. 묵호항선이 나왔어요.

 

 

많이 걸어서 더웠지만 가을은 가을이었어요.

 

 

묵호항역 역전까지 왔어요.

 

 

2022년 11월 1일 오후 3시 30분, 묵호항역에 도착했어요.

 

강원도 동해시 부곡동 묵호항선 철도역 묵호항역에 대한 국가철도공단 공식 소개 문구는 다음과 같아요.

 

오징어 먹물 마를 날 없이 바빳던 원래 묵호역

 

과거 동해안 제1의 무역항이자 어업 전진기지였던 묵호항은 오징어 먹물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쁜 곳이었다. 1939년부터 삼척 일대의 무연탄을 실어 나르던 항구는 1937년 10월 14일(조선총독부 고시 제 733호)에 국제무역항으로 개항하면서 일대의 중심 항구로 성장한 것이다. 그 묵호항 인근에 위치한 화물역이 바로 묵호항역이다. 그러나 사실 묵호항과 가장 가까운 역은 묵호역이고, 묵호항역은 오히려 천곡항에 더 가깝다. 역사 위치와 이름이 조금 이상한 이유는 과거 묵호항역이 묵호역이었기 때문이었다. 1940년 8월 1일 철암선(묵호역~철암역)이 개통되면서 영업개시 당시 여객도 오가던 묵호역이었던 역사는 1961년 동해-옥계 간 철도가 개통되면서 묵호항역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화물만 취급하게 되었다. 현재의 역사는 1996년 준공된 것으로 여객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광장이나 시설 없이 길옆에 바로 붙어 있어 역명판을 보지 못하면 언뜻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묵호항역 소개문을 보면 삼척탄전에서 생산된 석탄이 묵호항으로 운송되었다고 나와 있어요. 그리고 묵호항역이 원래 묵호역이었는데 묵호역이 새로 생기면서 원래 묵호역은 묵호항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묵호항역에는 돌하르방이 있어요. 돌하르방 옆에는 묵호항역 돌하르방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서 있었어요. 묵호항역 입구는 잠겨 있어서 이번에도 묵호항역 구내로 못 들어가고 철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지난번에 찍은 설명문보다는 잘 보이겠지.'

 

지난번에 왔을 때도 묵호항역 돌하르방 유래 설명문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왜 돌하르방이 묵호항역 안에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여행기에 쓰기 위해 비 쫄딱 맞아가며 촬영했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날도 더 어두웠고 비도 엄청 퍼부을 때라 사진이 매우 흐리게 나왔어요. 사진을 후보정하면 글자는 대부분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어요. 이번에 찍은 사진은 그때보다 글자가 더 선명하게 나왔어요.

 

'이건 석탄의 길 3부에 써야 하나?'

 

묵호항역 돌하르방 유래는 원래 석탄의 길 1부에 쓸 계획이었어요. 그러나 이번에 묵호항역 돌하르방 유래 사진을 지난 번보다 보다 나은 사진으로 촬영하자 이걸 1부에 써야할지 3부에 써야할지 고민되었어요.

 

 

 

"좀 쉬자."

 

발이 아파서 신발을 벗고 쉬기로 했어요. 쉴 만한 곳을 찾아봤어요.

 

 

쉴 만한 곳이라고는 묵호항역 역사 앞 계단이 전부였어요. 계단에 앉았어요. 신발을 벗었어요. 좀 살 거 같았어요.

 

'전에 왔을 때는 비 엄청 퍼부었었지.'

 

지난번에 묵호항역 왔을 때는 동해시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어요. 그날도 다리가 엄청나게 아프고 발도 뼈가 욱신거렸어요. 그때도 이날 신은 신발과 똑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어요. 그때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었어요. 심지어 버스 정류장 의자에조차 제대로 앉아서 쉴 수 없었어요. 그날에 비하면 이날 너무 편한 여행이었어요. 날이 맑아서 묵호항역 앞 계단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하고 편하고 안 힘든 일정이었어요.

 

"벌써 세 시 반이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아직 묵호등대까지는 꽤 남아 있었어요. 출발하기 전에 3시 반이면 묵호등대 도착하고도 남을 시각이었어요. 3시 반이라는 시각은 매우 중요했어요. 묵호 지역은 저녁 늦게까지 영업하는 일반 식당이 거의 없어요. 아직 묵호역까지도 못 갔는데 벌써 3시 반이면 발한삼거리에서는 저녁을 먹고 남은 일정을 소화할지 그대로 강행해서 끝내고 볼지 반드시 결정해야 할 거였어요. 만약 일정을 계속 진행한다면 저녁을 굶을 수도 있었어요.

 

묵호항역에서 누가 문을 열고 나왔어요.

 

"어?"

 

재빨리 신발을 신고 일어났어요. 묵호항역 입구로 갔어요.

 

"저기요!"

 

안으로 들어가려는 직원분을 불렀어요. 직원분이 저를 보자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꾸벅 드렸어요.

 

"혹시 안으로 들어가서 저 돌하르방 사진 하나만 찍고 가도 되나요?"

"그래요. 안으로 들어와요."

 

직원분께서는 철문을 옆으로 밀고 안으로 들어와서 돌하르방 사진을 찍고 가라고 하셨어요.

 

"여기 문은 항상 잠가놓나요?"

"원래는 안 잠갔는데 얼마 전에 윗쪽 묵호역쪽에서 사람이 기차에 치이는 사고가 있었어요."

"아...그러면 혹시 뛰어든..."

"예, 그래서 그 후부터는 여기 안에 들어와서 사고나면 안 되니까 문 닫아놓고 있어요."

 

직원분께서는 얼마 전 윗쪽 묵호역 가는 철로에서 사람이 기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묵호항역은 이상한 사람이 구내 진입하지 못하도록 입구를 닫아놓고 있다고 하셨어요. 묵호역 가는 철로는 해안가를 따라 지나가요. 철로에서 사람이 치이는 사고가 발생하게 생긴 철도가 아니에요. 일부러 철로로 뛰어들지 않는 한 철도로 접근하기도 상당히 불편해요. 그러니 스스로 뛰어든 사고라 봐야 했어요.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정말로 묵호역 들어가는 철도에서 사고가 있었어요.

 

 

2022년 8월 28일 낮 12시 50분경 강원도 동해시 부곡동 두진터널에서 50대 남성이 KTX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는 뉴스 기사가 있었어요.

 

묵호항역 돌하르방 사진을 촬영했어요.

 

 

그리고 대망의 묵호항역 돌하르방 유래 소개문 사진!

 

드디어 밝혀지는 비밀

묵호항역의 미스테리 - 묵호항역 돌하르방 유래!

 

 

묵호항역 돌하르방 유래 소개문은 다음과 같았어요.

 

묵호항역에 제주도 돌하르방이 있게 된 사연

 

제주도 돌하르방은 여산(女山)인 한라산의 음기를 잠재워 한해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한라산을 바라보는 남근을 깎아 세운 것이 현재의 돌하르방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돌하르방은 단순한 수호신의 의미를 넘어 제주도의 문화적 상징이자 자부심의 표현으로까지 여겨진다. 지난 1990년 초까지 묵호역과 묵호항역 주변은 묵호항의 대표 어종인 오징어와 명태의 풍어로 뱃사람과 상인들로 흥청거리는 파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계속된 흉어와 묵호항역 앞바다에 방파제가 건설되면서 어민들은 하나 둘 묵호항을 떠났고, 그 와중에 묵호항역 앞 유모씨의 집에 있던 돌하르방을 직원들이 발견했다. 이 돌하르방의 주인은 역 앞에서 식당을 하면서 수석을 취미로 하던 분이었는데, 어느 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던 유씨는 서귀포 모처에 있던 돌하르방을 보고 한 눈에 반해 그 이듬해 다시 제주도를 찾아 돌하르방 주인에게 몇 날을 애원하여 어렵게 육지로 가져와 30년 가까이 애지중지하다가 식당을 그만두면서 묵호항역에 기증을 한 것이다.

 

묵호항역 직원들은 역 입구에 기단을 만들어 돌하르방을 세워 철도의 발전과 직원들의 건강,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였다. 돌하르방의 영험 덕분인지 묵호항역은 큰 사고 한 번 없이 최고의 물류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직원과 가족들 또한 활기차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생활해오고 있다.

 

한편 묵호항역 구내에 있는 돌하르방은

 

'머리를 쓰다듬으면 취업의 문이 활짤 열리고'

'코를 만지면 사랑과 다산의 축복을 내려주며'

'턱을 만지면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진다'

 

는 전설을 묵호항역 직원들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묵호항역 돌하르방 유래 소개문에는 돌하르방이 왜 묵호항역 구내에 있게 되었는지 이유만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묵호 지역의 역사도 설명해주고 있었어요. 묵호 지역이 쇠락하게 된 이유는 1990년 이후 계속된 흉어와 묵호항역 앞바다 방파제 건설이었어요.

 

설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묵호 지역의 다른 쇠락 원인으로는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인한 강원도 남부 탄전지대의 몰락과 그로 인한 배후시장의 쇠퇴, 무연탄 수송이 동해역으로 바뀌며 무연탄 수송 관련 종사자들의 이주 등도 있어요. 묵호 지역이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묵호 지역에서 잡은 생선을 강원도 남부 탄전지대에 판매하며 큰 수익을 얻었기 때문이고, 묵호항이 무연탄을 수송하는 주요 화물항이라 이와 관련된 사람들도 꽤 거주했거든요.

 

 

묵호항역 구내를 대충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어요. 철문을 다시 잘 닫았어요. 묵호항선을 따라 걸어갔어요.

 

 

 

 

 

 

묵호항역에서 묵호항 가는 길은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지도 안 보고 가도 다 아는 길이었어요.

 

 

2022년 11월 1일 오후 3시 43분, 향로시장 입구에 도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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