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길 뭐야!"
동부사택에서 중앙로를 향해 걸어올라가는 길은 곱게 가는 평지가 아니었어요. 등산로였어요. 경사가 꽤 있었어요. 꼭대기에 있는 큰 길인 중앙로까지 거의 직선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었어요. 지도상으로 보면 고저차를 알 수 없었어요. 실제 걸어보니 동부사택에서 중앙로까지의 고저차는 꽤 있었어요. 짧게 가는 대신 아주 굵게 걸어올라가는 길이었어요.
"왜 등산인데!"
여행 계획 짰을 때 지도만 보고 매우 편한 길을 걷는 하루라고 여겼어요. 삼척시 도경동에서 동해시 북평동으로 넘어가는 38번 국도 길에 미고개, 한재고개가 있기는 한데 그 길도 카카오맵 로드뷰로 보면 경사가 별로 안 되어 보였어요. 그나마 미고개, 한재고개가 오르막길 올라가는 길이었고, 그 외에는 지도상 경사 심한 길을 걷게 생긴 구간이 하나도 없었어요. 동해시 도처에 언덕이 있기는 하지만 언덕쪽으로 가는 일정이 아니었어요. 내륙 삼화동으로 가면 언덕길을 걸으며 올라가야겠지만 저는 내륙 삼화동이 아니라 해안 북평동, 천곡동, 발한동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제가 계획을 보며 머릿 속에 그린 여행 길에서는 언덕 올라가는 오르막길은 묵호 발한동 가서 게구석 마을 갈 때에서야 등장할 예정이었어요.
급경사 길 중턱에 밭이 있었어요. 밭에 농부 한 명이 서 있었어요.
자세히 봤어요.
이것이 동해시의 바이오 테크놀로지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허수아비였어요. 저건 새를 쫓아내고 사람도 쫓아내게 생겼어요. 얼핏 보면 진짜 사람과 똑같았어요. 허수아비를 나무 작대기 묶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 마네킹에 옷 입히고 안전모 씌워서 만들어놨어요.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갔어요. 멀리 돌아가는 것보다는 덜 걸어가는 길이겠지만 발의 통증이 급격히 심해졌어요. 발뼈는 계속 걸어서 옆으로 벌어지려고 하는데 신발 볼은 너무 좁아서 스스로 발을 고문하고 있었어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어요.
'이게 동해시라고 하면 사람들이 믿을까?'
동해시는 동해안 도시에요. 많은 사람들에게 동해안 도시는 바닷가 이미지가 강해요. 첩첩산중 동해시 같은 이미지는 거의 없어요. 눈 앞에 펼쳐진 동해시 풍경은 첩첩산중 시골마을이었어요. 호랑이가 어흥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풍경이었어요.
'이게 삼화동쯤 되면 말이라도 안 하지.'
웃긴 건 여기가 동해시 내륙 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어요. 동해시도 내륙 지역은 태백산맥이기 때문에 험해요. 그러나 제가 있는 DB메탈 동부사택에서 중앙로 올라가는 길은 해안에서 가까운 곳이었어요. 직선 거리로만 보면 얼마 안 되는 지점이었어요. 그런데 풍경은 멧돼지가 날뛰게 생긴 깊은 산 속 풍경이었어요.
"저기가 남쪽이네."
쌍용시멘트 사일로와 그 너머에 있는 동해화력발전소 굴뚝이 보였어요. 쌍용시멘트 사일로는 동해항이에요. 동해화력발전소 방향은 북평오일장과 추암촛대바위 방향이에요. 북평오일장과 추암촛대바위 사이에 동해화력발전소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저 방향은 남쪽이었어요.
한쪽은 깊은 산 속 오지 풍경이고, 다른 한쪽은 거대한 공업단지 풍경이었어요. 아직 바닷가는 안 보였어요. 바다를 보려면 꼭대기까지 기어올라가야 했어요.
동해시도 산이 여러 겹이었어요. 삼겹산보다는 무조건 더 비만이 산지였어요. 대충 세어봐도 오겹산은 되었어요.
"다 올라왔다!"
드디어 바다가 보였어요. 꼭대기까지 다 올라왔어요.
붉은 벽돌로 지은 봉오동 버스 정류장이 있었어요.
"여기도 나름 운치 있네?"
새파란 하늘과 사퍼런 바다, 그리고 새빨간 벽돌 버스 정류장이 만드는 풍경은 운치 있었어요. 여기도 감성 사진 찍을 만한 장소였어요.
봉오동 버스 정류장으로 갔어요. 의자에 앉았어요. 신발을 벗었어요. 이대로 계속 걷는 것은 무리였어요. 발 통증을 조금 가라앉히고 땀을 식힌 후 다시 걷기로 했어요. 물을 마시며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뭐 얼마 걷지도 않은 거 같은데 벌써 1시 넘었어?"
몇 시인지 봤어요. 오후 1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아침 8시에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사무소에서 출발했어요. 중간에 엄청 오래 쉰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기껏해야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음료수 마시며 5분 정도 쉰 게 가장 오래 쉰 거였어요. 거의 쉬지 않고 주구장창 걸었는데 다섯 시간 넘게 걸어서 온 게 이제야 봉오동이었어요. 걷기는 엄청 걸었는데 여태 걸어서 한섬해수욕장도 못 갔어요.
'왜 이렇게 시간 오래 걸리지?'
다섯 시간 반 걸었으면 묵호에 도착해도 이상할 거 없을 거였어요. 묵호까지는 무리더라도 발한동 입구 정도까지는 갔을 거에요. 제 걷는 속도로 보면 대충 그 정도는 가야 했어요. 사진 찍는다고 시간을 많이 지체하지도 않았고, 중간에 쉰 시간도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어디에서 시간 이렇게 많이 잡아먹혔지?'
여기까지 온 일정을 되짚어봤어요. 여기까지 오는 길이 이렇게 힘들고 발 아플 거리가 아니었어요. 시간도 이렇게까지 많이 걸릴 길이 아니었어요. 돈이라면 이해해요. 돈이야 중간에 사용한 거 까먹었을 수도 있고, 잃어버렸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어요.
시간을 잃어버리는 길이 있다?
우리나라에 시공간 차원이 굽은 지역이 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요. 우리나라에 그런 곳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살다살다 돈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시간을 잃어버린 건 처음이었어요. 아침 8시부터 걸었는데 여태 걸어서 여기밖에 못 올 리가 없었어요. 이건 시간을 잃어버렸다고나 하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되었어요.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일정을 잘 떠올려봤어요. 다섯 시간 반 걸어서 여기까지 못 왔다면 어디에선가 시간을 엄청나게 많이 소비했다고 봐야 했어요. 시간이 많이 소비되기는 했지만 직선거리상 이동 거리가 얼마 안 나올 만한 곳은 두 곳 뿐이었어요. 도경리역 다녀온 것과 동부사택 둘러본 것이었어요. 이거 외에는 계속 길 따라 앞으로 걸어갔기 때문에 시간이 허비될 일이 없었어요.
의자에서 일어났어요. 정류장에서 나왔어요.
봉오동을 내려다봤어요.
"여기도 뭔가 사연 있는 동네 같은데?"
느낌이 왔어요. 봉오동도 분명히 사연이 있는 동네였어요.
보자마자 알 수 있었어요. 봉오동도 예전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마을이었어요. 어떤 이유로 인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마을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인터넷에서 동해시 봉오동을 검색해보면 동해시 봉오동은 안 나오고 쓰잘 데 없는 봉오동 전투만 나왔어요.
'여기도 삼척개발이랑 관련 있는 동네인가?'
충분히 가능성 있었어요. 동네 모습을 보면 계획적으로 만든 동네였어요. 주택 자체도 인위적으로 만든 동네에서 보이는 주택 모습이었고, 오래된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길이 직선으로 잘 뻗어 있었어요. 집은 속일 수 있어도 길은 못 속여요. 길을 직선으로 만들고 수직으로 교차되게 내었다면 인위적인 계획에 따라 정비했다는 말이에요. 주택이 현대에 지어진 신축 건물이 아니라 오래된 건물인데 길이 바둑판 모눈처럼 직선으로 나 있다면 매우 오래 전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만든 동네에요. 이쪽에서 이렇게 일부러 동네를 인위적으로 조성할 만한 이유라면 삼척개발이 있었어요. 당장 급경사 내리막길 내려가면 구 삼척개발 사택 단지가 있었으니까요.
천곡동을 향해 걸어갔어요.
'왜 동부사택은 별 감흥이 없었지?'
동부사택은 기대했던 것보다 감흥이 너무 없었어요. 돌아다니며 꼼꼼히 다 보기는 했지만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이게 다 도계 때문이야.'
동부사택을 보고 별 감흥을 못 느낀 이유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때문이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 가보면 광산사택이 매우 많이 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에 있는 광산사택보다 강원도 동해시 용정동에 있는 동부사택이 보존 상태도 훨씬 좋고 보다 더 인간이 살기 좋게 생긴 가옥들이었어요. 하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둘이 비슷했어요. 오히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에 있는 광산사택들이 더욱 인상적이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는 가공 하나도 안 된 보석의 원석이라면 강원도 동해시 용정동 동부사택은 1차 세공은 마친 보석 같았어요. 이미 비슷한 것을 봤던 데다 모험하는 맛도 훨씬 적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감흥이 없었어요.
그래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 광산사택과 강원도 동해시 용정동 동부사택 둘 모두 가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어요.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사택단지와 1970년대에 조성된 사택단지 형태가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것만으로도 꽤 의미있었어요. 그리고 둘을 비교해보며 둘 다 유적으로 보존하고 관광지로 개발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해야할지 생각해보면 매우 비슷하게 생긴 두 곳이지만 방향이 다르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도계 광산사택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보존 개발해야 할 거고, 동부사택은 출사지 및 세트장 같은 형태로 보존 개발해야 할 거에요.
어느덧 천곡동에 도착했어요. 익숙한 풍경이 나왔어요. 지난 여름에 왔을 때 걸었던 길과 비슷했어요. 해안가를 향해 걸어갔어요. 식당이 있는지 보며 걸었어요. 점심을 먹을 시간이 넘었어요. 점심 먹으며 잠시 쉬어야 했어요.
"육회물회? 육회 물회는 뭐지?"
'열이네 식육식당'이라는 식당이 있었어요. 식당 입구에는 점심 메뉴로 육회 물회를 판매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어요. 물회는 몇 번 먹어봤지만 육회 물회는 못 먹어봤어요.
"육회 물회 먹어볼까?"
육회 물회는 처음 보는 음식이라 궁금했어요. 한 번 먹어보고 싶었어요.
'아닌가? 다른 데 갈까?'
이날 아침식사로 태백시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었어요. 점심으로 육회물회를 먹으면 아침은 육회비빔밥, 점심은 육회물회 - 이렇게 하루에 두 끼 연속 육회였어요. 이건 좀 아닌 거 같았어요.
"물어나 보고 가자."
육회 물회가 어떤 음식인지 물어보고 결정하기로 했어요. 열이네 식육식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직원에게 육회 물회가 어떤 음식인지 물어봤어요. 물회에서 생선 대신 육회가 들어간 음식이라고 했어요.
'그냥 먹자.'
다른 식당 찾아 돌아다니기 귀찮았어요. 아니, 힘들었어요. 육회비빔밥은 육회비빔밥이고 육회물회는 육회물회였어요. 육회를 두 끼 연속으로 먹는 건 맞았지만 음식은 달랐어요. 아침에 육회비빔밥 먹고 점심에 또 육회비빔밥 먹는다면 이건 좀 아니었지만 아침에 육회비빔밥 먹고 점심에 육회물회 먹는 거니까 이건 다른 음식 먹는 거였어요.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가방에서 스마트폰 충전기를 꺼냈어요. 갤럭시노트5와 갤럭시노트10+를 충전시켰어요. 밥 먹는 동안 갤럭시노트5와 갤럭시노트10+ 배터리를 조금이라도 더 충전시켜놔야 했어요. 최대한 보조배터리를 사용해야 할 때를 뒤로 미뤄야 했어요. 보조배터리 연결하는 순간 스마트폰 사용하기 매우 불편해지기 때문이었어요.
밑반찬이 나왔어요.
조금 기다리자 육회 물회가 나왔어요.
육회 물회 국물은 붉은색이었어요. 육회 물회에 들어가 있는 얼린 육수를 갈아서 만든 육수였어요. 육수는 얼음가루로 된 슬러시 같았어요. 처음에는 얼음이 녹지 않아서 물기가 의외로 별로 없었어요. 주황색 얼음 육수 위에는 붉은 육회가 올라가 있었어요. 육회 고기는 붉은색이었어요. 고기가 매우 싱싱했어요. 육회 위에 김이 올라가 있었고, 그 위에 다진 파가 올라가 있었어요.
육회 물회를 비비려고 젓가락으로 쌓여 있는 육회를 무너뜨렸어요.
"어? 소면 들어 있잖아?"
컬쳐 쇼크
물회에 원래 소면 들어가나?
물회는 제주도에서만 먹어봤어요. 육지에서는 안 먹어봤어요. 제주도에서는 물회에 소면을 넣지 않아요. 그래서 물회에는 야채와 고기 같은 것 들어가고 국물이 흥건한 음식으로 알고 있었어요. 육회 물회 속에는 소면이 들어가 있었어요. 젓가락으로 헤집어봤어요. 소면이었어요.
'왜 소면이 들어가 있지? 여기에서는 특별히 소면 넣어주나?'
소면이 신기해서 젓가락으로 비벼가며 계속 소면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확인했어요. 소면이 꽤 들어가 있었어요.
'소면 들어가면 국수 아냐?'
육회물회가 아니라 육회 비빔물국수 같은데 육회물회였어요. 강원도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냈어요.
"이거 뭐야?"
"육회물회. 점심 먹으려구."
"맛있게 먹어."
강원도 친구가 맛있게 먹으라고 했어요.
"여기 육회물회에 소면 들어가 있어!"
"소면? 원래 물회에 소면 들어가지 않아?"
뭔 물회에 소면이야!
다시 한 번 몰려오는 문화 충격!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이 무너진다.
강원도 친구 반응에 다시 한 번 놀랐어요. 강원도 친구는 물회에 원래 소면이 들어가지 않냐고 오히려 반문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물회에 소면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어요. 제주도에서 살 때 물회 먹으면서 소면 들어가는 건 못 봤어요.
타지역 사람들은 이게 어느 정도로 충격적이었는지 잘 모를 거에요. 타지역 사람들을 위해 비유해주자면 오이냉국 시켰는데 오이냉국 속에 소면이 들어가 있는 거에요. 오이냉국에 왜 소면이 들어가 있냐고 희안해하고 있는데 옆사람이 오이냉국에 원래 소면 들어가지 않냐고 오히려 희안해하는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거에요. 이러면 제 반응이 이해될 거에요.
열이네 식육식당 육회 물회를 먹기 시작했어요. 육회 물회는 새콤하고 매콤한 물 많은 비빔국수에 육회를 올려먹는 맛이었어요.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국물이 생겼어요. 국물을 마셔가며 소면과 육회, 야채를 먹었어요. 육회 물회에 올라가 있는 육회는 씹는 맛이 좋았어요. 육회 맛은 고소했고, 순수하게 국물과 먹을 때 고기 맛이 제일 잘 느껴졌어요. 육회는 면발과 육회, 야채와 육회를 같이 먹는 것보다 육회만 국물과 먹는 것이 제일 맛있었어요.
열이네 식육식당 육회 물회에는 야채가 많이 들어 있었어요. 먹을 수록 건강한 슬로우 푸드 웰빙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들었어요. 슬로우 푸드는 모르겠어요. 육회 물회는 주문한 후 음식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맛있네?"
물회 속에 소면이 들어가 있다는 문화충격이 지나간 후 먹은 육회 물회는 맛있었어요.
식당에서 나왔어요. 2022년 11월 1일 오후 2시 5분이었어요.
"다시 가자."
드디어 바닷가를 걷는 코스까지 왔어요. 내륙 지역과는 완벽히 끝났어요. 그리고 잠시 헤어져 있었던 영동선 철도와 다시 만나서 함께 걸어가는 길이 시작될 거였어요. 여기 위치는 감추사였어요.
감추사에서 바닷가로 가기 위해서는 육교를 통해 영동선 철로를 건너가야 했어요.
"행복한섬길?"
행복한 섬길?
행복 한섬길?
한국어 띄어쓰기 잘못하면 섬이 없는 동해시 앞바다에 갑자기 섬이 생겨요. 행복한섬길 표지판은 '행복한 섬길'이 아니라 '행복 한섬길'이라고 '행복' 글자와 '한섬길' 글자 색을 다르게 칠해놨어요.
"행복한섬길도 있었나?"
여기가 해파랑길 33코스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행복한섬길은 처음 들어봤어요. 이상할 것은 없었어요. 원래 걷기 여행 코스라는 것이 만들 때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새로 건설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걷기 여행 코스를 재활용해서 만드는 경우도 매우 많거든요.
행복한섬길 노선을 봤어요.
행복한섬길 노선경로 : 총 2.4km
공영주차장(천곡동 산3-3), 감추교->0.4km->리드미컬게이트->0.3km->한섬해변 벽화굴다리->0.3km->뱃머리 전망대->0.4km->휴게쉼터->0.2km->얼굴바위 포토존->0.5km->호랑이바위 포토존->0.1km->협곡계단->0.2km->가세해변
육교 위로 올라갔어요.
"오, 최고다!"
영동선 철도와 한섬해변이 보였어요. 노르스름하고 하얀 백사장과 비취색 같은 청색 바다에 파도가 치고 있었어요. 역시 바다는 동해시 바다에요. 전망대 위치가 조금 아쉬웠어요. 사진 속 연두색 이파리 나무 맨 앞자리에 육교가 있었다면 바다와 백사장, 영동선 철교의 조화가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서 풍경을 조망할 수 있었을 거에요. 그래도 이 정도라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여기 자체가 뷰 포인트였어요. 기차 사진 찍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기차가 달려올 때 사진 찍으면 예쁜 사진 찍을 수 있을 거에요.
육교를 걸었어요.
한섬해수욕장으로 들어왔어요.
"역시 바다는 동해시라니까!"
한섬해수욕장은 높은 파도가 치고 있었어요. 날이 이렇게 좋고 바람 한 점 없는데 파도가 높았어요. 지난 여름에 동해시 여행 왔을 때가 떠올랐어요. 그때 한섬해수욕장으로 와서 파도가 뭐 이렇게 높냐고 놀랐어요. 제주도 살 때 함덕해수욕장이 파도가 높다고 재미있는 해수욕장이라고 했어요. 함덕해수욕장이 육지 사람들 사이에서 관광지로 유명해지기 전까지 함덕해수욕장은 제주시 사람들에게 파도 타며 놀기 재미있는 해수욕장으로 매우 유명했어요. 풍경은 곽지해수욕장, 금능해수욕장, 협재해변이 아름답고, 바다에 들어가서 놀기는 함덕해수욕장이 재미있다는 평이 주류였어요. 그런데 한섬해수욕장 파도 앞에서는 함덕해수욕장 파도는 잔잔한 물결이었어요.
"저기 들어가서 파도 타면 진짜 재미있겠다."
헤엄칠 것도 없고 바다에 들어가서 파도 올 때마다 껑충 뛰어서 파도 타면서 놀면 너무 재미있을 거 같았어요.
산책로를 따라 걸어갔어요.
동네 주민분들이 산책하고 있었어요. 이런 곳이 전국적으로 크게 안 알려진 게 신기했어요. 이 정도 풍경이라면 관광객이 너무 미어터져서 줄 서서 입장해야 할 수준이었어요.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 한섬해변이 전국적으로 매우 크게 알려지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기는 할 거에요. 바다가 끝내주게 아름답고 대중교통 접근성도 환상적으로 좋아요. 하지만 해변 바로 뒤가 영동선 철도에요. 그래서 카페, 식당 같은 것이 들어설 공간이 없어요. 한섬해변 자체는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보석이지만 상권이 발달할 수 있는 입지는 아니에요. 철도가 가로막고 있고, 철도 너머에는 그렇게 크지 않은 공원이 있어요. 공원 바로 옆은 큰 도로에요. 이래서 아마 풍경에 비해 못 알려졌을 거에요.
"우와!"
동해시가 노리고 이렇게 만든 굴다리는 아닐 거에요. 그보다는 영동선 철도가 한섬해변 진입을 완벽히 틀어막고 있기 때문에 접근성을 위해 굴다리를 만들어놓은 것일 거에요. 그러나 굴다리 안에서 보는 한섬해변은 환상적인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어요.
'이거 유럽 왔다고 하면 믿는 거 아냐?'
남유럽 감성 사진이 나왔어요. 여기가 지중해 어느 곳이라고 해도 믿을 그럴싸한 사진이었어요. 벽화 같은 것이 없어서 더욱 남유럽 감성 풍경이었어요.
이곳은 한섬해변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최고의 포토 스팟이에요. 찾은 사람은 모두가 환상적인 풍경에 감탄하는 곳이이에요. 여기는 동해시가 아무 것도 손대지 않고 이렇게 깔끔한 상태로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지중해 해안 유적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은 환상적인 느낌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굴다리와 출구 벽을 알록달록하게 칠해놨다면 이런 감흥이 전혀 없었을 거에요. 주기적으로 벽면만 물청소 한 번 해주면 될 거에요.
역시 이곳은 남유럽 감성인가.
동해시 와서도 감자는 못 봤어요. 아주 진귀한 감자였어요. 그러나 사과는 꽤 봤어요. 동해시에도 사과 나무가 여기저기 있었어요. 프랑스어로 감자는 대지의 사과 pomme de terre. 남유럽 감성으로 감자 대신 사과 심고 해안가 토끼굴도 남유럽 감성으로 만들어놓은 건가? 사진과 풍경을 번갈아보다 웃었어요.
한섬해변을 걷다가 언덕길로 올라갔어요.
'여기는 전에 왔을 때 걷다가 포기했었지?'
지난 여름에 동해시 왔을 때였어요. 동해서 처음 여행 와서 한섬해수욕장을 구경하다가 고불개 해변까지 걸어가기로 했어요. 고불개 해변까지 가는데 무슨 등산을 하라고 길을 내어놨어요. 너무 덥고 땀도 많이 쏟은 데다 잘못하면 엄청 많이 걸어가야 할 거 같아서 몽돌해안까지만 갔다가 되돌아나왔었어요.
이번에는 그때 걷다가 되돌아나온 등산로 같은 길을 끝까지 다 걸어가야 했어요. 행복한섬길을 끝까지 다 걸으면 묵호였어요. 행복한섬길은 천곡동, 평릉동을 지나 부곡동에 있는 부곡돌담마을 해안숲공원에서 끝나요. 표지판에는 가세해변에서 끝난다고 나와 있지만 해안가 산책로에서 완벽히 나오는 북쪽 끝지점은 부곡동 부곡돌담마을 해안숲공원이에요. 부곡동부터는 동해시 묵호 지역이에요.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시원하게 터지고 있었어요.
전에 왔던 몽돌해변까지 왔어요.
"저거 북평 아냐?"
멀리 높은 굴뚝이 보였어요.
전에 왔을 때는 해안가에서 멀리 보며 저기가 어디쯤인지 잘 몰랐어요. 그러나 이번은 동해시를 네 번째 온 거였어요. 이제 동해시 해안가는 거의 다 파악했어요. 사진에서 해안가를 따라 사진 윗쪽으로 쭉 따라가다 보면 희미하게 높은 굴뚝이 보여요. 저 굴뚝이 동해시 구호동에 있는 동해화력발전소에요. 동해화력발전소는 북평오일장과 추암촛대바위 중간에 있는 곳이니까 동해시 거의 끝자락까지 시원하게 다 보였어요.
동해시에서 동해화력발전소 굴뚝 알아두면 돌아다닐 때 이렇게 매우 유용해요. 동해화력발전소 주변으로 동해항, 북평오일장, 추암촛대바위가 있으니까요.
다시 걸었어요. 조그만 방파제가 보였어요.
조금 더 가면 얼굴바위 포토존이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진짜 얼굴바위다!"
얼굴바위는 진짜로 사람 얼굴처럼 생겼어요. 정직한 동해시였어요.
'동해시 학생들이 큰 바위 얼굴 소설 배울 때 자료 사진으로 저거 띄워주면 반응 어떨까?'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학창시절, 국어 시간이었을 거에요.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 소설을 배웠어요. 큰 바위 얼굴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얼굴 모양의 바위산이 있는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자라서 노인이 된 인물의 이야기였어요. 마을에 언젠가 큰 바위 얼굴 바위산과 얼굴이 닮은 위대한 인물이 등장할 거라는 전설을 믿는 아이가 주인공이에요.
'그러면 진짜 웃기겠다.'
동해시 얼굴바위는 사람 얼굴처럼 생겼어요. 동해시 학교에서 큰 바위 얼굴 소설 가르칠 때 자료화면으로 저거 띄워주면 학생들 반응이 참 재미있을 거에요. 저 얼굴바위를 이용해서 미국 소설 큰 바위 얼굴을 한국 동해시 소설 큰 바위 얼굴로 바꿔도 재미있을 거구요. 이렇게 글을 써보라고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요. 왜냐하면 동해시도 매우 화려하고 번영했던 시절이 있었고, 꽤 많은 변화가 있었던 지역이기 때문이에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시작해서 묵호와 북평의 전성기, 동해시의 성립, 관광도시로의 변화 등을 쭉 다루면서 쓰면 꽤 흥미로운 소설이 될 거에요. 시대가 너무 기니까 3대에 걸쳐서 일어난 일로 쓰구요.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부터 찾던 큰 바위 얼굴이라고 하면 되죠.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설을 전해주며 아들이 큰 바위 얼굴을 찾는 성장소설로 만드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거에요.
2022년 11월 1일 오후 2시 39분, 천곡항에 도착했어요.
천곡항은 조그마한 어항이었어요.
"저 집은 뭐지?"
천곡항 해안가에는 집이 한 채 있었어요. 저 집이 무슨 집인지는 모르겠어요.
천곡항 옆 해안에서 얼굴바위를 바라봤어요.
얼굴바위는 온몸을 바닷물에 푹 담그고 해수 찜질을 즐기고 있었어요.
천곡항에 있는 집으로 다가갔어요.
번지가 없었어요. 번지수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봤을 때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는 가옥은 아니었어요. 조그만 해신당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천곡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일 수도 있을 거에요. 정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건물인지 알 방법이 없었어요. 그저 밖에서 보며 어떤 건물일지 추측만 해봤어요.
한섬해변에서 오르막길을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천곡항까지 왔어요. 고불개 해변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르막길을 또 올라가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