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2부 27 - 강원도 삼척시 운탄고도1330 9길 종점 새천년 해안도로 소망의 탑

좀좀이 2023. 4. 3. 03:29
728x90

나릿골 감성마을 꼭대기까지 올라왔어요.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을 따라 새천년 해안도로까지 내려가야 했어요. 새천년 해안도로로 내려가면 다시 운탄고도1330 9길과 만날 거에요. 정확히는 지금 걷고 있는 길은 해파랑길 32코스이고, 이 길은 새천년 해안도로로 이어졌어요. 새천년 해안도로로 내려가서 삼척 소망의 탑까지 가는 길은 운탄고도1330 9길과 해파랑길 32코스가 공유하는 구간이었어요.

 

 

도시와 아파트 풍경에서 벗어났어요. 풍경이 조금 마음에 들었어요.

 

 

"엔딩은 내 손으로 마침표 찍고 싶었단 말이야!"

 

바로 조금 전까지 본 풍경과 걸은 길.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어요. 여행 길의 마지막은 거의 대부분 도시로 들어가야 해요.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도시로 가야 하니까요. 그러니 이 여행의 마지막에 도시 풍경이 등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당연했어요.

 

그렇지만 길이 끝난 후 제가 돌아가기 위해 도시로 들어가는 것과 길이 도시 내부까지 이어져서 끝나는 것은 느낌이 전혀 달랐어요. 길이 끝난 후 제가 돌아가기 위해 도시로 들어가는 것은 제가 길을 따라 흘러가는 서사에 책장을 덮은 거에요. 책장을 덮고 책을 다시 책장에 끼워넣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하지만 운탄고도1330 9길은 아니었어요. 운탄고도1330 9길은 길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도시로 들어갔어요. 여운을 남기며 끝내야 할 엔딩이 여운 없이 갑자기 밝은 스토리로 뒤바뀐 엔딩으로 바뀌었어요.

 

개인적으로 열린 결말을 별로 안 좋아해요. 열린 결말이 몇 번을 떠올리게 해서 계속 회자되도록 하는 기능이 있어서 사람들 기억에 더 많이 남기는 해요. 하지만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엔딩은 싫어해요. 이야기는 확실히 끝나야 해요. 마침표를 확실히 찍어줘야 해요. 뒷이야기를 독자가 마음대로 상상하는 거야 독자들 마음이지만, 마침표 똑바로 안 찍어놓고 끝내서 독자들끼리 의견분분하게 만드는 엔딩은 진짜 싫어해요. 한 이야기를 들은 후 확실히 끝나는 시원한 맛이 있어야죠.

 

개인적으로 열린 결말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이건 열린 결말 같은 문제가 아니었어요.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엔딩으로 등장한 격이었어요. 백 번 양보해서 길을 마치고 싶었다면 삼척항에서 끝냈으면 되었어요. 동해시가 운탄고도1330 조성 사업에 참여하지 않아서 길이 그렇게밖에 나올 수 없었다면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이 보이는 정라항에서 마침표 찍었으면 그래도 깔끔했어요. 삼척장미공원을 지나가며 보이는 장미를 완주를 축하해주는 꽃다발 행렬로 볼 수 있었을 거에요.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엔딩으로 등장하는 꼴이 된 것도 모자라서 길은 왜 운탄고도1330에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소망의 탑으로 가고 있었어요. 여기가 특별히 운탄고도1330을 위한 길도 아니었어요. 여기는 코리아둘레길 해파랑길 32구간과 겹치는 구간이었어요.

 

아파트가 안 보이자 이상한 엔딩에서 일단 벗어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주 살짝 안정되었어요. 어지럽던 머리가 덜 어지러워졌어요.

 

 

내리막길 너머로 동해 바다가 보였어요.

 

 

 

 

 

내리막길을 내려갔어요. 삼척시 동해 바닷가가 나왔어요.

 

 

"여기는 동해시 바다보다 잔잔하네?"

 

삼척시 동해 바닷가는 동해시 동해 바닷가에 비해 매우 잔잔했어요. 동해시 동해 바닷가는 파도가 매우 높았어요. 8월에 동해시 한섬해변 가서 높은 파도 보면서 파도 정말 높게 친다고 신기해서 계속 바라봤었어요. 동해시와 삼척시는 붙어 있어요. 북쪽이 동해시, 남쪽이 삼척시에요. 거리도 별로 안 멀어요. 그런데 동해시는 파도가 높았고, 삼척시는 파도가 잔잔한 편이었어요.

 

 

누가 차를 세워놓고 트로트 노래를 아주 크게 틀어놨어요. 아무 생각 없었어요. 그러려니 했어요. 트로트가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바다 풍경보다 대체 왜 '석탄의 길'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새천년 해안도로를 걷게 만들어놨는지 이해불가한 운탄고도1330 9길이 더 이상했어요. 삼척 시내에 들어오면서 서사가 이상해진 이 길의 마지막 부분에 비하면 바닷가에서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트로트 노래는 아주 정상적이었어요. 어차피 지금 관광객이라고 해봐야 저 포함해서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도 안 되는데 이럴 때나 노래 크게 틀어놓겠죠.

 

 

한자숙어 사족이 떠올랐어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딱 사족이었어요. 왜 더 걸어서 굳이 운탄고도1330을 관통하는 서사와 아무 상관없는 삼척 소망의 탑으로 가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소망의 탑 가서 완주 기념하고 소망도 빌라고 해놓은 것 같은데 이것 때문에 오히려 완주의 기쁨이 사라졌어요. 무슨 별책부록도 아니고 전혀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가 엔딩이라고 등장하고 있는 꼴이었어요.

 

'에필로그면 안 읽으면 그만인데...'

 

운탄고도1330 9길은 사실 에필로그가 있는 길이에요. 이것도 웃긴 것이 길이 끝나는 지점이 하필 소망의 탑이기 때문이었어요. 소망의 탑은 위치가 정말 어정쩡해요. 소망의 탑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운탄고도1330 9길을 완주하려면 소망의 탑까지 가야 하는데 소망의 탑에는 숙소고 식당이고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본인 욕구와 상관없이 추가로 더 걸어야 했어요. 숙소는 주로 삼척해수욕장에 몰려 있었어요. 운탄고도1330 9길은 하루에 다 걸을 수 있는 거리이지만 다 걷고 바로 타지역으로 이동하기에는 거리가 긴 편이에요. 웬만하면 삼척에서 1박 하고 떠나는 편이 좋아요. 삼척에서 운탄고도1330 9길 다 걷고 숙소를 찾아가려면 대체로 소망의 탑에서 삼척해수욕장까지 또 걸어야 했어요. 그래서 소망의 탑에서 삼척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은 일종의 에필로그였어요.

 

삼척항에서 길이 끝났다면 삼척항에서 소망의 탑, 삼척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길은 알아서 걷고 싶은 사람은 걸으라고 해도 되었을 거에요. 이왕 온 김에 코리아둘레길 32코스, 33코스 걷는 것도 괜찮을 거니까요. 그러나 이 길에 그런 선택권은 없었어요. 잠시 샛길로 빠지는 건 가능해도 소망의 탑까지 걸어가야만 완주였어요. 왜 가야하는지 모르겠고 소망의 탑에 어떤 의미가 있고 석탄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길이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소망의 종이 나왔어요. 소망의 종을 보러 가지 않고 소망의 탑으로 걸어갔어요.

 

2022년 10월 21일 오후 2시 55분, 드디어 운탄고도1330 9길 종점이자 운탄고도1330 전체 코스 종점인 삼척 소망의 탑에 도착했어요.

 

 

"저게 소망의 탑이구나."

 

 

소망의 탑 들어가는 길 옆에 운탄고도1330 안내판이 있었어요.

 

 

드디어 운탄고도1330 종점 소망의 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환영...

 

 

응?

어?

어!

 

누가 완공도 되지 않았는데 오랬어?

또 무슨 소리 하려구?

나는 분명히 완공 안 되었으니 오지 말라고 했다?

 

 

"으아아!"

 

뒷목 잡았어요. 그렇지 않아도 엔딩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분노하게 만들었어요.

 

2022년 10월 21일 당시 삼척 소망의 탑은 공사중이었어요. 새천년 해안도로 썬라이즈 명소화 사업이 진행중이었어요. 새천년 해안도로 썬라이즈 명소화 사업은 2020년부터 시작해서 2023년까지 진행되는 공사라고 나와 있었어요. 주요 내용으로는 소망의 탑 앞에 감성로드 전망대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 엔딩

보고 싶지 않은 엔딩

그래도 엔딩이라고 보려고 왔는데!

 

만화였으면 뒷목 잡고 고개 뒤로 젖히며 피 토하는 장면으로 저를 그렸을 거에요. 이 뭔 황당한 엔딩이냐고 어지럽던 머리가 열까지 받으면서 불기둥 토네이도가 머리를 뚫고 폭발했어요.

 

 

강원도 삼척시 운탄고도1330 9길 종점 새천년 해안도로 소망의 탑 주변은 조용했어요. 바닷가 파도 소리와 함께 작게 '아오, 썅!'이라고 외친 제 목소리만 존재했어요. 이게 책이었다면 진짜로 엔딩 부분 찢어서 한 장 한 장 박박 찢고 불싸질러버렸을 거에요. 책이 아니라 도보 여행 코스였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어요.

 

반응형